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이 사실 비자책으로 잘 던졌지 않나...이렇게 잘 던지고도 승리를 못 가져간 게 좀 아쉽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은 지난 13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 앞서 하루 전(12일) 호투한 류현진(37)의 공을 칭찬했다. 등판에 앞서서도 "현진이한테는 주문한 게 없다. 그저 아프지만 말고,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이야기해달라는 말밖에 안 했다"고 '절대 신뢰'를 보냈다.
그날 류현진은 믿음에 보답했다. 6이닝 동안 9피안타를 맞았지만 무사사구 2실점. 그마저도 모두 비자책이었다. 두산 타선이 한화의 실책을 틈타 압박했지만, 두 차례 실점 위기에서 류현진은 내야 뜬공을 유도하며 버텨냈다. 에이스의 관록이 묻어나온 경기였다.
류현진의 페이스는 이미 '정상 궤도'에 올랐다. 시즌 초만 해도 평균자책점이 치솟았다. 5월 8일 기준 평균자책점이 5.65였다.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이후 제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5월 14일 NC 다이노스전 6이닝 2실점 호투하더니 이후 4경기에서 모두 1자책점 이하를 남겼다. 5경기 평균자책점이 0.93. 메이저리그(MLB)에서 막 돌아왔던 류현진에게 기대했던 바로 그 모습이다.
세부 성적으로 봐도 준수하다. 9이닝당 탈삼진이 7.38개(13위)로 전성기엔 미치지 못하지만, 9이닝당 볼넷도 2.25개(10위)를 기록 중이다.
가장 돋보이는 게 피홈런이다. 류현진의 시즌 평균자책점은 3.75(7위)까지 내려왔다. 국내 평균자책점 2위(3.74)인 양현종(KIA 타이거즈)의 바로 뒤다. 그런데 류현진의 피홈런은 시즌 통틀어 단 한 개에 불과하다. 2위 곽빈(두산 베어스)의 4개와도 차이가 크다. 평균자책점 1위(2.21) 제임스 네일(KIA)도 5개, 국내 1위(3.04) 원태인도 6개나 맞았다. 평균자책점 이상으로 류현진의 공이 공략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류현진에게 부족한 건 결국 승리다. 최근 5경기 0점대 평균자책점 구간에서조차 2승에 불과했다. 17일 기준 시즌 4승으로 다승 순위가 공동 27위에 불과하다. 12일 경기에서는 승리 요건을 채우고 7회 마운드를 김규연에게 넘겼지만, 1루수 포구 실책으로 동점을 내주면서 선발승을 추가하는 데 실패했다.
김경문 감독은 한화 사령탑에 취임하면서 "대전에 도착하니 2008년도 (류)현진이와 함께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일이 생각났다. 다시 만나게 되니 너무 기쁘다"고 류현진과 재회를 가장 기뻐했다. 김 감독과 인연 있는 선수가 많지 않은 한화다. 김 감독에게도, 선수단에게도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에이스라 의미가 더 크다.
그만큼 승리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법 하다. 김 감독은 13일 "류현진이 비자책 호투를 했지 않나. 이렇게 잘 던지고도 승리를 얻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 우리 선수들이 그동안 수비를 잘 해놨는데 (실책이 나와) 아쉬운 부분이 있다. 다음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보답하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놓쳤던 승리에 다시 도전한다. 이번 상대는 키움 히어로즈. 무대는 청주다. 12년 만에 서는 무대다. 7시즌 통산 11경기에 등판해 7승 2패 평균자책점 3.25를 남겼다. 좋았던 기억이 더 많다. 신인 때는 4경기 2승 2패 평균자책점 4.97에 그쳤으나 이후 꾸준히 호투했다. 2007년 LG 트윈스 상대로 완봉승을 거뒀고, 2010년엔 다시 LG와 만나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17개) 기록을 세웠던 곳이다. MLB로 떠나기 전인 2012년 시즌 초반 대체 홈 구장으로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다만 '한국의 쿠어스필드'로 불릴 정도로 타자 친화적인 곳이기도 하다. 전성기보단 구위가 떨어진 류현진에겐 노련함이 필요하다.
상대는 신인왕 유력 후보 중 한 명인 김인범이다. 올 시즌 2승 4패 평균자책점 3.67을 기록 중이다. 느린 구속으로 타자들에게 범타를 끌어낼 줄 알지만, 최근 3경기 3연패에 빠졌다.
류현진 개인으로서는 부진의 시작이 된 상대라 설욕도 필요하다. 3월 2경기 평균자책점 3.72를 찍었던 류현진은 4월 5일 키움전에서 4와 3분의 1이닝 9실점으로 무너지며 흔들렸다. 이후 기복이 길어졌고, 3점대 평균자책점을 되찾는 데 두 달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리그 최하위지만, 류현진에겐 아픈 기억이 있는 '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