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 44초 만의 패배. 링 위에 주저앉은 브록 레스너는 숨을 크게 몰아쉰 뒤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링 기어를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장갑과 부츠를 모두 벗은 레스너는 데뷔 초부터 함께 했던 '동반자' 폴 헤이먼을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은퇴 선언이었다.
레스너는 20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 주 패러다이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 레슬매니아 42 2일 차 오프닝 경기에 출전, 오바 페미에게 핀폴을 내주며 패했다.
이날 경기는 '원조' 괴물 레스너와 '신흥' 괴물 페미의 파워하우스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힘 대 힘의 대결 구도 속에서 페미의 우세가 점쳐지기도 했으나, 레스너가 4분 44초 만에 패한 것은 이례적인 결과였다. 레스너는 경기 막판 피니셔인 F-5를 적중시키며 승기를 잡는 듯했지만, 이를 버텨낸 페미에게 초크슬램에 이은 폴 프롬 그레이스를 차례로 허용하며 핀폴패를 당했다.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경기였다.
다만 레스너의 은퇴는 예상 밖의 시나리오였다. 링 위에 링 기어를 벗어두는 행위는 곧 선수 은퇴를 의미한다. 지난해 12월 존 시나가 경기 후 자신의 운동화와 손목 밴드를 링 가운데에 올려놓으며 커리어의 마무리를 알렸고, 올해 2월에는 AJ 스타일스가 장갑을 링 위에 내려놓으며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한 바 있다.
WWE 레슬매니아 42 패배 후 폴 헤이먼(왼쪽)과 포옹을 준비하는 브록 레스너. AFP=연합뉴스
당초 레스너가 올해를 끝으로 은퇴할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으나, 레슬매니아에서 신인에게 패한 직후 링 기어를 벗을 것이라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앞서 시나와 스타일스를 '탭 아웃'으로 은퇴시킨 군터와의 은퇴전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으나, 결국 레슬매니아에서 신예와의 경기를 끝으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2년 데뷔한 레스너는 그해 여름 섬머슬램에서 최연소 WWE 챔피언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4년 골드버그와의 레슬매니아 경기를 끝으로 잠시 링을 떠났던 그는 종합격투기 무대로 진출해 UFC 챔피언에 올랐다. 금지 약물 적발 논란 이후 2012년 WWE로 복귀한 그는 '수플렉스 시티' 기믹으로 활약하며 링 위를 누볐다. 특히 2014년 레슬매니아 30에서는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21연승 무패 행진을 저지하며 프로레슬링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후 파트타임 레슬러로 활동하던 레스너는 2025년 코디 로즈와의 대립, 서바이벌 시리즈 워 게임즈 참가, 존 시나 은퇴 투어 승리 등 파워하우스로서의 입지를 유지했으나, 이번 레슬매니아 패배를 끝으로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