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닭띠 스타 신년 인터뷰] 류승우, “동생 권창훈·황희찬, 내게 자극이 된다”
"닭의 해를 맞아 저도 '싸움닭'으로 변해 보려고요."지난 2일 인천 영종도의 인천국제공항에서 헝가리도 출국하기에 앞서 만난 93년생 '닭띠' 류승우(24·페렌츠바로시)의 새해 다짐은 '전투모드'였다. 류승우가 올해 이렇게 선언한 것은 '재도약'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는 새벽을 가장 먼저 알리는 닭의 기운을 받아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빌 일만 생각하고 있다."2017년, 왠지 느낌이 좋아요. 게다가 '붉은 닭'의 해라고 하니 힘이 더 솟는 것 같아요. 제 축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뛸 겁니다."류승우의 말투는 견고했다. 그는 3년 전 큰 기대를 받으며 유럽 무대로 진출했다. 2014년 1월 독일 분데스리가(1부리그) 바이어 레버쿠젠에 입단할 때마다 해도 당시 팀 동료이자 간판 골잡이였던 손흥민(25·토트넘 홋스퍼)의 뒤를 이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리틀 손흥민'이 되는 길을 멀고도 험했다. 류승우는 2013~2014시즌 대부분을 벤치에서 보내며 정규리그 2경기를 뛰는 데 그쳤다. 결국 2014~2015시즌에는 츠바이트리가(2부리그)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로 임대를 떠났다. 이곳에서 16경기 4골을 뽑아내며 존재감을 보였지만 레버쿠젠에는 자리가 없었다. 2015~2016시즌 전반기 내내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류승우는 후반기 아르마니아 빌레펠트(10경기 출전)로 재차 임대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그는 지난해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이후 또다시 행선지를 고민했다. 레버쿠젠과는 2018년까지 계약돼 있지만 벤치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데스리가에서도 러브콜을 받았지만 그는 지난해 9월 유럽의 변방 리그로 불리는 헝가리 리그 임대를 결정했다."지난 2~3년간 가치를 증명하지 못해 마음 고생을 했어요. 그래서 자존심보다는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곳을 찾았죠. 경기에 나설 수 있는 페렌츠바로시에서 '재도약의 해'를 꿈꾸고 있습니다."'싸움닭'으로 변신을 꿈꾸는 류승우의 정유년이 궁금하다. '재도약'이 간절한 류승우는 다행히 페렌츠바로시에서 입지를 굳혔다.독일 국가대표 출신으로 함부르크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이상 독일)의 사령탑을 지낸 토마스 돌(51) 감독의 도움이 컸다. 류승우의 재능에 반한 돌 감독은 리우 올림픽이 직후 수 차례 레버쿠젠 구단에 전화를 걸어 임대를 추진할 만큼 적극적이었다.전폭적인 신뢰에 힘입은 류승우는 지난해 9월 정규리그 데뷔전인 MTK와 경기에서 데뷔 골을 쏘아올렸다. 꾸준히 출전 기회를 얻고 있는 그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며 현재까지 10경기(선발 6경기) 1골을 기록 중이다.국가대표급 동료들도 류승우를 돕고 있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를 연고로 하는 페렌츠바로시는 정규리그 우승을 무려 29회나 달성한 '헝가리의 바이에른 뮌헨'이다. 지난 시즌에도 정상에 오른 페렌츠바로시는 '헝가리 박지성'이라고 불리는 졸탄 게라(38)를 비롯해 총 8명의 헝가리 대표가 포진해 있다. 다음은 류승우와 일문일답. -유럽 무대를 처음 밟던 2014년 1월의 류승우와 현재, 2017년 1월의 류승우는 무엇이 달라졌나."딱 한 가지, 승부근성이 생겼다. 이전의 나는 쉽게 물러섰다. 유럽 생활을 하며 승부근성이 없으면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못하는 편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오기가 생겼다. 올해 '싸움닭'으로 거듭나려는 이유다." -헝가리 무대 적응은 마친 것 같다."헝가리 리그는 분데스리가보다 수준이 낮지만 템포가 빠르고 몸싸움이 거칠다. 감독님과 동료들 덕분에 빨리 익숙해 졌다. 독일은 텃세를 부리는 선수들이 적지 않은데 헝가리는 완전 가족 분위기다. 먼저 다가와서 말 건네 준다. 감독님이 독일 출신이라 의사소통도 편하다." -친한 선수도 많겠다."팀의 '맏형' 게라는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었다. 당시 한국 선수들과도 자주 마주쳐서 그런지 나만 보면 '안녀엉', '설기현' 등의 한국말로 인사한다. '설기현'은 발음이 마음에 들어 입에 붙은 한국말인 것 같다. 다른 선수들과 두루 친하다. 그런데 다들 한국어 발음이 안 되다보니 나를 부르는 이름이 제 각각인 게 재밌다. 류, 료, 리오 등으로 부른다.(웃음)" -올 시즌 목표는."10골을 넣고 싶다. 비록 현재는 1골에 머무르고 있지만 2월 재개되는 후반기가 남았다. 최대한 많은 골을 넣어 팀의 리그 우승에 보탬이 되고 싶다." 류승우에게는 유럽에서 자리잡는 것 외에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울리 슈틸리케(63·독일)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에 승선하는 것이다. 류승우는 올림픽팀의 핵심 멤버로 리우 올림픽에서 맹활약했지만 성인대표팀 경력은 아직 없다. -올해는 슈틸리케호 발탁도 생각하나."항상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목표다. 물론 작년 이맘 때는 리우 올림픽에만 초점을 맞췄지만 올해는 다르다. 대표팀에 들어가고 싶다." -리우 올림픽에 함께 출전했던 권창훈(23·수원 삼성)과 황희찬(21·잘츠부르크)은 이미 대표팀에서 뛰고 있다."동생들이지만 질투가 나기보다는 자극과 동기부여가 된다. 대표팀에 못 들어간 건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응원하면서 나도 대표팀에 뽑힐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외국 생활을 하다보면 어려움이 많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리를 즐긴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생긴 취미다. 직접 장을 보고 먹고 싶었던 것들을 직접 해 먹는다. 내 된장찌개와 참치볶음밥을 먹어 본 사람들은 칭찬 일색이다. 이제는 내 요리를 먹어 줄 여자친구만 있으면 좋을텐데….(웃음)" -2017년 각오는."선수가 가장 불행할 때는 경기에 나서지 못할 때다. 경기에 못 나오는 선수들을 보면 '내가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2017년 팀과 대표팀에서 모두 활약하고 싶다. 붉은 닭의 해인데 대표팀 유니폼이 빨간색이라서 더 느낌이 좋다. '붉은 싸움닭'이 됐으면 좋겠다." 인천공항=피주영 기자
2017.01.09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