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엄지영 SNS
지난 16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프로야구 경기, 이 날 관중석을 가득 메운 야구팬들의 시선은 마운드가 아닌 마이크를 잡은 한 보컬에게 쏠렸습니다. 밴드 큰그림의 보컬 엄지영이 가창한 애국가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것입니다.
이번 논란은 익숙한 애국가 선율 대신, 여러 구간에서 이를 벗어난 과도한 애드리브와 지나치게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면서 촉발되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애국가답지 않다", "국가에 대한 모독이다"라는 격앙된 반응과 함께 "애국가는 애국가답게 불러야 한다"는 지적까지, 선을 넘은 재해석을 향한 비판이 전방위적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애국가의 리메이크나 재해석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응원의 의미로 발매된 YB(윤도현 밴드)의 록 버전 애국가는 대중의 큰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2012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국민의례에서 애국가를 가창한 소향의 무대는 당시는 물론, 이번 사태와 맞물려 최근 다시금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엄지영의 애국가 가창이 유독 거센 논란을 부른 이유는, 이것이 '국민의례'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의식의 본래 취지를 감안할 때, 대중에게는 그녀의 재해석이 '매우 부적절한 가창'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애국가’의 법적 지위와 프로야구에서의 애국가
애국가는 이른바 ‘관습상 국가(國歌)’로서 헌법이나 법률에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령인 ‘국민의례 규정’ 제4조와 제6조에 따르면, 국민의례 시 애국가는 선 자세로 힘차게 제창하도록 되어 있으며, 특히 ‘곡조를 변경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비록 작곡가 안익태의 친일 행적과 표절 의혹, 그리고 '만주환상곡'과의 연관성 등 역사적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한계와 논란 속에서도 애국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國歌)로서 국민적 인식과 상징성을 유지해 왔습니다.
프로야구에서의 애국가 제창은 일반 식전 공연이 아닌,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단과 관중 모두가 기립하여 엄숙히 임하는 ‘국민의례’의 순간입니다. 실제로 KBO는 리그 규정의 ‘경기 운영 중 선수단 행동 관련 지침’을 통해 경기 개시 직전 애국가가 연주될 때, 선수들과 심판위원은 벤치 앞에 나와 정렬하고 모자를 벗고 왼쪽 가슴에 손을 얹어야 하며, 연주가 종료될 때까지 개인적인 돌출 행동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중의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다수의 국민이 관람하는 프로스포츠의 공익성을 고려할 때, 애국심을 고취하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다짐하는 경건한 의식이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있는 반면, 스포츠의 본질적 목적이 상업과 여가, 오락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과거 5공 군사독재 시절의 이른바 ‘3S 정책’과 맞물려 시작된 전체주의적 잔재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공존합니다.
◇ 애국가의 저작권
애국가의 작사가로는 좌옹 윤치호(1865~1945)나 도산 안창호(1878~1938) 등 몇몇 인물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편 작곡가는 ‘안익태’로, 그가 1935년 시카고 한인 교회에서 직접 애국가를 연주하며 초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애국가의 멜로디를 발전시켜 완성한 교향곡인 ‘한국환상곡’에도 애국가가 핵심 선율로 포함되었습니다.
애국가는 ‘안익태’라는 개인의 창작물이기 때문에 이 역시 창작과 동시에 저작권이 발생합니다. 실제로 그의 유족이 1992년부터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신탁을 통해 연평균 560만 원 가량의 저작권료를 지급받아 왔다는 사실이 보도된 이후, ‘애국가에 저작권료를 내야 하느냐’라는 논란이 불거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2005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80% 이상이 ‘애국가의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답할 만큼 대중의 반발은 상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안익태 작곡가의 부인 롤리타 안 여사는 2005년 애국가를 한국민에게 무상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 정식으로 기증서를 전달함으로써 오랜 저작권 논란은 종식되었습니다.
애국가를 단순한 물건이 아닌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투영된 표현물로 바라본다면, 이를 만든 안익태 작곡가 역시 고유한 창작 의도를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한 음과 한 소절의 배치, 호흡점의 위치, 곡의 빠르기와 셈여림에 이르기까지 분위기와 의미를 살리기 위한 창작자의 치열한 고민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은 그런 음악 창작의 특성을 고려하여 저작물을 창작자의 ‘인격’에 준하여 대우하는 ‘저작인격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작품의 훼손과 무분별한 변형을 방지하는 ‘동일성유지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동일성 유지권 : 창작자의 의도와 표현 형식 보호
물론 이 사건을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창작자의 고뇌와 표현 형식을 보호하려는 저작권의 근본 취지에서 바라본다면, 이번 엄지영의 애국가 가창은 분명 짙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논란 이튿날인 17일, 엄지영이 SNS를 통해 사과문을 올리며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녀는 사과문에서 "애국가를 준비하며 생각과 기량이 많이 짧았다"라며 고개를 숙였고, 불쾌감을 느낀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사과문에서 아쉬웠던 점은, 엄지영이 속한 밴드 '큰그림' 또한 자신들의 창작곡을 발표하는 아티스트라는 점에서 자신의 개성과 표현의 자유를 드러내기에 앞서, 타인의 창작물과 창작자에 대한 존중 또한 중요시 여겨야 했습니다. 그것은 논란의 본질이 결코 가창자의 ‘짧은 기량’의 문제가 아닌, ‘애국가를 그렇게 변주해서 불러도 되는가’라는 인식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논란은 가창자 엄지영의 미숙한 판단이나 실수로만 마무리될 사건은 아닙니다. 프로스포츠 경기 전 애국가 제창이 국민의례의 식순인 이상, 그 무대에 서는 가창자에게는 국민 정서를 헤아려야 할 책임, 즉 ‘그 순간 자신이 무엇을 부르고 있었는지를’ 충분히 헤아려야 할 의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김지욱 메이저세븐이엔엠 대표 ▶ 저자소개=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 현재 (주)메이저세븐이엔엠의 대표로 음악 저작권과 콘텐츠 현장에서의 음악 저작권 관련 업무 및 자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JTBC ‘싱어게인’,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tvN ‘태풍상사’, ‘폭군의 셰프’, SBS ‘우리들의 발라드’, Mnet ‘보이즈플래닛’ 등 다수 프로그램 및 콘텐츠의 음악 저작권 관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