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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축구 유니폼

1998 월드컵이 프랑스에서 열리자, 영국에 있는 한국 축구팬들은 환호했다. 필자도 그 중 하나였다. 필자는 대사관을 통해 대한민국의 첫 경기인 멕시코 전의 티켓을 구했고, 직관 준비에 들어갔다. 가정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대표팀 셔츠였다. 2000년대 들어 한국축구의 성장과 한류의 등장으로 인해 지금은 런던에서 한국대표팀 셔츠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나이키 매장에 가면 자사가 후원하는 잉글랜드, 브라질, 네덜란드 등의 인기 팀과 함께 한국팀의 셔츠도 걸려있다. 심지어 축구전문매장에 가면 태극기도 살 수 있다. 1998 월드컵 한국대표팀의 킷(kit, 스포츠팀의 유니폼) 스폰서도 나이키였다. 하지만 당시 런던에는 한국팀 셔츠를 파는 매장이 없었다. 대표팀의 붉은 셔츠를 구할 수 없어서 발만 동동 굴리던 필자는 결국 대안으로 빨간색이 상징인 리버풀 셔츠를 입었다. 당시 리버풀의 셔츠 스폰서는 덴마크의 맥주회사 칼스버그였다. 고속열차 테제베(TGV)를 타고 도버와 칼레를 연결한 채널 터널을 지나 결전 장소인 리옹에 도착했다. 경기가 열리는 프랑스의 명문 클럽 올림피크 리옹의 홈구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한국인이 모여 응원전을 벌이고 있었다. 다음 월드컵인 2002 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는 관계로 국내의 여러 지자체 인사들도 이날 경기장을 찾았다. 수원시 관계자가 당시 필자에게 한마디 한 게 지금도 기억난다. “왜 칼스버그 옷을 입었나요?” 훗날 필자가 국내에서 이 셔츠를 입으면 칼스버그 맥주 판촉 사원으로 오인하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졌다. 축구가 하나의 패션이 되어 응원하는 클럽 셔츠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는 현재의 국내 상황과는 너무 다른 환경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축구 셔츠를 사랑하게 된 계기는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여름 필자는 서유럽을 한 달 동안 여행했다. 마침 이탈리아에서는 1990 월드컵이 열리고 있었고, 아시아예선을 수월하게 통과했던 당시 한국대표팀에 대한 기대도 컸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3패(득점 1, 실점 6)를 기록한 것이다. 한국전쟁 후 열악한 상황에서 출전한 1954 스위스 월드컵을 제외하면, 한국 축구가 유일하게 승점 1도 획득하지 못한 대회였다. 1990 월드컵은 극단적인 수비축구로 진행됐기에 심각한 골 가뭄에 시달렸다. 그러나 흥미로운 스토리로 가득 채워진 대회이기도 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돌풍을 처음으로 일으킨 카메룬. 4강에서 만난 서독과 잉글랜드전에서 나온 폴 게시코인의 감동적인 눈물. 잉글랜드의 유명한 PK 실축 징크스가 시작된 대회. 나폴리에서 열린 4강전에서 '나폴리의 신'이었던 마라도나가 시민들에게 그들의 조국인 이탈리아가 아니라 아르헨티나를 응원해달라고 한 전설적인 얘기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1990 월드컵은 필자가 축구 셔츠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 대회이기도 했다. 당시 서독팀의 셔츠를 처음 본 순간 “축구 셔츠가 저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일 수 있구나”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화려하고 다양한 디자인을 가져 패션 아이템으로도 주목받는 현재의 축구 셔츠는 1990년대를 지나면서 본격화되었다. 그전까지의 셔츠는 주로 단조로운 디자인에 단색 위주여서 세련미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 시대에 서독팀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환상적인 디자인의 셔츠를 들고나온 것이다. 서독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칼라인 흰색에 검정, 빨강, 금색으로 이루어진 국기 색을 창의적으로 조화시켜, 세계인의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당시 필자는 서독대표팀의 셔츠를 사기 위해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일정이 빡빡한 패키지 투어여서 개별적인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첫 해외여행이라 어리바리했던 점도 많았다. 일정이 파리를 마지막으로 끝났을 때 필자는 크게 실망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서독팀 셔츠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적으로 일정이 바뀌어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귀국 비행기를 타게 됐다. 독일 땅에서는 셔츠를 꼭 살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프랑크프루트 공항에서 6시간 대기한다는 말을 듣고, 필자는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로 나갔다. 시간이 빠듯해 불안했지만, 마지막 기회였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시내 상점 몇 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결국 눈에 아른거리던 유니폼을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셔츠는 끝내 못 샀다. 대신 서독팀의 트레이닝복을 샀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뻤다. 독일축구는 그 후에도 준수한 디자인의 셔츠를 계속 출시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1990년 셔츠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셔츠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셔츠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이기 때문에 순위를 객관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럽의 다양한 언론이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한 ‘역사상 가장 멋진 축구 셔츠 리스트’에 서독의 1990 월드컵 셔츠는 언제나 최상위권 혹은 1등을 차지한다. "축구는 22명의 남자들이 90분 동안 공을 쫓고, 마지막에는 독일이 이긴다”라는 명언이 있다. 이렇듯 꾸준함과 강함의 상징이 독일축구였다. 그러한 독일이 2018, 2022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연달아 탈락하며 체면을 구겼다. 그들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올드팬들은 다시 한번 멋진 셔츠를 입고 부활하는 독일축구를 기대하고 있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3.07.08 09:00
국가대표

'클린스만의 한마디가 현실로'…나폴리 우승 그 후, KFA와 김민재가 만났다

SSC 나폴리의 33년 만에 우승, 그 주역을 맡은 김민재를 대한축구협회(KFA)가 찾아갔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의 입김이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지난 5일 KFA 공식 소셜미디어(SNS)에선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어로 “인사이드 캠, 민재, 나폴리, 다뇨 와”라고 말하는 짧은 영상이 나왔다. 당시 스태프는 해당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후속편이 11일 공개됐다. KFA는 11일 나폴리 김민재와 만나 우승 소감을 묻는 영상을 게시했다. 촬영 시기는 우승 직후 인 것으로 보인다. 영상에서 김민재는 "진짜로 오실줄 몰랐다"며 “쉬는날 오셔서 귀찮다”라며 농담하기도 했다. 먼저 김민재는 “국내 팬들에게 어떻게 감사를 전할지 고민했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어 우승 소감에 대해 묻자 “정말 고생해서 얻어낸 성과인데, 어떻게 좋아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살면서 그런 장면을 볼 수 있을까. 힘들었는데 소리지르면서 춤추다보니 실감이 났다”고 설명했다. 나폴리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영상에 나온 시민들은 ‘Kim Kim Kim’을 외쳤고, 세계 최고의 선수라 치켜세웠다. 선수를 향한 ‘서비스’도 있었다. 김민재에 따르면 “가게를 가면 서비스가 많이 나온다”며 “메뉴판이 있으면 가격이 X가 쳐지고 다른 가격을 적어주더라”고 설명했다. 나폴리 시민들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끝으로 김민재는 “새벽 시간 경기가 많아 시청하기 어려운 환경인데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감사하다”며 “직접 오셔서 응원해주신 분들도 많았다. 팬들의 응원 덕분에 우승했다”고 전했다.해당 영상은 KFA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우중 기자 2023.05.11 09:55
해외축구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나폴리는 이탈리아가 아니다”

1990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은 이탈리아에서 열렸다.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가 준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개최국 이탈리아였고, 장소는 남부의 항구도시 나폴리였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주장이었던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나폴리는 익숙한 곳이었다. 6년 전 SSC 나폴리로 이적한 마라도나는 이곳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탈리아를 상대하기에 앞서 나폴리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폴리는 이탈리아가 아니다.” 따라서 시민들은 이탈리아가 아닌 자신이 소속된 아르헨티나를 응원해달라는 말이었다. 마라도나는 무슨 이유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이탈리아는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지역 차별로도 유명한 나라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자. 로마제국은 이탈리아반도를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으나 395년 동서로 갈라진다.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 후 이탈리아 반도는 분열된다.18세기 말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을 통해 유럽에 근대 민족주의가 싹트며 통일 이탈리아를 꿈꾸는 시도가 처음 나타났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반도에 위성 국가를 여러 개 만들며 이탈리아를 더욱 쪼개 놓았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유럽 열강들은 전후의 질서를 논의한 끝에 ‘빈 체제’를 만든다. 이 결과 남부에는 스페인이 장악한 두 개의 시칠리아 왕국, 북부에는 오스트리아 지배하의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이 세워진다. 또한 중부 로마에는 교황령, 북서부에는 사르데냐 왕국이 있었다. 1840년대 유럽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강하게 일며 통일 이탈리아를 향한 열망도 커진다. 마침내 사르데냐 왕국이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이며 북부를 해방시켰다. ‘이탈리아 통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주세페 가리발디 장군은 남쪽의 양시칠리아 왕국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게 했다. 이후 가리발디는 조건 없이 남부 지역을 사르데냐 왕국과 합치며 1861년 통일 이탈리아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갈라져 있었던 이탈리아는 하나의 국가라는 공동체 인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북부와 남부는 여러 면에서 너무 달랐다. 두 지역은 인종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북부는 게르만계 혈통의 영향을 받아 큰 키에 금발 머리와 푸른 눈동자를 가진 데 반해, 아랍계 혈통의 영향을 받은 남부는 작은 키에, 짙은 머리색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북부와 남부의 갈등은 특히 경제력 차이에서 나온다. 북부는 밀라노, 토리노와 항구도시 제노바를 연결한 삼각지대를 중심으로 일찍이 산업화가 이루어져 경제적으로 부유했다. 그에 반해 농업 중심의 남부는 가난했다. 이러한 경제적 격차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7년 기준 이탈리아의 경제수도 밀라노가 위치한 롬바르디아주의 1인당 소득은 3만 8500유로였고, 북부 주요 도시들은 3만 유로를 훌쩍 넘겼다. 하지만 남부의 대표도시 나폴리는 1만 8700유로에 불과했다. 북부인들은 오랫동안 “우리의 세금으로 남부를 먹여 살린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유럽이 유럽연합(EU)으로 통합되면서 유럽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열리자, 북부에 소비시장과 인력 공급처 역할을 했던 남부의 필요성은 더욱 떨어졌다. 이에 북부를 파다니아(Padania)라는 이름으로 독립시키려는 목표로 극우정당 북부연맹이 출범했다. 이들은 현재도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력의 차이는 축구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리그인 세리에 A 클럽의 절대다수는 북부에 위치해 있다. 물론 우승도 북부 팀이 휩쓸어 갔다. 토리노에 위치한 유벤투스(36회)가 압도적으로 많은 우승을 기록한 가운데, 인터 밀란과 AC 밀란이 각각 19번 우승했다. 124년의 역사를 가진 세리에 A에서 북부지역 외의 클럽이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단 8차례에 불과하다. 로마제국 이후 이탈리아는 약 1400년 동안 분열되어 있었다. 따라서 각자 다른 문화와 풍습으로 오랫동안 살았던 반도 사람들은 타 지역에 대한 거부감 역시 높다. 밀라노 같은 북부도시는 중부 로마에 위치한 클럽에도 공공연한 반감을 드러낸다. 일례로 2002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가 대한민국과 경기 중 대표팀의 에이스이자 AS 로마의 상징과 같은 프란체스코 토티가 퇴장 당했을 때 북부인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이렇게 중부 팀에도 반감을 보이는 북부에서 남부팀은 야만인, 하수구의 쥐 같은 취급을 받는다. 1926년 창단되어 남부를 대표하는 클럽이 된 나폴리는 한동안 세리에A와 B를 오가는 그저 그런 팀이었다. 그러한 나폴리가 1960~1970년대에 코파 이탈리아에서 2번 우승하고, 세리에 A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이 여러 시즌 있었다. 하지만 이 클럽은 1984년 승점 1점 차이로 겨우 강등을 면하는 위기에 직면한다. 1984년 6월 나폴리는 바르셀로나로부터 마라도나를 영입하는 도박 같은 결정을 내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남부의 가난한 클럽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선수를 품은 것이다. 바르셀로나 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행복을 찾았다. 아울러 부유한 북부 클럽들로부터 갖은 멸시와 천대를 받던 나폴리에 마라도나는 동질감마저 느낀다. 자신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빈민가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라도나와 나폴리의 특별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마라도나는 나폴리의 잠재력을 믿었고, 클럽은 그와 함께 발전해 나갔다. 나폴리는 결국 1987년 팀 창단 61년만에 세리에 A에서 첫 우승을 달성한다. 이후 나폴리는 1989~90시즌 리그 우승을 한 번 더 차지했고, 유럽축구연맹(UEFA) 컵마저도 석권하는 기염을 토한다. 차별과 조롱의 대상이었던 나폴리를 세리에 A와 유럽 정상에 올려놓은 마라도나에 시민들은 열광했고, 그는 나폴리의 신 같은 존재로 등극한다. 한편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뛴 관계로 이미 북부지역에서는 공공의 적이었다. 그런 그가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준결승전을 앞두고 아르헨티나를 응원해달라고 말하자 여론은 들끓었다.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지역감정을 이용한 마라도나에 분노했다. 나폴리 시민들은 고민 끝에 경기장에 걸린 커다란 배너에 이렇게 답했다. “마라도나, 나폴리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이탈리아는 우리의 조국입니다.” 후에 마라도나는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국가가 연주될 때 야유를 보내지 않은 경기장은 나폴리가 유일했다며 감사의 말을 전한다. 준결승전에서 두 나라는 1-1을 기록한 후 승부차기에 들어간다. 4번째 키커로 나온 마라도나의 득점에 힘입어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를 4-3으로 누르고 결승에 진출한다. 이후 이탈리아는 그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눈감아주던 마라도나와 연관된 마약, 매춘 등도 수면위로 떠오른다. 도핑검사 결과 15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그는 나폴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마라도나가 1984년 나폴리에 입단할 당시 그를 환영하려고 경기장에 모인 관중은 7만5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떠날 때 그는 혼자였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8.24 07:01
연예

훌랄라, 본격적인 중국시장 공략 나서

국내 외식프랜차이즈 업계의 선두주자인 ㈜훌랄라가 본격적인 중국시장 공략에 나섰다. 훌랄라는 7월 12일 오후 중국 베이징 조양구 야인촌에서 김병갑 ㈜훌랄라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50여명과 관련업계 종사자 등 내외빈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탈리안 레스토랑 ‘애플틴’과 케익&와플전문점 ‘라떼떼커피’의 베이징 1호점 개점행사를 열고 중국시장에 첫발을 내딛었다.김병갑 훌라라 회장은 이날 개막식에서 “훌랄라는 그동안 진정한 글로벌 그룹으로 거듭나기 위해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노력해 왔다”며 “애플틴과 라떼떼커피의 중국진출은 글로벌화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문을 연 애플틴과 라떼떼커피 베이징 1호점은 베이징 중심 번화가인 야인촌에 위치하고 있으며, 연면적 1059㎡의 2층 건물로 애플틴이 1층과 지하1층에, 라떼떼커피는 1층과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애플틴과 라떼떼커피 베이징 1호점은 본사가 직접 운영하며 철저하게 검증된 식재료를 훌랄라가 직접 개발한 레시피에 따라 조리해 2000만 베이징 시민의 입맛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훌랄라가 지난 2012년 론칭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애플틴’은 19세기 근대 피자의 탄생지인 이탈리아 나폴리 전통피자의 맛으로 승부할 계획이다. 특히 피자의 맛을 좌우하는 화덕은 이탈리아 화덕전문업체인 디피오레사와 독점 계약해 이탈리아 전통의 맛을 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또 라떼떼커피는 커피를 비롯해 수제와플과 케이크 등 다양한 디저트를 제공하며 베이징 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계획이다.특히 애플틴과 라떼떼 커피는 세련된 실내 인테리어와 차별화된 고객 서비스를 바탕으로 베이징 시민들에게 새로운 외식문화를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1999년 바비큐치킨전문점 ‘훌랄라’를 런칭하며 외식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훌랄라는 2010년 1000호점 돌파를 계기로 사업다각화에 나서 2011년 케익&와플전문점 라떼떼커피를 런칭하고, 2012년에는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 애플틴을 런칭했다. 이형구 기자 ninelee@joongang.co.kr 2013.07.17 07:00
스포츠일반

미리보는 NFL 컨퍼런스 챔프전

뉴잉글랜드 패이트리어츠가 명문팀이라는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21세기 들어 벌써 3차례 우승을 거뒀다. 그러나 뉴잉글랜드가 &#39지루한 챔프들(Boring Champs)&#39이라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몇몇 분석가들은 뉴잉글랜드가 우승하면 재미가 그만큼 반감된다고 주장한다. 경기 내용도 그렇지만 감독 빌 벨리칙, 쿼터백 탐 브레이디 등 팀 멤버들이 모두 모범생 이미지의 &#39재미없는 캐릭터&#39라는 것이다.팬들은 이번에 맞붙게 되는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의 쿼터백 페이튼 매닝이 우승해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그래야 NFL이 전체적으로 재미가 있어지고 인기도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다. 매닝과 브레이디. 인기만을 놓고 따진다면 사실 매닝이 월등히 앞선다. 같은 카드 광고를 찍어도 반응이 확연히 다르다. 매닝의 &#39매스터 카드&#39 광고는 매번 기발하고 유머러스하지만 브레이디의 &#39비자 카드&#39는 썰렁하기 짝이 없다. 최근 브레이디의 광고는 잘 나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매닝에게는 "때는 지금이다." AFC 챔프전 21일 오후 3시30분(한국 시간 22일 오전 8시30분) ▶뉴잉글랜드 패이트리어츠(14승4패) at 인디애나폴리스 콜츠(14승4패) &#39이제는 이길 때가 되지 않았나.&#39 콜츠가 지난 주 볼티모어를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어렵게 AFC 챔프전에 올랐지만 콜츠 팬들은 걱정과 긴장 속에 한 숨을 쉬고 있다. &#39천적&#39인 뉴잉글랜드가 또 앞에 떡 버티고 있으니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공개적으로 매닝을 밀어준 해설자들도 매닝의 우승 징크스가 달갑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CBS 애널리스트 부머 이자이전은 "만약 매닝이 이번에도 지면 A-로드 옆 집으로 이사가라고 권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콜츠는 탐 브레이디가 뉴잉글랜드 쿼터백으로 뛰면서 플레이오프 대결에서 전패의 수모를 당했다. 페이튼 매닝이 &#39우승 반지가 없다&#39는 비아냥을 듣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뉴잉글랜드 탓(?)이다. 최근 3년간 두 번이나 플레이오프서 탈락시켰다. 정규 시즌을 합치면 12번 만나 10번 졌다. 뉴잉글랜드의 절대우세다.지난 2004년에도 터치다운 패스 49개로 시즌 신기록을 세우며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매닝을 AFC 챔프전에서 인터셉트 4개로 톡톡히 망신을 줬다. 당시 콜츠는 14-24로 졌고 이듬해도 디비전 플레이오프에서 3-20으로 패했다. 토니 던지 콜츠 감독보다 빌 벨리칙 뉴잉글랜드 감독이 매닝에 대해서 더 훤히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번 AFC 챔프전에서는 콜츠의 우세를 점쳐본다. 콜츠는 올시즌 플레이오프 들어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39색깔있는 팀&#39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40년간 최악의 러싱 디펜스팀이라는 비아냥을 받았지만 플레이오프 들어 러싱 디펜스가 평균 63.5야드만 내주고 있다. 2연승의 원동력이었다. 매닝은 터치다운 1개, 인터셉트는 무려 5개나 허용해 &#39정규 시즌용&#39이라는 누명을 벗지 못했지만 이번에야말로 제 실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콜츠가 최근 뉴잉글랜드전에서 2연승을 거둔 것도 이제 &#39뉴잉글랜드 징크스&#39에서 많이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특히 콜츠는 뉴잉글랜드로부터 건네받은 주무기가 있다. 바로 키커 아담 비나티에리다.NFL 사상 최고의 클러치 키커로 불리는 비나티에리는 볼티모어전에서 필드골 5방을 날려 승리를 안긴 일등공신이다. 뉴잉글랜드에 2개의 수퍼보울 결승 필드골을 날려줬던 비나티에리가 친정팀에 비수를 꽂는 필드골을 날릴 지도 주목된다. ◇NFC 챔프전 21일 낮 12시(한국 시간 22일 오전 5시) ▶뉴올리언스 세인츠(11승6패) at 시카고 베어스(14승3패)세인츠는 2006~07 NFL 시즌의 새로운 &#39아메리칸 팀&#39으로 각광받고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뉴올리언스 시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창단 첫 수퍼보울을 노리는 세인츠가 철벽 수비를 자랑하는 시카고 곰들의 방패를 뚫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다. 도박사들은 베어스의 2.5점차로 근소한 우세를 점쳤다.세인츠 쿼터백 드루 브리스는 NFL 최고인 4418야드를 던지며 26터치다운 11인터셉션을 기록했다. 브리스의 어깨도 좋고 레지 부시, 듀스 맥캘리스터의 러닝 게임도 으뜸이다. 뉴올리언스는 또 윌 스미스, 찰스 그랜트, 브라이언 영, 스캇 샨리 등 색에 능한 수비수가 4명이나 있어 충분히 이변을 일으킬 수 있다. 베어스는 쿼터백 렉스 그로스먼이 여전히 불안한게 걸린다. 맹수같은 수비를 자랑하는 베어스는 지난주 시애틀전에서는 러닝백 션 알렉산더에게 100야드 이상 뚫리며 부진했다. 러비 스미스 베어스 감독은 브리스에게 블리츠를 가할 것인지, 아님 지역 방어를 할 것인지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화씨 35도 이하의 추운 날씨 속에 치러질 예정이다.일간스포츠USA=원용석 기자정리=장윤호 특파원 2007.01.21 08:21
축구

[허진의 축구이야기]‘징크스’ 존중하되 두려워 말라

월드컵 때마다 회자되는 미신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다. 꼭 말하는 반대방향으로 실현되는 펠레의 저주나 골대를 자주 맞추면 패한다는 등속의 각종 징크스, 선수들 개개인의 습관과 결부된 우연과 필연의 가쉽거리들이 그것이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정말 잔혹한 장난을 즐기게 만드는 운명의 신이 작용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특히 조편성 하나만 보아도 그렇다. 지난 대회 독일과 독일인 감독이 이끄는 카메룬의 대결, 스웨덴인 에릭손이 이끄는 잉글랜드와 스웨덴의 두 차례에 걸친 월드컵 조예선(잉글랜드는 1968년 이래 무려 37년간 스웨덴을 이겨 본 적이 없다!!), 크로아티아계 이민자들이 다수 포진한 호주가 크로아티아와 한 조가 된 사연 등등, 보는 사람은 재밌지만 당사자들은 약간 머쓱한 운명의 대결구도가 그러하다. 물론 그들은 프로들이라 일단 필드에 서면 서로 야수처럼 충돌하기에 대부분은 우리가 염려하는 감성적 주저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데 나폴리에서 너무나 사랑받던 마라도나가 90년 이탈리아와 준결승을 치룰 때, 엄청난 수의 나폴리 시민들이 조국인 이탈리아가 아닌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를 응원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 나폴리인들은 국가보다는 축구 그 자체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이야기가 된다.각 국가대표팀들의 지속적, 간헐적 징크스도 요사이 매스컴의 주요 밑반찬거리다. 상당한 잠재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대회에서 번번이 고배의 잔을 마시는 포르투갈. 세계 최강의 리그를 보유하면서도 언제나 8강 주변만을 맴도는 스페인. 대회 때마다 슬로우 템포와 엉성한 조직력으로 시작하다 막판에 기사회생하는 이탈리아. 거기다 개최국 독일은 2000년 10월 이래 소위 축구강국들과의 대결에서 단 한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 말하자면 만성은 아니고 일시적 변비현상인데 이게 이번 대회에서 극복이 안되면 결국 &#39만성&#39이 될 소지가 높다. 그럼 우리 대표팀은 어떤가? 2002년 이전까지 5차례 본선진출했음에도 불구, 단 1승을 올리지 못했던 지긋지긋한 &#39징크스&#39는 4강 진출로 해소된 듯이 보인다. 한데 아직도 또다른 &#39징크스&#39가 우리를 배회하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그건 아직도 한국이 적지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는 &#39징크스&#39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본선을 앞두고 무슨 재수없는 소리냐 할지 모르지만, 32개국 중 가장 약체로 보이는 토고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경기운영을 그르치게 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 큰 부담없이 출전한다. 국민들의 기대치는 항상 높지만 주전의 부상 등 여러 이유로 해서 우승 가시권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 겸허함이 팀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밑져 보아야 본전이라는…마지막으로 대 토고전을 앞두고 히딩크의 금언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그 어떤 경우라도 상대를 존중해라. 그러나 결코 겁먹지 말라. 너희들은 이길 수 있다."베를린에서(주 독일대사관 참사관·2002년 월드컵 대표팀 미디어 담당관)허진 2006.05.3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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