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기획자'로 더 익숙하다. 개그우먼 송은이(45)가 '컨텐츠랩 비보' 대표로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김숙과 함께 진행 중인 팟캐스트 '비밀보장'을 시작으로 지난해를 뜨겁게 달궜던 '판벌려' '영수증' 그리고 올해 방영돼 사랑받고 있는 올리브TV '밥블레스유'까지 다양한 콘텐트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어느 순간 설 자리를 잃고 슬럼프를 이겨 내기 위해 시작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막연했던 도전은 이 시대가 원하는 콘텐트로 인정받았다. 대중의 마음을 꿰뚫었고 화제의 중심에 섰다. 지난 5월 열린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여자 예능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오랜 노력을 인정받아 예능 부문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데뷔 26년 차 개그우먼으로서, 기획자로서 하루하루 바삐 살아가고 있는 송은이를 만났다.
>>취중토크②에 이어
- 한 차례 논란을 겪었던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이 안정적으로 방송되고 있어요. "예전보다 파이팅하고 있고 다들 조심하려고 해요. 눈 깜짝할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까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나요. 큰 주사를 맞았는데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이영자씨가 소개만 했다 하면 맛집에 발길이 끊이지 않아요. "내 맛집이었는데 방송에 나간 뒤 갈 수 없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영자 언니가 소개하는 맛집들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요. 영자 언니가 진심으로 귀하게 여기는 것을 소개하는 거라 사람들이 그 진정성을 아는 것 같아요. 사실 나한테도 맛집에 대한 정보를 잘 공유하지 않아요." -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이영자씨를 바라보면 기분이 좋겠어요. "영자 언니는 데뷔 전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데뷔 때부터 스타였어요. 보통 스타가 아니라 톱스타였죠. 왜 그렇게 톱스타가 됐는지 알겠어요. 확실히 달라요. 힘든 시간을 견디면서 굳은살도 많아졌고요. 그러면서 영자 언니가 더 잘 익어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게 합쳐지니 시너지가 엄청나요."
- 인생의 활력소는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다하는 거죠. 여행보다 수다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유)재석이와도 잘 맞아요. 근데 걔는 좀 과해요.(웃음) 녹화가 끝나면 한 시간 정도 얘기하다 가고, 그런 게 익숙해요. 수다하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런 자리에 함께하는 게 에너지가 되는 것 같아요."
- 결혼에 대한 생각은요. "비혼주의는 아닌데 요즘 들어서 '그냥 이렇게 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굳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연애 스킬이 없어요. '주변에서 결혼 안 해?'라고 가볍게 물어봐서 생각해 봤는데 기회가 없지는 않았어요. 근데 주어진 시간 안에서 관심사가 늘 일이었던 것 같아요. 막상 연애한다고 해도 기술이 없고 잘 모르니까 점점 더 퇴화되는 것 같아요."
- 2008년 방송됐던 SBS '골드미스가 간다'에도 출연했잖아요. "그때 방송은 다 불태우고 싶어요.(웃음) 맞선을 본 분과 방송 이후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요. 좋은 사람인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더 이어지지 못했죠. 연애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요."
- 연애를 그럼 못 하고 있겠네요. "언제 연애하나요.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고 막상 누가 '소개팅해 볼래?' 해도 그 과정 자체가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아요. 그런 것이 어색해요. 엄마도 이젠 포기했어요. '네가 마음에 들면 쉰 살에 가도 된다'고 해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비혼이지 않을까 싶어요."
- 공개 코미디가 몰락하고 있어요. "함부로 그런 것에 대해 평가하거나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다만 그 이유는 복합적인 것 같아요. 대중적인 취향이라는 게 점점 없어지고 쪼개지는 느낌이잖아요. 예를 들어 예전엔 술을 좋아하는 그룹이었는데 이젠 맥주, 와인, 소주 등 세부적으로 좋아하는 후보군이 명확해졌어요. 그 경계가 무너지고, 그 영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게 코미디 쪽인 것 같아요. 지상파에서 하는 코미디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좀 더 대중적인 소재로 하잖아요. 하지만 대중은 꼼꼼하고 소소한 걸 원하죠. 그것에서 오는 차이인 것 같아요. 개그맨의 웃음에 대한 자기 검열도 심해지고 있고요. 그러니까 아이디어를 짜기가 좀 더 어렵죠. 우리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야 하고 뉴미디어에 대한 웃음이 오래갈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죠."
- 20년 넘게 활동할 수 있었던 '롱런'의 비결은요. "데뷔 때는 진짜 열심히 하면 1등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때는 잡지사에서 '이 주의 개그맨' 순위를 정했을 때였거든요. 그런 것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10위 안에 들겠지?' 이런 꿈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이 좋아졌어요. 진짜로 좋아지니 오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게 되더라고요. 오래하려면 힘을 빼야 한다는데 어떻게 힘을 빼야 하는지 고민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나는 판을 들여다보고 토스하는 역할을 잘하더라고요. 내가 잘할 수 있는 역할만 해 왔던 것 같아요. 진짜 복이 많아서 보고만 있어도 배꼽 빠지는 사람들과 함께 일해 왔어요. 그런 것도 오래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니지 않나 싶어요."
- 앞으로 방송가 판도가 어떻게 달라질까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 인생의 한 치 앞도 모르겠는데요.(웃음) 옛날처럼 독보적인 채널, 이런 건 더 없어질 것 같아요. 독보적인 콘텐트도 없을 것 같고요. 결국 진정성 있는 콘텐트가 살아남지 않을까 싶어요. '후루룩' 소비되는 콘텐트가 아닌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콘텐트도 언젠가 노래처럼 역주행되거나 회자되지 않을까요. 예능도 역주행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 앞으로 목표는요. "플레이어로서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열심히 할게요. 그런데 확실히 기획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기획 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해요. 결혼은 안 될 것 같고.(웃음) 하루하루 잘 지나가는 게 변함없는 목표예요. 숙이가 나에게 '재미없는 예수쟁이'라고 하는데 매일 기도 제목이 '오늘 하루를 잘 넘기자'라는 거예요. 크게 계획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름의 촘촘한 계획은 있어야겠지만 그것의 성공 여부는 내 손에서 떠난 것 같아요. 하루하루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