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긴급 제언] "여자배구 VNL 12전 전패…리더도, 준비도 없었다"
많은 배구인은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여자 배구대표팀이 거둔 성적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은 VNL에서 12전 전패로 최하위(16위)를 기록했다. 총 36세트를 내주는 동안 고작 3세트를 따냈다. 2018년 대회 출범 후 지금까지 전패를 당하거나, 승점 1점도 얻지 못한 팀은 한국이 유일하다. 김연경(흥국생명) 양효진(현대건설) 김수지(IBK기업은행)이 대표팀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고전이 예상되긴 했다. 그래도 결과가 너무 안 좋았다. 새 리더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김연경의 빈자리만 더욱 커 보였다. 리더가 되려면 전술을 이해해야 하고, 공수 모두 기량을 갖춰야 한다. 김연경은 공격은 기본이고, 서브·리시브·이단 연결까지 모두 잘한다. 세계적으로 그런 선수가 없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팀이 세대교체를 진행한다. 일본(8승 4패·5위)은 세대교체가 잘 진행됐다. 조직력도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갔다. 태국(5승 7패·8위)의 짜임새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우리가 일본과 태국을 만나면 상대적 우위에 있는 높이를 활용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반대로 유럽 팀을 상대하면 일본과 태국처럼 스피드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우리 젊은 선수들의 신장이 아무리 좋아도 외국 선수들의 파워와 체격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일본이나 태국처럼 반 박자 빨리 움직이고, 볼을 다루는 기술이 좋아야 한다. 이런 점이 턱없이 부족했다. 배구 선수들은 공을 잡거나 드리블할 수 없다. 한 번에 터치로 끝난다. 그래서 더 세밀해야 하는데 리시브하고 토스하고 공격하는 과정까지 안정감이 크게 떨어졌다. 경험 부족도 엿보였다. 토스한 공이 네트에서 떨어졌는지, 붙었는지를 봐야 한다. 또한 우리 블로커의 위치와 움직임 등을 통해 상대가 때린 공이 향하는 방향과 위치를 예측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공을 살려서 공격으로 연결할 기회를 우리는 너무 못 살렸다. 반면 상대에게는 공을 쉽게 내줬다. 강한 서브가 중요하다고는 하나, 범실이 너무 많더라. 조직력을 가다듬을 시간도 부족했다.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 신임 감독이 대표팀 훈련을 현장에서 지휘한 건 이틀 정도밖에 안 된다. 세대교체 중이어서 손발을 맞추는 과정이 더 중요한데 다소 안일했다. 이 대회처럼 부상 선수가 많은 적도 없었다. 컨디션 관리도 중요한 숙제다. 대회 직전 14위였던 우리 랭킹은 19위까지 떨어졌다. FIVB는 올림픽 예선 후 탈락팀 간 대륙별 예선을 통해 1위 팀에 출전권을 주던 기존 방식을 바꿨다. 이제 세계 예선이 끝나면 별도의 대회를 치르지 않고 세계랭킹(2024년 6월 25일 기준)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차등 배분한다. 우리가 다른 팀보다 변화가 많아 리스크가 컸는데, 준비 시간은 오히려 더 적었다. 이번에 곤욕을 치렀으니 협회와 스태프, 선수, 모든 배구인이 단합해서 한마음으로 해결해야 한다. 구단의 선수 차출 협조도 수반돼야 한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를 하루 이틀 만에 해결할 수 없다. 필자는 1996년부터 성인 대표팀에 몸담았다. 당시 태국 대표팀은 우리에게 손가락 5개를 펼치면서 부탁하듯이 "5점만 달라(당시 15점 사이드 아웃제)"고 했을 만큼 실력이 뒤처졌다. 하지만 이제는 엇비슷하다. 태국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고교 여자팀이 150개까지 늘었다고 하더라. 우리는 고작 20개다. 태국 주전 세터 눗사라, 센터 플럼짓 등 몇몇 선수들은 해외 리그에서 뛰며 경험을 쌓았다. 투자도 많이 했다. 미리 준비해도 시간이 꽤 지나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귀국한 선수들에게서 반성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소속팀으로 돌아갔다가 몇 달 뒤 다시 소집하면 독한 마음가짐이 이전 같지 않을 것이다. 예전과 달리 팬들은 꼭 좋은 성적이 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준다. 그래도 선수들은 더 좋은 성적을 내야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해답은 훈련과 정신력에 달려 있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제다. 반복 훈련을 통해 발전하고 정신 자세를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이정철 전 IBK기업은행 감독(여자 대표팀 감독 및 코치 역임) 정리=이형석 기자
2022.07.08 0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