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한결같은 배우도 드물다. 인터뷰 현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90도 인사부터 건넸다. 현재 살이 쏙 빠질 만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빼곡한 영화 촬영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음에도 기꺼이 취중토크 자리에 함께 한 강하늘(31)은 피곤함은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특유의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뽐내며 '강하늘이 있는 현장'의 분위기를 단번에 완성했다. 전해지는 미담보다 더 매력적인 본체. 사랑할 수 밖에 없고 사랑받을 줄 아는 존재감이다.
"제56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주인공을 위해 마련된 자리다"는 한 마디에 내저은 손사레만 수십번. 짝꿍처럼 바로 옆자리에 세워둔 트로피를 만지작거리면서 "근데 이거 여기에 계속 두고 해야 하는거죠?"라며 쑥쓰러움과 민망함에 몸둘바를 몰라 하는 모습도 딱 강하늘이다. "강하늘과 이변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데 말입니다, 하하" 스스로 '이변'이라 표현할 정도로 "현실감없는 수상"이라고 강조한 강하늘은 "지금도 몰래카메라 같다"며 겸손을 넘어선 솔직한 속내를 거짓없이 드러냈다.
KBS 2TV '동백꽃 필 무렵'은 '동백꽃 필 무렵'의 구성원들에게도, 또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에게도 평생의 '인생작'으로 기억 될만한 작품이다. 그 중심에서 강하늘은 '강하늘이 아니면 안 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용식으로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좋은 '결과'까지 얻으며 완벽한 해피엔딩을 맞이했지만 강하늘은 '과정'에 조금 더 집중했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현장 안에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어요. '평생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감히 생각해요."
'군백기'의 우려 또한 강하늘을 야무지게 비켜갔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배우 강하늘'의 위치를 탄탄히 다져놓고 군 복무를 자청했던 강하늘은 전역 후에도 잠시간의 공백을 120% 채우며 탄탄대로 꽃길만 걷고 있다. "내심 기대했던 군 생활이었는데 단 2주만에 후회가 밀려와 저도 놀랐어요. 마음 다스리는 법을 새롭게 깨우쳤고, 다양한 사람들과 각자 삶의 역사를 알게 됐죠. 다시 가라면 '절대' 가고 싶지 않지만, 배운건 정말 많아요." 뭐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은 시간이 강하늘을 또 한번 성장시켰다.
드라마, 연극, 예능까지 쉼없이 달린 강하늘은 '비와 당신의 이야기' '해적: 도깨비 깃발'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스크린 컴백도 앞두고 있다. '해적: 도깨비 깃발' 촬영으로 인해 스포일러상 (과감한) 헤어스타일은 잠시 감출 수 밖에 없었지만, 살짝 엿본 비주얼은 기대해도 좋을만큼 강하늘과 찰떡이다. "제가 워낙 집돌이이긴한데, 작품없이 여유롭게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고 있어요. 팬들과의 만남은 그 언젠가 깜냥이 된다면?(웃음) 매일을 재미있게 살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늘 즐거울 사람, 새파란 하늘처럼 맑은 강하늘이다.
※취중토크①에서 이어집니다.
-'동백꽃 필 무렵'은 어떤 의미의 작품으로 남을까요. "시청률이 잘 나왔고, 상도 받았고 많은 분한테 사랑받았던 작품이죠. 그건 부정할 수 없는데 그것보다 작품을 만드는 분위기가 좋았어요. 드라마를 찍으면서 영화 찍는 기분이었고 많은 분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어요. 한신 한신 만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많은 분이 작품을 사랑했고 헌신적이었죠. 우리도 헌신적이기 위해 노력했어요."
-'참여' 자체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때론 '상 받았으니까 해피엔딩~' 하면서 오히려 다른 부분들이 감춰지는 경우가 있는데 '동백꽃 필 무렵'은 저에게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에요. 그 이상이죠. 제 생각이지만 앞으로 이런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제 못만나지 않을까? 또 만나기 힘들지 않을까?' 계속 그런 마음을 품고 있어요."
-극 중 캐릭터 황용식과의 싱크로율도 굉장히 높았죠. "워낙 임상춘 작가님이 대본을 잘 써줘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제가 편할 수 있게끔 만들어줬거든요."
-'인생캐릭터'라는 평가도 쏟아졌고요. "감사하죠. 근데 저에게는 용식이도 인생캐릭터였고, 그 전에 했던 모든 작품 속 캐릭터들 역시 인생캐릭터라 생각해요.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그 순간에는 그 캐릭터를 가장 사랑하니까요. 하지만 용식이에게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는건, 역시 작업의 재미였어요. 정말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다 함께 가치있게 만들고자 했던 그 순간이 용식으로서 행복했고,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대본받을 때마다 설렘 가득이었다고요. "(오)정세 형이나 (전)배수 선배님, (이)정은 선배님이 다음 대본을 엄청나게 기다렸어요. 저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글이 자꾸 나오지?' '이건 작가님이 절대 한 분이 아니다'란 생각이 들 정도였죠. 연기를 해야 할 연기자가 다음 대본을 기다릴 정도면 애정이나 믿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대본받을 때마다 기분 좋고 신기했어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정세 형에게 너무 감사했던 게 지금까지 참여한 작품이 100개가 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촬영할 때 그 많고 많은 작품 안에서 '이 작품이 정말 기억에 남고 남고 남을 작품'이라고 하더라고요. 정세 형은 항상 진심으로 말하는 스타일이에요. 그 말을 듣는데 마음 한구석이 울컥하더라고요."
-오정세 배우의 팬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형이 '미생' 때 잠깐 나온 적이 있어요. 그때 촬영장에 가서 '오~오!' 하면서 봤어요. 그러다 이번에 함께 촬영하게 됐어요. 먼저 다가가서 '형의 팬인데 친해지고 싶다'고 했어요. 형이 제 마음을 받아줬어요. 성덕이 됐죠.(웃음) 근데 정세 형만 좋아하는 건 아녜요. 정은 누나도 좋아하고 배수 형님도 좋아하고 다 사랑합니다."
-여행 예능과 인연이 깊어요. 촬영으로 가는 여행들은 어땠나요. "최근 JTBC '트래블러-아르헨티나'(이하 '트래블러')는 좀 달랐어요. 일단 피디님과 작가님부터가 진짜 여행을 꿈꿨거든요. 그런 가운데 카메라만 있는 거고 뭘 해보자는 특별한 얘기는 없었어요. 그냥 우리끼리 편하게 여행하면 됐거든요. 그래서 진짜 재밌었어요. 카메라 있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장난치고 그랬거든요."
-아르헨티나가 정말 신비롭고 아름답더라고요. "처음에 가방을 싸는데 긴팔, 반팔, 바람막이 그리고 패딩을 준비하라고 하더라고요. '아니 무슨 나라를 12일 동안 여행을 가는데 사계절 옷을 다 준비하지?' 했는데 진짜 사계절을 다 경험했어요. 위에서 내려갈수록 추워지더라고요. 진짜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웠어요."
-소고기가 진짜 싸더라고요. "아직도 기억나요. 2kg을 샀는데 9000원이었어요. 물가가 20배 오른 가격이래요. 아르헨티나 분들은 물가가 너무 올라서 지금 힘들어해요. 오른 가격인데 한국과 비교하면 소고기 값이 싸죠. 왜 싸냐고 물어봤더니 아르헨티나는 나라 인구보다 소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첫 만남은 어색하지 않았나요. "(안)재홍이 형은 영화 '스물' 때 만났고 술자리에서도 만난 적이 있었어요. (옹)성우랑은 진짜 처음이었는데 성격이 너무 좋더라고요. 남을 배려하는 게 몸에 배어있는 느낌이었어요. 덕분에 편했고 셋이서 정말 즐겁게 여행을 했어요."
-본격적인 여행 전 설렘이 컸겠어요. "폐쇄공포증이 심해서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불안하게 만들까 봐 걱정했어요. 나 혼자만 힘든 걸 해결하면 되는데 너무 착한 사람들이라 내가 힘들어하면 걱정하고 도와주려고 할 텐데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고 싶지 않더라고요. 가기 전까지도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어쨌든 별문제 없이 갔다 와서 다행이에요. 재홍이 형과 성우랑 같이 가서 리프래시를 많이 하고 돌아왔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백상에서도 옹성우씨 옆자리였어요. "성우가 옆에 있어 다행이다 싶었어요. 거리두기 때문에 다들 떨어져 앉아 있었는데 그것 자체가 혼자 동 떨어진 기분이 들었고, 가만히 있어야 하니 더 민망하더라고요. 근데 성우가 곁에 있으니 얘기도 나누고 장난 칠 수 있어 좋았죠."
-돌아와서 곧장 '환상동화' 공연을 했죠. "첫 시작부터 무대 위였고 처음에 매체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무대 때문이었어요. 연극을 끊을 수 없어요. '동백꽃 필 무렵'이 많은 분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 바로 연극을 해서 내가 하는 연극을 좀 더 많은 분이 볼 수 있게 하자고 생각했는데 진짜 작품이 잘 됐어요. 그래서 바로 연극을 했죠. '트래블러'는 셋의 스케줄을 맞춰야 하잖아요. 전 군대 다녀와서 '동백꽃 필 무렵'만 했으니 시간을 빼기 어렵지 않았는데 셋의 모든 걸 맞춰야 하니 그때뿐이었어요. 근데 그때 공연 연습을 해야 무대 위에 올라갈 수 있었어요. 며칠 제가 먼저 돌아오는 걸로 절충해서 다녀온 거예요.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이다 보니 대사량이 진짜 많았어요. '트래블러' 가서도 대본을 외울 수밖에 없었어요."
-공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네요. "솔직히 말하면 소속사라는 게 있잖아요. 소속사적으로 봤을 때 공연은 손해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수익은 딱히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니까요. 오로지 제 욕심이에요. 제 욕심으로 밀어붙여서 하고 있는 것인데 이 정도의 욕심은 하고 싶어요. 처음 시작이 연극이었고 어머니, 아버지도 연극을 했어요. 수익 창출이나 이런 걸 떠나서 연극을 안 하게 되는 건 제게 좀 다른 의미인 것 같아요. 모든 톱니바퀴가 잘 굴러간다면 연극을 계속하고 싶어요."
-현 소속사 티에이치컴퍼니가 처음엔 강하늘 배우의 1인 소속사로 주목받았죠. "1인 소속사라뇨? 정말 아닙니다! 그런 거 할 깜냥이 아닙니다!(웃음) 정말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성격상 흘러가는 대로 가는 편이에요. 어떤 것들에 있어 너무 크게 반응하면 항상 다른 쪽에서 문제가 터지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면 흘러가는 대로 가는 편이에요."
-많은 변화를 추구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생각을 하면 자꾸 생각만 하게 돼요. 물론 살면서 생각해야 할 부분은 있죠. 근데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생각 속에 파묻히게 돼서 손끝 하나 움직이도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어떤 일에서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하는 게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고민이 있나요. "'내일 있을 신을 어떻게 찍을까' 그것뿐이에요.(웃음)"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촬영 중이죠. 살짝 스포일러를 해주세요. "굉장히 스펙터클하고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느낌의 퀄리티와.(웃음) 아참, 잠깐 틈을 내서 말하자면 지금 안 씻고 오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보는 분들을 기만하는 게 아니에요. '해적'이란 영화를 찍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극이다 보니 머리를 길렀고 어떻게 해도 해결이 안 되어서 모자를 쓴 거예요. 내일 바로 촬영이라 수염을 다듬을 수 없었어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촬영 중이라 언제 개봉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이후 계획은 정해졌나요.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전역 후 '동백꽃 필 무렵' 하고 곧바로 '트래블러' 다녀오고 공연하고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찍었어요. 끝나자마자 '해적'에 들어갔죠. 그래서 이번엔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옛날엔 사실 이런 생각을 잘하지 않았는데 군대에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작품 하나 끝나면 또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해서 남는 게 있겠지만 나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 점점 약해져 가는 기분이었거든요."
-군대에서 나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군요. "나로서의 시간을 알게 됐고 나를 더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날 챙기는 시간이 앞으로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속사에도 말했어요. '한 작품을 하고서는 항상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고요. '비와 당신의 이야기'까지는 병장 때 결정된 거라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해적' 이후엔 쉬고 싶어요."
-쉴 때 무엇을 하고 싶나요. "지금은 찍을 것들이 남아 있다 보니 쉬어도 맘 편히 못 쉬어요. 쉬면서 일 생각 안 하고 여행을 다니더라도 맘 좀 편하게, 좀 더 여유를 찾는 게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