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탁구가 중흥기를 맞았다. 베테랑 전지희(미래에셋)도, 드디어 잠재력을 만개한 신유빈(대한항공)도, 모두의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며 한 축으로 발돋움한 이은혜(대한항공)도 모두 주인공이었다.
신유빈, 이은혜, 전지희으로 팀을 꾸린 한국 여자 대표팀은 10일(한국시간) 프랑스의 사우스 파리 아레나4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샨샤오나, 완위안, 아네트 카우프만으로 이뤄진 독일에 매치 점수 3-0으로 완승하고 동메달 수상을 확정했다.
말그대로 완승이었다. 복식에서 2게임을 내주며 3-2 신승을 거두긴 했으나 단식 2경기를 모두 3-0으로 끝냈다. 대회 전까지 대표팀의 '약한 고리'로 평가받던 이은혜가 최고의 경기로 2단식을 가져왔고, 오랜 기간 '노메달'의 설움과 싸웠던 전지희는 세 번째 올림픽에서 값진 동메달을 스스로 가져왔다. 한국 대표팀의 달라진 '클래스'를 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신유빈은 "언니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내가 또 메달을 걸게 됐다. 너무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은혜는 "함께 메달 따 영광이고 행복하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세 번째 도전 끝에 메달을 딴 전지희는 비교적 담담했다. 전지희는 "너무 행복해서, 마지막에 눈물이 살짝 났다"며 "메달이 8년 만에 왔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부터 세 번 뛰었다. 마지막 이 대회까지 기회를 주셨고, 내가 자리를 잘 지킬 수 있었다. 두 선수와 함께 싸우러 나갈 수 있어 행복했다"고 떠올렸다.
승부처는 이은혜가 잡은 2단식이었다. 이은혜는 "나도 2단식이 중요하단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내가 할 수 있는 데 집중하려고 했다. 1복식에서 지희 언니와 유빈이가 부담이 컸을 거다. 그런데 잘 견뎌내는 모습이 내게 정말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이날 단식 경기에 나서지 않았던 신유빈은 이은혜와 전지희의 경기 때 '신 스틸러'였다. 중간중간 오광헌 여자 탁구 감독과 그들이 상의하러 오면 오 감독 대신 신유빈이 나섰다. 알고 보니 '감독 대행'은 오 감독의 지시였다.
신유빈은 "감독님께서 지시해주셨다. 나보고 대신 얘기하라 하시더라"며 "나랑 붙어봤던 선수가 은혜 언니와 만나서 비디오 보면서 했던 얘기를 다시 나눴다. 또 언니가 너무 잘하고 있다, 완벽하다고 했다. 지희 언니에게도 너무 좋다, 오늘 너무 완벽하다, '따봉'이라고 했다"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신유빈은 이번 대회 가장 긴 일정을 소화한 선수 중 한 명이다. 지난달 27일부터 일정을 시작해 혼합 복식, 여자 단식, 여자 단체전까지 쉼없이 경기를 치렀다. 그 결과 동메달 2개로 한국 탁구가 메달 가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선봉장이 됐다.
신유빈은 "노력한 걸 후회 없이 다 해낸 대회다.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경기도 많이 치렀는데 드디어 끝났구나라는 후련함도 있다"고 말했다.
신유빈은 "마지막이 단체전이었으니 조금 지쳤다. 그래도 단체전이니 전신력으로 버티려고 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언니들이 옆에 있기에 더 지칠 수 없었다. 눈 앞에 메달이 보이는데,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이겨내려고 했다"며 "지금은 집중력을 다 쓴 것 같다. 좀 자면서 나 자신을 놔둬야 할 것 같다"고 웃었다.
신유빈은 "이렇게 큰 대회에서, 동메달 결정전만 세 번을 했다. 그보다 큰 경험은 없을 것 같다"며 "이런 대회에 국가대표로 나와 경기를 뛰는 게 영광스럽다. 그 경험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선수들은 오광헌 감독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전지희는 "선수들에게 배려를 너무 많이 해주신다. 그게 너무 크다"며 "감독님 본인도 긴장을 많이 하셨을텐데도 우리에게 좋은(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려고 한다"고 했다. 신유빈은 "만나본 감독님 중에 제일 좋았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면서 "말로 다 표현을 못해 죄송할 정도다. 선수 개개인을 다 신경써주시는 분이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니셨다. 선수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주시고 잘 끌고 가주신 분"이라고 했다. 신유빈은 "이 내용은 꼭 좀 예쁘게 써달라"고 기자들에게 신신당부하기까지 했다.
LA 올림픽까지 4년. 메달의 숙원을 푼 전지희에게 다음 대회도 도전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아뇨"라며 단칼에 대답했다. 그러자 동생들은 "언니, 생각 좀 해봐" "반응 속도가 왜 이렇게 빠르냐"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동생들의 타박에 전지희는 "일단 좀 쉬겠다. 쉬고 (출전 여부를) 생각해보겠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