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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차훈의 리얼 MLB] 구단의 미래 신인 드래프트

필자는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의 신인 지명 전략 회의에 참여했다. 당시 샌디에이고 구단은 신인 드래프트가 열리기 일주일 전부터 관련 회의를 열었다. 단장을 중심으로 팜 디렉터와 모든 스카우트, 분야별 코디네이터, 데이터 파트 담당자들이 참석해 머리를 맞댔다. 1라운드 지명을 결정할 때는 버드 블랙 당시 감독과 베테랑 투수 제이슨 마퀴스까지 회의에 들어와 의견을 나눴다. 선택에 신중한 모습이었다. 신인 지명 전략 회의는 하루 10시간씩 일주일간 쉬지 않고 진행됐다. 한 번에 2명의 선수를 설명하고 회의에 참석한 전원이 거수로 더 나은 선수를 선택했다. 전략 회의는 지역 스카우트들이 담당 지역의 우수 선수를 추천하고 그 선수의 기량과 성향에 관해 설명한다. 총 3회에 걸쳐 추천 선수를 설명하는데 이때 2개의 대형 화면에 관련 선수 영상이 나오고 2개의 스마트보드에는 세부 기록이 함께 띄워진다. 흡사 경연 대회를 방불케 했다. 당시 채드 맥도날드 샌디에이고 스카우트 디렉터는 "올해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선수는 3년 안에 빅리그 무대를 밟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샌디에이고는 중심 타자 체이스 허들리와 카를로스 쿠엔틴의 공격력이 하락세를 보여 이를 대체할 거포형 타자를 지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선발된 선수를 3년간 마이너리그에서 육성한 뒤 MLB 주축 타자로 키워낸다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그해 샌디에이고가 1라운드에서 호명한 선수는 미시시피주립대 출신 외야수 헌터 렌프로(현 밀워키 브루어스)였다. 렌프로는 구단 계획대로 입단 3년 차인 2016년 9월 21일 빅리그에 데뷔했고 2017년 주전으로 올라섰다. 신인 지명 전략 회의에서 논의한 육성 계획이 그대로 실행된 것이다. 이렇듯 MLB 구단들에 신인 드래프트는 구단의 미래를 결정하는 행사고 신인 지명 전략 회의는 그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과정인 셈이다. KBO리그는 올해부터 신인 드래프트가 전면 드래프트로 시행됐다. 전면 드래프트 제도는 향후 KBO리그 구단이 전력 평준화를 이루는데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구단의 지명 전략과 육성 계획은 팀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거다. 필자는 신인 지명 전략 회의에서 고민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걸 경험을 통해 실감했다. 스카우트팀이 파악한 자료는 지명 전략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최근엔 아마추어 경기장에도 트래킹 시스템이 구축돼 선수의 각종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라운드별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진행하며 드래프트를 준비한다. 선수의 '워크에식(work ethic·성실함)'이나 팀원에게 끼치는 영향력 등 스카우트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해야 하는 영역도 존재한다. 스카우트의 경험과 데이터의 수치가 같은 선수를 지목할 때 선택에 확신이 생기게 된다. 수년 전 KBO리그 1군 선수를 조사한 결과 신인 지명 1차와 2차 1~3라운드 선수가 1군에 정착하는 데 3.04년이 걸리며 4라운드 이하로는 4.47년이 걸린다는 통계가 나왔다. 신인이 구단 계획대로 성장하려면 최소 3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구단은 주축 선수의 '에이징 커브(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능력이 저하되며 기량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상)'가 나타나기 전 해당 포지션의 육성 계획을 세워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그래야 전력손실 없이 세대교체가 가능하다.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팀의 현황을 파악하는 건 지명 전략의 중요한 요소다. 신인 선수를 프로에 연착륙시키는 교육도 필요하다. 필자가 몸담은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구단은 신인 선수의 입단식부터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 구단이었다. 1박 2일로 진행되는 입단식에는 선수들의 가족까지 초청해 다양한 시간을 갖게 했다. 선수가 감사함을 전하며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부모님께 입혀드리기도 했다. 2020년 입단식에서 "고생하신 부모님께 이제 야구 잘해 효도하겠다"는 말에 눈물 흘리신 최지훈 어머님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현재 국내에는 90개의 고교 야구팀과 43개의 대학 야구팀이 있다. 매년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하는 선수는 1100명 안팎이다. 10개 구단 스카우트와 데이터 팀이 대부분의 선수를 파악하고 있어 '흙 속의 진주'가 나올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좋은 재능을 갖춘 선수를 뽑아야 한다. 전면 드래프트 시행으로 구단들은 동등한 환경에서 지명권을 행사하게 됐다. 어느 구단이 어떤 계획과 교육을 통해 신인 선수들에게 더 강한 동기부여와 더 올바른 마인드를 심어주는지가 중요해졌다. 전 SK 와이번스 단장 정리=배중현 기자 2022.10.1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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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차훈의 리얼 MLB] 유망주 성장과 구단의 역할

미국 메이저리그(MLB) 구단은 스프링캠프가 끝나면 신인급 선수 육성을 위해 캠프를 연장한다. 이를 익스텐디드 캠프(Extended Camp)라고 한다. 익스텐디드 캠프에선 유망주들에게 프로 무대에서 필요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킨다. 도핑 교육은 물론이고 영어가 서툰 선수를 대상으로 언어 습득시간까지 별도로 할애한다. 이런 교육은 익스텐디드 캠프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루카스 레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익스텐디드 캠프 감독 겸 책임자가 가장 강조하는 건 '프로페셔널리즘'이라고 했다. 인성을 갖춘 야구 선수를 육성한다는 명확한 방향이 설정돼 있다. 선수의 승격을 결정할 때 해당 선수가 구성원에게 신뢰받고 있는지도 중요한 포인트다. "기량은 물론이고 인성도 충분하다고 판단될 때 승격이 결정된다"는 레이 감독의 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매년 초 신인 선수에게 프로 선수의 덕목과 소양을 교육한다. KBO리그 대부분의 구단도 신인 선수에게 구단 아이덴티티와 프로 의식 및 윤리 의식 등을 인식시킨다. 이는 건강한 리그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2013년 SK 와이번스 구단이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참여했을 때 가이 콘티 당시 뉴욕 메츠 코치와 MLB 구단이 마이너리그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콘티 코치는 마이너리그 최저 레벨인 루키리그부터 싱글A까지는 어린 선수를 교육할 선생님 같은 코치를 배치한다고 했다. 선수 평가도 성적이 아닌 코칭스태프가 경기 당일 제시하는 미션 수행 여부가 기준이다. 예를 들어 투수의 경우 당일 초구 스트라이크를 60% 이상 던져야 한다고 목표를 제시하면 경기 기록과 무관하게 이 목표를 달성했느냐가 평가의 핵심이다. 더블A부터 트리플A까지는 이기는 야구를 추구한다. 경쟁 체제로 개인 성적은 물론이고 '워크에식(work ethic·성실함)'까지 중요하다. MLB에 콜업될 선수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강등된 선수에게는 재도전 의욕을 갖게 할 소통 능력을 갖춘 코칭스태프로 구성한다. 구단이 명확한 육성 방향을 갖고 마이너리그에 각 코치를 배치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프런트는 파트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구단 상황에 맞는 인물로 코치진을 꾸려야 한다. 코치도 1군에 적합한 '전략형 코치'가 있고 퓨처스(2군)에 필요한 '육성형 코치'가 따로 있다. 전략형 코치는 말 그대로 전략에 능통하고 선수의 매카닉적인 변화를 짚어낼 수 있는 역량이 필수적이다. 반면 육성형 코치는 이론적으로 선수를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유망주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인내심도 중요한 덕목이다. KBO리그는 코치 자원이 풍족하지 않아 구단이 원하는 코칭스태프를 꾸리기 쉽지 않다. 최대한 1·2군에 적합한 코치진을 구성할 때 팀의 경쟁력이 생긴다. 샌디에이고 스프링캠프 마이너리그 코치실 한쪽 벽면에는 선수 육성에 대한 다섯 가지 문구가 있다. ▶선수들이 책임감을 갖게 한다 ▶모든 과정에 목표를 제안하고 집중해 완성토록 한다 ▶매일 경쟁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도전 상황을 적극적으로 연습하고 스피디한 경기를 추구한다 ▶선수들과 신뢰관계를 형성한다 등이다.명확한 방향 제시는 어린 선수를 육성할 때 상당히 중요하다. 구성원들이 같은 목표를 바라보면 구단이 기대하는 선수 육성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 필자는 2013년 샌디에이고에서 연수할 당시 홈 경기 훈련을 관전했다. 시즌 초 콜로라도 로키스전에 앞서 평소 선수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던 1루 코치가 외야수 윌 베너블과 이른 시간 수비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베너블은 전날 실책성 수비로 팀 패배의 빌미를 제공, 굳은 표정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1루 코치와 베너블은 30분가량 진행된 대부분의 훈련 시간을 외야 잔디에 앉아 대화로 채웠다. 10분 남짓 진행한 수비 훈련에선 코치 주도 아래 집중력 있게 땀을 뺐다. 그때 필자는 "코칭에 있어 야구 기능을 단기간에 좋아지게 할 수 없지만, 마인드와 기분은 금방 바꿀 수 있다"는 호시노 센이치 전 주니치 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베너블은 그해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하며 MLB 데뷔 후 가장 인상적인 시즌을 보냈다. 베너블과 소통한 당시 1루 코치는 현재 LA 다저스를 이끄는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다. "훌륭한 코치는 자신이 훌륭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훌륭함을 끌어내기 때문에 성공한다."『라커룸 리더십』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구다. 구단은 항상 경쟁력 있는 선수단 구성에 갈증을 느낀다. 선수의 재능을 끌어내고 성장시키는 것은 코칭스태프의 역량이다. 하지만 육성 방향을 설정하고 능력을 갖춘 코치를 영입한 뒤 적재적소에 배치, 팀의 경쟁력을 높이는 건 프런트의 역량이다. 전 SK 와이번스 단장 정리=배중현 기자 2022.10.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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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차훈의 리얼 MLB] 베테랑 선수의 라스트 댄스

2014년 2월 LA 다저스는 한 백업 내야수를 영입했다. 2009년 메이저리그(MLB)에 데뷔한 이 선수는 2013시즌 뒤 소속팀이 없었다. 통산 홈런이 불과 8개. 나이가 서른 살로 적지 않아 유망주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놀라운 반전을 만들어냈다. 주전 3루수로 도약한 뒤 올해까지 9년째 다저스 핫코너를 지키고 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은 바로 저스틴 터너(38)다. 초청신분 자격으로 바늘구멍을 뚫어낸 터너도 대단하지만, 존재감 없던 선수를 주전으로 만든 다저스 시스템도 주목할만하다. 필자는 2020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미국 플로리다 캠프 중 딜런 코비가 탬파베이 레이스 구단의 캠프 초청 선수가 됐다는 얘길 듣고 그의 경기를 보러 갔다. 코비는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4번으로 밀워키 브루어스에 지명됐다. 계약이 불발돼 대학교로 향했고, 2013년 드래프트 4라운드에서 오클랜드 어슬래틱스에 재지명됐다. 201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 5승을 기록한 '경력자'로 KBO리그는 물론이고 일본 프로야구(NPB)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선발 투수로 출전 예정이던 코비는 시범 경기 하루, 이틀 전 "중간계투로 2이닝을 던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선발과 불펜 등판은 준비하는 과정이 다르지만, 초청 선수 자격인 코비는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5회 불펜으로 등판한 코비는 2이닝 동안 폭투를 포함해 2실점 했다. 쓴웃음을 지으며 마운드를 내려오던 그의 모습을 보며 초청 선수의 어려움을 한 번 더 느꼈다. 야구가 멘털 스포츠라는 것도 다시금 실감했다. MLB 스프링캠프는 팀별 60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40인 로스터 선수에 초청 선수 20여명이 더해진다. MLB가 30개 구단이라는 걸 고려하면 캠프 초청 선수는 약 600명이다. 초청 선수는 크게 구단이 육성하는 마이너리그 유망주 그룹과 새 소속팀을 구하는 베테랑 그룹으로 나뉜다. MLB 구단은 개막에 맞춰 주축 선수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드는 데 집중한다. 상대적으로 초청 선수는 시범경기 출전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 스케줄 변동도 잦다. 특히 초청 선수로 합류한 베테랑 선수들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야 좁디좁은 빅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LA 다저스 팜 디렉터 출신으로 SK 구단 미국 플로리다 캠프지 '재키 로비슨 트레이닝 콤플렉스' 책임자 크레익 캘런 사장과 초청 선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캘런 사장은 "초청 선수들은 시범 경기에서 투수는 10이닝, 야수는 20타석 이상 기회를 얻기 어렵다. 캠프 기간이 끝나면 방출 통보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며 "매 경기, 한 타석을 다른 선수보다 훨씬 간절한 마음으로 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년 캠프 초청 선수가 풀 타임 빅리거가 될 확률은 1% 미만이다. 터너처럼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KBO리그에서도 매 시즌 종료 후 여러 선수가 방출된다. 다수의 베테랑 선수는 개인 훈련을 하며 다른 구단의 관심을 기다린다. KBO리그는 시즌이 끝나면 몇몇 방출 선수를 마무리 훈련에 합류시켜 테스트를 진행한다. 어렵게 기회를 잡은 선수들은 마치 MLB 초청 선수처럼 야구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간절함을 갖고 훈련한다. 지난해 이용규(키움 히어로즈) 올 시즌 노경은(SSG 랜더스) 김진성(LG 트윈스)처럼 방출 후 이적, 좋은 활약을 이어가는 선수는 야구의 간절함이 경기에 나타났기 때문일 거다. 혹자는 베테랑 선수 영입이 유망주 성장을 더디게 한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필자는 올바른 마인드를 가진 베테랑의 야구 대하는 자세와 풍부한 경험은 어린 선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확신한다. 대부분의 베테랑은 아마추어와 2군(마이너리그) 시절 수많은 경쟁과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이 있다. 올 시즌이 끝나면 또다시 초청 선수로 밀려나는 베테랑이 나올 거고, 테스트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거다. 풍부한 선수 자원을 보유한 MLB에서도 매년 600명 정도 초청 선수가 나온다. 각 구단이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기 위한 방법으로 초청 선수를 활용한다. 이는 선수 자원이 풍족하지 않은 KBO리그에서 전력을 보강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유망주를 발굴하는 시스템도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구단에서 포기했어도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베테랑 선수를 영입하는 것도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구단은 터너 같은 흙 속의 진주를 찾길 원한다. 야구에 대한 간절함으로 재무장한 베테랑들이 후회 없을 '라스트 댄스'를 보여주며 KBO리그의 질도 높여가길 기대해본다. 전 SK 와이번스 단장 정리=배중현 기자 2022.09.2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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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차훈의 리얼 MLB] 모든 운은 계획에서 비롯된다

필자는 2013년 피터 오말리 전 LA 다저스 구단주와 박찬호의 도움으로 미국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전력분석파트 업무를 수행하며 값진 경험을 쌓았다. 그 인연을 이어온 덕분에 올해는 샌디에이고 프런트 오피스의 배려로 MLB 운영과 육성 시스템을 체험할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됐다. 부족하지만 필자의 경험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조시, 올 시즌 파드리스는 리그 우승이 목표인데, 그걸 위해 어떤 계획과 준비를 했는지 궁금해." 지난 5월 말 조시 스테인 샌디에이고 부단장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샌디에이고는 '지구 라이벌' LA 다저스와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1위 경쟁을 하고 있었다. 필자가 2013년 샌디에이고 구단에서 연수할 당시 오퍼레이션 디렉터였던 스테인 부단장은 현재 선수 영입과 계약 등 선수단 운영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샌디에이고 구단이 지구 우승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어떤 준비를 했는지 들을 수 있었다. 샌디에이고 구단은 2014년 8월 AJ 프렐러가 단장으로 부임한 뒤 스타급 선수를 쓸어모았다. 2015년 '윈나우'를 목표로 에이스 제임스 실즈를 비롯해 크렉 킴브럴·맷 켐프 등을 영입했다. 하지만 2015시즌 74승 88패(승률 0.457)에 머물러 NL 서부지구 4위로 포스트시즌(PS) 문턱을 넘지 못했다. 투자 대비 처참한 실패였다. 스테인 부단장에 따르면 이후 샌디에이고의 구단 수뇌부와 오너십 그룹은 우승 전력을 꾸리는 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면서 선수 스카우트와 육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확보한 자금과 유망주를 묶어 다르빗슈 유(전 시카고 컵스) 매니 마차도(전 LA 다저스) 블레이크 스넬(전 탬파베이 레이스) 조 머스그로브(전 피츠버그 파이리츠) 션 마네아(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을 차례로 영입, 우승 전력을 갖췄다. 지난 8월에는 '슈퍼스타' 후안 소토(전 워싱턴 내셔널스)까지 트레이드했다. MLB 구단들은 보통 유망주들이 주력 선수로 성장했을 때 막대한 비용을 써서 외부 선수를 영입한다. 샌디에이고 구단은 5월 말 기준 선발 투수 3명(머스그로브·마네아·마이크 클레빈저)이 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릴 예정이었던 만큼 한 발 더 빠르게 움직여 다른 팀으로부터 선수를 수혈했다. 유망주들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퍼즐을 맞추기 위해 투수 매켄지 고어를 비롯해 애써 키운 유망주를 내보내는 트레이드까지 단행했다. 많은 유망주를 유출해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그만큼 우승 전력을 구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했다. MLB 구단의 목표는 당연히 월드시리즈(WS) 우승이다. 그리고 WS로 가는 첫 단계인 지구 우승을 위해 평균적으로 정규시즌 90승 이상을 필요로 한다. 구단들은 기존 선수와 새롭게 영입할 수 있는 FA 선수, 유망주와 부상 선수 등을 고려해 전력을 꾸린다. 90승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자금과 유망주를 활용해 부족한 승리를 채워줄 수 있는 선수를 보강한다. 그런데도 전력이 안정되지 않다고 판단하면 선수 스카우트와 유망주 육성에 포커스를 맞춰 팀을 운영하기도 한다. KBO리그 구단들은 PS 진출을 위해 약 80승을 목표로 시즌을 계획한다. 2000년 이전에는 경쟁력 있는 선발진, 안정감 있는 불펜, 스마트한 포수, 출루율 높은 리드오프, 파괴력 있는 중심 타선까지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춰야 PS 무대를 밟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견고한 센터라인과 주전급 백업(포수1, 내야1, 외야1)이 더해져 일곱 가지 요소로 평가한다. 이른바 리그 내 '왕조'를 구축했던 2000년대 후반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와 2010년대 중반 두산 베어스는 상기 요건을 충족시킨 팀들이었다. 일곱 가지 요소를 모두 구축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최대한 많은 우승 요소를 갖춰야 경쟁력 있는 팀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계획을 했느냐가 아니라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준비를 했느냐다. 구단은 경쟁력 있는 전력을 갖추기 위해 스토브리그를 알차게 보내야 한다. 외국인 선수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부진 및 부상에 대비해 플랜 B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시즌 중에는 상황에 따라 트레이드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코칭스태프 및 전력분석 파트를 포함한 선수단은 마무리 훈련부터 스프링캠프까지 훈련 계획을 세밀하게 세우고 움직여야 한다. 프런트는 최악을 대비하고 선수단은 최선을 추구할 때 성공적인 시즌에 다가가게 될 수 있다. "모든 운은 계획에서 비롯된다." MLB에서 스프링캠프와 팜 시스템을 고안한 전설적인 단장 브랜치 리키가 한 말이다. 전 SK 와이번스 단장 정리=배중현 기자 2022.09.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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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차훈의 리얼 MLB] KBO리그의 선수 육성, 아이돌 시스템은 어떨까

필자는 2013년 피터 오말리 전 LA 다저스 구단주와 박찬호의 도움으로 미국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전력분석파트 업무를 수행하며 값진 경험을 쌓았다. 그 인연을 이어온 덕분에 올해는 샌디에이고 프런트 오피스의 배려로 MLB 운영과 육성 시스템을 체험할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됐다. 부족하지만 필자의 경험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시카고 컵스와 홈 경기를 보던 중이었다. 처음 보는 샌디에이고 구단 관계자가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이 관계자의 두 딸은 방탄소년단(BTS) 팬클럽 '아미'의 일원이라고 했다. BTS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콘서트를 열었는데 바늘구멍을 뚫고 예매에 성공, 그 기쁨을 나에게 표현한 것이다. 그 관계자의 모습을 보며 BTS와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MZ 세대의 특징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간을 포착한 이른바 '짤영상'이 유행하는 것도 사회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종종 아이돌 스타들이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 이상을 연습생으로 보낸 뒤 현재 위치까지 오게 됐다는 인터뷰를 볼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어떤 동기부여를 주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게 많은 10대 연습생들이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걸까. 스타의 성공 뒤에는 매니지먼트의 중요한 역할이 녹아있을 거다. 예전에 『나이키의 경쟁 상대는 닌테도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세계 최대의 스포츠용품 업체인 나이키가 게임 업체 닌테도를 경쟁 상대로 지목했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나이키는 인터넷 게임에 몰입하는 젊은이들이 증가, 야외 스포츠를 즐기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판단했다. 이는 기업의 존재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동안 KBO리그 구단은 주로 미국 MLB 구단을 벤치마킹했다. MLB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꿈의 리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움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KBO리그와 MLB는 인적 자원은 물론이고 환경에서도 차이가 크다. 육성 쪽만 보더라도 MLB는 각종 트레킹 시스템과 바이오 메카닉, 초고속 카메라 등 최신 장비를 구축한 훈련 환경에서 선수들이 성장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야구 유망주 중에서 적어도 5단계(루키~트리플A)의 마이너리그 승급 경쟁을 이겨낸 선수들이 빅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다. KBO리그 구단은 최근 전용 구장에 트레킹 시스템을 구축, 과거보다 진일보한 육성 환경을 갖췄다. 그러나 선수 자원을 확보하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따른다. 선수가 많지 않으니 1~2단계의 짧은 승급 경쟁을 거치면 1군 무대를 밟을 수 있다. MLB가 비행기로 비료를 살포하는 시스템이라면 KBO리그는 농부가 일일이 비료를 주며 돌보는 환경인 셈이다. 한국 시스템에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선수들을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고, 가족에 버금가는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따라서 선수를 경쟁력 있게 키워내기 위해선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프런트의 역량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야구 이외의 곳에서 도움이 되는 포인트가 있다면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이돌 스타를 발굴하고 성장시킨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사가 연습생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고 관리, 성장시키는지 참고하는 것도 육성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SK 와이번스에 몸담고 있을 때 구단은 FA(자유계약선수) 선수들과의 계약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구단 소속의 FA 선수를 모두 잔류시킬 수 없었지만, 대부분 팀을 떠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전력 누수를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선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컸다. 구단에서 헌신한 선수들이 은퇴했을 때 최대한 코치 및 구단 직원으로 제2의 야구인생을 열어주려고 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이런 구단의 분위기는 젊은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또한 팀의 결속력이 좋아지는 배경이 될 수 있다. 목표가 있어야 희망이 생긴다. 그리고 희망이 있어야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한다. 단지 목표만 있다고 해서 목표를 향한 지속성이 유지되는 건 아니다.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길 때 꿈을 실현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KBO리그의 육성관계자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볼 내용이다. 손차훈 전 SK 와이번스 단장 정리=배중현 기자 2022.08.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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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차훈의 리얼 MLB] 51 : 49 승부를 가르는 데이터 분석의 힘

현대야구에선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를 잘 분석하더라도 머리로 계획하는 데이터 분석파트와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선수단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다. MLB에서도 이런 신뢰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래서 능력 있는 데이터 분석파트를 구성하고 선수단과 신뢰 관계를 형성, 경기력을 극대화하는 게 프런트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MLB 구단의 데이터 분석파트 직원들은 오프시즌에 더 바쁘다. 시즌이 모두 끝난 11월부터 스프링캠프가 시작되는 1월까지 약 3개월 동안 전년도 같은 지구 팀들의 상대 기록은 물론이고, 다른 지구 팀들의 모든 데이터를 파악한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비 포메이션, 상황별 맞춤 타선, 더블 포지션, 티핑(습관)을 비롯한 자료들을 캠프가 시작되기 전까지 준비해야 한다. 데이터는 캠프 기간 확인 과정을 거친 뒤 정규시즌 활용 여부를 결정한다. 최근 MLB 프런트 오피스에서는 데이터 분석 자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관련 능력을 갖춘 인재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공들여 만든 데이터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자료를 제공하는 파트와 활용하는 선수 간의 신뢰를 형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은 지구(내셔널리그 서부) 라이벌 LA 다저스만 만나면 고전했다. 특히 시즌 초반 다저스 투수 크리스 카푸아노를 상대하면 맥을 못 췄다. 필자는 샌디에이고 데이터 분석파트와 함께 경기를 관전하던 중 카푸아노의 투구 습관을 포착했다. 다음 날 선수단이 이해하기 쉬운 영상 자료를 만들어 데이터 분석파트 구성원과 공유했다. 며칠 뒤 샌디에이고는 카푸아노를 다시 만나 2이닝 동안 5점을 뽑아내며 승리했다. 샌디에이고는 이전까지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한 구단이었지만 다저스전 승리 이후 상대 투수의 약점을 파고드는 것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데이터 분석이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는 신뢰 관계가 형성되자 관련 자료를 요청하는 횟수도 늘었다. 처음 등장했을 때 논란이 많았던 수비 시프트가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생긴 이후 MLB 내 다수의 구단이 활용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올 시즌 샌디에이고는 MLB 최상위권 관중동원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하면 관중 호응이 상당히 달라졌다. 매니 마차도·다르빗슈 유·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블레이크 스넬을 비롯한 스타급 선수를 대거 영입하면서 팬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상당한 비용과 유망주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S급 선수들도 올스타급 선수의 기준으로 알려진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5를 넘기 쉽지 않다. WAR은 리그 평균 수준의 선수보다 팀에 몇 승을 더 안겼는지 알아볼 수 있는 지표. 팀에 끼치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WAR이라는 수치에 모두 담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는 평균 수준의 선수를 기용하는 것보다 5승 정도를 더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과 수준급 유망주를 내주는 큰 결단을 내렸다. 만약 데이터 분석파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경기력을 향상할 수 있고, 승리를 조금이라도 더 추가할 수 있다면 구단이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이 지속성은 물론이고 가성비까지 뛰어나다면 더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머니볼'의 모티브가 된 MLB 오클랜드 어슬래틱스의 빌리 빈 단장은 스몰마켓 구단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다른 팀이 주목하지 않던 출루율이나 OPS(출루율+장타율) 같은 기록에 큰 의미를 부여, 빅마켓 구단과 상대했다. '머니볼'의 사례만 보더라도 이전까지 부각되지 않던 부분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승리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 있다. 게다가 그것이 '저비용'이라면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프런트 오피스는 타 팀과 경쟁할 수 있는 선수단을 구성하고 그 선수단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분석파트를 구축해야 한다. 비슷한 전력의 팀을 상대할 때 51:49로 유리한 위치에서 경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다. 51:49는 승패에선 100:0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맛집은 보통 능력을 갖춘 요리사, 신선한 재료, 특색있는 메뉴, 시설환경 등 크게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요리사가 프런트라면 재료는 감독을 포함한 선수단일 거다. 메뉴는 그 구단의 시스템, 시설환경은 야구장을 비롯한 각종 인프라다. 데이터 분석은 많은 메뉴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51:49의 미세한 차이를 만드는 건 데이터 분석파트의 능력과 해당 파트와 선수단의 신뢰다. 미세한 차이가 만드는 결과는 절대 작지 않다. MLB 구단 중 데이터와 관련한 트렌드를 주도하는 건 다저스다. 다저스가 올 시즌에만 다른 구단보다 많은 10여명의 데이터 관련 인력을 고용, 운영하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손차훈 전 SK 와이번스 단장 정리=배중현 기자 2022.08.09 09:01
메이저리그

[손차훈의 리얼 MLB] 클럽하우스에서 하는 준비가 결과를 만든다

필자는 2013년 피터 오말리 전 LA 다저스 구단주와 박찬호의 도움으로 미국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전력분석파트 업무를 수행하며 값진 경험을 쌓았다. 그 인연을 이어온 덕분에 올해는 샌디에이고 프런트 오피스의 배려로 MLB 운영과 육성 시스템을 체험할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됐다. 부족하지만 필자의 경험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클럽하우스(Clubhouse)에선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일이 벌어진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KBO리그에선 클럽하우스의 중요성이 크지 않았다. 휴식하고 옷을 갈아입는 정도의 역할만 했다. 그래서 클럽하우스를 라커룸(locker room)이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라커룸은 비좁은 개인 락커와 치료용 침대 2~3개 정도가 마련된 트레이너실, 협소한 체력단련실로 구성됐다. 별도의 휴식 공간이 없어 선수들은 몸을 눕힐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어디서라도 잠시 눈을 붙이고 경기에 나서곤 했다. 지금은 클럽하우스에 전력분석실이 포함돼 있지만, 과거엔 아니었다. 당시엔 전력분석이라는 개념조차 없어 구단 기록원들이 기본적인 자료를 락커에 넣어주면 선수들이 한 번씩 살펴보는 게 전부였다. 2000년대 중반 전력분석이 팀 승패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강조되면서 각 구단은 전력분석팀을 구성하고, 전력분석실을 개설했다. 그러면서 비로소 클럽하우스라는 개념의 환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젠 선수단의 경기 전 상대 팀 분석이 일상화됐다. 클럽하우스 내 전력분석실에선 선수들의 다양한 미팅이 이뤄지고 있다. KBO리그 신축 구장인 창원 NC파크와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를 비롯해 인천 SSG랜더스필드까지 MLB급 클럽하우스가 들어섰다. 지어진 지 오래된 야구장에서도 클럽하우스를 꾸준히 개선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MLB 구단들은 상대를 분석하고 경기를 준비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클럽하우스를 활용하고 있다. 전력분석 파트에선 3연전 또는 4연전 첫날 상대 팀의 모든 투수 및 야수에 대한 자료를 만든다. 다음날 등판하는 선발 투수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건 KBO리그와 다르지 않다. 경기 전 가장 분주한 트레이닝 파트는 선수 개개인에게 필요한 치료를 쉴 틈 없이 제공한다. 클럽하우스에서 선수단이 가장 집중하는 공간은 비디오 룸과 실내연습장이다. 특히 선수들의 방문이 가장 활발한 비디오 룸에서는 투·타 코치들과 전력분석원이 선수와 자료를 공유하고 전날 경기 영상을 돌려본다. 그리고 서로의 의견을 나눈 뒤 실내연습장으로 이동, 토론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훈련을 진행한다. 클럽하우스에서의 훈련은 경기 중에도 계속된다. 더그아웃에 근접한 클럽하우스 내 비디오 룸과 배팅 케이지에선 보조 타격코치와 전력분석원이 상주, 당일 경기의 타격을 끝낸 선수와 함께 이전 타석의 타격 영상을 바로바로 살펴본다. 백업 선수들은 실내 배팅케이지에 설치된 배팅 기계를 상대 투수의 평균 구속에 맞춰 타격 훈련을 한다. 언제든지 출전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는 셈이다. 선수들 사이에선 실내 연습장에서의 훈련이 중요한 루틴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원정팀 클럽하우스에도 홈팀과 유사한 훈련 시설이 갖춰져 홈구장에서 했던 경기 준비 과정을 지속해서 할 수 있다. 샌디에이고에서 뛰는 김하성도 클럽하우스에서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하고 있다. 정규시즌 162경기를 뛸 체력은 물론이고, 경기 준비과정을 고려해 체력을 안배해야 한다는 걸 배워나가고 있다고 한다. MLB 선수들은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빅리그 무대를 밟는다. 어렵게 도착한 세계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도 쉼 없이 노력하고 준비한다. 그 모습을 직접 보니 MLB 선수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더욱 커졌다. KBO리그에서도 클럽하우스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한다. 타 구단과 차별화된 훈련 환경과 인적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준비 과정 없이 부진한 것과 노력하고도 부진한 건 달리 평가해야 한다. 프로이기에 결과에 대한 책임은 선수들의 몫이다. 그러나 선수를 관리하는 프런트의 역할도 중요하다. MLB의 클럽하우스처럼 선수단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최근 KBO리그 팀들의 클럽하우스에선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단순히 휴식하는 장소가 아닌 경기를 준비하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길 희망한다. 최창원 전 SK 와이번스 구단주의 말씀이 떠오른다. "준비 과정에 충실하세요. 그러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겁니다." 손차훈 전 SK 와이번스 단장 정리=배중현 기자 2022.07.2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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