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③] 박정민 "로코·재벌2세? 제 팔자에 있을까요"

박정민에게 영화 '사바하(장재현 감독)'는 시작부터 끝까지 응원을 부르는 작품이었다. 오랜시간 애쓴 장재현 감독의 뜨거운 눈물을 마주한 이유도 있지만, 촬영내내 배우 박정민으로 무언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욕심보다 '사바하'의 나한으로, '사바하' 세계에 살고있는 1인으로 필요하면 등장하고 잘 활용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 애정한 만큼 소중하게 남은 작품이기에 관객들에게도 힘을 얻을 수 있길 박정민은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그리고 그의 간절함은 제대로 통했다. '사바하'는 누적관객수 200만 명을 돌파하며 기분좋은 흥행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국내 관객들이 즐겨찾는 범죄 스릴러 장르에 여전히 신선하게 받아 들여지는 오컬트 장르를 한 스푼 크게 떠 넣은 '사바하'는 다소 어려운 스토리와 난해한 전개라는 일각의 평에도 관객들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했다. 매일 부르짖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신·神)'과 현실의 경계를 절묘하게 접목시킨 '사하바'에서 박정민은 해결사이자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차근차근 꾸준히 달려 어느 덧 충무로를 이끄는 30대 주연 배우로 어엿하게 성장했다. '파수꾼'으로 눈도장을 찍고 '동주'로 방점을 찍은 박정민은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상업성을 입증하며 또래들 중 단연 돋보이는 톱급 연기력을 동시에 각인 시켰고, '사바하'를 통해 그 바통을 이어받으며 완벽히 제 자리를 굳히게 됐다. 박정민의 가치는 높아졌고, 그에 따른 주변의 시선과 평가도 달라졌지만 연기에 대해 한없이 겸손한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단순한 겸손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이 배우 박정민을 더 앓게 만든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와 재벌 2세 캐릭터 등에 대해 언급하자마자 "풉"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레를 치는 것도 그러한 마음의 연장선상이다. "기본적으로 몇 대 맞고 시작하는게 제 팔자인가봐요. 그런 쪽의 작품과 캐릭터는 아예 안 들어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간지러움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그래도 시켜 주시면 해보겠는데…." 달달함을 먼 발치에 놓더라도 관객들이나 박정민이나 특별히 아쉬울건 없는 행보다. 이미 잘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줬고, 잘 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최근 크랭크업한 '타짜'와 차기작 '시동'도 마찬가지. 쉼없는 열일은 언제나 반갑다.
 

-영화가 어렵다는 평도 있다.
"감독님이 처음에 강의를 해 주셨다. 불교적 세계관을 시작으로 이 영화를 기획한 이유 등 다방면으로 설명을 해 주셨는데 아주 재미있더라. 그걸 들으니까 영화가 한 번에 이해됐다. 사천왕, 티벳 스님 등 캐릭터들도 본래 밀교 쪽에 있는 귀신의 이름을 다 온 것이라고 하셨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었다. 해석에 어려움은 없었다."
 
-관객들은 감독의 강의없이 영화를 접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보다 훨씬 쉽게 만들어졌는데?' 했다.(웃음) 시나리오는 글로 돼 있으니까 더 어렵더라. 우리 영화가 갖고 있는 재미를 최대한 대중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는 방향으로 편집된 것 같다. 물론 불교에 대해 아시는 분들은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포인트들은 있을 것이다. 미스터리한 일들이 일어나고, 단서가 나오고, 해결되는 과정 자체는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박정민 하면 '동주' 이야기를 많이 한다. 부담은 없나.
"그렇게 따지면 '파수꾼' 부터 부담스러워야 한다. '파수꾼'이야 말로 정말 아직까지 '파수꾼' 이야기를 하는거니까.(웃음) 난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참여한 작품이 좋은 영화였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내가 연기를 엄청 잘해서 '와, 박정민 이번에 한건 했구나!' 그런 말을 들을 욕심은 전혀 없다. 작품이 빛날 때 더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진심으로 뿌듯하다. 그리고 내가 나온 영화가 되게 좋은 영화여서 그 되게 좋은 영화에 나왔던 배우로 기억되는게 훨씬 좋지 않을까 싶다."
 
-칭찬이 어색한가.
"그렇다기 보단 정말로 내가 잘했다는 생각이 잘 안 든다. '난 못했어' 싶다.(웃음) 칭찬과 호평은 당연히 감사하다. 비판도 받아들인다. 솔직한 반응들은 다 좋은 것 같다. 못했으면 빨리 다음 발판을 마련하고 도약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니까. 늘 그렇게 살고 있다."
 

-박정민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그것도 영화의 장르와 메시지에 따라 기준이 다양할텐데 앵글이나 편집이 엉성해도 말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 했다면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동주' 같은 경우는 솔직히 멋 부리지 않은 영화다. 장비가 없어서 무빙을 할 수 없는 영화였다. 카메라를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요즘 시대에 카메라를 그냥 세워놓고 찍는 영화가 어디있나. 하지만 그 영화는 이준익 감독님이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흑백으로 찍겠다. 멋부리지 않겠다. 윤동주의 시로, 두 배우의 연기로 그 사람을 기리겠다.'는 목적이 확고했다. 단 19회차 만에 흑백영화 하나를 찍어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주'는 분명 좋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최근 본 '너는 여기에 없었다' 역시 결은 전혀 다른 영화지만 좋았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자기 것을 지키면서 더 크게 부합시키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박정민의 로코(로맨틱코미디)는 언제 볼 수 있을까.
"난 어떤 캐릭터를 맞든 기본적으로 얻어 맞는다. 기본적으로 몇 대 맞고 시작한다. 내 팔자인 것 같다.(웃음) 로코는 욕심도 없고 무엇보다 들어오지도 않는다. 영화보다는 드라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르인데 드라마 자체가 잘 안 들어온다. 내가 거부하거나 거절하는건 절대 아니다. 내가 왜. '전 시켜주면 다 합니다'라고 말하고 다니는데 안 들어온다. 물론 '견딜 수 있을까. 그 간지러움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가끔 한다. 그래도 원하신다면 어떻게든 해 볼텐데 안 들어온다. 로코에 재벌2세? 힘들지 않을까. 보통 그런 분들은 잘 안 맞고 잘 안 죽지 않나. 난…. 하하."
 
-정통 멜로는 좀 다르다.
"멜로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지 않은 장르는 없다. 계속 반복하게 되는데 '시켜만 주시면' 다 할 수 있다. 하하. 얼마 전에 '무뢰한'을 보게 됐는데 새벽 감성까지 터져서 그런지 영화가 너무 좋더라. 평점도 남겼다. 내 영화에도 안 남기는데 살면서 처음 평점을 남겨봤다. 그만큼 좋았다."
 
-쉼 없이 활동 중이다.  
"거의 못 쉬고 있다. 어제 '타짜' 쫑파티를 했고 '사바하' 무대인사가 끝나는 날 새 작품 촬영 을 시작한다. 연기하는 사람이니까, 연기 해야지. 재미있게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조연경 기자 [e-mail]
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