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에 지난봄은 '악몽'이었다. 3월 7승 1패로 시즌을 출발했으나, 이후 두 달 동안 승률 0.370(17승 1무 29패)에 머물렀다.
특히 5월 뒷문이 말썽이었다. 한화의 월간 불펜 평균자책점은 10위(6.39)로 추락했다. 시즌 전 마무리로 낙점했던 박상원을 포함해 구위와 경험을 갖춘 김범수, 장시환, 한승혁 등이 일시에 무너졌다. 셋업맨 이민우와 마무리 주현상을 제외하면 누구라도 믿고 맡기기 어려웠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이 지난 3일 부임한 뒤 불펜 안정세를 찾았다. 김 감독 부임 후 첫 7경기에서 한화 불펜은 평균자책점 2.45, 이닝당 출루 허용(WHIP) 1.26, 피OPS(출루율과 장타율의 합) 0.642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이 기간 쏠림 현상도 없었다. 김규연이 4경기 6과 3분의 1이닝으로 가장 많이 던졌다. 장시환, 김범수, 박상원, 한승혁, 주현상, 장민재, 김기중 등이 최대 5이닝, 최소 2와 3분의 1이닝을 분담했다. 9일 NC 다이노스전에선 불펜 6명이 8이닝을 나눠 던져 3-3 무승부를 지켜냈다.
한화에 큰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사령탑이 바뀌었을 뿐 코치진은 그대로다. 다만 한 주간 선수단을 파악하던 김경문 감독이 '계산'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김 감독은 12일 무승부에 대해서도 잔루(17개)가 많았던 타선을 질책하는 대신 불펜을 칭찬했다. 그는 "타선이 못해 무승부를 했다기보단 투수진이 12회까지 잘 막아준 결과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헛심 썼다 하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격려했다.
김경문 감독은 "우리 승리조가 어느 팀과 만나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라며 "어느 팀이든 승리조는 빡빡한 일정으로 등판한다. 일주일에 4경기도 나온다. 아주 잘 관리해 줘야 한다. 컨디션 조절만 잘해준다면, 어느 팀이든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 불펜이 괜찮다"고 강조했다.
김경문 감독은 12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도 "불펜이란 보직이 정말 힘들다. 보이는 것 외에도 (몸을 풀면서) 던지는 공이 많다. 급박할 때 나와서 1이닝을 막는 게 쉬워보여도 그렇지 않다"며 "그런데 생각보다 우리 불펜이 잘 버티고 잘 막아준다. 우리 불펜 투수들 좀 많이 치켜세워 달라"고 전했다.
멘털도 이유라고 봤다. 김경문 감독은 "선수가 매번 잘할 수는 없다. 못할 때는 감독이 조금 용기도 주고, 어떨 때는 눈 감고 모른 척 하기도 해야 한다.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라며 "어느 선수든 자신감이 떨어지면 공을 던지기 전에 생각이 많아진다.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좀 심어주려고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주 KT 위즈전에서 세리머니를 하다 벤치클리어링의 원인이 된 박상원도 감쌌다. 김 감독은 "박상원이 원래 액션이 그런 선수더라. 마무리 투수로 뛸 때도 했더라. 마무리를 맡았다가 물러나니 본인도 답답한 것도 있지 않았겠나"라며 "지금 굉장히 좋다. 우리 승리조다. 굉장히 고맙다. 관리만 조금 더 잘해주면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