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역대급' 직구다. 김택연이 메이저리그(MLB) 최정상급 타선의 강타자들을 상대로 호투했다. 복잡한 기교도, 팔색조 투구도 필요하지 않은 압도적인 힘을 보인 투구였다.
김택연은 1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MLB) 월드 투어 서울 시리즈 LA 다저스와 스페셜 매치에 6회 말 구원 등판해 3분의 2이닝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팀 코리아 소속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김택연은 이번 시리즈가 첫 성인 국가대표 출전이다. 국가대표 경험은 고사하고 프로 경험조차 없다.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지명된 그는 아직 프로 데뷔전을 치르지 않았다. 스프링캠프 연습 경기와 시범경기에서 연일 호투해 벌써 유력 마무리 후보로 거론되지만, 신인은 신인이다. 아직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기록된 그의 공식 기록은 0이닝 0타석 소화다.
그런 김택연이 돌연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MLB에서도 최정상급으로 꼽히는 다저스전에 나선 건 류중일 팀 코리아 감독의 생각 때문이다. 류 감독은 18일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나 "직접 보진 못했지만, 투수 파트에서 김택연의 직구가 좋다더라. 오승환급이라더라"며 "오늘 들어갈 것 같다"고 예고했다. 그는 "투수 코치 쪽에서는 '두 신인에게 1이닝씩 한 번 맡겨봅시다'라며 이야기하더라. 오늘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신인들을 모두 한 번씩은 마운드에 올려 MLB 타자 상대를 시켜보고 싶다. 안되면 못 할 수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 그대로 기회를 줬다. 김택연은 6회 말 테오스카 에르난데스, 제임스 아웃맨을 상대했다. 다저스가 자랑하는 1번 타자 무키 베츠, 2번 타자 오타니 쇼헤이, 3번 타자 프레디 프리먼은 아니었으나 두 사람의 무게감도 막강했다. 에르난데스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인 2020년과 2021년 외야수 실버슬러거를 탄 강타자. 아웃맨은 지난해 다저스 주전 중견수로 23홈런 16도루를 기록한 호타준족이다.
두 강타자를 김택연이 잡아냈다. 그것도 오롯이 힘으로 이겼다. 에르난데스를 첫 상대로 맞은 그는 3구 연속 직구를 던졌다. 구속은 최고 시속 92.8마일이 찍혔고, 5구째 높은 몸쪽 직구로 헛스윙 삼진을 끌어냈다. 시속 93.7마일(150.8㎞).
이어 아웃맨도 잡아냈다. 직구 3구가 먼저 볼로 들어갔다. 하지만 4구째 직구를 한가운데 던져 스트라이크를 벌었고, 5구째 높은 직구가 헛스윙 스트라이크를 유도했다. 풀카운트. 이어 6구째 직구가 한가운데로 들어갔지만, 아웃맨이 이를 콘택트하지 못하고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149㎞/h. 오로지 직구 힘만으로 강타자를 잡아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경기였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김택연은 "대표팀으로 처음 나선 경기이기에 피해가는 승부를 하고 싶지 않았다"며 "나다운 공을 던지고 후회 없이 내려오자는 생각했는데 그렇게 한 것 같아 만족한다"고 전했다.
긴장하지 않았냐고 묻자 김택연은 "던지기 전 많이 긴장됐는데, 초구를 던지고 나니 긴장이 좀 풀렸다. 타자가 누군지를 보기보단 내 공을 던진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답했다.
아웃맨을 상대로 던진 한가운데 삼진 공에 대해서는 "칠 테면 쳐보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내 공을 테스트해본다는 생각으로 던졌다. 상대가 나에 대한 정보가 없을 테니 유리한 상황에서 투구해 그런 결과가 나온 거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