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운제이하면 가상결혼이 따라온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로 서인영과 개미커플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던 그. 당시를 회상한 크라운제이는 "남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고 생각해요. 어린 꼬마부터 연로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저를 알아보셨으니까, 지금도 그렇게 기억되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인기는 벌써 9년 전이다. JTBC '님과 함께'로 재혼했지만 서인영의 태도 논란 속 하차로 포털사이트를 핫하게 달구기도 했다. 옆에서 서인영의 논란을 지켜보며 안타까웠던 건 사실이었지만 "이젠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크라운제이는 올해 세 번째 싱글을 냈다. 지난 10일 발표한 '트러스트 노바디'는 재즈 아티스트 로니 리스톤 스미스(Lonnie Liston Smith)의 노래를 샘플링한 정통 뉴욕 스타일의 힙합 트랙이다. 2009년 큰 전성기를 누렸던 크라운제이가 미국으로 떠난 이유부터, 6~7년전 그가 형제처럼 믿었었던 매니저에게 뒤통수를 맞은 사건들에 대한 심경이 담겼다. 크라운제이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생각들을 힙합으로 전달하겠다"며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일종의 디스곡인가. "솔직히 말하면 전 매니저의 이야기가 구성 안에 들어간 노래다. 이 스토리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주제는 따로 있다. 욕하자고 낸 디스곡은 아니다. 사람들을 쉽게 믿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가사는 센데 샘플링은 부드러운 재즈로 했다. "힙합하면 트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이미 지나갔다. 애틀란타 음악이 트랩인데 내가 7~8년 전 본토에 가서 이미 다 하고 온 장르다. 요즘 최고 유행하는 힙합은 1960~70년대 노래를 샘플링하는 거다. 패션도 돌고 돌아 빈티지가 유행하듯, 힙합도 빈티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또 트랩이랑은 이 가사가 어울리지 않는다. 트랩은 내가 최고라는 자랑이 있어야 한다. 글자수가 비교적 적은 라이프스타일을 말하기 적합한 장르다. 하지만 난 라이프스토리를 말하고 있느니 뉴욕 스타일의 드럼 비트 사운드에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전 매니저가 이 노래 듣고 무슨 생각하길 바라나. "일련의 사건사고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나에게 칼을 꽂았지만 난 남이 망하길 바라는 마음은 없다. 정말 모두가 그냥 잘 됐으면 한다. 내 노래 들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성격이 바뀌었나. "원래는 어울리는 걸 정말 좋아했다. 힙합 크루들과 다니면서 이런 저런 일들을 했는데 사건사고 이후 변했다. 처음엔 대인기피증이 있었다. 뉴스에 내 얼굴이 많이 나올 때였는데, 집 앞에 쓰레기 버리는 것조차 두려웠다. 사람들이 하는 내 이야기가 너무 잘 들리더라. 웅성임이 들리고 하니까 대인기피증이 생겼고 사람들을 살짝 멀리했다. 지금은 대인기피증을 극복했는데 그 생활 습관은 남아있다. 만나는 사람만 만난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모태신앙이라서 종교에 의지했다. 또 어머니와 여자친구, 같이 음악하는 멤버 서너명이 곁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니저의 배신은 운명적 사건인 것 같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나를 누가 제지했을까. 지금 난 완벽한 비호감이었을 거다. 래퍼로, 예능인으로 양쪽의 성공을 거뒀을 때라 굉장히 자만했다. 닥치는 대로 까불고 다녔다."
-그 때 인기는 어느정도 였나. "젊은 친구들은 나를 랩으로 인정해줬고, 대중들은 예능 속 모습을 좋아했다. 그 인기로 미국으로 건너가 회사를 차리고 본토 힙합 크루들과 작업했다. 국내에서 최근까지도 인기 있었던 트랩이라는 장르를 이미 그때 다 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그런 위치까지 올라갔으니, 어떻게 행동할 줄을 몰랐다. 누가 내 사람인지도 모르고 생각도 없었다. 지금은 내 사람을 확실히 알게 됐고 내 스스로도 안정적으로 바뀌어 정말 좋다."
-추락한 인기에 힘들진 않았는지. "주변에서 정말 많이 물어본다. '지금 힘들지 않느냐, 이제 다시 일어설 때도 된 것 같다'는 말을 매일 듣는다. 전날도 듣고 왔다. 그런데 나는 내 첫 번째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는 10명 안 쪽의 사람들,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힘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