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 투수 원태인(24)은 지난해 한국시리즈(KS)를 TV로 지켜봤다. LG 트윈스가 1994년 이후 29년 만에 왕좌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부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임찬규(32)가 '성덕(성공한 덕후) 스토리'를 완성시킨 장면은 원태인의 마음을 자극했다. 어렸을 때부터 대구에서 나고 자라 '삼린이(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팬)'로 선수의 꿈을 키웠던 원태인은 '엘린이(LG 트윈스 어린이 팬)'에서 LG 우승의 주역이 된 임찬규를 보며 "나도 성덕 스토리를 쓰겠다"라며 굳게 마음을 다졌다.
그랬던 원태인에게 바로 기회가 찾아왔다. 삼성이 2021년 이후 3년 만에 가을야구 무대에 오른 것.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치면서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에 직행했다. 공교롭게도 PO 상대는 지난해 우승팀이자, 임찬규가 속해 있는 LG. LG는 준플레이오프에서 5차전 벼랑 끝 승부 끝에 3승 2패로 KT 위즈를 누르고 PO에 진출했다. 지난가을 그토록 부러워했던 팀을 상대로 원태인은 소원에 한걸음 다가설 기회를 잡았다.
임찬규와의 맞대결도 원태인에게 뜻깊게 다가올 전망이다. 원태인은 지난겨울 본지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임찬규의 '성덕 스토리'를 부러워 하면서도 "(임)찬규 형이 더 존경스러운 건 후배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한다는 점이다. 2022년 찬규 형이 힘든 해를 보낼 때 나를 포함한 후배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 덕분에 성공하고 지난해 좋은 스토리를 쓴 게 아닐까 생각한다"라며 존경을 표한 바 있다.
그 사이 원태인도 성장했다. 올 시즌 원태인은 28경기에 나와 퀄리티스타트(QS ·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 13회, 15승 6패 평균자책점 3.66을 기록하며 다승왕 자리를 예약했다. 지난해 국가대표 3회(월드베이스볼클래식·아시안게임·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강행군과 올 시즌 도중 겪은 부침과 헤드샷 조기 퇴장(7월 13일 두산 베어스전) 등의 시련을 모두 이겨내고 국내 최고의 투수로 성장했다. 2021년 원태인의 가을야구는 2경기 만에 끝났지만, 성장한 올해엔 다른 결과를 얻어내고자 한다.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팀과 선수를 상대로 승리를 노리는 원태인이다.
공교롭게도 임찬규의 각오도 남다르다. 임찬규는 "2002년 한국시리즈(KS)에서의 패배를 이번 PO에서 설욕하겠다"라고 말했다. 당시 삼성이 4승 2패로 LG를 꺾고 우승했는데, 엘린이었던 임찬규는 LG가 패하자 다음날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는 후문이다. 임찬규의 '성덕 스토리'도 이 때를 기점으로 시작됐다. 임찬규는 이번 PO에서 설욕을 통해 또 다른 성덕 스토리를 쓰고자 한다.
삼린이 원태인과 엘린이 임찬규, 누구의 간절함이 더 클까. 이번 PO에서 누가 웃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