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 논란이 있을 때마다 최선봉에 나서 목소리를 높인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민간단체'다.
한국 정부가 항의하거나 유감을 표현한 경우를 본 기억이 없다. '침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행태는 국민들이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을 차갑게 만들었다. 자신들이 할 일을 민간단체에 떠넘긴 채 방관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과 민간단체가 이를 지적하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일본의 눈치를 보는 것 외에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외교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일간스포츠가 문체부와 외교부에 전범기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직접 물어봤다.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문체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다른 나라 국기에 대한 입장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정치적인 문제를 체육으로 끌어들이면 체육 쪽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외교적인 문제를 문체부가 나서서 할 수 없는 일이다. 문체부가 공식 입장을 내기도 어렵다. 공식적으로 항의하기도 어렵다. 외교적인 루트가 아니라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전범기 문제는 외교부 소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범기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해도 문체부가 아니라 외교부 쪽에서 해야 할 일이다"며 "평창겨울올림픽 한반도기 독도 관련 입장도 문체부가 아닌 외교부가 조율했다. 일본도 외무성이 하지 체육부가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외교부의 입장은 어떨까.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일본에 식민 지배를 당한 한국 국민의 정서상 욱일기는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어 거부감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한국 국민의 감정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본 입장을 제시한 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어떤 말도 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전범기에 대한 항의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그동안 전범기에 대한 항의가 있었는지는 내부적으로 더 파악해 봐야 한다. 국방부에도 확인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외교적 마찰 때문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그것까지 말해 줄 수는 없다. 외교부에는 여러 가지 사안이 있고 여러 가지 입장이 있다. 전범기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일본 정부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수시로 전범기에 대해 당당한 입장을 표현했다. 일례로 지난해 4월 25일 수원 삼성과 가와사키 프론탈레(일본)의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경우를 보면 한국과 일본 정부의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수원과 가와사키의 AFC 챔피언스리그 G조 5차전이 열린 수원월드컵경기장 관중석에 전범기가 걸렸다. AFC는 가와사키 구단에 1만5000달러(약 1700만원) 벌금과 1년 내 같은 사인이 재발될 경우 AFC 주관 1경기 무관중 징계를 내렸다.
AFC는 "가와사키 서포터즈가 내건 욱일기는 홈팀 서포터즈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국민의 존엄성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러자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 참석해 "욱일기는 일본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자위대기와 자위관기뿐 아니라 대어기, 출산, 명절의 축하 깃발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전범기의 정당성을 공식적으로 주장한 바 있다.
전범기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전범기 근절 관련 활동은 민간이 앞장서고 있다. 나 역시 전범기 근절 활동을 하면서 정부의 대처가 소극적이라고 느꼈다"며 "분명히 소극적인 부분이 있다. 이제는 정부가 조금 더 강력하게 대처하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