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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동진 영화만사] ‘뭉크. 사랑, 영혼 그리고 뱀파이어 여인’이 그려낸 극장가의 새로운 풍경

전업 주부로 살아 온 H씨(60)는 영화 마니아다. 엄청난 수준이거나 강박적일 정도는 아니다. 그는 비교적 예술영화를 자주 찾아 보는 편이며 그 중에서도 예술가를 다룬 다큐나 극영화를 좋아 한다. H씨가 최근 선택한 영화 중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뭉크. 사랑, 영혼 그리고 뱀파이어 여인’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다. 뭉크 미술관의 제작협력으로 만들어진 노르웨이 다큐고 영어 버전이다. 도슨트에 해당하는 다큐 속 화자 잉그리드 볼소 베르달은 대사를 영어로 한다. 이 다큐는 수입배급사 일미디어가 지난 4월부터 오는 12월까지 이어 가는 연속 다큐멘터리 ‘세기의 천재 미술가 / 세계의 미술관’ 시리즈 중 다섯 번째로 개봉된 작품이다. 극장 개봉 다큐로서는 이색적인 기획이다. 이 다큐 시리즈는 총 9편의 작품으로 준비됐으며 지금까지 ‘보티첼리, 피렌체와 메디치’ ‘라파엘로 예술의 군주’ ‘피렌체와 우피치 미술관’ ‘제프 쿤스, 그 은밀한 초상’ 그리고 ‘뭉크. 사랑, 영혼 그리고 뱀파이어 여인’ ‘티치아노,색채의 제국’ 등 여섯 편을 선보였다. 이달부터 연말까지 매달 한편 씩 더, 곧 ‘프리다, 삶이여 영원하라’ ‘보르미니와 베르니니, 완벽을 위한 경쟁’ ‘성 베드로 대성당과 로마의 교황청 대성당들’을 개봉할 예정이다. 9편의 다큐멘터리, 그것도 미술 작품과 화가를 다루는 다큐를 매달 한번씩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것은 작금의 극장환경에서 실로 무모한 일일 수 있다. 실제로 이들 작품의 관객 수는 최대 5000명 미만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미술 애호가들, 영화 마니아들, 다큐멘터리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 조금씩 입소문이 나고 있으며 뉴 노멀 시대의 극장가가 개척해야 할 새로운 예술영화 시대의 한 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건 어색하고 낯선, 잘못된 시그널이 아니다. 앞으로의 극장은 아주 큰 돈을 들인 블록버스터 아니면 극단적으로 초저예산을 들인 에술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주요한 상영작이 되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 중간의 작품은 모두 OTT가 흡수할 것이다.H씨는 ‘뭉크, 사랑, 영혼 그리고 뱀파이어 여인’에서 실로 많은 것을 얻고 또 배웠다. 그는 뭉크하면 ‘절규’ 정도의 그림을 그린 화가 쯤으로 알았지만 이 다큐를 통해서 ‘절규’가 그려진 곳, 그 공간의 배경까지 알게 됐다. 에드바르트 뭉크는 어릴 때 어머니, 누나, 동생 등 거의 전부를 폐결핵으로 잃은 후 죽음의 공포를 평생의 주제로 삼아 왔으며 여동생은 정신병까지 앓았는데 그 병원이 노르웨이 항구가 보이는 에게베르크 언덕에 있었다. 그림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남자가 서있는 곳이 바로 거기, 에게베르크 언덕 길이라는 것을 이번 다큐로 알게 됐다.‘뭉크. 사랑, 영혼 그리고 뱀파이어 여인’은 실로 흥미로운 얘기들로 가득하다. 뭉크에게는 평생 뮤즈가 되는 여인이 세 명이 있었는데 밀리 탈로, 다그니 율라 그리고 툴라 라르텔이었다. 뭉크의 젊은 시절 곧 1890년대의 세기말은 헨릭 입센(‘인형의 집’)이나 한스 예거(‘보헤미안의 자서전’)와 같은 급진적 작가들, 무정부주의자들이 노르웨이 문화계를 휩쓸던 때였다. 여성주의가 무르익기 시작했고 자유연애가 횡행했으며 새로운 의학 약품의 개발과 함께 약물 파티까지, 마치 1960년대 미국의 히피들을 연상케 하는, 1890년대식 노르웨이 보헤미안들의 시대가 열렸던 때였다. 뭉크는 그 한 가운데에 서있었던 작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인간의 신체를 해부했다면 뭉크는 인간의 정신을 헤집고 영혼의 고통이 지닌 보편성을 찾아 내려 했던 인물이다. 뭉크는, 포착할 수 없는 진리는 고통 그 자체라고 봤으며 그 같은 주제의식을 ‘내면의 목소리’나 ‘마돈나’ ‘그 다음 날’ ‘뱀파이어’ ‘절규’ 같은 작품에 담아 냈다. 그럼에도 그에겐 끊임없는 여성 편력이 이어졌으며 다그니 율라는 다른 남자에게 머리에 총을 맞아 살해됐고 툴라 라르텔은 뭉크에게 총을 쏴 그의 왼 손 중지가 잘려 나가는 일을 겪기도 했다. 그 모든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아 낸 작품이 바로 ‘뭉크, 사랑, 영혼 그리고 뱀파이어 여인’이다. 뭉크 작품을 거의 일람할 수 있도록 작품 촬영에 공을 들였고 그가 남긴 다른 많은 기록들, 일기와 습작 노트, 영사기로 촬영한 필름, 각종 스틸 사진 등을 공들여 담아 냈다. 다큐는 역시 푸티지의 힘, 자료 화면의 힘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뭉크 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코멘트나 미술사가들의 논평, 그 인터뷰도 지루하지 않게 잘게 썰어서 여러 번으로 나누어 구성돼 있다. 뭉크 미술관 외에도 노르웨이 베르겐(우리로 치면 부산)의 코데 미술관 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좋은 영화 글은 해당 영화를 찾아보게 하고 결국은 그 영화를 사랑하게 만든다. 좋은 다큐는 해당 내용의 인물이나 사건을 다시 추적하게 만들고 그들이 존재했던 공간을 찾아가게 한다. ‘뭉크. 사랑, 영혼 그리고 뱀파이어 여인’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노르웨이로 가고 싶게 한다. ‘뭉크. 사랑, 영혼 그리고 뱀파이어 여인’의 개봉은 작금의 극장가가 그려 낸 이상하지만, 신선한 영화의 풍경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2024.10.10 06:05
드라마

‘정년이’→’정숙한 세일즈’, 하반기에도 여성 서사 풍년 [IS포커스]

여성 서사를 앞세운 드라마가 올 하반기 안방극장을 공략한다. 단순히 스토리만이 아니라 등장인물도 여배우로만 구성된 작품들이 많아진 모습이다. 여성 서사가 방송계에선 이미 주류 콘텐츠로 자리 잡았단 분석이다. 오는 10월 방송하는 tvN 새 금토 드라마 ‘정년이’는 여배우들의 활약이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후를 배경으로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소리 천재 정년이를 둘러싼 경쟁과 연대를 그린 시대극이다. 국극은 모든 배역을 여성들로만 구성한 창극이다. 이에 국극 단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정년이’ 캐스팅 역시 여배우들로 꾸려졌다. 배우 김태리가 주인공 윤정년 역을 맡고, 신예은(허영서 역), 라미란(강소복 역), 정은채(문옥경 역), 김윤혜(서혜랑 역), 문소리(서용례 역) 등이 출연한다. 배우 이덕화, 류승수 등 남성 배우가 아예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주요 배역은 모두 여배우가 도맡았다.‘정년이’의 원작은 2019년 네이버에 연재된 동명의 인기 웹툰이다. 여성 국극이라는 신선한 소재와 매력적인 캐릭터, 캐릭터 간 관계성 등이 호평을 얻으면서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졌다. 드라마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윤정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다른 여성 캐릭터들의 관계성이 극적 재미를 높이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작진이 공개한 등장인물 소개에 따르면, 윤정년과 허영서는 매란국극단 안에서 떠오르는 소리꾼으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윤정년과 극단의 단장인 강소복은 엄격한 사제 관계를, 윤정년과 극단의 스타 문옥경은 후계 구도를 그리며 다채로운 이야기를 예고했다.10월 12일 첫 방송되는 JTBC ‘정숙한 세일즈’도 여성 캐릭터를 주축으로 한 드라마다. 배우 김소연, 김성령, 김선영, 이세희 등 여배우 4명이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제작진에 따르면 ‘정숙한 세일즈’는 수동적인 삶에서 주체적인 삶으로 나아가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성(性)이 금기시되던 1992년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성인용품 방문 판매에 뛰어든 여성 4인방의 이야기다.극 중 한정숙(김소연)은 불성실한 남편을 둔 주부, 김성령은 꼰대 남편을 둔 주부, 서영복(김선영)은 다둥이 엄마, 이주리(이세희)는 싱글맘이라는 설정인데, 다양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직접 경제활동에 뛰어들어 자립에 도전한다. 동시에 성인용품 방문 판매라는 소재를 끌어옴으로써 여성들의 성에 관한 한층 진솔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여성 서사는 방송계에서 더 이상 드문 소재는 아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낮과 밤이 다른 그녀’, ‘우리, 집’, ‘굿 파트너’ 등 여성 캐릭터가 메인인 다양한 작품이 쏟아졌다. 세 작품 모두 성적 면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다. ‘우리, 집’은 최고 시청률 6.2%,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11.7%로 두 자릿수 기록을 세웠다. 지난 20일 종영한 ‘굿 파트너’는 15.2%로, 올해 SBS 금토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이처럼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이 연이어 좋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하반기에도 여성 서사가 트렌드를 이어가는 흐름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여성주의적 시각이 강조되면서 워맨스를 보여주거나 더 다양한 관계성을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도 과거에 비해 많아진 분위기”이라고 짚었다.다만 여성 서사를 앞세운 것에 되려 비판 요인으로 작용한 경우도 있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우씨왕후’는 두 번 왕후에 오른 우씨왕후를 모티브로 주체적인 여성상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고 했으나 불필요한 노출신과 베드신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며 당초 의미가 퇴색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 서사의 기준이 단순히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을 뜻하는 게 아니라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묘사하고 어떤 서사와 관계성으로 만들어내는지에 따라 호평이 될 수도, 혹평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정 평론가는 “여성 서사라고 홍보하지만 실제로 면면을 들여다봤을 때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앞으로 공개될 ‘정년이’와 ‘정숙한 세일즈’는 작품 설명만 보면 여성의 주체성을 그린 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아 기대된다. 다만 어떻게 구현됐는지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2024.09.26 05:55
연예일반

김희선X이혜영→장나라X남지현까지…요즘 女-女 투톱 트렌드

최근 여자 주인공을 투톱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이 눈에 띈다. 김희선, 이혜영 주연의 ‘우리, 집’부터 이정은, 정은지 주연의 ‘낮과 밤이 다른 그녀’. 오는 7월 방송하는 장나라, 남지현 주연의 ‘굿 파트너’까지 역할도 관계성도 다양한 여여 케미가 하나의 트렌드가 된 모습이다.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18일 “요즘은 브로맨스나 워맨스처럼 동성 간의 우정이나 연대를 다루는 흐름이 많아지고 있다. 아무래도 남녀 관계는 사랑 베이스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남남, 여여 관계가 되면 그보다는 조금 더 폭넓은 이야기, 또는 뜻을 같이하는 관점으로 케미가 엮이기 때문에 다른 색깔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지난달 24일 첫 방송한 MBC 금토드라마 ‘우리, 집’은 자타 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가정 심리 상담의인 노영원(김희선)이 협박범에게 위협받게 되면서 추리소설 작가인 시어머니 홍사강(이혜영)과 공조하는 이야기를 담은 휴먼 블랙코미다.‘우리, 집’의 재미는 김희선과 이혜영의 ‘내 편인 듯, 내 편 아닌 듯’한 공조다. 고부 관계로 등장하는 두 사람은 가족을 위협하는 누군가의 정체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얼떨결에 협력하는 관계가 되지만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 시종일관 충돌하는데 바로 이 부분이 ‘우리, 집’의 재미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예컨대 남편 최재진(김남희)의 바람을 의심하는 노영원에게 아들 바보인 홍사강이 “객관적으로 우리 재진이가 좀 잘생기긴 했잖아”라고 말하며 티키타카를 벌이는 에피소드 등이다. ‘멕이는 화법’으로 서로가 불편한 공조를 하는 김희선과 이혜영의 케미는 드라마에서 보기 드물었던 고부 관계다.지난 15일 첫 방송한 JTBC 새 토일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배우 이정은과 정은지가 투톱으로 2인 1역 케미를 보여준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노년이 돼버린 취준생 이미진이 능력캐 검사 계지웅(최진혁)과 만나며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다. 밤의 20대 이미진을 정은지가, 낮이 되면 50대가 되는 이미진/임솔을 이정은이 연기한다.이미진과 계지웅의 로맨스가 주요 스토리라고 할 수 있지만, 작품의 묘미는 20대와 50대를 왔다 갔다하며 겪는 이미진 캐릭터의 좌충우돌과 코믹 연기다. 특히 내면은 20대고 겉모습만 바뀌는 설정이기 때문에 이정은, 정은지 두 배우의 말투와 제스처 등의 싱크로율을 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다. MBC, JTBC에 이어 SBS도 여여 케미 드라마를 선보인다. 오는 7월 14일 방송되는 ‘굿파트너’는 배우 장나라와 남지현이 투톱으로 워맨스를 펼칠 예정이다. ‘굿파트너’는 이혼이 천직인 스타변호사 차은경(장나라)과 이혼은 처음인 변호사 한유리(남지현)의 휴먼 법정 드라마다.‘굿파트너’ 제작진에 따르면 장나라, 남지현은 직장 상사와 신입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제작진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한유리가 처음엔 상극인 듯 보이지만 두 사람이 서로 자극을 주고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협력한다”며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팀장과 신입의 관계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정 평론가는 “그동안 브로맨스를 그린 서사는 많았지만 워맨스는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과거에는 주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의 관계성이 많이 그려졌는데,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들이 많아졌다. 사회적으로 여성주의적 시각이 강조되고 있고, 콘텐츠 자체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최근 여여 이야기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여여 관계라도 서로 도와주거나 연대하고 뜻을 모아나가는 것을 시청자들도 더 원하고 보고싶어하는 흐름”이라고 짚었다.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2024.06.19 06:30
연예일반

[오동진 영화만사] ‘밀수’는 되고 ‘바비’는 안되는 이유

한국의 극장가 영화 중 일부가 고전하고 있는 것과 일명 ‘묻지마 칼부림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는 진실인가 괴담인가. 둘 중 어느 것이 맞다라고 확정할 수는 없겠지만 반드시 곰곰히, 그리고 꼼꼼히 생각해 봐야 할 애기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모두 여성성, 여성주의, 페미니즘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칼부림 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에 불만을 지닌 20대 남자들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벌이는 폭력 범죄이고 대체로 이들은 ‘일베’들이다. 한국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이 자신들과 같은 남자들의 전적인 희생 때문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2,30대 남성 관객들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이번 여름 영화는 류승완의 ‘밀수’와 할리우드 영화 ‘바비’로 보여진다. ‘밀수’는 8일까지 378만명을 모았지만 아직 ‘배가 고픈’ 수준이다. 류승완 감독은 조심스럽게 “젊은 층 관객의 문화가 이렇게나 바뀌었구나 실감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화 ‘바비’의 국내 관객은 53만명 가량. 이 정도면 그냥 망한 수준이다. ‘바비’는 미국에서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글로벌 흥행 매출이 8월3일 기준으로 10억3148만 달러다. 우리 돈으로 1조3472억원이 넘는다. 한국과 어마어마한 차이이다.‘밀수’는 케이퍼 무비 즉 도둑 영화, 강탈 영화 중에서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여성영화로 분류될 만하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을 여성판으로 만든 셈이고 ‘오션스11’을 여성들로 바꾼 영화 ‘오션스8’과 필적할 만하다. ‘밀수’는 특히 마지막 장면으로 여성들이 승리했으며 혹은 승리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있는데 그건 극중 권상사(조인성)이 모습 때문이다. 그는 한때 상남자였고 ‘밀림의 왕(밀수업계의 전국구, 그를 만나면 죽거나 사지 어딘 가가 잘리거나 둘 중 하나가 되는 공포스런 존재)’이었으나 마지막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2,30대 남성 관객들이 특히 이 대목을 많이 불편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영화의 제작사나 배급사에서는 ‘밀수’가 여성주의 영화의 속내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를 가급적 피하거나 숨기는 쪽으로 일찍부터 방향을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 현황은 ‘딱 그만큼’, 그러니까 2,30대 남자 관객 층이 빠진 만큼의 수치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밀수’는 당초 일찌감치 6백만명을 넘어 설 것으로 내다 봤다. 그런 예측에 비하면 속도가 느린 편이다. ‘바비’은 대놓고, 또는 드러내 놓고 여성주의를 얘기하는 작품이다. 바비랜드에서 살던 바비 캐릭터(마고 로비)가 현실 세계로 오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인데 남성 근본주의자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신랄한 풍자의식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는 한편으로 남성 인형 캐릭터 켄(라이언 고슬링)의 모습을 통해 여성주의가 남성성과의 공생, 남성들과의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 같은 주제의식이 한국에선 오히려 강고한 여성주의자들, 그 반대로 완고한 남성주의자 관객들 모두에게서 외면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비’의 흥행 실패는 한국사회의 현 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꽤나 정확한 분석으로 보인다.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 등을 두고 우리 사회의 원로 중 한명인 정대화 전 상지대 총장은 “우리나라가 이제 병든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영화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전락한 여성 대 남성, 남성 대 여성의 대립적인 갈등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 가이다. 돌파할 것인가, 피해 갈 것인가. 한쪽 성비의 관객층을 포기하고 갈 것인가 아니면 모두를 껴안고 갈 것인가. 투자와 제작의 관점에서는 당분간 이 문제는 ‘무조건’ 피해갈 공산이 크다. 즉각적인 피해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영화의 흥행 공식에 남녀간 갈등의 문제는 가능한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규칙이 하나 더 추가될 것이다.그러나 결국 세상의 모든 문제는 때론 정면돌파를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진통이 따르더라도 방법이 없을 때는 그것을 고스란히 겪어야 할 때가 있다. 견뎌내야 한다. 영화는 끊임없이 차별의 문제에 맞서 싸워 나가야 한다. 여성이 차별되거나 반대로 남성이 차별되는 문제에 대해 영화는 줄기차게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영화는 지난 백수십년간의 역사에서 올바름을 추구해 왔으며 그 전통의 역할을 잊은 적이 없다. 올바름을 추구하는 영화가 늘 재미있지는 않지만 재미만을 추구하는 영화는 대체로 늘 올바르지 않다.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영화를 향해 어느 쪽으로 가라고 요구할 것인가. ‘바비’와 ‘밀수’는 훗날 재평가될 것이다. 너무 늦으면 안될 것이다. 땅을 치고 후회하는 모습처럼 안쓰럽고 한심한 모습은 없다. 그런 법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2023.08.10 06:05
영화

[IS리뷰] ‘바비’ 신선함에 유치함 한 스푼

“바비는 뭐든지 될 수 있어!”‘바비’는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영화다. 대통령부터 의사, 인어공주, 변호사 등 이 세계에서 바비는 뭐든지 될 수 있다. 단, 바비에게만 해당된다. 바비만을 위해 만들어진 바비랜드에서 켄은 찬밥이나 다름없다.영화 ‘바비’는 똑같은 루틴으로 살아가는 전형적 바비(마고 로비)의 삶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바비는 아침에 일어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해변에 나가 산책도 하고 차를 타고 드라이브도 한다. 그러다 바비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들이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것. 바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상한 바비’(케이트 맥키넌)를 찾아가 현실 세계로 가는 방법을 얻어낸다.현실 세계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바비를 졸졸 따라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만년 짝사랑남 켄(라이언 고슬링)이다. 바비와 켄은 무사히 현실 세계에 도착했지만, 켄은 새로운 무언가에 눈을 뜨게 된다. ‘바비’는 현실 세계에 다녀와 변화를 겪게 되는 바비와 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바비’에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여성주의적 성향이 그대로 담겨있다. 아기인형을 가지고 놀던 여자아이들이 바비가 등장하고 변화했다는 장면을 통해서다. 특히 영화에는 바비를 제작한 회사인 마텔도 나오는데 어린 시절 바비 인형을 갖고 놀았던 성인이라면 당시를 추억하며 관람할 수 있다.주인공 바비 역을 맡은 마고 로비는 그야말로 인형 같은 비주얼을 자랑한다. 인형만 입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화려한 의상들을 계속해서 입고 나오는데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다.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비의 감정도 잘 표현해낸다.켄 역의 라이언 고슬링도 그동안 보여줬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라이언 고슬링은 능청스러우면서도 귀여운 모습부터 새롭게 변화되는 켄의 모습을 완벽에 가깝게 그려냈다. 특히 이번 작품을 통해 춤에 도전한 것은 물론 OST에도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바비랜드는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어져 있다. 바비의 시그니처 컬러가 핑크이기 때문이다. 실제 ‘바비’ 세트장을 위해 엄청난 양의 페인트가 사용됐다. 바비랜드의 미끄럼틀, 주방, 드레스룸 등 모든 소품과 구조물 등에 핑크색 페인트가 동원됐고, 이로 인해 세트장 구현을 위해 공수됐던 페인트 회사의 핑크 페인트 색이 모두 품절됐다는 후문이다.‘바비’가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인 것은 확실하지만, 호불호는 갈릴 것으로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와 비주얼은 훌륭하나 바비 즉 인형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유치함이 한 스푼 첨가됐다. 또 중간중간 실제 사건을 꺼내 비유하곤 하는데, 이를 알지 못한다면 혼자 웃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19일 개봉. 12세 관람가. 114분.박로사 기자 terarosa@edaily.co.kr 2023.07.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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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창공, 파티' 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박남옥상 수상

'깃발, 창공, 파티' 장윤미 감독이 올해 박남옥상을 수상한다.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을 기리는 박남옥상 수상자로 '깃발, 창공, 파티'(2019)의 장윤미 감독을 선정했다. 박남옥상은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인 박남옥을 기리는 동시에 당대 여성 영화인들의 현실과 활동을 조명하고 돌아보는데 의의가 있다. 역대 수상자로는 임순례 감독(2008년), 김미정 감독(2017년), 박찬옥 감독(2018년), 장혜영 감독(2019년)이 있으며, 지난해 '69세' 임선애 감독(2020년)에 이어 올해는 장윤미 감독이 이름을 올렸다. 장윤미 감독은 가장 내밀하고 가까운 존재인 가족에 관한 작업으로 시작해 점차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존재들로 시야를 확장하며 이름을 알렸다. '깃발, 창공, 파티'에서는 구미의 반도체 생산기업 내 소수 노조이자 30년 만에 첫 여성지회장을 탄생시킨 ‘KEC 민주노조’의 활기찬 싸움과 흥겨운 일상을 담았다. 결사 투쟁의 현장 혹은 파업이나 농성 풍경이 주를 이루는 기존의 노동 다큐와는 달리 장윤미 감독은 KEC 민주노조원들의 노동 운동뿐 아니라 소소한 일상을 담고자 했다. 정기적으로 갖는 단합대회, 매달 챙기는 생일 파티 등 노조원들의 평범한 일상에 더욱 포커싱을 맞춰 그들의 현실을 담백하게 그렸다. 선정위원회(장혜영, 김소영, 배주연, 변재란, 이병원)는 “수상자 선정에 있어서 연출가가 동시대 여성들이 마주한 어려운 현실을 함께 호흡하고 전진하고 있는지, 그리고 작품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보고자 했다. 이러한 기준을 정한 배경에는 코로나19 장기화가 크다. 팬데믹으로 인해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이 일자리를 잃는 등 보다 큰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힘든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인간다운 일상을 누리기 위함이다. 투쟁의 한복판에서도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깃발, 창공, 파티'와 장윤미 감독의 수상이 위기의 시기를 견디고 있는 여성들에게 더 큰 용기와 영감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수상자 장윤미 감독은 "'깃발, 창공, 파티'는 민주노조는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게끔 했던 작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노력에 앞장서는 KEC지회 사람들, 특히 여성 리더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 박남옥상 수상으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아 무척 보람되고 기쁘다"며"여러 작품을 작업하면서 매번 내 나름의 여성주의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수상으로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앞으로도 박남옥상이 갖는 의미를 항상 되새기며, 좋은 작품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남옥상 수상자로 선정된 장윤미 감독에게는 1000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되며 시상식은 오는 8월 26일 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에서 진행된다. 한편, 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내달 26일부터 9월 1일까지 총 7일간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과 문화비축기지에서 개최된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oongang.co.kr 2021.07.06 18:09
경제

“찍히면 죽는다”…GS25 '남혐 논란'에 유통업계 몸살

유통 업계가 편의점 GS25 포스터로 촉발된 '남혐(남성 혐오) 논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른바 '숨은 메갈(리아) 찾기' 움직임이 확산하며, 과거 홍보물 등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남혐 기업' 낙인을 초래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업계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 상징물 등을 수차례 점검하는 분위기다. GS25 포스터로 촉발된 남혐 논란 1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고 있는 남혐 논란은 GS25가 지난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캠핑가자' 행사 포스터를 공개하면서 촉발됐다. 해당 포스터에 포함된 손가락과 소시지 이미지가 문제가 됐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네티즌들은 해당 손 모양이 '메갈리아' 로고를 표현한 것이며, 소시지는 남성의 성기를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메갈리아는 남성 혐오와 극단적 페미니즘을 표방했던 커뮤니티다. 포스터에 사용된 'Emotional Camping Must-have Item'의 끝 글자 역시 거꾸로 배열하면 'Megal(메갈)'이 된다는 해석도 나왔다. 이에 GS25는 곧바로 포스터 수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수정된 포스터 하단에 포함된 '달과 별' 모양이 서울대 내 여성주의 학회 '관악 여성주의학회' 마크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또 역풍을 맞았다. 논란이 커지자, 조윤성 GS리테일 사장은 지난 4일 가맹점주 게시판에 직접 사과문을 올려 “5월 캠핑 행사 포스터로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 사업을 맡은 최고 책임자로서 1만5000명 가맹점주와 고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포스터 담당 디자이너 역시 지난 9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직접 사과문을 올리고 해명했다. 그는 "저도 아들이 있고 남편이 있는 워킹맘으로 남성 혐오와 거리가 아주 멀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에도 네티즌의 반응은 싸늘하다. 수정되는 과정에서 계속 오해를 살 수 있는 관련 표시들이 들어갔다는 입장이다. 일부 네티즌은 "워킹맘이 무슨 상관인가, 감성팔이 싫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겹쳤다" "사측과 한 치의 오차 없는 변명이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BBQ·교촌·무신사도 유탄…낙인찍기 우려 커져 남혐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건 비단 GS25만이 아니다. 치킨 프랜차이즈 제너시스비비큐(BBQ)는 최근 사이드 메뉴 ‘소떡’ 관련 홍보 이미지가 남성 혐오를 일으킨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이미지는 손으로 사이드 메뉴인 소떡의 소시지를 집는 그림으로 손가락 모양이 남성 혐오 커뮤니티인 메갈리아 이용자들이 사용하는 이미지와 닮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BBQ는 지난 7일 “과거 제작된 홍보 이미지가 특정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문제가 제기됐다”며 “이에 제너시스 BBQ 임직원 모두 논란의 여지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부분에 반성하며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유사한 논란은 교촌치킨에서도 일어났다. 교촌치킨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오리지날 치킨’과 ‘레드콤보’를 두 손가락으로 잡는 홍보물이 논란을 일으켰다. 이 홍보물 역시 메갈리아 이용자들이 사용하는 손가락 모양이라는 논란에 휘말렸다. 교촌치킨은 “단순히 치킨을 들고 있는 그림으로 어떠한 의도도 없다”면서 해당 홍보물을 삭제했다. 무신사도 지난달 26일 현대카드와 협업을 알리며 공개한 홍보용 포스터에도 논란의 손 모양이 담겼다는 주장이 나왔고,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헬스앤드뷰티(H&B) 스토어 랄라블라의 홍보물에도 메갈리아의 로고인 ‘월계수 잎’이 등장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밖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특정 기업이 과거 사용했거나 현재 사용하고 있는 손가락 이미지를 공유하며 '남혐 기업' 낙인찍기에 열중하고 있다. 논란이 지속하자, 업계는 광고물 제작과 모델 기용을 재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젠더 갈등이 최근 큰 이슈로 떠오르면서 판매 중인 상품이나 광고 홍보물, 디자인에 문제가 되는 내용이 없는지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당분간 손 이미지를 제품 홍보에 사용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집게 모양 손가락' 이미지를 넣었다고 해서 이를 무조건 남성혐오와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작은 초콜릿이나 껌 등을 표현할 때에는 당연히 손가락으로 집는 게 많지 않겠냐"며 "논란이 생길 만한 홍보물이 아닌데도 너무 질타하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안민구 기자 an.mingu@joongang.co.kr 2021.05.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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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 임선애 감독, 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박남옥상 주인공

'69세' 임선애 감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측은 26일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을 기리는 ‘박남옥상’ 수상자와 한 해 동안 여성 이슈와 현안에 관심을 갖고 활동한 단체와 개인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보이스’ 수상자를 발표했다. 올해의 박남옥상은 지난 20일 개봉 후 의미 있는 흥행 행보를 보이고 있는 '69세' 임선애 감독이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임선애 감독은 장편 데뷔작 '69세'를 통해 그동안 드물게 다뤄져 온 장년 여성이 겪는 사회 편견과 아픔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며 “사회가 외면하는 이야기를 용기 있게 풀어낸 주옥같은 작품”라는 평을 얻었다. 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선정위원회(김은실, 배주연, 변재란, 이숙경, 정재은)는 만장일치로 임선애 감독을 올해 ‘박남옥상’에 선정함에 있어 “나이 든 여성이 경험한 성폭력을 다뤘다는 의미에서 큰 지지를 보내고 싶다. 영화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파헤치는 과도한 지나침에 의존하기보다는 노인 여성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시간이 오롯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임선애 감독은 그간 20여 년을 영화 현장의 스태프로 열정을 다했다. 분명 영화의 길을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자신의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거라고 좌절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마침내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이야기로 관객과 만났다. 오랜 시간을 견디고 숙고해온 임선애 감독의 또렷한 선택이 박남옥 감독님의 선택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수상자 임선애 감독은 "'69세'는 성폭력 문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노인 여성의 이야기다. 낯설고 어려워 관심 받지 못했던 이야기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캐치'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되었는데 이런 뜻 깊은 상을 주셔서 감격스럽다. 박남옥상의 의미와 무게감을 늘 생각하며, 계속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임순례 감독(2008), 김미정 감독(2017), 박찬옥 감독(2018), 장혜영 감독(2019) 뒤를 이어 올해 ‘박남옥상’ 수상자로 선정된 임선애 감독에게는 상금 500만 원과 트로피가 수여되며 시상식은 오는 9월 10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에서 열린다. 이와 함께 지난해 신설된 '올해의 보이스'는 한해 동안 여성 이슈와 현안에 관심을 갖고 활동한 단체와 개인에게 주는 상으로, 올해는 '텔레그램 n번방'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힌 추적단 불꽃과 본인의 음악을 통해 꾸준히 여성주의 시각에 메시지를 전하는 뮤지션 슬릭이 선정됐다. 추적단 불꽃은 "지난해 7월부터 취재하며 텔레그램 n번방 미성년자 성착취 실태를 기사로만 소비할 것이냐, 경찰에 신고해 사건에 개입할 것이냐 기로에 놓이기도 했었다. 우리는 기자이기 전에 사람으로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했다"며 "범죄현장을 샅샅이 기록하고 수사에 힘을 보낸 행동이 수상 이유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피해자가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보도해 이 전과 같이 피해자가 숨어야만 했던 세상을 바꿀 것이다"고 밝혔다. 뮤지션 슬릭은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슬로건 '서로를 보다'처럼, 영화는 늘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서로를 마주 보게 하는 좋은 매개체로 다가온 것 같다. 뜻 깊은 상에 감사하며 서로를 마주 보게 하는 음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9월 10일부터 16일까지 총 7일간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총 33개국 102편의 작품들이 안전한 방역 지침에 따라 극장에서 상영되며, 일부 상영작은 인터넷 기반 방송/영화 무제한 서비스 wavve(웨이브)를 통해 동시 상영된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2020.08.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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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전문가" 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심사위원 13인 공개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감독, 배우, 평론가, 제작자 등 다양한 영화인들로 구성된 심사위원 13인을 공개했다. 세계적인 국제여성영화제로서 관객들의 사랑과 신뢰 속에 성장해 온 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오는 9월 10일 개막을 앞두고 ‘발견’, ‘아시아단편’, ‘아이틴즈’ 섹션과 프로젝트 피칭 심사를 맡을 감독과 배우, 평론가, 제작자 등 다양한 영화산업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13인의 심사위원을 공개했다. 영화 산업 내 다방면의 존재감 넘치는 국내 영화 전문가들을 위촉해 전 세계에 영화 산업에 개성 넘치고, 수준 높은 최신 트렌드의 여성 영화를 소개하고 여성 창작자들의 진출 가능성을 발견하여 영화를 통한 여성주의 시각 확산에 앞장설 기회로 높은 기대를 모은다. 먼저 국내외 여성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영화를 소개하는 경쟁 섹션인 ‘발견’ 본선 심사위원으로는 '82년생 김지영'으로 2020년 백상예술대상과 춘사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김도영 감독을 비롯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고전 영화에 대한 해설과 다수의 영화지에 글을 기고해온 박인호 평론가, 영화사 하얼빈 대표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로 영화의 기획 및 제작자로 활동 하고있는 이진숙 제작자가 위촉됐다. 위촉된 심사위원 3인은 ‘발견’ 섹션에 선정된 총 12편의 경쟁작 중 3편을 엄선, 대상(상금 2만 달러), 심사위원상(상금 1만 달러), 감독상(상금 5천 달러)을 수여 할 예정이다. 지난 한 해 아시아 여성 감독들이 출품한 단편들 중 예선심사를 거쳐 상영하는 경쟁 섹션 ‘아시아단편’의 본선 심사위원에는 최근 '우리는 매일매일'로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작품상과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강유가람 감독, 장편소설 '아몬드'를 집필하고 영화 '침입자'를 연출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펼쳐온 손원평 감독, 국내 대표 영화주간지 '씨네21'의 현 편집장이자 다수의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장영엽 편집장이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는 다양한 아시아 문화권의 영화들 중 19편이 본선에 진출했으며, 그 가운데 최우수상(상금 1천만 원), 우수상(상금 5백만 원), BNP파리바 아시아단편 우수상(상금 5백만 원), 관객상(메가박스 디렉터 카드)이 수여 된다. 이어 10대 청소년의 눈으로 본 세계를 영화로 해석해 낸 작품들을 소개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특별 섹션 ‘아이틴즈’ 심사위원에는 '야근 대신 뜨개질'의 박소현 감독과 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황미요조 프로그래머가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총 6편 중 대상(상금 1백만 원), 우수상(상금 5십만 원)을 선정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기성과 신인의 구분 없이 여성 창작자들의 기획 개발 콘텐츠를 육성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프로젝트 피칭 '피치&캐치' 심사위원에는 김난숙 ㈜영화사진진 대표, 엄주영 영화사 '씨네주' 대표, 이정세 메가박스 중앙 플러스 이사, 조희영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 한경수 아거스필름 대표가 위촉돼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들이 돋보이며 깊은 주제 의식과 메시지의 힘을 갖고 도전적인 에너지를 전하는 영화들을 선정한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구분 없이 우수한 기획 콘텐츠로 공정한 예선 심사를 통해 선발된 10편 '공유가' '누구의딸도아닌혜원' '디어' '디지털 장의사' '멘탈과 브레인 사이' '목격자' '새나라의 여인들' '아이' '양양' '장기자랑'이 본선에서 경합을 펼쳐 각각 메가박스상(상금 2천만 원)부터 옥랑문화상(상금 2천만 원), 피치&캐치상(상금 1천만 원), 포스트핀상(후반 작업 현물지원 및 상금 1백만 원), 관객상(메가박스 디렉터 카드)까지, 약 6천7백만 원 상당의 상금과 현물지원, 피칭지원금 등을 수여 할 예정이다. 국내 유명 영화인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기대감을 북돋우는 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9월 10일부터 16일까지 총 7일간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총 33개국 102편의 작품들이 안전한 방역 지침에 따라 극장에서 상영되며, 일부 상영작은 인터넷 기반 방송/영화 무제한 서비스 wavve(웨이브)를 통해 동시 상영된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2020.08.25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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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IS] 누가 '69세' 할머니에게 평점 테러를 가하나

영화 '69세(임선애 감독)'가 평점 테러의 희생양이 됐다. 전국에서 겨우 96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는 작은 독립영화 '69세는 지난 20일 개봉해 3일간 4074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런데,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이 영화에 평점을 남긴 네티즌은 6289명(23일 기준)이다. 관객 수보다 평점을 남긴 네티즌의 수가 더 많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낮은 평점을 부여하는 일부 '가짜 관객'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왜 '가짜 관객'이 등장했으며, 이들은 이 영화에 왜 별 반 개를 주며 부정적인 평가를 남기고 있는 것일까. 예수정과 기주봉, 평소 논란과는 거리가 먼 배우들이 출연하는데도 왜 댓글창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69세'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69세의 할머니 효정(예수정)이 부당함을 참지 않고 햇빛으로 걸어나가 참으로 살아가는 결심의 과정을 그린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관객상을 수상했다. 부산에서 이미 한 차례 관객의 인정을 받은 작품. 성폭력의 피해자가 된 여성 노인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우리 사회에 살아남은 여성 그리고 노인이 감내해야 하는 시선과 편견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명확한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임선애 감독은 지난 2013년 우연히 여성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관련 칼럼을 읽은 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시나리오에 피해자가 여성 노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외면해왔던 문제를 묵직하게 그려냈다. 임 감독은 "우리 사회가 노인과 여성을 분리하고 그들을 무성적 존재로 보는 편견 때문에 가해자의 타깃이 된다는 내용을 보고 '악하다'고 생각했다"며 "노년의 삶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인간 존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영화를 별 반 개로 평가하는 일부 네티즌은 임 감독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시나리오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성폭력의 가해자가 젊은 남성, 피해자가 노인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페미니즘을 설파한다"는 것이 이 '일부 네티즌'의 의견이다. 영화 속에서 효정의 쉽지 않은 고백에도 경찰과 주변인들이 효정을 치매 환자 취급하며 무시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법원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나이 차를 이유로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가해자의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2차 가해를 가하는 행위다. 그리고 '일부 네티즌'도 주변 어디선가 살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평점 테러와 거친 댓글로 2차 가해를 가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심각의 문제로 대두한 남성 혐오와 여성 혐오. 이런 분위기 가운데 '69세'는 격화된 남녀간 성 대결의 전쟁터가 돼 버렸다. '69세'가 어떤 시선을 가진, 어떤 화두를 던지는 영화인지는 관심 밖이다. 앞서 '82년생 김지영' 등 여성주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들이 '69세'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영화를 만든 입장에서는 썩 반가운 일이 아닐 터다. 그럼에도 '69세' 측은 평점 테러를 오히려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69세' 측은 "영화적인 완성도와는 별개로 영화의 소재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집단이 등장했다. '소설 쓰고 있다'라는 말로 비하하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편견과 차별을 실제로 고스란히 자행하고 있다"며 "이들의 행태로 영화의 평점이 2점대까지 내려갔지만,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깨어있는 관객들이 응원을 보내 평점이 7점대까지 다시 올라갔다"고 적극적으로 알렸다. '69세'는 험난한 과정에서도 묵묵히 새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응원단으로 나선 민규동 감독은 "제목처럼 노인이 주인공인 영화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데, 그래서 더 반가운 영화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놓여있는 우리 삶의 모습, 잘 살펴보지 못했던 그늘을 보는 것이 모두에게 훌륭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멋진 화두의 영화"라고 평했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 2020.08.2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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