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전범기에 대한 새로운 움직임이 등장했다. '욱일기 금지법' 발의가 그것이다. 제19대 국회 때 일이다.
당시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은 욱일기를 포함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휘장 또는 옷 등을 국내에서 제작하고 유포하거나 공중이 밀집하는 장소에서 사용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을 냈다.
일본 정부가 "욱일기 사용에 문제가 없다"며 욱일기 공식화를 시도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또 국내에서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확산되는 상황이었다.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독일은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를 사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독일은 '반나치 법안'을 통해 하켄크로이츠의 자국 내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독일 형법 제86조에는 나치를 상징하는 깃발·휘장·제복·슬로건 등을 배포하거나 공개적으로 사용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옆 나라 프랑스 역시 금지법을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던 인접국 프랑스는 형법 제645-1조에 '나치 등 반인류행위범죄를 범한 집단을 연상케 하는 장식 또는 전시를 금하고 이를 어길 경우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을 두며 하켄크로이츠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처럼 일본에 피해를 입은 옆 나라 한국에서도 전범기 금지법 도입이 시도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법안은 제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왜 전범기 금지법은 폐기될 수밖에 없었을까.
일간스포츠는 2013년 전범기 금지법을 발의한 손인춘 전 의원과 인터뷰했다. 지금 여성행복시대 대표이사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는 8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심어 주고 싶었다. 일본에 사과받은 것도 아니고, 이런 상황 자체를 모르는 청소년들도 있었다. 욱일기를 패션 아이템 중 하나로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있었다"며 "또 그해 8월 일본 정부가 욱일기를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 대표는 "독일은 형법으로 나치 깃발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인식 개선이 필요했다. 한국을 지키려면 역사적 질서가 잡혀야 했다. 그래서 국내법이 필요했다. 국회의원 중 누구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욱일기 금지법을 발의하게 된 이유"라고 덧붙였다.
분명 좋은 취지인 법이다. 하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손 대표는 "당시 일본의 잘못된 역사 인식에 반감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많은 분들이 호응해 줬다"고 말하면서도 "반대하는 분도 많았다. 외교적 문제로 확산될 것을 우려해 반대했다"고 말했다.
자세한 상황 설명을 이어 갔다. 그는 "소관 상임위까지 올라갔다. 심사 과정을 거쳤고 결론은 표현의 자유와 헌법 가치가 충돌된다는 것이었다. 외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제19대 국회가 끝났고 결국 폐기됐다"고 기억했다.
손 대표는 전범기 금지법 폐기에 아쉬움을 드러내면서 "역사적 질서가 지켜지면 좋겠다. 이로 인해 한국과 일본이 좋은 관계로 가기를 바란다. 그래야 두 국가 청소년들에게 미래와 비전이 있다"고 당부했다.
전범기 금지법 도입은 한 번의 실패를 맛봤다. 하지만 멈출 수 없는 일이다. 누구는 다시 추진해야 한다. 일본이 반성하며 스스로 금지법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게 할 의지가 없다. 그렇다면 옆 나라에서 법으로 만들어 일본을 압박하는 방법을 꺼내야 한다.
전범기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전범기 금지 관련 법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법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전범기 사용에 관해서 일본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이다. 한국, 또 한국을 넘어 아시아권에서 금지 법안이 만들어진다면 전범기 사용은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