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다. 자칫하면 누구를 헐뜯는 일이 될까 보아서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쓸 수 밖에 없게 생겼다. 부디 이야기 속 주인공은 나를 원망하지 말기 바란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뜸을 들이느냐고? 하기는 해야겠는데 막상 하자니 찜찜한 이야기이다.
지난 2월 하순이었다. 사회인 제자가 소셜 미디어(SNS) 링크 하나를 보냈다. 제법 이름 있는 소셜 미디어 골프 채널에 올라온 영상 링크였다. 제자가 링크를 보내며 물었다. “이거 맞나요”라고.
3분이 조금 안 되는 영상에는 ‘이런 골프룰이 있다고요’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영상 시간은 제법 길었지만 내용은 간단했다. 물론 골프 규칙 전문가 축에 드는 뱁새 김용준 프로가 보기에 간단했다는 말이다.
뱁새 김 프로가 골프 규칙 전문가이기도 하냐고? 그렇다. 뱁새는 프로 골퍼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위원이 되었다. 심판 말이다.
뱁새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경기위원으로 4년간 근무했다. 그 가운데 나중 2년은 KPGA 1부 투어인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으로 근무했다. 어떻게 늦깎이 프로 골퍼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기위원까지 했느냐고? 골프 규칙을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길래?
그랬다. 뱁새는 한 때 골프 규칙에 깊게 빠졌다. 세계 골프 규칙을 주관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개설한 ‘토너먼트 운영자와 심판을 위한 교육 과정(TARS)’의 최종 단계인 ‘레벨3’를 최우수 성적으로 수료할 정도로 말이다. 레벨1과 레벨2를 빼어난 성적으로 수료한 사람만 레벨3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레벨3 교육을 마친 후 치른 시험에서 60점을 넘기면 통과(PASS)이다. 80점을 넘으면 의미 있는 통과(PASS With Merit)이고. 90점을 넘으면? 탁월한 통과(PASS With Excellent)라는 수료증을 준다. 뱁새가 몇 점쯤 맞았는지 독자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지간히 자랑을 하는 것 보면 뻔하지 않은가? 뱁새는 TARS 레벨3에서 받은 성적과 영어에 능통하다는 점에 더해서 KPGA 프로이기까지 하다는 점까지 높이 산 덕에 KPGA 경기위원이 되었다. 지난 2018년 일인데 프로 골퍼가 된지 단 4년만이었다.
뱁새는 2년간 지역 경기위원으로 근무하다가 지난 2020년에는 KPGA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아차, 제 자랑만 실컷 하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까먹었다. 맞다. 사회인 제자가 보낸 링크 속 영상에 담은 골프 규칙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그 영상은 이름을 날리는 프로 골퍼가 올린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특이한 규칙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백스윙을 하려는데 나무가 걸리면 왼손으로 스윙을 할 수도 있다. 왼손으로 스윙을 하려고 스탠스를 잡았는데 마침 스탠스가 카트 도로에 걸리면 그 카트 도로로부터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구제를 받고 나서 다시 오른손으로 스윙을 해도 된다.”
얼핏 보면 그럴싸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정확히 따지면 그가 한 이야기는 엉터리이다. 뭐가 틀린 이야기이냐고? 바로 나무에 걸린다는 것만으로 왼손으로 치겠다는 주장을 인정해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시원하게 샷을 날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불편한대로 샷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왼손으로(오른손잡이 기준) 치겠다는 주장을 경기위원이 인정하려면 오른손으로는 도저히 플레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백스윙을 조금만 하려고 해도 펜스가 걸리는 것처럼 말이다. 나무를 안고 치지 않는 한 오른손 플레이가 도저히 불가능해서 왼손으로 뒤로 뺄 수 밖에 없는 경우처럼 말이다.
규칙을 꿰고 있는 경기위원이라면 웬만큼 백스윙을 할 수 있으면 당연히 그대로 플레이 하도록 판정한다. 공식 경기에서도 이런 상황이 종종 나온다. 선수가 왼손 플레이를 하겠다고 주장하는데 경기위원이 인정하지 않는 상황 말이다. 30㎝만 백스윙을 할 수 있어도 그대로 쳐야 한다고 뱁새는 생각한다.
골프 규칙에 대해 엉터리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처음도 아니어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이 가볍게 끝나지 않을 상황이 되어갔다.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이자 뱁새가 좋아하는 공태현 프로가 하루 사이를 두고 같은 링크를 보냈다. 사회인 제자와 똑같이 “이게 맞는 말이냐”고 물었다.
뱁새는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번에는 더 알기 쉬운 예까지 보태서. 오른손잡이가 공을 확 잡아당겨서 왼쪽 비탈에 걸렸다고 치자. 발끝이 내리막인 불편한 샷을 해야 하는 한다. 이 때 선수가 ‘차라리 카트 도로에 서서 왼손으로 치면 더 시원한 샷을 날릴 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고 하자. 그리고 나서는 ‘스탠스가 카트 도로에 걸리니 구제를 받겠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경기위원이 허용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왼손 스윙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프로에게 설명하면서도 뱁새는 주저했다. 칼럼에 쓰면 누구를 망신 주려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데 며칠 더 지나자 젊은 프로 골퍼 한 명이 같은 링크를 보냈다. 대회에 나가는 청년이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게 되었다. 더 놓아두었다가는 엉터리 설명을 믿고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보는 선수가 나올 판이니까.
규칙을 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규칙을 가르치는 것은 정말 긴장되는 일이다. 골프 규칙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뱁새에게도 말이다. 제발 골프 규칙만큼은 어설프게 알고 가르치지는 말자!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