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독전(이해영 감독)'이 누적관객수 4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 달 22일 개봉한 '독전'은 15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외화에 파묻힌 스크린에서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세웠다. '독전'을 이끈 이해영 감독으로서는 첫 1위에 생애 최고 스코어이기도 하다. 개봉까지 녹록치 않은 과정이 있었지만 흥행으로 완벽하게 보답 받았다.
'독전'은 공식 개봉 전까지만 해도 '호불호 평가'를 받았던 작품이다. 배우들의 열연에는 이견이 없지만 스토리에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이해영 감독 역시 이를 자각하고 있었지만 최종 선택은 결국 관객의 몫. '상업영화'를 찍는 '상업감독'으로서 '상업성'을 보여야 했던 이해영 감독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감독으로서 생명력을 이어가게 됐다. 인터뷰 내내 '상업'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언급하고 더 강조하는 이해영 감독이었던 만큼 '독전'의 흥행이 그에게는 얼마나 절실했을지 감히 가늠하기 힘들다.
현장에서는 화 한 번 내지 않을 정도로 평온함을 유지했지만 이는 대외적인 모습이었을 뿐, 이해영 감독 본인은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서 버텨야만 했던 시간이다. 외로웠고, 스스로 금욕적인 삶을 자청했다. 고생끝에 낙은 왔다. '독전'은 관객들의 사랑에 힘입어 확장판 공개까지 논의 중이다. '천하장사 마돈나(2006)' 이후 12년만에 180도 다른 장르로 관객들의 인정을 받은 이해영 감독. 조금 더 빨라질 차기 행보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 조진웅 배우가 말하길 감독의 디테일이 대단하다고 하더라. 'OK' 사인을 쉽게 안 준다고. "진웅 배우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잘한다. 감독이 배우를 보고 'OK' 사인을 내리는 순간은 여러가지가 맞물렸을 때다. 배우의 좋은 연기가 나왔을 때, 배우의 컨디션에서 베스트가 나왔을 때, 촬영·조명·분장·의상·소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조진웅 배우는 기본적으로 준비를 많이 해 온다. 그런 상황에서 한 꼬집만 더 하면 연기가 마법처럼 펼쳐지는 순간이 있다. 모든 신에서 그럴 수는 없지만 결정적일 땐 꼭 그게 나온다. 그런 마법의 한 꼬집을 경험하니까 쉽게 'OK'를 내릴 수 없는 것이다. '못해~'라고 애교있게 투덜거려도 다 해낸다는 것을 안다.(웃음) 감독으로서 무언가 탁 펼쳐지는 연기를 담고 싶은건 당연하다."
- 마법같은 순간을 언제 경험했나. "되게 여러 곳에 나오는데 오프닝과 엔딩에서 운전하는 얼굴이 정말 좋다. 퍽퍽하고. 인간이 모든 에너지를 다 썼을 때 나오는 얼굴이다. 그런 순간들을 내가 막 집요하게 뽑아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배우가 즐겁게 연기할 수 있는 환경 안에서, 배우들의 작은 차이가 큰 것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 그 미세함을 잡아내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고. "영화는 배우의 느낌을 밀접하게 담아내는 매체다. 눈을 어떻게 깜빡이는지. 한 번 깜빡이는지, 두 번 깜빡이는지. 들숨인지, 날숨인지까지 굉장히 큰 뉘앙스의 차이를 준다. 그런 디테일을 잡아내고 싶었다. 센 장르이고. 휘몰아치는 이야기다 보니 이럴 때 일수록 인물의 디테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현장에서는 화 한 번 내지 않았다던데. "사실 뭐. 겉으로는 평온해 보일 수 있지만 매번 속에서는 많은 폭풍들이 치고, 수 많은 소용돌이들이 휘몰아쳤다.(웃음)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하고, 겉으로 발산하기 전까지는 계속 그런 상태였다. 지금까지 찍었던 영화 중에 현장에서 가장 '안 놀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보통 스태프들과 어울리면서 재미있는 농담 같은 것들도 하기 마련인데 이번엔 달랐다. '금욕적으로 찍어야 한다'고 계속 나를 다그쳤다."
- 그래서 '외로웠다'고 한 것인가. "현장에서 감독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최대한 즐겁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근데 나까지 재미있게 놀면 중요한 것들을 놓칠 것 같더라. 수험생의 마음으로 찍었고 늘 외로웠다. '외로운 것도 이 영화의 숙명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촬영이 끝난 후에도 그날 찍었던 것들을 다시 검토하거나, 시나리오를 한 번 더 들여다 보려고 했다. 많은 것을 챙기고 싶었다."
- 극중 원호처럼 무언가에 집착한 적이 있나. "영화. 영화라는 그 자체에 집착한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난 진짜 열심히 일한다. 원호처럼 일한다. 그 일이 집착으로 변한 케이스다.(웃음)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기도 한데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좀 자유롭게 미팅도 하고 술도 마시고 그러지 않나. 아직은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 그럼 언제 허무함을 느꼈나. "어떤 순간에 찾아오는건 아닌 것 같다. 작품이 끝나도 곧바로 그 작품에 대해 판단하지 못한다.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작품을 다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와 뭔가 딱 오롯이 나 자신으로 스스로를 대면하게 될 때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계절 혹은 해가 바뀌어야 한다. 그 때도 어떤 감정적인 느낌이 들기 보다는 '더 잘해야겠다'고 반성하는 쪽이 크다."
- 영화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나. "글쎄. 난 영화하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감수하더라도 잘해내고 싶다. 그래서 부단히 노력하고…. 아직은 그렇다. 뭘 해도 이게 제일 즐거우니까."
- 그간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였다. "연출작도 그렇지만 작가 생활을 할 때도 내 필모그래피에 있는 작품들을 보면 뭔가 딱 떨어지는 명확한 장르가 없다. '장르적인 영화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독전'이 네번째 연출작인데 이번 작품부터 궤도가 다르고 감독으로서 다른 챕터로 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장르적인 주파수를 맞추고 싶었다."
- '이해영의 색깔'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가. "특정 장르의 규정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르적인 영화가 상업적인 영화라면 그 상업성을 좀 더 정확히 하고 싶다. '독전'은 완벽한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상업적인 증명을 해내야 했다. 그럼 많은 관객들과 이 영화를 함께 나누어야 하지 않나. 그 미션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이번 작품이 상업 감독으로서 증명이었다면, 앞으로는 유연하게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름의 목표다. 그래도 부담감은 늘 동일할 것 같다. '부담감 보전의 법칙'이라고.(웃음) 덜 엄격해질 수 있지는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