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현장에서] 상처받은 팬들의 눈물겨운 응원, 유통기한은 '90분'
오전 내내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전주성을 감싼 먹구름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24일 찾은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안팎으로 썰렁했다. 10년 만의 아시아 정상 탈환을 목표로 시작한 올 시즌, 가장 중요한 경기 중 하나인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16강 2차전 멜버른 빅토리(호주)와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지만 열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루 전날 터진 심판 매수 사건이 휩쓸고 간 자국이었다.가라앉은 공기는 경기장 밖에서부터 확연히 느껴졌다. 평소 같았으면 경기 시작 두 시간 전부터 녹색 유니폼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들었을 팬들의 숫자가 현저히 줄었다. 유니폼을 입은 채 경기장을 향하는 팬들은 간간히 보였지만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이었다. 리그 최강 구단의 자부심을 안고 경기장을 찾았던 전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사건이 터진 23일, 구단 홈페이지는 방문자 수 폭주로 먹통이 됐다. 팬들이 쏟아낸 비난과 성토의 글이 게시판을 도배했고, 멜버른전 예매를 취소했다는 분노에 찬 글들도 넘쳐났다. 전북 서포터즈 연합인 MGB(Mad Green Boys) 역시 SNS를 통해 구단의 올바른 대처를 촉구했다. 시즌권을 환불하겠다는 팬들도 있었다.하지만 경기가 시작할 무렵이 되자 관중석이 조금씩 들어차기 시작했다. 서포터석인 N석뿐만 아니라 일반 관중이 앉는 E석에도 사람이 제법 모였다. 분위기는 밝지 않았지만 막상 그라운드에 선수들이 등장하자 누구보다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그들을 맞이했다.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킥오프하자 서포터들은 평소보다 한층 비장한 목소리로 응원을 시작했다. 악에 받친 목소리로 전북을 외치는 서포터들의 모습은 숙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모두 1만 2811명. 주중 경기로 열렸던 4월 13일 인천 유나이티드전(1만 1176명)보다 많은 숫자였다.심판 매수로 상처 받은 마음을 잊고 선수단을 열띠게 응원한 팬들의 마음은 전반 28분 레오나르도의 선제골이 터진 순간 폭발했다. 전북의 ACL 8강 진출을 확정짓는 골이었다. 레오나르도는 후반 25분에도 추가골을 터뜨리며 상처받은 팬심을 달랬다.결국 경기는 전북의 2-1 승리로 끝났다. 경기가 끝난 순간 팬들은 전북 승리의 트레이드 마크 오오렐레를 열창했다. 배신감을 씻어내진 못했지만, 동시에 팀에 대한 사랑도 접을 수 없었던 팬들의 열정이 유독 눈물겹게 느껴진 경기였다. 그러나 뜨거운 응원의 유통기한은 90분까지다. 전북, 그리고 더 나아가 프로축구연맹이 어떤 일처리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축구팬들의 팬심은 더 불타오를 수도 있고 차갑게 식어버릴 수도 있다.눈앞의 불을 끈 전북은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 사태에 대한 대처 방안을 모색해야할 때다. 전북의 모기업인 현대자동차 역시 이번 사건을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경기 당일임에도 불구하고 전북 구단 고위 관계자는 오전 일찍 서울 염곡동의 현대자동차 본사를 찾아 이번 사건의 경위를 보고하고 사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은 25일까지 프로축구연맹에 소명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며, 이철근 단장도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전주=김희선 기자 kim.heeseon@joins.com
2016.05.24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