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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세 최고령 선발 투수가 생존하는 법. 5.8%의 너클볼

롯데의 개막 로테이션에 노경은(37)의 이름은 없다. 허문회 롯데 감독은 치열한 토종 선발 투수 경쟁에서 박세웅과 이승헌, 김진욱을 낙점했다. "노경은과 김진욱을 5선발 후보로 놓고 고민했는데, 시범경기 때 김진욱의 구위가 더 좋았다"라고 선택 배경을 밝혔다. 다만 이승헌과 김진욱 등 신예 투수는 경험이 적다. 선발진에 돌발 변수가 발생하면 로테이션 합류 1순위는 노경은이다. 그는 현재 10개 구단에서 선발 경쟁을 펼치는 가장 베테랑 투수다. 최근 리그 전반적으로 젊은 투수가 급성장하면서, 30대 후반 베테랑 투수는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노경은도 "롯데 선발진이 많이 좋아졌다. 롯데의 미래 영건이 많이 등장했다"라며 "하루하루 경쟁과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라고 했다. 베테랑 선발 투수의 생존법, 연구와 노력이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너클볼이다. 노경은은 "너클볼을 던질 수 있어 심리적으로 편안하다"라고 한다. 너클볼은 공이 거의 회전하지 않아 홈플레이트 앞에서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인다. 타자는 방망이에 공을 맞히기 어렵고, 포수는 공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공을 던지기 까다롭고, 구종 습득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실제 던지는 투수가 많지 않다. 노경은도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손에 익혔다. 그는 "체인지업의 한 종류로 생각하고 던진다. 직구와 40㎞(2020년 기준 직구 141㎞, 너클볼 107㎞)의 구속 차이를 이용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팀 포수에게 '내 너클볼은 R.A 디키나 팀 웨이크필드처럼 회전이 없거나, 무브먼트가 심하지 않다'라고 한다"라고 했다. 선발 투수로 133이닝을 던진 지난해 노경은의 너클볼 구사율은 전체 구종의 5.8%(스탯티즈 기준) 정도였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13.4%. 주로 여유 있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공'으로 던졌다. 공은 느리지만, 그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구종이었다. 지난해 전체 구종 중 너클볼 피안타율이 0.179로 가장 낮았다. 시즌 피안타율(0.267)보다 훨씬 좋았다. 올 시즌 너클볼의 구사율을 더 높이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변화구나 결정구를 던져 맞곤 했다. 하지만 지난해 2스트라이크 이후 상대 타자가 너클볼에 헛스윙이 아닌, 지켜보다가 삼진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올해는 1스트라이크 이후 등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적극적으로 던질 계획이다. 너클볼 컨트롤도 지난해보다 향상됐다. 자신감도 붙었다"라고 했다. 이어 "처음에는 스트라이크존 근처에만 던지자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강타자를 상대로도 던지겠다"라고 다짐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와 환경에 순응하며 기존에 던진 구종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일까' 고민한다. 그는 "더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다. 결국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노력해야 한다. 슬라이더도 좌우로, 커브도 다양한 포인트로 던진다. 최종 목표는 자유자재로 컨트롤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한다. 젊은 신예 투수와 끊임없이 펼쳐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노경은은 "20대 초중반에 시간을 아쉽게 흘러보냈다. 야구 인생을 돌이켜보면 앞으로 야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더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1차 경쟁에서 탈락한 그는 후배들을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자신을 제외한 네 명을 두고 "어벤져스"라고 표현했다. 노경은은 "이승헌은 하드웨워(196㎝·97㎏)가 뛰어나고, 150㎞에 육박하는 서클 체인지업이 좋다. 아마도 제2의 염종석 선배가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점쳤다. 이어 "박세웅은 최동원의 선배 등의 '안경 에이스' 계보를 잇지 않나"라며 "서준원은 사이드암 투수가 놀랍게도 150㎞ 공을 던진다. 롯데 선발진이 다양성을 통해 점점 갖춰가는구나 싶다"라고 덧붙였다. 신인 김진욱에 대해선 "팔 각도가 높아 양현종(텍사스)과 비슷해 보인다. 성장할 자질이 엿보인다"라고 예상했다. 노경은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 그는 "41~42세까지 계속 선수로 뛰고 싶다. 그러려면 잘해야 한다. 10승-150이닝이 목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형석 기자 2021.04.0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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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세' 알칸타라, KT 역대 최고 외인 조짐

라울 알칸타라(27)는 변수가 적은 투수다. 시즌 초반 선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유다. kt 외인 1선발은 매년 이미 KBO 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는 투수가 맡았다. 2015시즌 크리스 옥스프링, 2016~2017시즌 라이언 피어밴드와 트래비스 밴와트, 지난해는 더스틴 니퍼트가 있었다. kt 유니폼을 입고 한국 무대에 데뷔한 투수 가운데는 성공 사례가 없다. 재계약도 없다. 알칸타라는 kt 해외 스카우트팀의 명예 회복을 이끌어 줄 투수다. 니퍼트의 대체 선수로 영입된 그는 지난주까지 등판한 일곱 경기에서 3승3패 평균자책점 2.98을 기록했다. 전 경기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실점 이하 투구)를 해냈고, 이닝당 출루 허용(1.14) 피안타율(0.251) 등 세부 기록도 리그 상위권이다. 최고 구속이 시속 150km 후반까지 찍힌다. 스프링캠프에서 그의 투구를 지켜본 몇몇 야구전문가들은 "구위만 보면 20승 투수 감이다"고 했다. 강속구 투수는 대체로 제구력이 좋지 않거나 볼 배합이 단조롭다는 선입견이 은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알칸타라는 그런 우려를 털어 냈다. 속구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다. 정직한 포심패스트볼의 구사 비율은 29.1%(스탯티즈 기준)에 불과하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은 13~16%, 커브도 5%가 넘는다. 미국·한국 야구의 트렌드인 움직임이 있는 속구 계열도 많이 던진다. 결전은 피하지 않고, 타이밍을 빼앗는 구종도 던진다. 기량만큼 경기 자세도 바람직하다.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그는 "나는 마운드에서는 달라진다"고 했다. 직접 겪어 본 이강철 kt 감독도 그런 면모를 인정했다. 전투 태세 전환이 뚜렷하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감정 조절을 못하는 편도 아니다. 이 감독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분한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과하지 않다. 빨리 평정심을 찾는 편이다"라고 했다. 적당한 승리욕과 경쟁심은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최소한 심리적으로 흔들리며 단번에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 개막 일곱 경기 기준으로 그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남긴 투수가 있다. 피어밴드가 2017시즌에 5승2패 평균자책점 1.41을 기록했다. 그러나 주 무기 너클볼의 움직임이 좋지 않거나 포수의 포구가 헐거우면 흔들리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과 외부 영향을 모두 받아야 했다. 정통파인 알칸타라는 상대적으로 불안 요소가 적다. 사진=kt 제공팀 내 융화 능력은 과거 롯데와 한화에서 뛰었던 쉐인 유먼을 연상하게 한다. 다른 외인 윌리엄 쿠에바스와 호흡도 좋다. 무엇보다 한국 무대를 향한 존중이 있다. 그의 목표는 kt와 재계약이다. 빅리그 도전을 위한 발판을 삼는 선수가 아니다. 여러모로 자세가 좋다. 두 자릿수 승 수를 거둔 kt 소속 외인 투수는 2015년 옥스프링이 유일하다. 알칸타라는 역대 두 번째 기록을 넘어 가장 뛰어난 투수가 될 수 있는 자세와 자질을 갖췄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tbc.co.kr 2019.05.10 06:00
야구

피어밴드의 너클볼, 타자의 스윙을 이끌어낸다

kt 투수 라이언 피어밴드(32)는 인상적인 KBO 리그 세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평균자책점 1위(1.41)에 선발 등판 평균 7.3이닝 투구로 이 부문도 전체 1위다. 가장 많은 이닝을 가장 효과적으로 소화하고 있는 투수가 피어밴드다. 올 시즌 그의 활약을 설명하는 데 너클볼을 빼놓을 수 없다.지난해 1%에도 미치치 않던 너클볼 구사율이 올 시즌엔 25%를 넘는다. 그의 손을 떠난 4개의 공 중 1개가 너클볼인 셈이다. 직구 다음으로 많이 던지는 구종이다. 특히 투 스트라이크 이후 너클볼 구사율이 40%가 넘는다. '결정구'인 셈이다.너클볼은 공의 회전이 적다. 그래서 홈 플레이트 부근에서 불규칙적으로 떨어지거나 휘어진다. 포수조차 낙구 지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린다. 제구가 어렵고, 만족할 만한 변화를 주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피어밴드는 너클볼 제구에 자신이 있다. '자신의 너클볼의 매력을 꼽아 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내 너클볼은 제구가 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기록상으로 살펴봐도 피어밴드의 너클볼 제구력은 뛰어나다. 너클볼이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들어간 비율이 50%대다. 타자들이 배트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시속 140㎞대 빠른공을 본 타자의 눈에 평균 구속 120㎞대 너클볼은 잘 들어온다. 하지만 정타가 좀체 나오지 않는다. 올 시즌 피어밴드의 너클볼 피안타율은 0.154에 불과하다.피어밴드는 올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너클볼을 던진다. 포구가 쉽지 않은 너클볼을 포수 장성우가 잘 잡아 주고 있다. 장성우는 올 시즌 피어밴드가 등판한 7경기에서 모두 선발 마스크를 착용했다. 2013~2015년 롯데와 kt에서 크리스 옥스프링의 너클볼을 받아 본 경험도 있다. 장성우는 "옥스프링의 너클볼에 상대 타자들이 방망이를 돌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피어밴드는 헛스윙이나 파울, 범타 등 상대 배트를 이끌어 낸다"고 말했다. 이어 "피어밴드는 너클볼 제구가 된다. 그래서 볼 배합을 하기에도 편하다"고 말했다. 양상문 LG 감독은 "너클볼을 결정적일 때 많이 사용하더라"고 했고, 김기태 KIA 감독은 "피어밴드의 너클볼이 컨트롤까지 돼 스트라이크로 들어온다"고 놀라워했다.투포수 모두 너클볼을 잘 활용한다. KBO 리그에서 너클볼을 주 무기로 삼는 투수는 피어밴드가 사실상 처음이다. 8이닝 2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한 지난 10일 광주 KIA전에서 삼진 10개를 잡았다. 삼진을 잡은 결정구는 너클볼 5개, 직구 4개, 체인지업 1개였다. 가장 느린 너클볼의 위력으로 타자들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직구와 체인지업 등 다른 공의 효과도 덩달아 좋아졌다. 피어밴드는 올 시즌 7차례 등판에서 5승2패를 기록 중이다. 평균자책점뿐 아니라 이닝당출루허용률(WHIP)도 1위다. WAR(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은 2.81로 전체 투수와 야수를 통틀어 1위다. 그에게 '어떤 기록이 가장 마음에 드나'라고 물었다. 피어밴드는 "개인 성적은 관심 없다. 팀 성적이 우선이다"고 말했다. 피어밴드는 16일 사직 롯데전에 선발 등판한다. 이형석 기자 2017.05.16 06:00
야구

강속구 시대를 살아가는 느린 공 투수들

2014년 11월 1일, 마르코 에스트라다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11월의 첫 날, 밀워키 브루어스 소속이던 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됐다. 상대는 왼손 거포 아담 린드였다. 그는 좀처럼 하지 않던 일을 하기로 했다. 인터넷 기사와 댓글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데려간 토론토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를 읽다 말고 전의를 불태웠다.2008년, 카일 헨드릭스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6월의 드래프트에서 LA 에인절스가 그를 지명했다. 문제는 그가 39라운드에서 뽑혔다는 것이었다. 카피스트라노밸리 고교 3학년이던 헨드릭스의 구속은 겨우 시속 80마일(128km)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고민 끝에 그는 아이비리그 명문 다트머스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몇 년 뒤를 기약하면서.2006년을 기점으로 메이저리그는 한동안 투고타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93마일(153km)을 넘어섰다. 뉴욕 메츠 에이스 노아 신더가드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98마일(158km)에 달한다.그러나 에스트라다와 헨드릭스는 강속구 시대를 거스르고 있다. 두 명 모두 빠른 공의 평균 구속이 시속 90마일에 미치지 않는다. 에스트라다의 주무기는 시속 89마일(143km/h) 포심 패스트볼이다. 헨드릭스의 주무기는 시속 88마일(142km/h) 싱커다.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투수 중에서는 구속이 한참 밑바닥에 있다.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 순위에서 에스트라다의 이름 밑에 있는 5명 중 2명은 너클볼 투수다.그럼에도 둘은 나름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에스트라다는 지난해 34번 등판해(28선발) 181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3.13을 기록했다. 후반기 팀 선발진 중에서 3번째로 평균자책점이 좋았다. 이를 바탕으로 토론토와 2년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 올해도 151⅔이닝을 던지며 8승 8패 평균자책점 3.68을 기록 중이다.헨드릭스는 더 극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올시즌 165이닝동안 14승 7패 평균자책점 2.07을 기록했다.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단독 선두다. 시속 89마일 싱커의 헨드릭스가 시속 100마일 싱커를 던지는 노아 신더가드와 사이영상 경쟁을 펼치고 있다. 2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 잘해야 3~4선발급으로 여겨지던 것을 생각하면 상전벽해다.둘의 성공은 구속에 매달리지 않은 철저한 자기 분석 덕이었다. 에스트라다와 헨드릭스는 모두 느린 공을 가진 투수다. 하지만 탁월한 체인지업을 바탕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고 있다. 더불어 에스트라다는 ‘라이징 패스트볼’로 배트의 위를, 헨드릭스는 ‘싱커’로 배트의 아래로 공을 비껴가고 있다.에스트라다는 지면에 수직에 가깝게 팔을 들어올려 공을 던진다. 이때 걸리는 회전이 만들어낸 공기 저항이 공을 ‘덜 떨어지게’ 만든다. 마치 공이 솟구치는 듯한 착시효과가 일어나고, ‘라이징 패스트볼’이 탄생한다.에스트라다의 패스트볼은 분당 2404회 회전한다. 리그 평균인 2264회, 클레이튼 커쇼의 2278회보다도 더 높다. 타자가 낮은 볼이라고 인식한 순간, 솟구치는 듯한 움직임 때문에 공은 스트라이크 존의 아래쪽에 걸쳐 들어온다.‘솟구치는 공’에 나간 배트는 공의 밑동을 때리기 십상이다. 그 결과 플라이볼이 양산됐다. 에스트라다가 허용한 타구 중 플라이볼 비율은 리그 최고 수준인 46.7%다. 힘없이 솟구친 플라이볼이 수비수가 가장 잡기 쉬운 공이라는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여기에 에스트라다는 최고 수준의 체인지업까지 보유했다. 체인지업의 피안타율은 리그 평균인 0.241보다 훨씬 낮은 0.162에 불과하다. ‘솟구치는’ 패스트볼과 ‘느리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의 조합은 에스트라다를 컨택트의 마술사로 만들었다. 에스트라다의 공을 쳤을 때 인플레이가 된 타구의 타율(BABIP)은 0.232에 불과하다. 리그에서 2번째로 좋은 성적이다.에스트라다가 ‘라이징 패스트볼’로 타자의 방망이 위쪽을 공략한다면, 헨드릭스는 반대로 ‘떨어지는 공’으로 방망이 아래를 공략한다. 헨드릭스의 주무기 싱커는 아래로 떨어지는 빠른 패스트볼이다. 두번째 무기인 체인지업 역시 마찬가지다. 헨드릭스는 아래로 떨어지는 공을 스트라이크 존 아래로 무자비하게 꽂아 넣는다. 투수의 교과서와도 같은 표어인 ‘낮게 더 낮게’를 실천한 전술이다.헨드릭스의 싱커와 체인지업 구속은 시속 8마일(12km/h) 차이가 난다. 그러나 두 구종의 회전수는 분당 1966회와 2111회로 상당히 비슷하다. 두 공의 회전축도 거의 같다. 타자 입장에서는 비슷한 회전을 가진 공이 다른 빠르기와 다른 낙차를 가지고 들어온다. 육안으로 구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싱커 타이밍에 배트를 냈는데 한 박자 늦게, 그보다 더 낙차가 큰 체인지업이 들어오는 당혹스러운 경험이 계속된다.설령 배트에 맞아도 떨어지는 공에는 정타가 나오긴 힘들다. 그 결과 헨드릭스가 허용한 타구에는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타자의 눈과 타이밍을 흐트러트리고 제구에 집중하니 주자를 내보내는 일 자체도 적어졌다. 헨드릭스의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는 0.92로 메이저리그 2위에 올라 있다. 1위는 사이영상 수상 경력이 있는 워싱턴의 맥스 슈어져다.그들의 2014년, 2008년은 그 느린 공만큼이나 암울하고 천천히 지나갔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느린 공을 던지는 그들에겐 누구보다도 찬란한 후일담이 기다리고 있었다.트레이드 날 ‘모두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마음먹은 에스트라다는, 1년 뒤 1승 3패로 내몰린 팀의 가을 야구 명운을 짊어지고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에 등판했다. 전날 14득점 맹폭을 가한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방망이는 연신 허공을 갈랐다. 8회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그를 팬들은 비난이 아닌 환호성으로 맞이했다.아이비리그 명문 다트머스에 진학한 헨드릭스는 3년 뒤 8라운드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그로부터 5년 뒤, 헨드릭스는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제 팬들은 그를 ‘교수’라 부른다. 그의 시카고 컵스 선배,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투수 ‘마스터’ 그렉 매덕스에게 붙었던 바로 그 별명이다.박기태(야구공작소)야구 콘텐트, 리서치, 담론을 나누러 모인 사람들. 야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2016.09.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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