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총 1위 엔비디아의 창업주이자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 7일 서울 잠실야구장 마운드에 섰다. 두산 유니폼을 입고 등판한 그는 시타를 맡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자 두산 구단주와 멋진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7일 잠실 경기 시구와 시타를 맡은 젠슨 황(오른쪽)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연합뉴스 7일 경기에 앞서 두산 유니폼을 입고 시구하는 젠슨 황. 연합뉴스 젠슨 황은 30여 년 전,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서 엔비디아 그래픽 카드를 팔기 위해 직접 영업을 뛰었던 인물이다. 그 후 20여 년 만에 인공지능(AI) 시대를 선도하며 엔비디아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이끈 젠슨 황은 지난해 10월 방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서울에서 치킨을 먹으며 ‘AI 동맹’을 과시한 바 있다.
지난 5일에는 서울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겹살을 구웠다. 잠실 구장에 오기 전에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PC방에서 만나기도 했다.
이동할 때마다 구름 같은 인파와 취재진을 몰고 다닌 젠슨 황 행보의 하이라이트가 잠실 방문이었다. 그는 시구에 앞서 마이크를 잡고 “엔비디아와 한국의 PC 기술은 함께 성장했다. 한국에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외쳤다. 이에 열광하는 2만 여 관중의 함성이 TV와 모바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세계로 퍼졌다.
7일 서울 서초구 PC방에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대화하는 젠슨 황. 연합뉴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식당에서 삼겹살 회동을 가진 젠슨 황,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왼쪽부터). 연합뉴스삼겹살 회동에 참석한 이들이 몰려든 시민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장면. 연합뉴스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젠슨 황(왼쪽부터)이 깐부 치킨을 함께한 모습. 연합뉴스 엔지니어 출신인데도 탁월한 마케터인 젠슨 황이 한국 대기업 총수들과 이런 퍼포먼스를 만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AI의 확장을 위해 한국 기업들이 매우 중요한 고객이자,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국 기업은 AI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패배감에 빠져 있었다.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이 추격하는 기술 경쟁에서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는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엔비디아 칩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다.
반전이 일어났다. AI가 학습을 거쳐 추론 단계에 진입하자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올해 삼성전자 1분기 매출은 133조원에 이르렀다. 비슷한 기간 엔비디아의 매출을 초과했다. 또한 피지컬 AI가 확장하는 과정에서 로봇을 생산·활용하는 기업이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하이퍼 스케일러들에 절실히 필요해졌다. 현대차와 LG, 두산 그룹이 여기에 해당한다. 위기에서도 묵묵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역량을 키운 한국 기업에 ‘구조적 성장’이 찾아온 것이다.
지난 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개막한 '컴퓨텍스 2026'에서 SK하이닉스 부스를 깜짝 방문한 젠슨 황이 "(HBM을) 더 만들어달라"는 위트있는 문구를 남겼다. 연합뉴스 야구도 그리 다르지 않다. KBO리그도 몇 년째 위기론에 빠져 있다. 국제 대회 성적이 제자리인 가운데 슈퍼스타도 부재하다. 2024년 처음으로 시즌 1000만 관중을 돌파했지만, 구성원들은 불안해했다.
그래도 야구 인기는 생각보다 탄탄하다. 지난 3일 시즌 500만 관중을 돌파한 KBO리그는 1300만 관중 기록을 향하고 있다. 40년 넘게 쌓인 야구 콘텐츠가 단지 스포츠를 넘어,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은 덕분이다.
1982년 출범한 KBO리그는 대기업의 홍보 및 사회 공헌 수단이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이들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야구단을 운영했다. 그들의 투자와 노력과 인내가 켜켜이 쌓인 끝에 야구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쳐 ‘슈퍼 사이클’을 맞이했다. 수십 년 동안 제조업 기반을 다져온 기업들과 야구단을 운영한 주체는 거의 겹친다.
젠슨 황이 잠실 마운드에 오른 건 단순한 쇼 비즈니스가 아니었다. 한국 기업들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맺으려는 그의 의지를 한국 최고의 ‘핫플레이스’ 잠실 마운드에 올라 보여준 것이다. 우직하게 열성을 다한 이에게 천우가 따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모두가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