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 tvN '닥치고 꽃미남 밴드'(2012)를 시작으로 얼굴을 제대로 알린 KBS 2TV '태양의 후예'(2016), 삭발 신으로 안방극장을 들었다 놨다 한 SBS '닥터스'(2016), 소름 돋는 반전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입증한 SBS '피고인'(2017)까지. 출연했다 하면 대박이다. '흥행 요정'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데뷔 후 불과 5년여 만에 이룬 성과다.
우연이거나 숟가락 얹은 결과가 아니다. 작품 보는 안목만 좋았던 것도 아니다. 연기를 제대로 배워 본 적 없지만 연기력 논란은 한 차례도 없었다. 타고난 끼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승부욕, 자신의 연기에 대한 엄격함이 그를 이 자리에까지 올려놓았다. 올해 제53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이유다. 쟁쟁한 후보들을 모두 제치고 생애 단 한 번뿐인 영광을 안았다.
어린 나이에 무거운 금빛 트로피를 안은 그는 대충 보면 27년을 쉽게 살아온 것만 같다. 그러나 홀로 힘들게 키워 주신 할머니를 위해 고등학생 시절부터 생업에 뛰어들었고, 횟집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에서 가장 싼 원룸에서 살았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월세가 없어 돈을 빌리러 다녔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냈던 시간들은 그에게 오기가 되고, 열정이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됐다.
"지금 진짜 인터뷰 하는 거 맞아요"라고 재차 묻던 그와 인터뷰를 빙자한 진짜 술자리 토크가 오갔다. '흥행 요정'이 아닌 동네에 잘생긴 청년쯤 돼 보였다. 이보다 더 소탈할 수는 없는 백상 수상자였다.
- 취중토크 공식 질문입니다.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 "소주 두 병 정도 먹으면 딱 적당한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술을 잘 안 먹어서 주량이 줄었더라고요. 오늘 이 자리에선 한 병 정도 마시면 딱 좋겠네요."
- 술버릇이 있나요. "원래 화도 많고 한도 많아요. 덕분에 술 먹고 친구들한테 소리 지르는 주사가 있었어요. 친구들하고 싸우기도 했고요. 무명일 때까지도 그랬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이제 잃을 게 생기니까 술버릇이 없어지는구나'라고 하더라고요. 이젠 취해서 필름이 끊겨도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아요. 무의식적으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래' 하는 마음이 있나 봐요."
- 백상 후보에 올랐을 때 마음이 어땠어요.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도 백상은 항상 지켜봤어요. 송강호 선배님·최민식 선배님이 상 받으실 때 유심히 보던 시청자예요. 처음에 TV 부문 신인상 후보 다섯 명이 딱 나열돼 있더라고요. 저는 맨 끝이었어요. 기호 5번인 기분이었어요. 후보 중에 꼴찌, 인지도가 최하위인 거구나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솔직히 말해서 거기 껴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했어요. 보면서 실실 웃었죠. '저기에 내가 껴 있네. 세상 참 웃기네'라고 생각했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세 빌리러 다니고 그랬는데, 기호 5번이면 어때요. 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 백상에 많은 대선배들이 참석했는데 인사를 나눴나요. "송강호 선배님을 보며 눈이 반짝거렸어요. 저에겐 신 같은 분이에요. 감히 롤모델로 삼을 수도 없는 분이죠. 뒤통수만 바라봐도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꼭 톰 크루즈를 실제로 보는 것처럼 현실감 없이 떨리는 기분이었어요. 시상식에 집중하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그때마다 송강호 선배님의 뒷모습만 봤어요. 마지막에 수상자 사진 찍을 때 인사를 나눴어요. 악수를 하러 가는 2~3초 동안 손에 땀이 차더라고요. '그래. 축하해요'라고 해 주셨어요. 박찬욱 감독님이나 나홍진 감독님에게는 차마 막 다가가지 못했어요. 영화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먼 곳에 계신 분들 같아서요."
- '태양의 후예'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감독도 오랜만에 재회했죠. "시상식장에 들어갈 때부터 함께해 엄청 편했어요. 작가님은 정말 예쁘신 분이세요. 그날 사실 못 알아봤어요. 작가님이 안경 벗고 계신 걸 처음 봤거든요.(웃음) 이응복 감독님을 만났을 때는 기분이 이상했어요. 사실 '태양의 후예' 캐스팅을 할 때 저를 선택해 주신 것도 감독님이에요."
- 수상 후 울지 않더라고요. "계속 눈물을 참았어요. 호명되는 순간에 울 듯 말 듯 감정이 올라오는데, 백상에서만큼은 당당하고 싶었어요. 권위 있는 시상식이니까 멋있어 보이고 싶었고요. 참으면서 꾸역꾸역 할 말을 다 했죠. 나중에 수상 소감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니 말을 정말 못하더라고요."
- '태양의 후예' 이후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출연작이 성공했어요. 상의 무게가 더욱 무겁겠어요. "솔직히 제가 주인공은 아니잖아요. 선배님들의 판에 낀 거죠.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로 치면 크리스 에반스나 로다주(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같은 정예 멤버들이 먼저 있고요, 거기서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한 명씩 끼잖아요. 제가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영웅 아닌 조력자 정도요. 주연이라는 무게감을 가진 신인 배우들과 후보에 올라서 더 못 받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솔직히 말해 조연이 받을 상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 상의 무게를 안고 다음 작품을 해야 할 상황이 됐어요. 이젠 다른 목표가 생긴 거죠. 백상에서 신인상을 받았는데, 내가 다음 작품을 대충 준비하면 더 큰 재앙이 올 거 같았어요. 그런 생각 때문에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봤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갖고 있는 본래 연기 톤이 깨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냥 나 몰라라 일단 해외 여행을 갔다 왔어요.(웃음)"
- 어디로 갔다 왔어요? 친구랑 같이 필리핀이요. 삼촌이 계시거든요. 정말 딱 쉬기만 했어요. 한국에 들어오고 오늘 인터뷰가 첫 스케줄이에요. 어제까진 우울했어요. 아까 집 앞에서 5000원짜리 가정식 백반을 먹으니까 정신이 딱 돌아왔어요. '내가 있어야할 곳은 여기구나'하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