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언 변호사
지난 17일 프랑스 리모주에서 14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시청이 불탔다. 시위가 끝날 무렵 일부가 지른 불로 도시의 기억을 품은 건물이 크게 훼손됐다. 시민들의 삶을 함께 지탱해 온 유산이 불길에 휩싸인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문화를 존중한다는 프랑스의 가치, ‘똘레랑스’마저 불길에 휩싸인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노에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화유산을 불태우는 순간 그 피해는 권력자 한 사람에게 머물지 않는다. 그곳에서 살아온 시민과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도 자신들의 역사를 빼앗긴다.
이런 문화 파괴는 역사 속에서도 되풀이됐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은 낡은 사상과 문화를 없앤다며 유물과 서적을 파괴했다. 2001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을 폭파했다. 시대와 사정은 달랐지만, 자신의 신념을 앞세워 문화의 존속 여부를 결정했다는 점은 닮아 있다. 명분이 절대화되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를 묻는 목소리는 작아졌다.
문화는 그것을 만든 권력자의 소유로만 남지 않는다. 왕이 세운 궁전에도 돌을 나른 사람과 벽을 장식한 사람의 시간이 쌓인다. 종교가 다른 이도 성당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불교를 믿지 않는 이도 석불 앞에서 오래된 인간의 마음을 만난다. 문화유산은 그렇게 만들어진 목적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의 것이 된다.
프랑스 법무장관은 이번 사태의 체포자에 외국인과 이민 배경 인물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만큼, 공존의 원칙도 분명해야 한다. 이민자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는 사회라면, 이민자 역시 그 사회가 지켜온 역사와 문화유산을 존중해야 한다. 이슬람의 문화유산도, 유럽의 성당과 역사 건축물도 같은 존중을 받아야 한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과 오래된 문화를 지키는 일은 함께 갈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의 문화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면서 다른 문화의 훼손에는 관대해지는 태도다. 누군가의 신념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다른 누군가의 역사와 예술이 사라져도 좋다고 여기는 순간, 다양성은 자기모순에 빠진다. 내가 인정하는 차이만 남겨놓은 세계에서 다양성이 설 자리는 좁아진다. 존중받을 권리에는 타인을 존중할 책임도 따른다.
문화 파괴를 방치한 대가는 결국 사회 전체가 치르게 된다. 함께 살아갈 기반이 무너지고, 그 책임을 특정 집단 전체에 돌리는 혐오가 자라기 쉽다. 폭력을 제지하는 일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할 조건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문화유산에는 지금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의 몫까지 존재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 먼 나라에서 찾아올 사람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오늘의 군중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외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화가 났다는 이유로 그들의 몫까지 없앨 수는 없다.
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컬처인컬처’(Culture in Culture)는 문화 속에 숨겨진 또 다른 문화를 성찰해 그 연결 고리를 소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