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병수 기자 가수 김호중이 가석방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대중의 반응은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호중이 법을 위반했고 대중에게 실망을 안긴 건 사실이다. 그가 지은 죄의 무게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며, 대중의 준엄한 지탄 역시 그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김호중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수없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고, 그가 처한 죄질과 법조계의 통상적인 판례에 비추어 볼 때 실형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오히려 이례적일 만큼 중한 형기를 살았다는 점이다.
유사한 사안에서 초범인 피고인이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를 이루어낸 경우,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는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극히 드물다.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김호중에게는 가혹할 만큼 엄격한 법의 잣대가 적용됐다. 이는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공인이라는 무게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 사법부의 고뇌 어린 결단이었을 것이다. 김호중은 그 엄중한 사법부의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석방이라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사회로 복귀하는 그를 향해, 여전히 끊이지 않는 마녀사냥식 낙인찍기가 횡행하는 현 상황은 과연 정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왜 형무소라는 옛 명칭을 버리고 교도소라는 새 이름을 사용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되짚어봐야 한다. 형무소가 단순히 형벌을 집행하는 공간이라는 응징적 의미에 머물러 있었다면, 교도소는 바르게 인도하고 교정하는 공간이라는 목적론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근대 법치주의가 발전하면서 인류가 깨달은 가장 위대한 지혜 중 하나는, 형벌의 목적이 단순한 복수나 영원한 사회적 격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반성하고 죄의 대가를 치른 이에게 다시 한번 사회에서 살아갈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교도소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법치주의의 본질적 가치다.
만약 죄를 지은 자가 처벌을 받고 나온 후에도 평생을 사회적 타살에 준하는 조롱과 낙인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우리 사회의 사법 시스템과 교정 제도는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것은 법치주의가 아니라, 감정이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과 다름없다.
인류의 역사는 광기와 군중심리가 빚어낸 마녀사냥의 끔찍한 폐해를 목격해 왔다. 이성적인 증거와 법적 절차 대신 대중의 분노와 감정이 재판관이 되던 시절,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거나 영혼이 파괴됐다. 현대의 법치주의는 바로 그 야만적인 역사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 위에서 탄생한 인류의 지혜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처벌하고, 그 처벌이 끝난 후에는 다시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일련의 약속, 이것이 바로 우리 인류 스스로를 마녀사냥의 광기로부터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가 앞으로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을지, 혹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는 온전히 그의 진정성 있는 행보와 대중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적어도 그가 사회적 숨을 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박탈되어서는 안된다. 죄의 대가를 치르고 진정으로 반성한 자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사회가 바로 품격 있는 법치국가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노종언 변호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