한국축구와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의 동행이 끝나는 분위기다. 들끓는 경질 여론에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도 해임으로 의견을 모았다. 아직 경질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이제 남은 마지막 절차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결단뿐이다.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 다른 선택을 예상하기도 어렵다. 1년 전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일만 남은 모양새다.
관심을 모았던 전력강화위원회 의견은 ‘해임’이었다. 100% 의견이 일치한 건 아니었으나 지난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부진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지난 1년의 여정이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만이 사실상 유일하게 클린스만 감독의 유임에 힘을 실은 것으로 전해졌다.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의 전력강화위 브리핑에 따르면 이날 위원들은 클린스만 감독의 아시안컵 전술 준비 부족과 대표팀 선수 발굴 노력 부족, 선수단 장악 실패, 미흡한 근무 태도 등을 지적했다. 클린스만 감독 부임 후 지난 1년의 여정 속 팬들의 비판을 받았던 부분들이기도 하다.
황보 본부장은 “전력강화위원들은 아시안컵에서 두 번째로 만나는 상대(준결승 요르단)임에도 불구하고 전술적인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고, 재임 기간 중 감독이 직접 선수를 보고 발굴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팀 분위기나 내부 갈등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팀 규율이 부족했다는 지적, 국민들을 무시하는 근무 태도 탓에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 불가능하다는 평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여러 이유들로 전력강화위원회에서는 클린스만 감독이 더 이상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리더십을 계속 발휘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래서 (감독) 교체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전반적으로 모아졌다. 오늘 전력강화위원회의 논의 내용과 결론은 협회에 보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전력강화위원회의 ‘해임’ 의견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 여론에 사실상 쐐기를 박은 셈이 됐다. 심지어 클린스만 감독은 아시안컵 리뷰를 하면서 자신의 전술 부재에 대한 문제는 없고, 대회 도중 나온 손흥민·이강인의 불화가 경기력에 악영향을 줬다며 선수를 탓하는 듯한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스스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다만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이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 전력강화위원회는 대표팀 운영에 대해 조언·자문하는 기구라 직접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결정할 수는 없다. 전력강화위원회의 해임 의견이 대한축구협회, 정확하게는 정몽규 회장에게 보고되는 배경이다. 결국 최종 결정권을 가진 정 회장이 결단해야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이 최종 확정된다.
경질 여론이 들끓고 있는 데다 전력강화위원회도 같은 의견을 제시하면서 정몽규 회장도 궁지에 몰린 모양새다. 이르면 다음 주쯤 최종 결과가 나올 것이라던 당초 전망과 달리 전력강화위 다음날인 16일 오전 10시 곧바로 비공개 임원회의를 여는 것 역시도 더 이상 고민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임원회의에는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정몽규 회장이 직접 참석하고, 대한축구협회 주요 임원진도 나설 예정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논의 주제가 ‘국가대표팀 사안’이라고만 발표했으나 사실상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될 전망이다. 차기 사령탑 선임 방향이나 3월 A매치 운영 방안 등도 논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다만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고, 결과 발표에 대해서도 정해진 바가 없다. 임원회의 내부적으로 사안이 결정되더라도 발표는 다음 주로 미뤄질 수도 있다.
정몽규 회장 입장에선 1년 전 자신이 선임한 클린스만 감독을 스스로 내쳐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지난해 클린스만 감독 선임은 전력강화위원회가 배제된 채 정 회장의 주도로 이뤄졌다. 전력강화위원들은 선임 30분 전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았고, 클린스만 감독도 취임 기자회견에서 정 회장과 오랜 친분을 강조했을 정도. 전술적인 역량 등 클린스만 감독 선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도 밀어붙였던 정 회장으로서는 1년 만에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다만 이 과정에서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발표와 사과문만으로 상황을 수습해서는 안 된다. 정몽규 회장 스스로의 거취와는 별개로, 1년 전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외신들조차 비판했던 클린스만 감독을 도대체 왜, 어떤 절차를 거쳐 선임했는지 등을 정 회장이 직접 해명해야 클린스만 감독과 동행을 완전히 끝낼 수 있다. 앞으로 제2의 클린스만 감독 선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절차이자, 정 회장이 조금이나마 책임을 다하는 길일 수 있다. 정몽규 회장의 ‘입’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