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Q&A] 박용택, LG선수단 질문에 답하다 "은퇴 이유? 야구 더 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박용택(41·LG)을 파헤쳐보자' 박용택은 휘문고-고려대 출신의 학생야구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2002년 입단 첫 시즌부터 주전으로 뛰며 통산 2139경기에서 타율 0.308 211홈런 1157타점을 기록했다. 2018년엔 KBO리그 최다 안타 신기록을 작성했고, 현재 안타 수를 2439개까지 늘렸다. 현역 최고령 타자인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고 은퇴한다. 은퇴 전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단 한 가지, 아직 맛보지 못한 우승이다. 후배들은 우승을 간절하게 소망하는 박용택을 위해서라도 창단 3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물로 드리자"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박용택은 LG 선수단에 든든한 맏형이다. 그래서 선수단이 묻고 박용택이 답했다. 과거 에피소드에서 비롯된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박용택의 야구 인생을 되짚어보고 향후 진로를 궁금해하는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별명 많고, 입담이 좋은 박용택은 인터뷰 내내 선수단의 질문에 활짝 웃으며, 다양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삼성에 이승엽이 있다면, LG에는 그런 선수가 박용택이 아닌가 싶다. 야구 실력을 떠나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 특히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또한 서울을 연고를 둔 LG에서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20년 동안 사건·사고 없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런 사생활 관리가 참 쉽지 않은데. (류중일 LG 감독) "너무 과찬이다. 감사하다. 서울팀, 또 인기 팀에 몸담고 있어 보는 눈이 많았다. 그래서 더욱더 자제하고 절제했다. 어느새 내 생활 패턴이 됐다. 사실 밖에선 정말 잘 놀고, 술도 많이 마신다. (요즘 선수들의 각종 사건·사고가 잦은데) 결국 모든 사건·사고는 술과 연관되어 있다. 음주에 '적당히'는 없다.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로 알코올을 마시면 사고가 생기기 마련이다. 선수들도 사람인 만큼 한 잔씩 마실 수 있는데, 자신의 주량을 지키고 스스로 절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2년 연말에 야구인과 연예인이 함께한 기부 행사가 서울의 대형 호텔에서 열렸다. 당시 내가 주장이어서 후배들을 3~4명 데려갔는데 함께 간 선수 중에 박용택만 기억난다. 그때 연예인보다도 옷을 더 멋있게 입었다. 그때부터 '남다르다'고 여겼는데, 확실히 패션 센스가 대단했다. 아마도 야구 선수 가운데 턱시도를 가장 먼저 착용하지 않았나 싶다. (유지현 LG 수석코치) (박용택은 LG가 숙소로 사용하는 호텔 내 카페에서 인터뷰를 갖는데 깔끔한 트레이닝 차림에 헤어스타일까지 정리하고 나왔다. 박용택은 "머리카락에 물만 발라 다듬었는데"라고 했지만 구단 관계자 역시 "헤어 제품을 사용한 것 같은데"라면서 "정말 깔끔하다"고 인정했다.) "기억난다. 당시 2001년 겨울 하얏트 호텔에서 행사가 열렸는데, 내 옷차림을 보고 형수님이 깜짝 놀라셨다. 나는 동네 슈퍼에 들를 때처럼 입고 갔는데(웃음) 사실 어릴 적부터 야구 선수들을 보면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자동차도 타는데, 옷은 왜 이리 촌스럽게 입을까?'라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패션만큼은 자부심이 있다. 야구계에 패션으로는 조금이나마 이바지하지 않았나 싶다. 보타이(목에 두르는 네크 웨어의 하나로 나비넥타이)를 가장 먼저 착용했다. 기본적으로 프로야구 선수라면 팬들에게 많이 보이니까 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골든글러브 행사에도 튀게 입고 싶은 생각도 있겠지만, 최소한 턱시도나 짙은색 슈트가 정석이라 본다. 우리 팀에 이런 센스가 부족한 선수들이 있어 가끔 짓궂게 한마디씩 한다. 개성 있게 입는 것보다 때와 장소에 맞는 패션이 중요한 것 같다. 가령 저녁 행사 때 턱시도를 입어야 하나 하얀색 슈트를 입거나, 아침에 연미복을 착용하는 건 기본적인 에티켓이 아닌 거로 알고 있다. 그래도 요즘은 선수들의 옷차림을 보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고려대 1학년 때 박용택 선배가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나를 많이 괴롭혔다.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티볼 훈련 때도 나를 항상 데리고 다녔는데 왜 그랬나? 그리고 대학 때부터 타격 연습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이제 훈련 양을 줄여도 될 텐데 여전히 열심히 하더라. 그렇게 안타를 많이 치고도 방망이만 잡으면 아직도 눈빛이 변하던데. (LG 정근우) "쥐똥만 한 놈(정근우)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승부욕도 엄청났다. 나한테 달려와서 '형, 달리기 시합해요'라고 했던 녀석이다. 야구도 열심히 하고 눈치도 빠른 예쁜 후배였다. 그래서 더 많이 괴롭혔고, 운동도 함께 했다. 예전과 비교하면 훈련 양은 많이 줄었다. 성에 차지 않아 개인 훈련을 하면 몸이 아프다. 내가 운동할 수 있는 시간과 훈련 양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몸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그 범위 안에서 신나게 하고 있다. 운동할 땐 모르지만, 훈련을 마치고 방에 혼자 누워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우울해지곤 한다." -앞으로 가장 기대되는 팀 내 후배는? (LG 이형종) "식상한 질문이다. 대부분의 후배를 좋아하지만, 특히나 좋아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다. 그런 선수 중의 한 명이 형종이다. 승부욕이 정말 뛰어난 후배다. 그런 후배들이 좋다. 어찌 보면 형종이가 독특하게 비칠 수 있겠지만 나는 좋다. 개인적으로도 대충대충 하는 스타일보다 돌아이를 좋아한다." -아직 몇 년 더 야구를 하셔도 잘하실 것 같다. 왜 이른 은퇴를 결정하셨는지. 혹시 후배들을 위해 더 뛸 생각은 없는지? (LG 오지환) "아니다. 이제는 야구를 더 잘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몸의 회복이 더디고 이제는 때가 됐다는 판단이었다. 2018년에 최다 안타 신기록을 작성한 뒤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시즌 후에 FA 계약을 앞두고 '이 정도로 야구를 했는데 은퇴 시기는 내가 직접 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후 생각을 많이 했다. FA 협상에 앞서 4년 계약은 너무 긴 것 같고, 1년은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2년 더 현역으로 뛰면 개인적으로도 팀에도 괜찮을 것 같더라." -올해 마지막 시즌인데 은퇴 후에 진로는 정하셨는지? (익명) "구단 신인 오리엔테이션 때 가장 강조한 부분이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 실천, 지속성을 유지해야 좋은 야구 선수가 된다고 했다. 1990년 야구를 시작한 뒤 '좋은 프로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이를 위해 30년을 뛰어왔다. 현역 은퇴 이후 계획은 유니폼을 벗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 다만 확실한 한 가지는 있다.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할 것 같다. 야구계를 떠나진 않을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잘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결정하겠다. 머릿속에 계획은 있다." -신인 때 전지훈련에서 내게 '너는 무조건 잘될 거야'라고 해주셨다. 왜 그랬는지? (LG 고우석) "내가 우석이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고우석이 신인으로 캠프에 합류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였다. 연차가 얼니 선수는 보통 트레이너 파트에서 정해주는 스케줄대로 움직이거나, 자세도 어정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갓 스물의 어린 녀석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데 자세가 정말 좋고, 자신만의 운동법이 있더라. 대개 투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지 않는 인식이 강한데 우석이는 달랐다. '야, 저놈 보통 아니네' 싶었다. 신인의 경우 준비된 선수가 있고, 어리바리한 선수가 있는데 우석이는 전자였다. 사실 이번에 롯데에 작전·주루 코치에 임명된 오태근 코치와 친분이 깊은데, 당시 휘문고 코치로 있으면서 충암고에 재학 중인 고우석의 투구 영상을 보여주더라. 당시 우석이에 대한 임팩트가 크게 남았었다. 실제 1차지명으로 입단했을 때 웨이트 트레이닝의 훈련 자세나 체형을 보니 오승환(삼성)의 느낌이 났다. 내가 사람을 조금 볼 줄 안다. 그래서 우석이에게 '너 야구 잘하겠다. 무조건 잘될 거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가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용택에게 유강남이란? (LG 유강남) "정말 많이 좋아하는 후배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팀에 대한 애정, 또 말과 행동이 정말 예쁜 후배다. 아마도 모든 선배가 좋아하는 후배일 것이다. 라커룸에서도 내 옆자리에 있다. 한편으로 정말 많이 신경이 쓰인다. 왜냐하면 스스로 팀과 코칭스태프, 팬, 본인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여겨 실망감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깨에 많은 짐을 지닌 선수다. 그래서 정말 좋은 선수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 잔소리도 많이 하는 편이다." 오키나와(일본)=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oongang.co.kr
2020.03.05 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