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악바리'로 14일 현재 개인 통산 996경기에 나선 주희정의 꿈은 프로농구 역사상 첫 1000경기 달성이다. 이 부문 2위 추승균(42·현 전주KCC 감독)의 738경기와 차이가 무려 200경기 이상이다. 주희정은 앞으로 한 경기도 거르지 않는다면 오는 23일 안양 KGC인삼공사와 원정 경기에서 1000번째 출전 기록을 세운다. 그는 올 시즌 삼성이 치른 18경기에 모두 나섰다.
지난 8일 경기 용인 삼성 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주희정은 "프로 무대를 처음 밟으면서 이런 날은 상상도 못했다. 1000이란 숫자를 감히 떠올리지도 못했다"면서 "신인상과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 등 안 타본 상이 없지만 생각만 해도 1000경기 출장이 가장 뿌듯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희정은 프로농구에 남은 마지막 '올드 보이'다. 그는 프로농구 출범 2년 차인 1997년 20세의 나이에 고려대를 중퇴하고 원주 나래(원주 동부의 전신)에 입단했다. 그는 어느새 39세가 됐고 20번째 시즌을 맞았다. 은퇴를 해도 벌써 했을 나이다. 그보다 2년 늦게 프로에 데뷔한 조동현(40)은 벌써 KT 감독으로 활약 중이고 대학 1년 후배 이규섭(39)은 삼성의 코치를 맡고 있다.
그의 선수로서 롱런은 바로 '성실함'과 '근성'의 결과물이다. "나는 무식하게 운동했다. 정해둔 훈련량을 채우지 못하면 분해서 잠을 못 잤다."
그가 신인 때부터 시작한 슈팅 연습은 '독종 주희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그는 1997~1998시즌 나래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하며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동시에 '반쪽짜리 선수'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탄탄한 수비와 운영에 비해 슈팅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팀 훈련이 끝난 뒤 슈팅 특훈에 돌입했다.
"매일 슈팅을 400~500개씩 던진 뒤에야 숙소로 돌아갔다. 공을 던지고 주워오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림을 맞고 나온 공이 떨어지기 전에 잡아 다시 던졌다. 덕분에 체력 훈련까지 동시에 한 게 됐다." 이 덕분에 그는 1998~1999시즌 3점슛 성공률을 40% 가까이 끌어올렸다. 현역 시절 '천재 가드'라고 불렸던 이상민(44) 삼성 감독은 "처음 본 주희정은 분명 슛이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이듬해 약점을 완전히 보완해 나타났다"면서 "오래 봐 왔지만 워낙 성실하다. 요즘 선수들은 저렇게 하라고 해도 못할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가 지금까지 정규 시즌을 뛰지 못한 건 단 12경기뿐이었다. 2003~2004시즌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을 때 4경기를 빠진 게 한 시즌 최다 결장이다. 그는 "동아고 시절엔 발가락이 골절된 걸 참고 뛰었다"면서 "부러지고 찢어져도 어떻게 하면 '의사가 예측한 시기보다 빨리 재활에 성공할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고교 2년 후배 김주성(38·동부)은 "1학년 때 3학년 (주)희정이 형 집에서 머물며 농구부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자는 시간 외엔 훈련 잘 할 궁리만 했다"고 기억했다. 이 때문에 그는 한때 후배들이 기피하는 선배였다. 만나는 후배마다 함께 훈련하자고 붙잡고 졸랐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독하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아내까지도 독하다고 할 정도다"라면서도 "정작 나는 내가 독한 사람인 지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어 "요즘은 후배들 눈치 보고 산다"며 "그냥 아재가 됐다"고 껄껄 웃었다.
독한 훈련 덕분에 진기록도 세웠다. 지난달 13일 동부와 원정 경기에서 통산 3400번째 리바운드를 잡았다. 역대 리바운드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위는 '국보급 센터' 서장훈(42·은퇴)의 5235개다. 181cm에 불과한 주희정은 집념 하나로 2m의 장신 센터들이 득실거리는 농구판을 접수한 것이다.
그는 "슈팅 훈련 때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잡아 다시 던지다보니 궤적을 예측하는 능력이 생겼다"며 "슛이 안 좋은 덕분에 림을 맞은 공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에 대해 도가 튼 것 같다"고 했다. 동시에 통산 최다 어시스트(5317개)와 최다 스틸(1492개) 기록도 계속해서 경신할 전망이다.
"죽기살기로 해야 후회가 없다. 원없이 훈련한 나는 내일 은퇴해도 그런 부분에선 미련 없다."
그의 농구지론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마치며 '농구인생에 가장 큰 버팀목이 된 인물은 어떤 선배냐'고 물었다. 답변은 의외였다. 주희정 선수와 아내 박서인씨 사진=주희정 제공 "아내요, 힘든 시기도 많았는데 묵묵히 곁을 지키며 뒷바라지 했으니까요. 1000경기를 이루는 날 아내에게 평소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 할 겁니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겠죠?" '코트의 로맨티스트' 주희정은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