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역사의 질곡을 딛고 두 나라는 협력하고, 또 경쟁했습니다. 정치·외교적 교류가 여의치 않을 때도 문화·스포츠 분야에서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유력 일간지 주니치신문(中日新聞)은 한일 수교 60주년을 돌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스토리텔러입니다.
일간스포츠는 주니치신문과 함께 ‘국보 투수’이자 한국 프로 출신으로는 처음 일본프로리그(NPB)에 진출한 선동열 감독을 만났습니다. 꼭 30년 전 일본으로 향했던 선동열의 실패와 성공, 그리고 그가 느낀 우정을 통해 한일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고민하자는 취지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9월 말 이뤄진 이 인터뷰는 나카무라 아키히로 주니치신문 기자와 함께 진행했습니다.
<7> 교류와 성장의 길 찾는 한일 야구
“정확한 포구가 우선이다. 확실히 공을 잡으면, 송구 동작으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
2025년 9월 중순, 대구에서 열린 퓨처스리그(한국 프로야구 2군 리그) 경기에 앞서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일본인 코치가 열변을 토했다. 30년 전 선동열과 배터리를 이뤘던 주니치 드래건스 포수 출신 나카무라 다케시다.
올 시즌 KBO리그에는 나카무라 코치 외에도 니무라 토오루(두산 베어스), 세리자와 유지(SSG 랜더스) 등 일본인 코치 9명이 등록됐다.
‘투수 선동열’이 KBO리그 선수로는 처음으로 일본 프로리그(NPB)에서 활약한 뒤 여러 한국 선수가 뒤를 따랐다. 이종범과 이상훈은 주니치, 정민태·정민철 등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이후 구대성·이승엽·임창용·김태균·이대호·오승환까지 일본 러시가 이어졌다.
‘지도자 선동열’의 길도 남들이 가지 않은 곳으로 향했다. 2003년 주니치에서 코치 연수를 했던 그는 2004년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를 거쳐 이듬해 사령탑에 등극했다. 선동열 감독은 트레이닝 전문가 하나마쓰 고지를 비롯해 주니치 동료였던 오치아이 에이지, 타네다 히토시를 코치로 데려왔다. 그는 “일본에서 경험한 체계적인 훈련법과 관리법을 한국에 도입하고 싶었다. 감독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일본 야구를 잘 아는 코치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2012년 아시아시리즈 대만전에 앞서 오승환의 불펜 피칭을 바라보는 오치아이 에이지 당시 삼성 코치(왼쪽). 삼성 제공2012년 삼성이 한국시리즈에 우승하자 오치아이 코치가 말춤을 추고 있다. 오치아이 코치는 선동열 감독이 떠난 뒤에도 삼성에 남아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다. 이후 주니치에서도 수석 코치와 2군 감독까지 맡았다. IS 포토 앞서 KBO리그에 교토 출신인 김성근 감독이 일본의 인적 자원과 시스템을 도입한 바 있다. 그 흐름을 선동열 감독이 강화했다. 그의 인맥을 통했든, 그렇지 않든 20년이 지난 KBO리그에는 여전히 일본인 코치의 역할이 크다.
오치아이 코치는 선동열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에도 삼성 2군 코치와 2군 감독을 지냈다.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는 주니치 1군 투수·수석 코치, 2군 감독을 역임했을 만큼 지도자로 성공했다. 그는 “선동열 선배가 먼저 (삼성에서 같이 일하자고) 연락해 주셨다. 나도 선배 밑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만큼 선배는 큰 존재였다”고 말했다. 나카무라도 “선동열 선배가 일본과 한국의 야구 수준을 높이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감사를 전했다.
시대에 따라 한일 야구도 변하고 있다. 지도자 간 교류는 여전히 활발하지만, 일본에 진출하는 한국 선수는 몇 년째 한 명도 없다. KBO리그 톱클래스 선수들이 일본을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MLB)로 직행하기 때문이다. 선동열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미국을 목표로 삼는 건 시대의 흐름”이라면서도 “리그 전체적으로 보면 교류·협력을 통해 양국이 서로 얻는 게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일 레전드 매치에서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와 대화하며 미소를 터뜨리는 선동열. IS 포토 최근 한일 관계에 훈풍이 분다. 아울러 야구 교류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오는 11월 열리는 K-베이스볼 시리즈(K-BASEBEALL SERIES)에서 한국은 일본·체코와 평가전을 치른다. 두 나라는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에 한국과 함께 편성됐다.
또한 KBO리그는 2026년부터 ‘아시아 쿼터제’를 운영한다. 현재 팀당 3명씩 계약하는 외국인 선수는 대부분 미국 또는 남미 출신이다. 이와 별개로 일본·대만·호주 등 아시아 선수 1명을 더 영입할 수 있다. 적잖은 일본 선수들이 KBO리그에서 활동할 거로 예상된다.
동료에게도, 숙적에게도 배울 게 있다. 한국 야구는 일본을 이겨 보려고 반 세기 넘게 애썼다. 일본도 지지 않으려 더 노력했다. 선동열 감독은 “한국이 일본 야구로부터 배우고, 일본도 한국 야구에서 배운다. 앞으로 양국 교류의 장이 지속적으로 열리기를 바란다”고 했다.
선동열의 꿈은 한일 슈퍼게임으로부터 시작됐다. 그 싹이 움트고 자라 한일 야구의 거대한 시류를 만들어냈다. 그는 “야구는 스포츠이지만 문화·외교의 역할도 할 수 있다. 두 나라 교류와 발전을 위해 할 일이 있다면 나도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선구자가 개척한 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긴 여정은 30년이 지나 다음 세대로 향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