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골프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골프웨어 인기도 치솟고 있다. 그러나 골프웨어 시장이 커질수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일부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명품 골프웨어의 가품 유통도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한 벌당 30만~100만원에 달하는 고가 의류를 10만원 미만에 판매하면서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멋은 내고 싶고, 돈 쓰기는 싫고
40대 회사원 A 씨는 '골린이'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비지니스 차원에서 골프장에 나갈 기회가 생긴 A 씨는 겨울용 골프웨어를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유명한 브랜드인 'PXG' '마크앤로나' '타이틀리스트'의 상의 가격이 대부분 30만~40만원 이상이고, 따뜻하다 싶은 재킷은 60만~80만원 대에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A 씨는 "결국 아내와 아웃렛에 가서 중저가 골프웨어 브랜드 점퍼를 하나 샀다. 연말이라 나에게 선물하는 기분으로 쇼핑 갔다가 솔직히 기분만 상했다"고 털어놨다.
골프웨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자 가품에 관심을 돌리는 이들도 늘었다. B 씨는 최근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타이틀리스트 점퍼와 마크앤로나의 밍크 니트를 10만원 대에 판다는 글을 보고 해당 사이트에 들어갔다. B 씨는 "까다로운 가입 절차를 밟고 들어가 보니 골프웨어가 모두 가품만 있었다. 그동안은 에르메스나 루이비통 같은 브랜드나 가품이 있는 줄 알았는데, 골프웨어까지 짝퉁이 있어 놀랐다"고 했다. 그는 아직 9만5000원짜리 PXG 바지를 살지 말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짝퉁' 골프웨어가 기승이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지난 8일 올해 초부터 지난달까지 상표권 침해행위 집중단속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일명 짝퉁 위조상품을 불법으로 판매하고 제조한 업자 110명은 정품 가격 약 39억원에 달하는 위조상품 5006점을 취급했다. 특히 서울 은평구의 한 의류 제조 공장을 운영하던 피의자는 8300만원 상당의 골프의류 위조상품 280여 점을 직접 제조해 판매하다 적발됐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정품보다 훨씬 저렴한 5만원대에 판매되던 유명 골프의류를 수사관이 직접 구매해 진품 여부를 확인했는데, 정품 추정가 30만원 상당의 위조상품으로 판명됐다.
가품 골프웨어 제작과 유통은 엄연히 불법이다. 상표법 제230조에 따르면, 상표권 또는 전용사용권의 침해행위를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구매자는 별도 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골프웨어도 결국 운동복
한국은 '골린이'들이 짧은 기간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나라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골프 인구는 515만명으로 2017년 386만명에 비해 33% 증가했다. 이 중 2030대는 전년 대비 35% 늘어난 115만명으로 전체 국내 골프 인구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골프인구가 늘어난 만큼 골프웨어 시장도 급격히 성장 중이다. CJ ENM에 따르면 국내 골프웨어 시장 규모는 6조3000억원 수준으로 전년(5조7000억원) 대비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일본(9400억원)과 미국(1조3000억원)과 비교해도 월등하게 크다. 골프장 보유 비중을 생각해도 지나치다. 한국은 골프장 보유 비중이 2%로 미국의 42%와 큰 차이가 있다. 골프웨어업계가 한국이 단일 국가 기준 최대 골프웨어 격전지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업계는 이런 골프웨어 붐을 한국만의 독특한 골프문화에서 찾는다. 한국에서 골프는 일부 계층이 향유하던 고급 스포츠이자 비지니스를 위한 접대 서비스로 자리 잡아 왔다. 당연히 골프장 시설도 화려하고, 홀당 필요한 직원도 많다. 캐디피나 카트 사용료, 그린피가 다소 비싸게 책정되는 데 이어, 착장 문화도 '있어 보이는 명품'을 지향하게 된 배경이다.
CJ ENM 오쇼핑부문의 홍승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별도의 골프 복장이 없는 미국, 유럽과 달리 한국은 골프웨어 카테고리가 유난히 발달한 특성을 보인다"며 "이는 골프를 스포츠 그 자체로 여기는 미국, 유럽과는 달리 한국은 골프가 비즈니스와 연결된 문화로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스포츠 패션 브랜드 관계자는 "글로벌을 통틀어 골프웨어에 많은 돈을 쓰는 나라는 한국"이라며 "미국만 해도 골프를 나갈 때 가장 편한 운동복을 입는다. 본질은 골프가 스포츠고, 골프웨어도 결국 운동복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은 옷 브랜드에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