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균(42) 조폐공사 화폐본부 차장은 정말 오랜만에 '올림피언'의 기분을 만끽했다. 전 차장은 지난 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트로카데로 광장에 마련한 챔피언스 파크에서 열린 메달 재배정 행사에 초대 받았다.
국제 올림픽위원회(IOC)는 과거 약물 등의 이슈로 기존 메달 수상자 대신 새로이 수상 자격을 얻은 이들을 챔피언스 파크로 초대했고, 이들 중 한 명이 전 차장이었다. 행사 막판 이날 드레스 코드에 맞춰 검은색 정장을 입고 전 차장이 등장했다. 행사를 보기 위해 찾은 현지 관중들이 전 차장에게도 환호를 날렸고, 그도 손을 크게 흔들며 화답했다. 이어 올림픽 바이애슬론에서 금메달 5개를 딴 마르탱 푸르카드 국제울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 메달을 수여했다.
행사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전 차장은 "12년 전에 올림픽 현장에서의 기분이 지금 살아날까 걱정했다. 그런데 오늘 시상식에 참가해보니 그래도 관중들의 반응에 위로가 되더라"며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어서 세리머니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도 관중들이 함성을 크게 질러주시니 자신 있게 세리머니를 해봤다"고 웃었다.
전상균 차장은 원래대로라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수상자로 시상대에 올라야 했다. 2012 런던 올림픽 역도 남자 105㎏이상급에 출전한 전상균은 합계 436㎏을 들어 4위를 기록했다. 한 계단 차이로 떨어진 그를 밀어냈던 건 국제 무대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루슬란 알베고프(러시아)였다. 알베고프는 448㎏을 들어 전 차장 대신 시상대에 올랐다.
하지만 알베고프의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2017년과 2019년 도핑 테스트 위반 혐의로 선수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에 국제역도연맹(IWF)은 2022년 3월 15일 알베고프의 국제대회 기록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올해 3월 21일 마침내 알베고프의 '런던 올림픽 기록'까지 삭제했다. IOC도 올해 3월 말에 전상균의 동메달 승계를 확정했다.
당시를 떠올린 전 차장은 "당시엔 깨끗히 패배를 인정했다. 아쉬움도 잊고 살았다"며 "12년 만에 인정했던 패배가 좋은 결과로 돌아오니 참 기분 좋다"고 전했다.
전 차장은 "한국의 경우는 (약물) 청정 국가지만 어떤 나라는 당연하게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더라. 그건 스포츠인으로서, 운동선수로서 위배되는 행동이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약물은 절대 근절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눈길을 끄는 게 연금이다. 올림픽에서 수상하면 연금이 나와야 마땅하지만, 전 차장은 12년 동안 받았어야 할 연금을 받지 못하고 살다가 올해 4월부터야 월 52만 5000원의 동메달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소급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약 80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은 받지 못하게 됐다.
전 차장은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원래 생각하지도 않았던 돈"이라며 "주는 대로 받겠다. 아내는 '노후 자금으로 쓰자'고 하더라. 잘 저축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지금은 역도인이 아닌 전 차장에겐 올림픽의 공기를 다시 느끼는 게 뜻깊은 경험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이 끝난 뒤 조폐공사 역도팀 감독으로 일했던 전 차장은 2014년 팀이 해체되면서 조폐공사 일반직으로 전환했다. 10년 넘게 바벨을 놓고 살았던 그가 모처럼 올림피언이 됐고, 회사도 그의 수상을 축하했다는 후문이다.
전 차장은 "회사 사장님, 동료, 후배, 선배들이 정말 많이 축하해줬다"며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그래서 오늘 세리머니에 회사기를 가지고 왔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전상균 차장의 역도 DNA는 딸에게 이어진다. 전 차장의 딸인 전희수(17·경북체고)는 여자 역도 유망주로 꼽힌다. 전희수는 지난 6월 여자 고등부 76㎏급에서 합계 한국 학생 신기록(233㎏)을 세우는 등 아버지의 길을 밟아가는 중이다.
같은 역도 선수로 축하할 법도 한데, 전 차장은 딸이 별다른 축하 인사를 하지 않았고 웃었다. 전 차장은 "딸은 별 감흥이 없는 것 같다. 예전부터 희수는 '아빠가 역도 선수 출신인 걸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모습에는. 내 딸이지만 존경한다. 훌륭한 선수가 됐으면 한다"고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