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플레이오프 2차전을 앞두고 만난 원태인. 대구=김수민 기자 '푸른 피의 에이스' 원태인(26·삼성 라이온즈)이 가을야구에서 낯선 임무를 준비했다. 바로 마무리 투수다.
원태인은 27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리는 KIA 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PO·5전 3승제) 2차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마무리는 신인 때 딱 한 번 등판한 게 전부였다. 부담도 되고 걱정이 앞섰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나에게 그런 직책이 주어진 이상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통산 세이브가 없는 원태인은 마무리 투수 경험도 사실상 없다. 루키 시절인 2019년 3월 30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2-1로 앞선 9회 초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지만, 역전 3점 홈런을 맞고 패전 투수가 된 게 유일한 경험이다.
원태인이 갑작스럽게 마무리 투수 역할을 준비하게 된 건 김재윤의 부상 때문이다. 삼성의 뒷문을 책임지던 김재윤은 PO 개막을 하루 앞두고 오른쪽 전거근 근육 및 근막 손상으로 약 2주간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PO는 물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더라도 등판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삼성은 마무리 공백을 메울 대안을 찾아야 했다.
삼성 라이온즈 원태인. 삼성 제공 박진만 삼성 감독이 꺼내 든 카드는 원태인이었다. 원태인을 경기 후반 승부처에 투입하기로 하고, 마무리 투수로 대기하도록 했다. 상대에게 작전이 노출되지 않도록 비밀리에 준비했다. 그러나 1차전에서는 타선이 침묵하며 원태인이 나갈 상황이 만들어지진 못했다.
원태인은 "(김)재윤이 형이 아프다는 기사가 난 날 바로 결정됐다. 사실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의 요청이 있었다"며 "단기전에서는 늘 해왔던 역할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왔다. 정규시즌의 부진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팀이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리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비밀 작전의 조력자 역시 김재윤이었다. 원태인은 마무리 투수로서 언제부터 몸을 풀어야 하는지, 어떤 상황에 맞춰 준비해야 하는지 등을 물으며 조언을 구했다. 원태인은 "선발 투수라 짧은 시간에 팔을 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언제부터 몸을 풀어야 하는지, 어떤 상황에 맞춰야 하는지 많이 물어보고 있다"고 말했다.
비밀 작전인 만큼 신경 쓸 부분도 많았다. 원태인은 "클리닝타임에 몸을 풀러 나가면 상대에게 작전이 들키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는데, 마무리 투수는 클리닝타임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며 멋쩍게 웃었다.
삼성 라이온즈 토종 에이스 원태인. 삼성 제공 김재윤을 향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원태인은 "재윤이 형도 최대한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저도 형이 그런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더 많이 물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원태인에게 이번 가을야구는 정규시즌의 아쉬움을 만회할 기회이기도 하다. 올 시즌 정규시즌 성적은 26경기 7승 9패 평균자책점 4.52. 팀이 정상에 도전하는 시즌임에도 기대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마음이 컸다. 삼성의 레전드 투수 오승환이 키플레이어로 자신을 꼽은 것도 자극이 됐다.
원태인은 "정규시즌에 아쉬운 모습이 많았던 만큼 가을야구에서라도 만회하고 싶었다"며 "팀이 중요한 순간에 찾아주는 투수라는 점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준비했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보직 변경으로 선발 등판을 위한 루틴에도 변화가 생겼다. PO 2차전에서 불펜으로 나설 가능성과 3차전 선발 등판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원태인은 "팀으로서는 오늘 크게 이기고 내가 3차전 선발로 나가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물론 선발 투수로서의 루틴은 많이 무너졌지만, 단기전에서는 나에게 모든 걸 맞출 수 없다. 어떤 상황이든 나가라고 하면 나가서 열심히 던질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선발이든 마무리든, 팀이 부르면 기꺼이 나선다. "보직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에는 가을야구에서 반드시 반등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