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발견의 기쁨엔 주인공 박도경 역을 맡은 에릭도 포함이다.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내 맘이 타고 있잖아요”처럼 느끼한 대사를 읊던 그가 ‘또 오해영’에선 여심을 제대로 저격하는 ‘츤데레’ 도경으로 변신한 덕분. 아닌 척, 관심 없는 척 서현진(오해영)을 챙기던 에릭은 요즘 로맨틱 코미디에 딱 들어맞는 맞춤 로코킹이다.
종영 직후 만난 에릭은 박도경이 현실 세계로 살아 돌아온 듯 똑 닮아 있었다. 여러 기자들 앞에서 다소 낯을 가리는 모습이나, 역할을 설명할 땐 냉정해지는 눈빛, 때때로 보여주는 특유의 달콤한 미소까지.
에릭과 박도경이 무척이나 겹쳐보이는 건 그가 아직 ‘또 오해영’을 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 1회 방송으로 100회 하고 싶었다”며 종영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고, “‘또 오해영’ 이후 다른 작품을 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박도경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또 오해영’을 자신의 인생드라마라 칭했다.
-‘또 오해영’을 끝내고 나서 배우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나. “쫑파티를 하며 ‘주 1회 방송이면 100회까지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꼭 박도경과 오해영 이야기 말고도 김지석(이진상)과 예지원(박수경)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시청률 5%를 넘겨서 프리허그 이벤트도 했다. 팬들과 직접 만날 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리허그를 순서대로 하던 중 마지막 쯤 남자분이 세 분 정도 계셨다. 당연히 현진이나 (전)혜빈이 보러 왔을 줄 알았는데 지석 씨를 보러 왔다고 하더라. 현장에서 지석이가 춤추고 그 분들을 안아줬던 기억이 있다.”
-‘또 오해영’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나. “시기상 드라마에 출연하기 이르다고 생각했다. ‘연애의 발견’이 좋아서 차기작에 바로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받기도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또 오해영’ 대본을 받은 후 ‘연애의 발견’ 감독님과 촬영 감독님이 꼭 송현욱 감독님과 일을 해보라고 하더라. 영상 찍는 일엔 끝판왕이니까 꼭 했으면 좋겠다더라. 때마침 ‘로맨스가 필요해’를 보고 있었는데 지석이도 큰 역할이 아닌데 선뜻 해준다고 했고. 그래서 점점 조금씩 마음이 기울었다.” -‘또 오해영’은 동명이인 때문에 시작된 에피소드다. 실제로 동명이인 때문에 겪은 일이 있나. “난 동명이인이 별로 없다. 그나마 요즘엔 에릭남 씨? 그런데 그 분도 나랑 이름이 겹쳐서 다른 한국이름을 사용하려고 했다더라. ‘착한 친구구나’라고 생각했다. 저는 뭐 굳이? 괜찮다.”
-이 드라마가 흥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운이 있었다. 현장엔 누구 하나 정도는 시간 때우고 자리 채우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이 곳은 막내 스태프 까지도 뭔가를 하려고 했다.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한 명 한 명 다 열심히 해줬고. 그렇게 우리들끼리 복작복작하는 느낌이 시청자 분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서현진과의 호흡은 어땠나. “현장에서 실제로 되게 잘 맞았다, 작품 들어가기 전 감독님과 미팅했을 때 ‘저는 쫑파티 쯤 돼야 여배우랑 친해지는 스타일’이라고 말했었다. 실제로 한지민도 두 번 봐서 친해졌고 정유미도 두 번 할 때쯤 편했다. 현진 씨와도 그 이야기를 나눴는데, 감독님이 ‘현진 씨도 작품 끝날 때 친해진다’고 이야기하더라. 그래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빨리 친해졌다. 처음 삼사일까지는 어색하긴 했어도, 어색한 상황을 찍으며 어색해도 됐을 때라 굳이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서현진과 친해진 결정적 계기가 있나. “둘 다 자기 캐릭터에 많이 빠진 덕분이다. 드라마 초반 무리해서 친해지려 노력하지도 않았고, 사적으로 일부러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바뀌더라.”
-서현진과는 과거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 때의 추억은 없나. “사실 나는 너무 오래 돼서 당시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나마 기억나는 건 동완이와 현진 씨가 단막극 찍고 쫑파티할 때 거길 우연히 들렀다가 현진 씨를 봤던 일이다. 그때 인사하며 ‘안녕하세요’라고 대화 나눈 게 전부다. 새 작품 할 때 만나는 여배우 딱 그 정도였다. 난 사실 이전에 혜빈 씨는 본 기억이 있는데 현진 씨는 기억이 없다. 알고 보니 뮤직비디오도 같이 찍었더라. SM 여름 스페셜 앨범 뮤직비디오로 가평에서 노는 장면을 찍었었다.”
-그동안 연기자로 활동할 땐 문정혁이라는 이름을 썼다. 그런데 이번엔 에릭이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처음 드라마 ‘나는 달린다’ 시작할 때 감독님이 문정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셔서 시작된 거다. 가수로서의 느낌이 극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정혁과 에릭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문정혁이라고 말한들 사람들은 에릭이라고 볼 텐데. 신화 에릭이라는 사실은 내 프라이드이기도 하고. 이번엔 처음부터 에릭으로 소개됐기에 굳이 수정 요청을 하진 않았다.”
-에릭이 꼽는 최고의 명장면은 무엇인가. “4회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서현진이) 날아서 포옹하는 대목. 1회에서 4회까지의 대본 중 가장 센 신이었다. 해 떨어질 때 시작해서 해 뜰 때까지 찍었는데, 현진 씨가 와이어를 사용해서 오래 매달려 있었다. 와이어가 리얼할까 싶은 의구심이 들었는데, 막상 찍어 놓은 것 보니 부자연스럽더라. 잘못하면 이 장면을 망칠 수도 있겠다고 걱정했다. 현장에서 본방송을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좀 어색했다. 날아가는 모습이 가짜 같고. 그런데 반응이 괜찮은 거다. 집에 가서 다시 보니, 음악이랑 어우러져 그림이 되더라. 음악이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그 장면 방송 후 단체 채팅방에서 우리끼리 ‘잘하면 드라마가 크게 잘될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