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순수문학과 만나 새로운 정체성을 띄고 있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순수문학 작가들의 손을 잡고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펼치고 있는 것. 웹툰·웹소설 작가의 협업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K팝과 순수문학 작가들과의 협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아이브는 지난 8월 세 번째 싱글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 발매 전 선보인 ‘아이브 서머 필름’(I’VE SUMMER FILM)을 정세랑 작가와 협업했다. 정세랑 작가는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지구에서 한아뿐’, ‘덧니가 보고 싶어’ 등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이력이 있다.
정세랑 작가는 노상윤 뮤직비디오 감독의 요청으로 2분 10초 분량의 ‘아이브 서머 필름’ 내레이션을 집필했다. “우리가 변해버릴 거라는 사람들에게 틀렸다고 말해줄 거야. 우리가 그대로인 걸 보여줄 거야. 계속 같이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래. 널 만난 이후로 내 소원은 그거 하나야” 등 정세랑 작가가 쓰고, 아이브가 읽은 내레이션은 청춘의 싱그러움과 아련함을 자아내 몽글몽글한 감정을 자아냈다.
영상을 제작한 노상윤 감독은 “소설을 통해 다정하면서도 용감한 여성 캐릭터를 그려낸 정세랑 작가가 아이브 멤버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잘 표현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룹 르세라핌의 두 번째 미니앨범 ‘안티프래자일’(ANTIFRAGILE)에는 소책자가 첨부돼 있다. 이는 르세라핌을 주인공으로 한 공상과학 판타지 소설 ‘크림슨 하트’(Crimson Heart)의 프롤로그 첫 번째 챕터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등을 쓴 김초엽 작가는 하이브의 네 번째 오리지널 스토리 ‘크림슨 하트’의 프롤로그 작업에 참여했다. 이 스토리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향해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르세라핌의 음악적 메시지와 연결된 오리지널 소설이다. 정해진 길이 아닌 스스로 찾아낸 목표와 길을 따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소녀들의 성장 서사를 담은 판타지 모험담을 표방한다.
안인용 하이브 스토리사업본부 스토리텔링실 실장은 “한계에 도전하며 나아가는 입체적인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는 김초엽 작가의 기존 작품 세계가 ‘크림슨 하트’의 중심 메시지와 부합하기 때문에 좋은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협업했다”고 말했다.
이어 “‘크림슨 하트’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입체감을 더하고 본작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 김초엽 작가와 협업한 프롤로그를 먼저 선보였다”고 덧붙였다. ‘크림슨 하트’의 본 이야기는 프롤로그와 별개로 웹툰과 웹소설 형태로 이달 말 공개된다. 순수문학이 아니더라도 웹툰·웹소설 작가와 아이돌 그룹의 협업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SM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020년부터 소속 아티스트들의 세계관을 ‘SMCU’(SM Cultural Universe)로 통칭하고 가사, 뮤직비디오, 세계관 영상 등을 이 같은 거대한 세계로 치밀하게 펼쳐내는 데 성공했다. SMCU 제작을 총괄 중인 모나리 SM 책임은 한 인터뷰에서 “웹툰·웹소설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전문가, 특히 함축적인 표현을 쓰는 시인과의 세계관 협업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순수문학과의 협업으로 K팝의 더욱 다채로운 고퀄리티 콘텐츠가 대중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순수문학과 만난 K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