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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창명 “‘13살 연하’ ♥프로골퍼와 재혼, 14년 장기연애 끝”(인터뷰)

방송인 이창명이 14년 간 사랑을 키워온 연인과 정식 부부가 됐다. 이창명은 지난 6월 연인이었던 프로골퍼 박세미와 혼인신고를 했다.이창명은 22일 일간스포츠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큰 책임감을 느낀다. 어렸을 때처럼 들떠있는 기분보다는 진중해지고, 더욱 조심스럽다. 무거우면서도 남다른 기분이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느낌이 이런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이창명은 박세미와 13살 차이다. 이창명이 연상이다. 이들은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으나 절친한 친구 부부가 증인이 되어 혼인신고를 했다. 혼인신고를 한 날은 박세미의 생일인 6월 18일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서울 옥수동에 신접살림을 꾸렸다. 지난 2022년 이창명은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출연 당시 전처와 이혼한 사실을 지난 14년 간 숨겨왔다고 털어놓으며, 현재는 여자친구와 열애 중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당시 비연예인이라 밝히기 조심스럽다고 말했던 상대가 바로 박세미였다.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이창명은 “아는 프로골퍼가 연습하는 곳을 찾았다가 만나게 됐다. 작은 친구가 커다란 모자를 쓴 모습이 기억이 난다”며 “당시 제가 ‘프로세요?’라고 물었는데, 그 질문이 당돌하게 느껴졌나 보다. ‘제가 프로인지 아닌지, 같이 한번 치시죠’라고 해서 만나게 됐다”고 첫 만남을 회상했다.장기연애는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이창명은 당시를 돌아보며 “제가 방송 활동이 많던 시기에 만나긴 했지만 이혼한 데다가 두 자녀가 있었기에 앞날이 창창하고 어린 선수인 박세미의 입장에서는 잃을 점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애틋해했다. 주위에 선뜻 만남을 알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난 2016년부터 2년여간 이창명이 음주운전 등 혐의 무죄를 받기까지의 과정도 함께 겪어냈다고 한다. 이창명은 “세월이 흐르며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함께 어려운 시간을 겪다 보니 이제 더 이상의 힘듦도 없을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올해 평생 함께할 결심이 섰고, 결실을 맺는 과정은 쏜살같이 지나갔다고도 말했다. 아내의 부모님을 만나 뵙고, 이창명의 자녀들과도 만나 동의를 구했다고 부연했다.이창명은 “아이들도 어느덧 성인이 됐다. 딸은 직장을 다니고, 아들은 입대했다. 아빠가 행복하면 된다며 우리의 만남을 흔쾌히 지지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영국에서 재직 중인 딸이 돌아오거나, 아들이 제대하면 신혼집은 ‘우리 가족의 집’이라고 뿌듯해 했다.혼인신고를 먼저 진행하게 됐지만, 번듯한 결혼식을 올릴 계획도 갖고 있다. 이창명은 “절차를 밟고 순리대로 살기를 모두가 원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긴 세월이 흘러버렸다. 순서보다는 마음이 먼저라고 생각해 혼인신고부터 했다”며 “아내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혀주고 웨딩마치도 꼭 울리고 싶다. 많은 것을 양보한 아내에게 지켜줘야 할, 같이 해야 할 일”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한편 이창명은 1992년 제2회 KBS 대학개그제 공채 9기로 데뷔해 리포터와 방송 MC, 라디오 DJ로 활동했다. 지난 2022년 케이블채널 다문화TV ‘이창명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로 활동을 재개했으며 지난 2월부터 OBS 라디오 ‘이창명의 특송’ 진행을 맡고 있다.박세미는 2001년 KLPGA에 입회를 했으며 지난해에는 MBC스포츠플러스·MBC에브리원 ‘스윙스타 인 사이판’에 출연했다.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 2024.08.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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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창명, ‘♥13세 연하’ 프로골퍼와 결혼

방송인 이창명이 13세 연하 프로골퍼 박세미와 결혼했다.22일 방송계에 따르면 이창명은 지난 6월 박세미와 혼인신고를 마쳤다. 경기도 일산에 거주하던 이창명은 혼인신고 후 박세미와 서울 옥수동에 신접살림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신부 박세미는 KLPGA 정회원인 프로골퍼다. 1982년 6월 18일생으로, 이창명과 13살 차이를 극복하고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들은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으나 대신 절친한 친구 부부가 증인이 되어 박세미의 생일 당일 혼인신고를 했다. 1995년 전처와 결혼해 1남 1녀를 둔 이창명은 지난 2022년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이혼한지 15년 차라고 직접 고백한 바 있다.한편 이창명은 1992년 제2회 KBS 대학개그제 공채 9기로 데뷔해 리포터와 방송 MC, 라디오 DJ로 활동했다. 지난 2022년 케이블채널 다문화TV ‘이창명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로 활동을 재개했으며 지난 2월부터 OBS 라디오 ‘이창명의 특송’ 진행을 맡고 있다.박세미는 2001년 KLPGA에 입회를 했으며 지난해에는 MBC스포츠플러스·MBC에브리원 ‘스윙스타 인 사이판’에 출연했다.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 2024.08.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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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경색 사망 故 방실이 오늘(22일) 발인…명곡 남기고 영면

17여 년 뇌경색 투병 끝에 사망한 가수 방실이가 22일 발인을 거쳐 영면에 든다. 22일 낮 12시 인천 강화군 참사랑장례식장에서 방실이의 발인식이 엄수된다. 발인식에는 방실이의 가족과 함께 생전 절친했던 동료 선후배 가수들이 참석한다.방실이는 지난 20일 오랜 뇌경색 투병 끝에 인천 강화의 한 요양병원에서 향년 6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방실이는 2007년 과로와 몸살로 병원 치료를 받던 중 뇌경색 진단을 받고 투병을 이어왔다. 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애석하게도 다시 무대에 오르지 못한 채 영면에 들었다. 방실이의 사망에 이동준, 현당, 김흥국, 한혜진, 이재영 등 생전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가요계 동료 선후배들이 안타까움 속 추모의 목소리를 전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방실이는 다시 일어나 무대에 오르고자 하는 열망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고인은 2022년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이동준 편’ 출연 당시 무대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방송에서 방실이는 전신이 마비된 데 이어 당뇨 합병증인 망막증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근황을 공개해 안타까움을 샀다. 1963년 강화에서 태어난 고인은 강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82년 미8군 부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시원스러운 가창력과 화려한 율동으로 인기를 끌던 그는 1985년 박진숙, 양정희와 함께 국내 유일의 여성 트리오 서울 시스터즈를 결성, 1986년 ‘첫차’를 시작으로 ‘뱃고동’, ‘청춘열차’ 등을 연이어 성공시켰다. 1990년부터 솔로로 활동한 그는 솔로 데뷔곡 ‘서울 탱고’로 일약 스타가 됐다. 이후 1992년 2집 ‘여자의 마음’까지 유행시키며 스타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진 그는 1994년 결혼 후 연예계를 떠났다가 2000년 다시 복귀했다.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이름도 묻지 마세요 이리저리 나부끼며 살아온 인생입니다…세상의 인간사야 모두가 모두가 부질없는 것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 (‘서울탱고’ 가사 中)그가 떠난 자리엔 생전 남긴 주옥 같은 노랫말만 쓸쓸히 남았지만, 노래는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4.02.22 06:00
연예일반

‘서울탱고’ 故방실이, 17년 뇌경색 투병 끝 별세…가요계 ‘침통’[종합]

서울 시스터즈 출신 가수 방실이가 17년여의 뇌경색 투병 끝에 사망했다. 향년 61세.20일 가요계에 따르면 방실이는 오랜 뇌경색 투병 끝 이날 오전 인천 강화의 한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방실이는 2007년 과로와 몸살로 병원 치료를 받던 중 뇌경색 진단을 받고 투병을 이어왔다. 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애석하게도 다시 무대에 오르지 못한 채 영면에 들었다. 가요계는 침통한 분위기다. 이동준, 현당, 김흥국 등 생전 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가요계 동료 선후배들이 안타까움 속 추모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지인들에 따르면 방실이는 다시 일어나 무대에 오르고자 하는 열망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고인은 2022년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이동준 편’ 출연 당시 무대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그는 병실 벽에 붙여놓은 전성기 시절 사진을 바라보며 “병실에 붙여놓고 1년 되면 다시 저렇게 된다 이 생각을 했다. 그런데 (병이) 너무 긴 거야. 내 주변에서 이렇게 해줬는데, 실망하게 하면 안 되겠다, 더 정신 차리고 그게 16년이다. 금방 다시 노래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간이 흐를 줄 몰랐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유쾌하게 방송하던 모습이 선한데 안타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편히 쉬세요” 등의 반응을 보이며 추모했다. 방실이의 부고가 전해진 뒤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고인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1963년 강화에서 태어난 고인은 강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82년 미8군 부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시원스러운 가창력과 화려한 율동으로 인기를 끌던 그는 1985년 박진숙, 양정희와 함께 국내 유일의 여성 트리오 서울 시스터즈를 결성, 1986년 ‘첫차’를 시작으로 ‘뱃고동’, ‘청춘열차’ 등을 연이어 성공시켰다. 1990년부터 솔로로 활동한 그는 솔로 데뷔곡 ‘서울 탱고’로 일약 스타가 됐다. 이후 1992년 2집 ‘여자의 마음’까지 유행시키며 스타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진 그는 1994년 결혼 후 연예계를 떠났다가 2000년 다시 복귀했다. 2005년 한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짜 결혼을 고백해 화제가 되기도 한 고인은 복귀 후에도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무대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줬으나 뇌경색이라는 뜻하지 않은 병마를 만나 무대를 떠났다. 뇌경색 진단 후 적극적 재활치료로 위기를 넘긴 고인은 그해 9월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삶의 의지를 되찾은 모습을 공개해 뜨거운 응원을 받았으며, 연말 방송 무대에 깜짝 출연해 관객과 동료 가수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고인의 병세는 점차 악화됐고,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생전 고인은 ‘마이웨이-이동준 편’에 출연해 뇌경색 투병으로 전신이 마비된 데 이어 당뇨 합병증인 망막증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근황을 공개하기도 했다.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이름도 묻지 마세요 이리저리 나부끼며 살아온 인생입니다…세상의 인간사야 모두가 모두가 부질없는 것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 (‘서울탱고’ 가사 中)그가 떠난 자리엔 생전 남긴 주옥 같은 노랫말만 쓸쓸히 남았지만, 노래는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다. 고인의 빈소는 인천 강화군 참사랑장례식장 101호실에 마련됐다.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4.02.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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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뇌경색 투병’ 故방실이 누구? 서울 시스터즈 ‘첫차’로 1980년대 풍미한 디바

서울 시스터즈 출신 가수 방실이가 17년여의 뇌경색 투병 끝에 사망했다.20일 가요계에 따르면 뇌경색으로 투병하고 있던 가수 방실이가 이날 오전 인천 강화의 한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1세.고인은 1963년에 태어나 강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82년 미8군 부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시원스러운 가창력과 화려한 율동으로 인기를 끌던 그는 1985년 박진숙, 양정희와 함께 국내 유일의 여성 트리오 서울 시스터즈를 결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확장하기 시작했다.서울 시스터즈는 1986년 ‘첫차’를 히트시키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뱃고동’, ‘청춘열차’도 연이어 히트했다. 하지만 박진숙, 양정희가 결혼으로 팀을 떠나면서 서울 시스터즈는 해체됐고, 고 방실이는 1990년부터 솔로로 활동하게 된다.솔로가 돼서도 고 방실이의 성공은 계속됐다. 솔로 데뷔곡인 ‘서울 탱고’는 방실이 특유의 시원한 가창력과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가사로 중장년층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크게 히트했다. 이후 1992년 2집 ‘여자의 마음’까지 유행시키며 스타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폭발하는 성량과 대비되는 담백한 창법은 고 방실이만의 특장점이었다.그렇게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을 풍비한 그는 1994년 사업가와 결혼하며 한동안 연예계를 떠났다가 2000년 다시 복귀했다. 2002년 ‘뭐야 뭐야’를 또 한 번 성공시키며 건재를 과시했고, 2005년 ‘아! 사루비아’로 인기를 이어나갔다. 고인의 불세출 히트곡 ‘첫차’는 2007년 슈퍼주니어-T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다.다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2007년 뇌경색 진단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17여년에 걸쳐 투병한 끝에 2024년 2월 20일 영원히 눈을 감았다. 생전 고인은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뇌경색 투병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근황을 공개하기도 했다. 고 방실이의 눈 수술을 앞두고 평소 그와 절친했던 이동준은 자선 디너쇼에서 모은 후원금을 기부하기도 했다.고인의 빈소는 인천 강화군 참사랑장례식장 101호실에 마련돼 있다.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4.02.2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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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가수 방실이, 뇌경색 투병 중 별세

서울시스터즈 출신이자 솔로로도 히트한 가수 방실이가 사망했다. 향년 61세.20일 가요계에 따르면 뇌경색으로 투병하고 있던 가수 방실이가 이날 오전 인천 강화의 한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방실이는 1980년대 미8군 부대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5년 여성 3인조 그룹 서울시스터즈를 결성해 활동했다. 1990년부터는 솔로로 전향해 ‘서울 탱고’, ‘첫차’, ‘뱃고동’ 등 여러 히트곡을 남겼다.빈소는 인천 강화군 참사랑장례식장 101호실에 마련돼 있다.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4.02.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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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방미, 한류 스타서 美 부동산 투자자로… 성공 노하우 공개(마이웨이)

1980년대 대표 디바 방미의 인생 스토리가 공개된다.10일 방송되는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는 1980년대 대표 디바이자 원조 한류 스타 가수 방미가 파란만장한 마이웨이 인생사를 들려준다.방미는 18살 어린 나이에 공채 코미디언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는 데뷔곡 ‘날 보러와요’로 스타덤에 올라 국내 가요 무대는 물론 국제 가요제까지 수상하며 원조 한류 스타로 등극했다. 그러나 방미는 승승장구하던 가요계를 떠나 90년대 돌연 미국행을 선택했다. 이후 방미는 성공한 부동산 투자자로 180도 변신해 대중들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한길만 가던 사람이 길을 바꾼다는 건 쉽지 않아요. 하지만 가보면 이보다 더 좋은 길이 있지 않을까요?”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 노하우를 공유하는 구독자 23만 명의 인기 크리에이터로서 새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공개한다.이날 방송에서 방미는 김범룡, 민해경과 만남을 가진다. 현역 가수로 무대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김범룡은 “어떻게 보면 가요계에서 인재를 하나 잃은 거죠”라며 자신과 달리 방미가 가수로서 무대를 떠나버린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표한다. 민해경은 오랜 시간 무대를 떠난 후 동료들이 그리웠을 방미를 위해 장은숙, 윤시내, 최진희 등 동시대에 함께 무대를 섰던 동료들을 얘기하며 추억에 잠긴다. 또한 방미와 민해경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동반 무대 영상을 함께 보며 추억의 연결고리를 더하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가수 방미의 인생 스토리는 10일 오후 10시 40분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공개된다. 박로사 기자 terarosa@edaily.co.kr 2023.12.1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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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보이지 않으면 끝나는 거야” 김민희는 왜 노출 강요를 받았나

배우 김민희가 노출 영화 강요를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김민희는 최근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6살에 아역 배우로 데뷔한 이래 하루에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을만큼 사랑받았던 과거에 대해 이야기했다.김민희는 드라마 ‘달동네’ 속 똑순이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부친이 국회의원 출마를 앞두고 세상을 떠나면서 출연료를 받으면 바로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김민희는 집에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모친이 공병을 판 돈으로 마련해준 택시비를 타고 일을 다녔다며 “나는 지금도 ‘엄마 그건 학대였어’라고 말을 한다”고 털어놨다.김민희는 또 똑순이 이미지를 벗지 못 해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한창 야한 영화가 유행할 때였다. 주위에서 ‘너는 이미지가 강해서 벗어야 해’, ‘여자로 보이지 않으면 끝나는 거야’라고 했다.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까지 왔다”고 고백했다.김민희는 최근 임지훈의 ‘상처가 아무는 날’로 신곡을 발표했다.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3.10.25 07:30
연예일반

‘마이웨이’ 지영옥 “지인에게 신용카드 5개 빌려줘… 집도 날렸다”[TVis]

코미디언 지영옥이 과거 지인에게 돈을 빌려줬다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워졌던 일을 고백했다.지영옥은 17일 오후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과거 돈을 잘 빌려주곤 했다고 털어놨다.“그때 내가 신용이 좋았다”고 운을 뗀 지영옥은 “지인이 역삼동에 건물이 들어간다고 하더라. 사업하느라 접대를 해야하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카드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 사람이 내 신용카드 5개를 다 아작냈다”고 말했다.이어 “안 갚더라. 전화를 했는데도 안 받았다. 그렇게 집을 날렸다. 가진 게 몸 밖에 없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지영옥은 과거 인기 개그 코너 ‘쓰리랑부부’에서 집주인 역으로 맹활약했다.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3.09.18 07:33
연예일반

황기순 “원정도박 後 밥 먹을 기회 생기면 터질 때까지… 빈민가 전전해” (마이웨이)

개그맨 황기순이 도박에 빠져 살았던 과거에 대해 고백했다. 지난 10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서는 황기순이 출연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황기순은 만 19세 나이로 MBC 개그 콘테스트 2기에서 금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연예계 데뷔를 했다. 그는 전성기 때 쉽이 못해도 한 달에 2~3000만 원이 됐었다고 회상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그 돈을 절반씩만 저축했어도 좋았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황기순은 개그맨으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중 지난 1997년 뉴스를 통해 해외 원정도박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안겼다. 이 때문에 황기순은 2년간 필리핀에서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 황기순은 도박에 빠지게 된 계기에 대해 “경조사에서 고스톱을 쳤는 데 너무 재미있었다. 돈을 잃어도 재밌게 놀다가 집에 갔었다”면서 “난 도박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을 못했다. 본전을 위채 찾았던 자리가 몇 차례 반복되다 보니 금전적으로 상황이 나빠졌다”라고 밝혔다. 특히 30분 만에 돈 8천 달러(한화 약 1천만 원)가 없어진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던 황기순은 “내가 뉴스에 나왔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했다”라고 털어놨다. 그렇게 빈민가를 전전하면서 숨어 지냈던 황기순은 “그 와중에도 배가 고프더라. 김치라도 구해지면 무생채처럼 찢어서 아껴 먹었다. 밥 먹을 기회가 생기면 배가 터질 때까지 쑤셔 넣었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3.09.1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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