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르게 나온 것은 맞아요. 부정할 수 없죠." 배우도 아쉽고, 관객도 아쉬운 결과다. '김혜수 원톱 주연 누아르물'이라고 홍보가 된 영화 '미옥(이안규 감독)'은 마케팅 방향과 다른 스토리로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혜수는 배우로서 할 일을 완벽하게 끝마쳤음에도 관객들에게 미안함을 내비치고 있다.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는 여성 중심 영화이기에 안타까움의 깊이는 더욱 크다. 과감한 액션에 도전했고, 본인의 이미지를 이용해 '언더보스 나현정'을 탄생시켰다. 입에 착착 감기는 차진 욕설에 섹시함과 카리스마가 한데 뒤섞인 분위기는 김혜수가 얼마나 많은 애정으로 작품에 나섰는지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래서 민폐가 되면 안 되는데…"라고 읊조린 김혜수는 강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여린 성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타고난 깡이 없어 체력으로 버텼다는 김혜수는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톱 배우의 위치를 지키고 있으면서도 "운 좋은 연예인이다" "여전히 은퇴를 고민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혜수는 자리를 정돈하는 취재진에게 "예민한 질문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드라이하게 넘어가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더 이상 덧붙이지 않아도 김혜수의 모든 심경을 함축해 주는 한마디였다.
- 본격적인 액션 연기는 처음이다.
"엄청 오래 찍었는데 엄청 짧게 나와 당황했다.(웃음) 액션 자체도 힘들었지만 날씨까지 추워 혼났다."
- 후유증은 없었나.
"애초 시작부터 따져 봐야 할 것 같다. 사실 이 영화는 '차이나타운'을 할 때 '소중한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제안이 들어왔으니까 꽤 오래됐다. '굿바이 싱글', 드라마 '시그널'보다 오래된 작품이다. 수정고만 8번을 받았는데 결국 제작은 '굿바이 싱글' '시그널' 그리고 '소중한 여인' 순서가 됐다. 초반에 액션팀과 인사하고 3년 만에 다시 만나 만든 작품이다."
- 액션 연습을 3년 동안 한 것은 아닐 텐데.
"한번 몸을 풀러 액션 스쿨에 방문했는데 내가 평소에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완전 못했다.(웃음) 운동신경 자체가 없는 편은 아닌데 제작진·무술팀과 촬영에 임박해서 준비하는 것이 낫겠다고 합의했다. 근데 새 작품들을 찍으면서 본의 아니게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굿바이 싱글'이 끝나고 이틀 뒤에 '시그널'의 촬영에 들어갔고, '시그널'이 끝나고 역시 일주일도 안 돼 '미옥'의 촬영을 진행했다. 그것도 '시그널'팀에서 내 분량만 먼저 찍어 줘서 가능했다."
- 불안감이 컸을 것 같다.
"'이럼 안 되는데 어떡하지' 싶더라. 다행인 것은 '시그널' 액션팀이 '미옥' 액션팀과 같아 '시그널'을 찍을 때 액션팀에서 내 스타일을 다 파악해 놨다는 것이다."
- 육탄전에 장총까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액션을 모두 소화했다.
"엽총을 쏘는 신이 초반에 나오는데 너무 무거워서 깜짝 놀랐다. 총을 조준하고 있으면 '액션!' 소리가 들릴 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팔이 쭉 내려갈 정도였다. 맨몸 액션은 초보들이 몰라서 하는 실수를 몇 번 한 것만 빼면 예상보다 잘 끝났다."
- 직접 해 보니 어떻던가.
"첫날은 근육통에 시달려 죽는 줄 알았다. 안 쓰던 근육을 쓰니까 몸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더라. 몸져누워 있어야 하는데 촬영은 해야 하니까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가 이를 악물고 찍었다. 그럼 또 몸이 풀렸다. 아프고 풀리는 것이 무한 반복됐다. 현장에 물리치료 선생님이 오셔서 그 도움을 받기도 했다."
- 액션을 왜 싫어했나.
"두려웠다. '미옥'을 시작할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이 액션이었다. 이전에도 액션 영화가 간간이 들어왔지만 무서워서 거절했다. '미옥'을 통해 용기를 얻었고 데뷔 이래 처음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내 나이에 맞는 액션 영화가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작품이 좋다면 또 해 볼 것 같다. 그땐 더 잘 준비해서 제대로 해 보고 싶다."
- 하이틴 스타일 때 '태권소녀' 모습도 보이지 않았나.
"(웃음) 대과거다. 태권도는 초등학교 때 1년 정도 했다. 그때는 잘했다.(웃음) 겨루기 대회에 나가는 거면 못했을 텐데 태권도는 기본적으로 폼을 배우지 않나. 그것도 학교에 태권도 시범단이 있었는데 그 유니폼이 입고 싶어 시작한 것이다. 너무 멋졌고 부러웠다. 태권도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