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54)는 샷 순간 허리에 통증을 느꼈다. 샷이 연못을 향했고, '물에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때 갤러리의 외침이 낙담한 최경주를 깨웠다. 기적적으로 공이 살아 있었던 것. 연못 가운데 아주 작게 솟은 러프 위에 안착해 있었다. 소리 친 갤러리는 최경주의 고향 '완도'를 외치며 그의 기사회생을 축하했다. 그렇게 최경주는 작은 섬 위에서 친 '아일랜드 샷'을 파 세이브로 연결, 연장전을 2차까지 끌고 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최경주는 19일 제주도 서귀포시 핀크스 골프클럽 동·서 코스(파71)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SK텔레콤 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3타를 잃어 최종합계 3언더파 281타로 박상현과 동타를 이뤘다. 3라운드를 5타 차로 앞서며 순항했지만, 마지막 라운드에서 보기 5개 버디 3개로 고전하며 연장까지 경기를 끌고 가야 했다.
17번 홀 첫 번째 샷이 벙커에 빠지고, 18번 홀에서도 세컨 샷이 그린 옆 벙커로 향하며 위기가 계속됐다. 당시 허리 통증이 있었다고 돌아본 최경주는 결국 1차 연장전에서도 샷이 빗나가며 해저드에 빠질 뻔한 위기를 맞았다. 기적적으로 섬 위에 공이 떨어지며 살아난 최경주는 이후 다시 안정을 찾아 2차 연장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대회 후 최경주는 '아일랜드 샷'을 두고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샷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위치에 있던 것이 안 믿어진다. 하늘이 도왔다"라며 "'K J CHOI 아일랜드'로 (그 섬에 이름을) 붙이고 싶다"라며 웃었다. 최경주는 "정말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었다. 몸에 계속 부담이 오고 그래서 더 간절해진 것 같다. 그래서 이 아일랜드가 있었던 것 같다"라며 "이렇게 우승해서 기쁘다. 이 감정을 설명하기 어렵다"라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우승 상황도 드라마틱했지만, 54세 생일, 최고령 우승자라는 타이틀도 한편의 드라마를 완성시킨 소재가 됐다. 1970년 5월 19일생인 최경주는 54세 생일에 우승, 2005년 매경오픈에서 최상호가 기록한 50세 4개월 25일 우승을 넘어 투어 최고령 신기록을 세웠다. SK텔레콤 오픈에서 네 번째 우승(2003, 2005, 2008, 2024년)을 차지한 그는 KPGA 투어 통산 17번째 우승을 거뒀다.
"국내에서 우승했을 때 오늘처럼 이렇게 감정이 벅찬 적이 없었다"라고 고백한 그는 "사실 대회 개막 전 프로암에서 주최사 대표님께서 ‘이러다가 우승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물어봤다. 그때 나는 ‘제가 우승하면 안 된다. 여기 얼마나 좋은 후배 선수들이 많은데 저는 컷통과만 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는데, 대표님 말씀대로 우승을 하게 됐다. 이번 우승이 정말 기쁘고 앞으로 내 자신의 발전과 함께 삶을 확실히 변화시킬 수 있는 우승인 것 같다"라며 기뻐했다.
54세의 나이에도 최경주는 멈출 생각이 없다. 지난주에도 최경주는 '시니어 PGA(미국프로골프) 챔피언십' 메이저 대회 'PGA투어 챔피언스 리전스 트래디션'을 치르고 귀국했다. 최경주는 이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PGA 챔피언스 투어에 집중할 계획이다. 올해 목표인 PGA 챔피언스투어 상금 순위 TOP10 진입을 위해 "앞으로 격주로 규모가 큰 대회에 나설 계획이다. 쉽지 않은 무대지만 열심히 해보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