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에게 영화 '사바하(장재현 감독)'는 시작부터 끝까지 응원을 부르는 작품이었다. 오랜시간 애쓴 장재현 감독의 뜨거운 눈물을 마주한 이유도 있지만, 촬영내내 배우 박정민으로 무언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욕심보다 '사바하'의 나한으로, '사바하' 세계에 살고있는 1인으로 필요하면 등장하고 잘 활용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 애정한 만큼 소중하게 남은 작품이기에 관객들에게도 힘을 얻을 수 있길 박정민은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그리고 그의 간절함은 제대로 통했다. '사바하'는 누적관객수 200만 명을 돌파하며 기분좋은 흥행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국내 관객들이 즐겨찾는 범죄 스릴러 장르에 여전히 신선하게 받아 들여지는 오컬트 장르를 한 스푼 크게 떠 넣은 '사바하'는 다소 어려운 스토리와 난해한 전개라는 일각의 평에도 관객들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했다. 매일 부르짖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신·神)'과 현실의 경계를 절묘하게 접목시킨 '사하바'에서 박정민은 해결사이자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차근차근 꾸준히 달려 어느 덧 충무로를 이끄는 30대 주연 배우로 어엿하게 성장했다. '파수꾼'으로 눈도장을 찍고 '동주'로 방점을 찍은 박정민은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상업성을 입증하며 또래들 중 단연 돋보이는 톱급 연기력을 동시에 각인 시켰고, '사바하'를 통해 그 바통을 이어받으며 완벽히 제 자리를 굳히게 됐다. 박정민의 가치는 높아졌고, 그에 따른 주변의 시선과 평가도 달라졌지만 연기에 대해 한없이 겸손한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단순한 겸손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이 배우 박정민을 더 앓게 만든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와 재벌 2세 캐릭터 등에 대해 언급하자마자 "풉"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레를 치는 것도 그러한 마음의 연장선상이다. "기본적으로 몇 대 맞고 시작하는게 제 팔자인가봐요. 그런 쪽의 작품과 캐릭터는 아예 안 들어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간지러움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그래도 시켜 주시면 해보겠는데…." 달달함을 먼 발치에 놓더라도 관객들이나 박정민이나 특별히 아쉬울건 없는 행보다. 이미 잘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줬고, 잘 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최근 크랭크업한 '타짜'와 차기작 '시동'도 마찬가지. 쉼없는 열일은 언제나 반갑다.
-나한은 변화가 있는 캐릭터다. "나에게 나한은 조금 불쌍한 사람이었다. 자기가 믿고, 자신을 구원해준 존재를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데 그것이 악행이라는걸 알고 있다. 감정없는, 사람 죽이는걸 좋아하는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자신 때문에 희생당한 어린 소녀들이 계속 꿈에 나온다. 그리고 나한은 그것을 괴로워 한다. 무서워하기 보다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나한 홀로 겪는 현실적 타격과 유약함을 살짝 표현하고자 했다. 관객들이 볼 때도 여느 호러 영화처럼 단순히 무서움만 느껴지지 않기를 바랐다."
-소녀들 비주얼도 임팩트 강했다. "그게 CG가 아니다. 실제 분장을 하고 와이어 달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중에 와이어만 지운 것이다. '부산행' 좀비 안무 선생님에게 훈련을 받고 왔다고 하더라. 선생님 제자도 있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연기를 해야 했는데 더비를 쓰면 티가 나서 친구들에게 직접 부탁했다.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작 연기하는 친구들은 너무 신기해 하고 재미있어 하더라. '해 줄 수 있겠어?'라고 했더니 '좋아요!' 하면서 매달리더라. 다행이었고 고마웠다."
-문어체 대사들도 많았다. "이 영화에 그런 대사가 나와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해도 힘든 대사들이었다.(웃음) 내가 사극 같은 장르는 해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처음엔 너무 어색했고, 후시로도 많이 만졌다. 날씨도 추운데 안 해 본걸 하려니까 정신이 없더라. 나도, 감독님도 애를 많이 먹었다."
-'검은사제들' 강동원은 사제복으로 의상의 한 획을 그었다. "나도 유니폼이 있긴 있다. 자동차 정비복. 하하. 의상은 의상 감독님이 입으라는대로 입었다. 전부 따로 제작한 옷으로 안다. 사실 내가 생각한 나한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블랙으로 꽁꽁 감싼 느낌이었다. 바로 옆에 슥 지나가도 잘 안 보일 것 같은 느낌 있지 않나. 근데 감독님이 헤어스타일부터 샛노랗게 탈색을 하라고 하시더라. '왜 이렇게 튀지?' 싶었는데 촬영날 가서 연기를 해보니까 튄다는 느낌 보다는 '아, 얘한테 뭔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감독님은 '그게 한 단계 더 고단수 위장이다'고 하셨다. 원래 그렇게 입고 다니는 애들은 그런 짓 안 하는데 그런 짓을 하고 다니니까 고단수라고.(웃음)"
-머리카락이 엄청 상해 보이더라. "탈색은 시나리오에 써 있지는 않았다. 감독님이 다로 요구한 사항이다. 헤어스타일도 애초 내 상상과는 달랐다. 난 짧은 스포츠머리 그런걸 생각했다.(웃음) '변산' 크랭크업 하고 그 다음날 바로 '사바하' 크랭크인이었다. '변산' 때도 펌 스타일이라 '자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못했다. 색만 뺐다."
-이정재보다 유지태와 더 많이 만난 느낌이다. "맞다. 제일 많이 만난건 나고, 그 다음 (이)재인이와 지태 선배님을 많이 만났다. 혼자 하는 촬영이 그렇게 많더라.(웃음) 지태 선배님도 정재 선배님 만큼이나 신기했다. '올드보이' 때부터 친구들과 있을 때 성대모사 따라하고 그랬던 선배님이니까. 선배님은 진짜 선배님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적극적으로 신을 만들려는 의지를 보여 주셔서 많이 배웠다. 예를 들어 연기적으로 '우리가 같이 이런 저런 식으로 해보는건 어떨까?' 먼저 이야기를 하시더라. 진짜 좋았다. 한 번은 내가 연기가 잘 안 되는 신이 있어서 테이크를 많이 갔다. 감독님이 '컷'을 하고 'OK'를 할 때까지 중간에 아주 살짝 마가 뜨는데 그 때 선배님이 내 눈을 보면서 '끄덕' 하시더라. '괜찮았나?' 하는 순간 'OK' 소리가 들렸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씩 마주하면 굉장히 큰 힘이 된다."
-동물 촬영은 어렵지 않았나. "여담으로 '이 영화가 언제 개봉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감독님에게 '감독님 '사바하' 언제 개봉해요? 11월에는 안 하면 안 돼요? '신비한 동물사전'이 나와서요'라고 한 적이 있다.(웃음) 그랬더니 감독님이 '우리가 '신비한 동물사전' 보다 동물이 더 많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하시더라. 실제로 촬영을 같이 하기도 했지만 CG까지 포함되니까 생각보다 더 많이 나와 좀 놀라긴 했다. 현장에서는 개들, 새들 그런 친구들이 이미지 단역처럼 온다. 소통을 할 수는 없으니 온 마음을 다해 아껴줘야 한다. 사람이야 자기가 알아서 뭘 할 수 있지만 그 아이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마음이 엄청 쓰였다."
-함부로 대하거나 그냥 방치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요즘엔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옛날에는 진짜 소품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뭐라 할 수는 없고, 마음은 아프고 그랬는데 이번엔 다행히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오신 업체 반장님께서 소중하게 다뤄주셔서 잘 있다 잘 갔다.(웃음) 신기했던건 다 훈련된 개들인데 그 중에서 대장 개가 있다. '짖어!' 했을 때 대장 개가 짖으면 다른 개들이 따라 짖는 것이다. 그러다 대장 개와 한번 돌면 싹 조용해진다. 대장 개님이 아주 잘해 주셨다. 하하. 코끼리와 사슴은 CG다. 내가 차를 타고 녹야원을 달리는 신이 있지 않나. 영화를 보니까 옆에 사슴이 같이 뛰고 있더라. 깜짝 놀랐다. 그렇게 CG가 들어갈 줄 알았으면 시선 한 번 줬을텐데 촬영 땐 그걸 몰랐으니 그냥 앞만 보고 있더라.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