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중계권 대행사 에이클라가 방송 매체의 후발 주자 스카이스포츠(skySports)에 필요 비용 이상 조건과 옵션을 강요했던 것으로 확인돼 문제가 되고 있다. 향후 중계권 계약에 있어 스카이스포츠는 이런 부당 계약을 이유로 들어 포기할 가능성이 있어 초미의 관심사다. 대행사 에이클라는 2015년 이후 IPTV, 케이블 스포츠 계약에 있어 중계권료 100억원에 반드시 '에이클라 제작 대행을 필수 옵션으로 선택'하길 스카이스포츠에 강요했던 것으로 확인됐고, 스카이스포츠는 이를 받아들였다. 기존 스포츠 케이블 방송 3개 사 관계자들은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말하자면 바가지를 씌운 거다."
2015년 이후의 중계권 계약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에이클라의 인건비를 스카이스포츠가 대납해 준 격"라고 정의했다.
방송 중계에 대한 권리를 가져갈 때 케이블 매체의 선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제작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기존 스포츠 케이블 회사는 에이클라의 여러 주문에 대해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스카이스포츠는 다르다. 2015년 당시 제작 기능이 없었던 상황이다. 에이클라는 이 점을 십분 활용했다.
타 스포츠 케이블보다 1.5배에 가까운 액수인 100억원 이상에 스카이스포츠가 가져가길 요청했다. 여기에 필수 옵션으로 '인건비 포함, 방송 중계 제작 대행을 반드시 에이클라가 해야 한다는 점'을 강요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또 다른 방송계 관계자는 "프로야구 중계의 제작 대행 옵션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중계권을 가져가면서 반드시 스카이스포츠가 에이클라의 제작 대행 요청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중계권을 넘겨주는 게 첫 번째 조건이었으니, 두 번째로 제시한 '에이클라=필수 제작 대행' 조건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았나"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건 뭘까. 또 다른 관계자가 자세히 설명했다. "모든 제작 전반의 감가상각비 포함, 인건비 전반에 대해 스카이스포츠가 대신 값을 물어 줬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2015년 이후 프로야구 인기와 열망에 대한 값어치가 한 케이블 스포츠 매체의 '덤터기' 쓰기로 진행된 것이다. 후발 주자 스카이스포츠는 매우 당연하게도 기존 스포츠 케이블 3개 사와 비교해 시청률, 광고 매출 등에 있어 '독보적인' 최하위를 기록했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스카이스포츠는 지난해 가을 이후 그룹 전체 감사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말 이남기 스카이라이프 사장은 임기를 남겨 두고 사임했다. 중계권료는 두 배 이상 지불했다. 여러 매출 범주에 있어 부진한 성적을 거뒀고, 매체의 수장이 '아웃'됐다. 이런 게 과연 프로야구 동반 성장일까.
모 방송 관계자는 "스포츠 채널 3개 사에 받지 못한 돈을 스카이스포츠로부터 받아 냈다. 게다가 이제 스포츠 다섯 채널의 경기 중계가 모두 진행돼서 광고 파이는 늘어났지만 그걸 나눠 가지게 된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결과적으론 프로야구 광고 가치가 떨어졌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중계권 대행사, 에이전시의 갑질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이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다. 콘텐트 주인과 이를 건네받아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방송사 사이에서 중간도매상의 파워는 이 정도다.
에이전시가 부자! 되는 한국 프로야구
KBO 리그 콘텐트 1차 생산자는 각 구단이다. 중계 방송사는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경기를 최적의 상태로 포장해 소비자인 야구팬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KBO 리그는 생산자와 공급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중개인'에게 너무 많은 소득을 떼어 줬다. 정작 수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는 생산자와 공급자는 노력만큼의 수확을 얻을 수 없다.
적자에 허덕이는 건 구단들만이 아니다. 방송사들의 불만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터무니없이 비싼 중계권료를 내면서 손에 넣는 권리는 너무 적다. 급기야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케이블 방송사 관계자A는 "개인적으로는 에이클라가 처음 야구계에 들어왔을 때 궂은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적폐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공정한 경쟁이 사라지고 '무조건 에이클라가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안일한 부분이 생겼다. 지금은 분명히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케이블 방송사 관계자B도 "당초 대행사는 중계권을 둘러싼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존재였다"며 "처음 에이클라가 들어올 때와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이클라가 KBO와 처음 인연을 맺던 시기엔 야구 인기가 전체적으로 침체된 상태였다. 중계권료가 비싸지 않았다. 하지만 2008 베이징올림픽 전승 금메달 이후 야구의 위상이 급상승했다. 중계권료도 급등했다. 관계자B는 "KBO 입장에서는 타당한 금액을 요구했을 것이고, 방송사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 지불했다"며 "당시엔 광고 매출도 인기만큼 높아지면서 그 중계권료를 지불할 여력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다르다. 광고 시장 규모에 비해 방송사가 부담하는 돈이 너무 많다. 관계자B는 "한 방송사가 100억원이 넘는 돈을 중계권료로 내고 있다. 다섯 개 방송사 중계권료를 다 합치고 여기에 뉴미디어 판권까지 더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라며 "한국 프로야구 중계권 저작권은 엄밀히 따지면 메이저리그 중계권료의 4~5배 정도 금액이 된다. 게다가 메이저리그는 통합 권리를 갖고 있고, 광고 매출도 한국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방송사들의 권리 보호도 철저하게 해 준다"고 한탄했다. 관계자B가 말한 한 방송사는 스카이스포츠다. 찢어진 권리, 통합의 명분
방송사들이 가장 문제로 삼는 부분은 뭘까. 중계권이 플랫폼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관계자A는 "IPTV 중계권, 케이블·위성 TV 중계권, 모바일 중계권을 모두 따로 계약한다"며 "메이저리그처럼 통합돼야 장기적으로 큰 비전을 그리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데, 여건이 전혀 안 된다"고 했다.
특히 케이블 TV와 IPTV 중계권을 따로 계약하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관계자A는 "요즘 미디어 환경을 보면 이 중계권을 나눠서 파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 중계권 항목을 나눠서 돈을 더 벌려고 하는 것 아닌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관계자B도 "방송사들 입장에선 케이블 TV와 IPTV는 전송하는 형태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시장이다. 광고주들도 이 둘을 합친 가구 수를 보고 시장에 들어온다"며 "그런데도 두 플랫폼을 갈라놓고 중계권을 따로 받는다"고 증언했다.
계약이 만료되는 기간도 1년씩 걸쳐져 있다. 2018년 말 뉴미디어 계약- 2019년 말 케이블 TV 중계권 계약- 2020년 말 IPTV 계약이 차례로 각각 만료되는 식이다. 관계자B는 "케이블과 위성중계를 5년간 계약해 놨으니 IPTV 계약은 반드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둘 중 하나만 계약하면 이중 송출을 해야 해 인력이 두 배로 들기 때문"이라며 "케이블 계약이 끝나고 IPTV 계약을 할 때 금액을 크게 부른다. 부당하다고 느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사인해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야구 경기를 중계하는 데는 적지 않은 돈이 든다. 경기 후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제작비까지 모두 합해 1년 30억 원 가량 예산이 필요하다. 144경기를 모두 중계한다면 1경기 당 2000만원 꼴이다. 제작비는 매년 조금씩 늘어난다. 반면 TV 중계로 얻는 광고 수입은 점점 줄어든다. A 관계자는 "중계권료는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현재 최대치에 올라 있다"고 했다. B 관계자도 "케이블 방송사들이 KBO 리그 중계로 2~3년째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2~3년은 더 중계 계약이 돼 있는데, 이런 식으로 적자가 쌓이면 중계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스포츠 케이블 3개 사 공히 1년 인건비는 대략 30억원으로 이야기 한다. 대행사 에이클라는 스카이스포츠에 제작 대행을 외주를 강하면서 인건비를 10억원 이상 올린 40억원으로 책정 했다. 방송 관계자 D씨는 "비용을 책정할때 가장 유동적인 부분이 인건비 항목이다. 결국 에이클라는 자 회사의 장비 인건 비등 여러 감가상각비를 스카이스포츠에 물게 한 셈"이라고 설명 했다.
어찌하나, 뉴미디어
광고 시장 규모는 정해져 있는데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은 계속 나타난다. TV 광고와 온라인 광고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방송사 광고에 할당되는 파이는 점점 작아진다. 관계자A는 "중계권료를 줄이려는 노력이 이제 끝까지 간 것 같다.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중계를 할 수는 없다"며 "방송사들은 뉴미디어 권리까지 중계권에 포함되길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대의 흐름이 뉴미디어와 모바일로 흐르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도 인터넷과 모바일로 야구를 보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TV 중계 광고 시장이 위축됐다. "천하의 ESPN도 재정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들은 중계권료를 매년 '개별 구매'하느라 끊임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KBO 리그 야구 중계 시장은 확대되고 다양해졌지만, 그 덕을 보는 건 방송사가 아니라 에이클라다.
현재 방송사들이 제작하는 클린 피드(1차 중계 화면) 저작권은 모두 KBO에 있다. 클린 피드를 KBO가 포털 사이트, 에이클라가 뉴미디어에 각각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방송사들은 더티 피드(방송사가 자막이나 코멘트 등을 붙여 따로 제작하는 영상)를 제공하는 비용으로 3억~4억원을 받는다. 터무니없이 적다. "안 받고 안 주는 게 낫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관계자A는 "방송사와 뉴미디어 시장 상황은 50 대 50인데, 비용은 우리가 80%를 내고 있다. 너무 과한 느낌"이라며 "앞으로는 우리가 직접 제작한 영상물 콘텐트를 뉴미디어에 직접 판매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남은 20%까지 더 지불해 뉴미디어 관련 사업을 직접 추진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B도 "지난 10년간 중계 수익이 오른 만큼 제작비에 투자해 질을 높였다. 그런 화면을 뉴미디어에 그냥 주는 건 방송사도 답답할 노릇"이라며 "뉴미디어 권리까지 함께 포함해 더티 피드를 제값에 팔고 싶다"고 했다.
스포츠 전문 채널이 무너지거나 야구 중계를 포기하면 KBO 리그 인기에도 큰 타격이 온다. 그동안 적잖은 노하우를 쌓아 온 방송사들이 KBO 리그에서 손을 떼면 중계가 질적으로 저하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함께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에이클라가 중계방송사까지 소유하고 있어서다. 관계자B는 "아무래도 대행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회사라서 다른 방송사들이 요구하고 싶은 사항이 있어도 항상 비협조적인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제는 중계사의 권리를 보호받는 쪽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야구계는 에이클라가 2019년부터 중계권 대행사 역할을 포기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관계자A는 "정권도 바뀌었고, KBO 총재도 바뀌었다. 아무래도 부담스럽기도 할 것이고, 서서히 욕심을 덜 부려도 될 상황"이라며 "공정한 경쟁과 뛰어난 능력으로 일을 따내 기업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자본주의 논리에 맞는 일이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면 그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뼈 있는 지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