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멋진 신세계'(사진=화면캡처) SBS ‘멋진 신세계’는 조선 시대 희대의 악녀 강희빈의 영혼이 씌인 무명배우 신서리(임지연)와 ‘자본주의의 괴물’이라 불리는 악질 재벌 차세계(허남준)가 펼치는 일촉즉발 로맨스 드라마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방영된 7회 ‘달의 이면’ 에피소드에서는 신서리의 생일을 맞아 깜짝선물로 오르골을 건넨 차세계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손편지에 담긴 그의 진심 어린 고백과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는 명곡 ‘웬 유 위시 어폰 어 스타’(When You Wish Upon a Star)가 어우러지며, 두 사람의 로맨스는 한 편의 동화 같은 명장면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장면은 갈팡질팡하던 신서리가 차세계를 향한 마음을 자각하며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위기에 놓인 차세계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다시 한번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며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적인 로맨스 국면으로 전환됨을 알렸습니다.
‘웬 유 위시 어폰 어 스타’(When You Wish Upon a Star)는 1940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의 OST로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된 곡입니다. 창립자 월트 디즈니가 생존해 있던 1941년 제1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했고, 1950년대부터 디즈니 TV 시리즈의 오프닝으로 쓰이기 시작했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심지어 독재자 히틀러가 1940년 6월 파리 점령 직후 이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렀다는 출처 불명의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합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곡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노래의 저작자는 두명입니다. 작곡자는 1969년에 세상을 떠난 리 할린(Leigh Harline)이며, 작사가는 네드 워싱턴 (Ned Washington)입니다. 네드 워싱턴은 작곡가 리 할린이 세상을 떠난 7년 후인 197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아름다운 노래 뒤에 남겨진 이 연도들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닙니다. 왜 뜬금없이 저작자들의 사망 시점을 언급했을까요? 이들이 세상을 떠난 시점은 작품의 저작권 수명, 즉 저작권 보호기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 저작자의 사망 시점으로 계산하는 저작권의 보호기간
저작자가 생존해 있는 동안 저작권이 유효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저작자가 사망하면 그 사망 연도를 기준으로 법이 정한 일정 기간 저작권이 유지되며, 이 기간이 만료되면 저작권은 완전히 소멸합니다. 만약 저작자가 여러 명일 경우,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저작자의 사망 연도를 기준으로 보호기간을 계산합니다. 이렇게 저작권이 소멸한 저작물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유저작물’, 즉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작재산권은 원칙적으로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한 후 70년간 보호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공동저작물이라면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저작자의 사망 연도를 기준으로 70년을 계산합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법적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 ‘사후 70년’ 규정이 모든 과거 저작물에 소급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준은 2013년 7월 1일입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이미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해 버린 작품들은 구제받지 못하고, 아직 50년이 지나지 않았거나 그 이후에 사망한 저작자의 작품에만 70년 보호기간이 적용됩니다.
이를 저작자의 사망 연도로 환산하면 1962년 12월 31일과 1963년 1월 1일이 실제 적용 여부를 가르는 명확한 기준점이 됩니다.
·1962년 이전 사망자: 2013년 7월 1일 이전에 이미 사후 50년이 경과했으므로, 70년 연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합니다.
·1963년 이후 사망자: 2013년 7월 1일 당시에 아직 사후 50년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개정법의 적용을 받아 70년 보호기간을 적용받습니다.
◇ 미국의 경우는?
현재 미국 역시 우리와 동일하게 ‘저작자 사후 70년’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공동저작물 역시 마지막 생존자의 사망 연도를 기준으로 계산하지만, 세부적인 조건에서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이 기준은 ‘1978년 1월 1일 이후에 창작된 작품’에만 적용됩니다. 또한 ‘업무상 저작물’이나 ‘익명·가명 저작물’의 경우, 저작자 사후가 아니라 최초 공표 후 95년 또는 창작 후 120년 중 먼저 만료되는 기간을 따릅니다. 그렇다면 1978년 이전에 이미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던 과거의 저작물은 과연 어떤 기준으로 계산될까요.
과거 1909년 제정된 미국 저작권법 체계에서는 최초 28년 동안만 저작권이 보호됐습니다. 다만 이 기간이 끝나기 전 갱신 신청을 하면 28년이 추가돼 총 56년간 보호받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저작자의 사망 연도가 아니라, 작품의 공표일이나 등록일 등 ‘저작권이 처음 확보된 시점’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미국 저작권법은 두 차례 큰 변화를 겪습니다. 우선 1976년 법 개정을 통해 갱신 기간이 47년으로 늘어나면서 최장 75년까지 보호가 가능해 졌습니다. 동시에 1978년 1월 1일 이후 창작물부터는 우리와 유사한 ‘저작자 사후 50년’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도입했습니다.
이어 1998년에는 유명 가수이자 하원의원이었던 소니 보노의 이름을 딴 ‘소니보노법’(Sonny Bono Act)이 통과되고, 이로 인해 1978년 이전 저작물의 갱신 기간은 67년으로 연장돼 최장 95년까지 보호받게 됐고, 1978년 이후 창작물 역시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보호기간이 늘어났습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1978년 이전 저작물은 저작자 사망일이 아닌 ‘공표일이나 등록일’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명확한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1978년 이전에 창작됐더라도 당시에 공표되거나 등록되지 않은 작품이라면 별도의 경과 규정을 적용받습니다.)
이 복잡한 법을 앞서 소개한 명곡 ‘웬 유 위시 어폰 어 스타’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이 곡은 아주 오래된 노래이지만, 아직 퍼블릭 도메인(공유저작물)이 아닙니다. 가사와 선율이 결합된 온전한 형태로 이 곡을 사용한다면 국가별로 보호기간이 다르게 계산됩니다.
·대한민국 기준 (2046년 12월 31일까지 보호):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작사가 네드 워싱턴의 사망 연도(1976년)를 기준으로 ‘사후 70년’이 적용됩니다.
·미국 기준 (2035년 12월 31일까지 보호): 1940년에 공표돼 정상적으로 갱신된 ‘1978년 이전 저작물’이므로, 소니보노법에 따라 최초 공표 후 95년이 적용됩니다.
만약 가사를 제외하고 오직 ‘멜로디’만 이용하는 경우라면 어떨까요? 적어도 우리나라 기준에서는 1969년에 세상을 떠난 작곡가 리 할린의 사망 연도를 기준으로 보호기간(2039년 말 만료)을 단독 검토해 볼 여지가 생깁니다.
◇ 신서리와 차세계의 멜로디, 그리고 살아있는 저작권
저작권은 기본적으로 속지주의(각국의 법을 따르는 원칙)가 적용됩니다. 드라마 ‘멋진 신세계’가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권 TV쇼 부문에서 4주 연속 톱3을 차지하며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는 만큼, 작품에 흐르는 이 곡 역시 각 국가의 저작권법에 따른 보호기간과 권리행사 방식을 면밀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점은, 앞서 치열하게 계산한 저작권 보호 기간은 주로 '저작재산권'의 존속 기간을 의미합니다. 설령 먼 미래에 보호기간이 끝나 저작재산권이 소멸하더라도, 저작자의 명예를 지키는 ‘저작인격권’은 별개이기 때문에 저작자의 이름을 임의로 바꾸거나 누락해서는 안 됩니다. 저작자 허위 표시나 명예훼손적 변경은 보호기간과 상관없이 언제든 법적·윤리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극중 신서리와 차세계의 사랑의 내러티브를 동화 속 한 장면처럼 극대화한 ‘웬 유 위시 어폰 어 스타’는 이처럼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저작물입니다. 드라마 제작사가 이 음악이 담긴 오르골 실물을 구매했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음악 저작권까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저작권 권리자의 동의가 전제되었기에, 우리는 비로소 ‘멋진 신세계’를 통해 이 아름다운 선율을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래된 명곡이라고 해서 결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오르골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