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르게 나온 것은 맞아요. 부정할 수 없죠." 배우도 아쉽고, 관객도 아쉬운 결과다. '김혜수 원톱 주연 누아르물'이라고 홍보가 된 영화 '미옥(이안규 감독)'은 마케팅 방향과 다른 스토리로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혜수는 배우로서 할 일을 완벽하게 끝마쳤음에도 관객들에게 미안함을 내비치고 있다.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는 여성 중심 영화이기에 안타까움의 깊이는 더욱 크다. 과감한 액션에 도전했고, 본인의 이미지를 이용해 '언더보스 나현정'을 탄생시켰다. 입에 착착 감기는 차진 욕설에 섹시함과 카리스마가 한데 뒤섞인 분위기는 김혜수가 얼마나 많은 애정으로 작품에 나섰는지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래서 민폐가 되면 안 되는데…"라고 읊조린 김혜수는 강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여린 성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타고난 깡이 없어 체력으로 버텼다는 김혜수는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톱 배우의 위치를 지키고 있으면서도 "운 좋은 연예인이다" "여전히 은퇴를 고민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혜수는 자리를 정돈하는 취재진에게 "예민한 질문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드라이하게 넘어가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건넸다. 더 이상 덧붙이지 않아도 김혜수의 모든 심경을 함축해 주는 한마디였다. >>①편에 이어
- 욕설 연기도 굉장히 차지게 하더라.
"어우, 다행이다. 욕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타짜' 때 '너구리 너는 머릿속에 마요네즈만 들었니?'라는 대사가 있는데 원래는 더 욕을 하는 것이었다. 근데 (최동훈) 감독님이 내가 욕하는 것을 듣고 대사를 바꾸시더라. 그때 '아, 난 욕은 안 되나 보다' 했다. 왜 배우들을 보면 영화에서 욕을 엄청 잘하지 않나. 실제로는 안 한다. 연기인 것이다. '난 왜 안 되지' 답답했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도전해 봤다. 한 번 겪은 것이 있으니 '혹시 또 잘릴까' 싶었는데 잘 나왔다니 고마웠다."
- '모성애' 소재는 '미옥'에서도 빠짐없이 등장하더라.
"개인적으로 최대한 차갑고 시크하게 처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우리 영화의 정체성은 누아르다. 물론 그래서 소홀히 다루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 그럼 어떤 이유 때문인가.
"나현정은 아주 어릴 때 아이를 낳았고, 일을 하는 목적이 뚜렷하다. 누리고자 하는 것들이 연관돼 있을 수도 있지만, 내 아이가 있다는 것 역시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다만 아이하고 친분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모성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설사 그런 것이 있다 하더라도, 모성이 너무 강한데 감춘 여자라 하더라도 드라이하게 표현됐으면 싶었다."
-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편집됐다.
"관객들 입장에서 '어떻게 저럴 수 있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영화가 끝났을 때가 돼서야 느껴지는 감정이 있기를 바랐다. 내 생각은 그랬다. 근데 그 부분은 영화에서 좀 다르게 표현된 것이 맞다. 익숙하고 덜 신선하다. 일부러 다르게 할 필요는 없지만 다른 과정을 통해 같은 것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 여성 액션 영화의 한계일까.
"과거 뤽 베송의 '니키타'를 굉장히 감명 깊게 봤다. 친구들에게 '나를 김키타로 불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웃음) 그런 영화에 끌린다. 멋지잖아. 영화를 하고 있지만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누아르 장르를 좋아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밀도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쓸쓸한 여운까지 담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킬빌'도 너무 좋다. 그런 작품들을 보면 여성 액션 영화라고 한계가 있는 건가 싶다. 근데 또 좋은 영화를 떠올려 보면 손에 꼽힌다. 그 정도로 없다는 것이다."
- '미옥'은 김혜수 원톱 누아르물로 홍보되고 있다.
"너무 부담된다. 마케팅 차원에서 당연한 것이지만 관객 분들이 '왜 여성 영화는 늘 제한적이냐'고 하신다면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작품에서든, 캐릭터적으로든 대부분 주체적이지 못하고 능동적이지 않다. 영화를 보겠다는 결정권자들이 여성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이성이 멋지게 나오는 것을 보고 싶지 않겠나. 용기를 줄 수 있는 작품이 지속적으로 줄기차게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어떤 면에서 부담감을 느끼는 것인가.
"시작할 때는 어쨌든 내 작품이니까 그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지금은 '김혜수, 여성 중심 누아르'가 부각되니까 꼭 누아르가 아니더라도 '더 잘할 수 있는 누군가, 더 잘할 수 있는 배우의 가능성을 절대 막아서는 안 되는데'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라. 나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관객들이 진심으로 여성 영화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김혜수만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 김혜수라서 주목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내가 아닌 누구라도 계속해 줬으면 좋겠다."
- 그래도 김혜수라서 주목받는 데 대한 부담감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민폐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쨌든 '미옥'은 만들어졌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