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독자는 ‘죽을 때까지 스크라치’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처음 들어본다고? 그렇다면 아직 골프 세상에서는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나 다름 없다. 힘이 조금 붙었다고 자신을 과신하며 어디 가서 함부로 남과 겨루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이야기이다.
‘죽을 때까지 스크라치’라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이 말을 내뱉으며 누군가에게 도전한 적도 있다고? 그런 독자라면 산전수전 거의 다 겪은 골퍼가 틀림 없다. 말할 것도 없이 상수(上手)축에 들 것이고.
‘죽을 때까지 스크라치’라는 말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거창하냐고?
우선 ‘스크라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스크라치는 영어 단어 ‘스크래치(scratch)’를 잘못 말한 것이다. 맞춤법만 따지면 스크래치가 맞다. 그런데 왜 스크라치라고 하느냐고? 맞춤법에 어긋나도 그 바닥 말을 써야 제 맛이 날 때가 있다. 스크라치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스크래치라고 할 때 보다 스크라치라고 해야 박진감이 넘친다.
‘죽을 때까지 스크라치’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고 나면 뱁새 김용준 프로가 하는 말을 이해할 것이다. 그래도 일단은 표준어인 ‘스크래치’로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뱁새 김 프로가 명색이 언론인 출신 아닌가!
스크래치는 주욱 그은 ‘줄’을 말한다. 육상에서 그어놓은 출발선을 떠올리면 맞다. 육상에서 서로 실력이 다른 주자가 친선으로 겨룰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느린 주자가 몇 초 먼저 출발하는 방법이 있다. 다음으로는 기록을 잰 다음 느린 주자 기록에서 몇 초를 빼주는 방법도 있고. 가장 깔끔한 방법은 느린 주자가 더 앞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100m 달리기라면 느린 주자는 90m쯤에 출발선을 따로 그어주고 말이다.
이런 경기 방식에서 유래해서 스포츠에서 기량이 부족한 선수에게 핸디캡을 주는 것을 ‘스크래치’라고 말하게 되었다.
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골프에서 ‘스크래치 골퍼’란 경기에서 핸디캡을 아예 받지 않는 골퍼를 말한다. 핸디캡이 ‘0’이라는 말이다. 누가 자신을 스크래치 골퍼라고 소개한다면 그 골퍼는 핸디캡이 ‘0 ‘이라는 뜻이다.
이 정도면 주위에는 적수가 없는 사람이다. 싱글 핸디캡퍼(Single handicapper)도 고개를 숙이는 절대 강자인 것이다.
뱁새 김 프로는 핸디캡이 얼마나 되느냐고? 프로 골퍼는 애초에 핸디캡이 없다. 핸디캡이 ‘0’이다. 타이거 우즈는 한 시즌 평균 스코어가 60타수 대이니 핸디캡이 ‘마이너스’인 셈인데 뱁새는 고작 ‘0’이냐고? 시즌 평균을 보면 오버 파 아니냐고? 흠흠! 본론으로 돌아가자.
비록 핸디캡은 ‘0’은 아니지만 서로 실력이 비슷해서 핸디캡을 주지 않고 게임을 하기로 할 때는 ‘스크래치 플레이’ 또는 ‘스크래치 게임’을 하자고 말한다. 내기를 할 때 서로 주고 받는 덤이 없다는 뜻이다. 바둑으로 치면 ‘호선’이나 ‘맞바둑’과 같다.
그런데 기량이 상대보다 부족한데도 핸디캡을 받지 않고 도전하는 경우가 있다. 승부욕에 불탈 때 그렇다. 덤을 야박하게 주면서 번번히 하수를 농락하는 상수에게 이를 악물고 도전장을 내밀 때가 있을 것이다. 이 때 도전자가 치는 배수진이 바로 ‘죽을 때까지 스크라치’이다.
‘죽을 때까지 스크라치’를 선언하는 것은 보통 각오로는 안 되는 일이다. 기량 차이가 분명해서 질게 뻔한데 부딪히겠다는 뜻 아닌가? 이 말은 지금은 비록 기량이 부족해서 판판이 깨지지만 머지 않아 기어이 쓰러뜨리고 말겠다는 투지를 담고 있다. 나중에 지고 나서 핸디캡을 달라고 구걸하지 마라는 선전포고인 것이다.
이런 무모한 도전이고 보니 맞춤법 따위를 아랑곳할 새냐! 이제 독자도 이해할 것이다. ‘스크래치’ 보다 ‘스크라치’가 더 결연한 의지를 담는 말이라는 것을! 억지인가?
AP=연합뉴스 ‘죽을 때까지 스크라치’! 뱁새도 이 말을 해 본 적이 있느냐고? 말을 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뱁새는 신문기자를 그만 두고 사업을 하다가 골프를 배우게 되었다. 고객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말이 친선이지 초보 뱁새가 당한 설움은 말로는 다 못한다. 그 때 뱁새는 결연히 외쳤다. 뱁새 돈을 따서 한우 소고기를 사먹는 악당에게 말이다. ‘죽을 때까지 스크라치’라고. 비굴하게 핸디캡을 몇 타 받는 대신 명예로운 패배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느냐고? 보면 모르겠는가? 뱁새는 싱글 핸디캡퍼를 넘어 프로 골퍼가 되었다. 상수에게 쥐어터지던 시절 뱁새는 분에 겨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연습장에 갔다. 그 결과 상수와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적을 모조리 무릎 꿇게 만들었다. 그제서야 핸디캡을 달라고 구걸하는 이제는 하수가 된 옛 상수들에게 뱁새는 과연 동정을 베풀었을까? 한밤중에도 문을 열어준 드라이빙 레인지 경영자에게 감사를 전한다.
설움을 당하는 하수라면 절대 강자 가운데 상당수가 ‘죽을 때까지 스크라치’라는 기치를 내걸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물론 큰소리만 치고 연습을 게을리 할 요량이면 삼가기 바란다. ‘죽을 때까지 스크라치’라는 허세는 엄청난 화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