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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IS] '배잼' 이현세 "전성기, 만화 4권=아파트 한채" 42년 풀스토리

만화보다 만화같은 만화인생이다. 9일 방송된 MBC ‘배철수 잼(Jam)'에서는 80~90년대 전국에 ‘까치 신드롬’을 일으킨 만화가 이현세 화백이 출연해 42년 동안의 만화 인생을 돌아봤다. 이날 방송에는 최근 유행하는 “어머 이건 사야 해” 엄지짤의 원조가 이현세 화백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과거 '까치 아빠'라 불릴 만큼 뜨거웠던 이현세 화백의 인기가 공개됐다. 한국 장편 만화의 시초이자 그의 대표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은 출간 당시 넘치는 인기를 감당하기 위해 만화방에서 책을 사 등분으로 나눠 대여를 해줄 정도였다. 이현세 화백은 "전성기 시절 만화책 네 권을 그리면 아파트 한 채 값을 벌었다"며 상상을 초월한 몸값(?)을 자랑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당시 강남 지역 아파트에 재테크를 하자는 아내의 제안을 거절한 탓에 지금도 집에서 반성모드를 유지 중이라고. 이현세 화백은 “내 마음속, 머릿속에 있던 세상살이를 만화로 마구 쏟아 냈다”며 돈보다 만화에 푹 빠져 있었던 만화가로서의 소신을 전해 진정성 있는 모습을 엿보이게 했다. 국민 캐릭터 ‘까치’의 탄생 비화도 공개됐다. 이현세 화백은 "청춘을 대변하던 반항적인 캐릭터 까치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아내의 내조 덕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현세 화백은 "1979년 출간된 ‘최후의 곡예사’를 작업할 당시 마음에 들지 않아 찢었던 원고를 만삭의 아내가 하나하나 다림질한 덕분에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 사랑꾼 면모를 뽐냈다. 또 개봉 당시 한국 영화 흥행 성적 1위를 기록한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캐스팅 비하인드도 전해졌다. 이현세 화백은 "영화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 등 작품을 통해 섹시 배우로 이름을 알린 이보희가 엄지 역으로 캐스팅됐을 당시 의구심을 가졌지만 엄지 분장을 한 이보희의 실물을 영접한 순간 진짜 예뻤다"고 말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이현세 화백은 이보희를 전도연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날 이현세를 응원하기 위한 깜짝 손님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바로 ‘친구’의 곽경택 감독. 첫 만남부터 통했다는 두 사람은 띠동갑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영혼, 격식 없는 소탈함이라는 공통점을 자랑하며 경상도 사나이(?)들의 진한 우정을 과시했다. 곽경택 감독은 방송 내내 이현세 화백의 말에 "형님 말이 무조건 옳다"며 동의하는 귀여운(?) 형님바라기의 모습을 보였다. 또 이날 방송에서는 깊은 소울을 자랑하는 R&B 가수 그렉이 출연해 영화만큼 큰 사랑을 받은 ‘이장호의 외인구단’의 OST 정수라 ‘난 너에게’와 이현세 화백이 자신의 작품에 큰 영향을 준 음악으로 꼽는 존 레논의 ‘Imagine’을 불러 색다른 무대를 선보였다. 노래를 마친 그렉과의 영어 인터뷰에서는 MC 배철수가 봉준호 감독의 전담 통역사 샤론 최 못지않은 통역 실력을 선보여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2020.03.10 08:34
연예

'배잼' 이현세 화백, 과거 '폴리스' 최민수→이병헌 캐스팅 비화 공개

당대 최고 톱스타 캐스팅은 어떻게 성사 됐을까. 9일 방송되는 MBC '배철수 잼(Jam)'(이하 '배잼')에서는 한국 만화계의 대부 이현세 화백이 출연해 만화만큼 큰 인기를 얻은 영화, 드라마 캐스팅 비하인드를 공개한다. 이현세는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 ‘테러리스트’, 드라마 ‘폴리스’ 등 작품에 출연한 당대 최고의 톱스타였던 안성기, 최민수는 물론 90년대 청춘스타 시절 이병헌의 섭외과정을 밝힌다. 특히 이병헌이 주연으로 맹활약한 드라마 ‘폴리스’는 원래 최민수로 캐스팅이 내정돼 있었지만, 이병헌이 “정말 잘 할 수 있습니다. 꼭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라고 간절하게 요청하며 감독에게 어필, 극 중 오혜성 역을 당당히 꿰찼다는 후문이다. 또 이날 깜짝 손님으로는 2001년 최다 관객 수를 동원해 흥행 1위를 기록한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출연하며 환호를 받았다. 곽경택 감독은 이현세 화백의 원작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을 본 솔직한 감상평을 폭로하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이날 방송에서는 만화에 녹인 다양한 인생 풀스토리와 함께 ‘이장호의 외인구단’ 삽입곡으로 큰 인기를 끈 ‘난 너에게’를 새롭게 편곡한 무대까지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2020.03.09 10:31
축구

박기정 화백부터 이상무-조재호까지...韓 축구만화 계보와 역사는?

만화계에서는 한국 축구 만화 1세대 작가로 1960년대의 박기정-박기준 형제를 꼽는다.박기정 선생은 축구 뿐 아니라 당대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권투와 야구 만화를 여러 편 그렸다. '도전자'가 대표작이다. 박기정의 동생 박기준 선생 역시 '올림픽 소년'이라는 작품에서 축구 외에 다양한 종목을 다뤘다. 박기준·박기정 형제의 문하생이 얼마 전 작고한 이상무 화백이다. 이 화백의 대표작은 1979년부터 어린이잡지에 연재됐던 '울지 않는 소년'이다. 이 계보는 '황제의 슛'을 그린 배금택, 1990년대 중반 '폭주기관차'라는 작품을 낸 조재호로 이어진다. '폭주기관차'는 '황제의 슛'을 원작으로 한 일종의 리바이벌 작품이다. 한국영상대 만화콘텐츠과 박석환 교수는 "박기정·기준 형제부터 이상무, 배금택을 거친 조재호를 잡지 계열의 한국 축구 만화 진성 계보로 친다"고 설명했다. (좌)이상무 화백 작품 우정의 마운드 / (우)박기준 화백의 올림픽소년1980~1990년대 축구 전문 만화가로 명성을 떨친 오일룡씨는 잡지 계열이 아닌 대본소(만화방)를 중심으로 한 단행본 그룹에 속한다. 당시 대본소에서 나온 스포츠 만화는 주로 야구와 권투에 치중됐다. 이현세와 허영만이 대표적이다. 박석환 교수는 "어쩌면 축구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일룡 선생이 축구를 주요 소재로 택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틈새시장을 노린 전략이었다는 의미다. 축구 만화들은 한국 축구의 고질병이었던 기술 부족을 작품에서 많이 지적했다. 지금 스포츠 언론의 역할을 만화가 일정 부분 대신했던 셈이다.이상무 화백의 '울지않는 소년'은 한국 축구가 번번이 A매치에서 좌절한 뒤 오래전부터 축구계의 혁신을 주장한 '독고룡'을 찾지만 이미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독고탁'이 비밀병기로 꿈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이상무 화백 작품 울지 않는 소년 주인공 독고탁오일룡씨는 한 발 더 나아갔다. 포지션별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선수들을 그려냈고 포메이션의 개념,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유럽 축구의 상세한 정보를 작품에 담았다.박 교수는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전문 지식을 갖춘 해설위원이 거의 없었다. 축구 만화를 통해 독자들은 이런 갈증을 해소했다"며 "오 선생은 한국 축구 만화 시장을 혼자 개척하고 꾸준히 이어온 유일한 분이라 봐도 된다"고 평가했다. 오일룡 선생만화계에서는 잡지 계열을 주류로 인정하고 대본소의 단행본 그룹을 비주류로 폄하 하기도 한다. 특히 대본소 작가들은 프로덕션을 만들어 작품을 대량 생산한 방식에 대해 '공장 작가'라는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를 일류, TV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를 이류로 취급했던 예전 영화계 분위기와 비슷하다.하지만 박 교수는 "두 그룹의 영역이 다를 뿐 일방적인 잣대로 비하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프로뎍션은 일종의 스튜디오 창작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나온 작품의 수준이 저열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즉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지 질만 담보된다면 시스템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의 주요 만화 인력들이 프로덕션을 통해 대거 배출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윤태석 기자 yoon.taeseok@joins.com 2016.02.15 06:00
야구

드라이브볼과 더스트 볼, 독고탁의 마구는 어디에서 왔을까 ?

3일 작고한 고(故) 이상무 화백은 야구팬에게도 잊지 못할 인물이다.1971년 그가 창조한 캐릭터 독고탁은 여러 야구 만화의 주인공으로 독자를 울리고 웃겼다.1970~1980년대는 한국 야구 만화의 전성기다. 고교 야구에서 시작한 야구 붐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맞물려 만화가들의 창작열을 자극했다. 이상무 화백을 비롯해 허영만, 이현세, 이우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시기 많은 작품을 쏟아냈다.당시 야구 만화의 키워드 중 하나는 ‘마구(魔球)’였다.이상무 화백의 대표작 ‘달려라 꼴찌’에서 주인공 독고탁은 S자로 휘는 ‘드라이브볼’, 먼지를 일으키는 ‘더스트볼’, 공중에서 튀어오르는 ‘바운드볼’ 등을 던진다.‘마구’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왔다. 일본이 야구라는 경기를 받아들인 해는 연구자에 따라 1872년, 또는 1873년으로 꼽힌다. 당시 일본에는 ‘변화구’라는 개념이 없었다. 미국 야구에서도 커브는 1870년대 초반 고안됐다는 게 통설이다. 일본에서 커브가 선을 보인 건 1880년대다. 커브를 처음 본 타자들은 “규칙 위반”이라고 항의했다고 한다.이 커브를 당대 일본인들은 ‘마구’라고 불렀다. ‘베이스볼(Baseball)’을 ‘야구(野球)’로 번역한 교육자 주만 가나에가 1897년 출판한 야구 교본에는 ‘마구’를 커브로 정의하고 있다.커브, 드롭(빠른 커브) 등 전문 용어가 등장함에 따라 야구장 안에서 ‘마구’라는 단어는 점점 사라졌다. 하지만 만화가들은 이 단어를 부활시켰다. 일본에서 ‘열혈 스포츠 만화’의 전형을 세운 작품은 1960년 연재가 시작된 ‘거인의 별’이다. 이 만화에서는 ‘메이저리그 1호’, ‘메이저리그 2호’, ‘메이저리그 3호’라는 마구가 등장한다.일본 야구 만화는 투수와 타자의 1대1 대결 구도를 기본으로 했다. ‘마구’는 야구 만화에 앞서 인기를 모은 닌자 만화의 ‘필살기’에 대응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 뿌리는 미국 영화에 있었다.1949년작 미국 영화 ‘잇 해펀스 에브리 스프링(It Happens Every Spring)’에는 배트를 통과하는 마술 같은 공이 등장한다. ‘거인의 별’ 원작자인 가와지리 잇키는 자신의 마구에 대해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다.한국 야구 만화는 여러 면에서 일본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단신의 왼손 투수 독고탁의 ‘더스트볼’도 ‘사라지는 공’이라는 점에서 ‘메이저리그 2호’와 유사점이 있다. 하지만 닌자만화식 정서와는 차이가 있다. 정준영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는 “이상무 화백의 작품은 서사 구조가 안정됐다. 시대상을 녹여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며 “그의 작품에서 마구는 핸디캡이 있는 주인공이 더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 선택한다. 중산층이 형성되기 전인 1970년대~80년대 초반의 정서를 담고 있다”고 평했다. 최민규 기자 2016.01.04 09:15
야구

[새해 기획 대담 고수vs고수 ②] 김성근 “뒷짐 지고 항의하니 뼈 부러졌던 말 들어”

▶만화와 야구, 좌절과 극복이 "저는 이런 주인공을 하나 만들고 싶었어요. 아직 아무도 만나지 못한 인물. 그래서 까치 오혜성이라는 반항아를 낳았죠. 그 캐릭터로 모든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소재는 직관에서 찾았어요. 친구들하고 술먹고 이야기를 하다가 '술주정꾼 아버지에게 맞은 야구 선수는 어떻게 자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죠. 캐릭터 인기 덕일까요. 아니며 술 자리에서 시작한 그런 이야기들이 사회 흐름과 맞았던 것일까요. 오랫동안 인기 작가로 있었습니다. 저는 만화가의 삶을 만족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멋있는 직업이 야구감독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잖아요. 감독님의 직업에 만족하시고 계신지요."김 "2011년 8월에 SK에서 해임되고, 10월에 일본에 갔어요. 야구장 관중석에서 맥주 한잔 하면서 일본 포스트시즌을 보는데 '내가 왜 여기 있지, 내가 왜 여기서 경기를 보지'라는 생각을 들더라고요. 소외감이랄까. 2011년 SK에서는 경기 뒤 거의 매일 술을 마셨어요. 패한 일이 많았고, 구단과 마찰도 잦았으니까. 위가 늘 아프더라고. 감독 그만두니 속은 편해졌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야구가 너무 하고 싶어졌지요." 이 "30년 이상 만화를 그리면서, '만화가 뭐죠'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죠. 나는 '밥 같은 거. 먹어도 먹어도, 배가고프고 질리지 않는. 그래서 지금도 그리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감독님께 야구는 무엇입니까."김 "영원한 도전. 야구에는 끝이 없어요. 강물을 볼 때, 늘 똑같이 흐른다고 생각들 하잖아요. 하지만 강물은 매일 다르게 흘러요. 야구를 매일 가르치지만, 매일 다릅니다. 그런 변화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훈련이지요. 제가 훈련을 많이 시키는 감독입니다. 이유가 있어요. 선수들의 미래가 나에게 걸려 있거든. 이건 내 삶의 큰 테마입니다. 선수는 만지기에 따라서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나는 얼마나 철두철미 해야 하나'를 생각해요. 만들긴 쉬워도 가꾸기는 어렵죠. 난 자주 어깨를 다쳐요. 펑고를 직접 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런 생각도 해요. '내 어깨에 많은 애들의 목숨이 달려있으니까, 난 자주 아파도 된다'고."이 "저는 절필에 대한 유혹에 자주 빠졌어요. 가장 큰 이유가 외압이죠. 예전에는 줄거리와 제목을 사전 심의실에 넣어야 했습니다. 심의실에서 통과해야 제작할 수 있었죠. 심의실 낼 때는 '착한 만화'로 포장해요. 실제로 만들 때는 '악한 사람, 나쁜 놈'을 만들 수밖에 없죠. 나중에 심의실에서 ' 이 놈이 사전에 제출한 줄거리로 그리는 지'를 심사합니다. 두번 적발되면 경고를 받습니다. 작가들은 경고에 겁을 내지 않는다. 가진 건 종이와 펜, 머리 뿐이니까. 그래서 경고를 출판사에 줍니다. 군부독재 때는 모든 게 가능했잖아요. 국가가 '이현세가 또 그렇게 그리면 너희 출판사 폐간한다'고 압박했죠. 만화가들이 남산(안기부)으로 끌려간 적도 있어요. 거기에 만화가들을 모아놓고 자정운동 맹세를 하래요. 마침 비도 부슬부슬 오는데…. '일, 우리는 불경한 만화 그리지 않는다. 일, 우방을 비방하지 않는다. 일, 미풍양속에 맞는 그림을 그린다.' 자존심이 상하는데 개인의 힘은 미약하니까. 만화를 그만둘까,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김 "저도 남 때문에 야구 못한 적이 있긴 해요. 퇴장을 가끔 당했지요. 여기 전주에서도 쌍방울 시절에, 항의하다 퇴장당했어요. 뒤에 손을 놓고 항의했는데 심판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하더라고. 5경기 출장금지에 벌금 500만원. 사실 일부터 퇴장당한 적도 있어요. 쌍방울은 가난한 구단, 현대는 부자구단이었어요. 선수들이 현대만 만나면 부러워하는 거야. 그래서 선수들에게 의욕을 살려주려고 현대랑 만날 때는 더 강하게 어필했죠. 그런 싸움은 내가 해요. 감독은 선수를 움직이기 위해 존재합니다. 내가 살기위해 선수를 움직이지 않아요."이 "저는 '천국의 신화' 때문에 6년동안 재판을 했어요. 그 기간 중에는 만화 안 그렸죠. 그때 벌금이 작가와 출판사 각각 300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300만원이 아니라, 3만원도 벌금이고 전과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최고 만화가라는 내가 그런 물리적인 힘에 '졌다'라고 승복하면, 내 후배들은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는 겁니다다. 출판사는 벌금을 냈지요. 장사를 해야하니까, 이해해요. 그러나 나는 싸웠어요. 귀찮은 일이죠. 해외에 나가려면 검찰청에 나가 도주할 위험없다는 증명서, 법원에서 재판이 잡히지 않다는 증명서. 경찰서에서 보안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했거든요. 300만원 내면 자유였죠. 그러나 부당한 것에 타협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없는 죄를 인정하고 자유를 얻는 게 나와 맞지 않았어요. 또 내 뒤에 수많은 희생양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깡패잡듯이 만화가를 불순 세력으로 모는 악순환을 끊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부당함과의 투쟁, 자존심하고의 투쟁이었습니다."김 "저도 야구 선배께서 현장에 계셨다면 내가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선두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야구 선수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했습니다. 우리 세대에 대한 가능성을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런데 재판은 언제 받으신 건 가요."이 "40대 초반이었죠. 저는 30대에 최고 작가가 됐습니다. 40대에 하고 싶은 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재판이 끝나니까 50대가 됐더라고요. 가장 창작욕구가 충만해야할 시기에, 시간을 빼앗긴 것이 아쉽습니다. 심의라는 물리적인 힘에 40대를 갈취당한 기분이랄까. 내 40대. 재판과 술, 담배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정신없이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40대에는 '투쟁에 대한 기록'에 파묻혔어요. '역사는 투쟁이고 그 기록을 남겨야 해.' 그래서 역사만화를 택했습니다. 50대가 되니까 용서와 포기를 배우게 되더라고요. 세상에 용서못할 것은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역사는 순리구나. 결국 강은 흘러간다. 물고기가 강을 바꾸지는 못한다. 시대에 맞춰서 역할을 한 걸까'라는 생각을 합니다."▶2012년을 향해 던지는 화두, 감성이 "저는 '땅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부렸습니다. 기록을 통해 내 자취도 남기고. 작게는 가족에게 크게는 만화 동료·애호가들에게 자취를 남기고 싶었어요. 얼마전부터 예전 만화 보니까 '왜 이런 얘길 했을까. 맞지도 않구만. 얻은 게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바람같은 존재였어요. 한 시즌을 풍미를 했지만, 그저 바람이었던 겁니다. 땅이 되어서 풀을 자라게 하는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김 "화백께서 겸손하셔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겁니다. 시작이 있으니, 후배들이 그 길을 걷는 것 아닙니까. 시작이 중요합니다. 화백께서는 맨 앞에 서서 열심히 사셨습니다. 선배가 위기를 극복하니까, 후배들이 편안하게 창작할 수 있는 겁니다."이 "저는 최근 새로운 가치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만화를 통해 했던 이야기가 과연 맞는 것일까를 고민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어떤 만화를 그릴까를 걱정하고요. 물론 저는 만화를 계속 그릴 겁니다."김 "얼마 전에 일흔이 됐습니다. 그런데 옷차림은 20대죠. 나를 나이 속에서 보호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앞에 가고 싶은 마음이죠. 지금 아이들과 야구를 합니다. 아이들보다 체력에서 앞에 가야 그들을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런 터전 속에 살아 가야하지 않을까요." 이 "저는 운동을 싫어합니다. 만화가 사회인야구 구단주이기도 하고 월성초등학교 때 야구부를 잠깐 하기도 했는데, 천성이 좀 그런가 봅니다. 군대에서도 구보를 하루종일 했습니다 전력질주가 자존심 상하더라고요. 뛰어서 택시나 버스를 탄 적도 없어요. 술 마신 뒤 친구는 집에 도착했는데도 나는 여전히 택시 잡고 있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스포츠 만화는 제가 가장 많이 그렸네요. 까치가 '저의 행동하는 양심'입니다. 저는 행동하지 않은 양심이니까요. 그래서 까치를 더 많이 훈련시킵니다(웃음). 전 노래와 춤도 안합니다."김 "저도 노래, 춤 안합니다."이 "감독님은 그림을 안 그리시고, 나는 야구를 안하네요."김 "화백께서는 다른 재능 때문에 운동을 할 필요가 없던 것은 아닐까요."이 "그럴지도요. 방학이 되면 방안에서 그림만 그리는 제가 있더라고요. 저는 감독님의 재능을 '감성'이라고 봅니다. 야구에 감성적으로 접근하니, 영혼이 들어가는 거죠. 한 소설가는 '만년필로 쓴 소설은 영혼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컴퓨터로 쓰면 영혼이 안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감성적인 사람입니다. 젊은 세대들도 '감성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생각해보면 온갖 일을 다 겪었네요."김 "높은 데 계셨으니까, 바람이 있는 것 아닙니까. 낮은 곳에 있으면 바람이 없습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창작의 위대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이 "공포의 외인구단을 통해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강한 것은 아름답다', '세상을 살면서 하기 싫은 일을 하게 하지는 않겠다. 대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 '네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 였습니다. 이런 철학적인 메시지 속에 30권을 펴냈습니다. 감독님이 살아오신 길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김 "감독할 때는 온 몸이 괴롭습니다. 그리고 외롭죠. 그러나 낙이 있습니다. 외롭다는 것은 높은 곳에 있다는 뜻이다. 선행주자는 늘 외롭습니다. 화백도 혼자서 투쟁하셨던 것 아닙니까. 얼마나 힘들게 사셨나 싶어요. 그러나 외로움 속에 자신을 집어넣어야지 타협은 하면 안되죠. 요즘 선수들 중에 인터넷을 통해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해졌다는 뜻이에요."이 "저는 약해지지 않겠습니다. 감독님께 또 다른 에너지를 받았으니까요.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깊은 말씀, 감사합니다."김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캐리커쳐는 가보로 간직하겠습니다. 정말 영광입니다."▶이현세는 1983년 야구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발표하며 한국 만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한국 만화 역사상 최대 히트작으로 성인 독자들을 대본소(만화가게)로 끌어모았으며, 수많은 아류작을 파생시켰다. 1979년 '시모노세키의 까치놀이'로 데뷔했으며,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해 '국경의 갈가마귀' '남벌' '천국의 신화' 등 수많은 히트작을 발표했다. 현재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최근 출간한 '이현세 만화 세계사 넓게보기'(전 15권)도 호평을 받고 있다. 베스트셀러인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에 이어 교양학습만화의 강자로 자리잡았다. 특히 전세계 야생 동물들이 등장하는 그림은 독보적이다. ▶김성근은? 1942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김성근 감독은 1965년 한국으로 영주귀국을 했다. 가족은 극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한국 국가대표가 되겠다. 나중에는 한국 최고의 감독이 되겠다"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어깨 부상으로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접어야했던 그는 1969년 마산상고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에게 야구는 종교이자 신념이었다. 아마와 프로에서 열 세번의 해고를 당하면서도 "야구를 무시하는 일은 참을 수 없다"는 신념을 지켰다. 전주=장상용 기자· 하남직 기자 enisei@joongang.co.kr 사진=이영목 기자▶[새해 기획 대담 고수vs고수 ①] 김성근 “뒷짐 지고 항의하니 뼈 부러졌던 말 들어”▶[새해 기획 대담 고수vs고수 ①] 이현세 “김성근 감독님은 좋은 캐릭터” 2012.01.02 07:01
야구

[새해 기획 대담 고수vs고수 ①] 이현세 “김성근 감독님은 좋은 캐릭터”

임진년(壬辰年)이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벽을 넘고 틀을 깨는, 소통과 화합의 장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 소망을 담아 신년특집 대담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지금까지 만나기 어려웠던, 만나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던 이들의 특별한 만남을 일간스포츠가 주선합니다.이현세(56) 화백이 김성근(70) 고양 원더스 감독의 얼굴을 그렸다. "제가 주름이 좀 많죠? 최근에 살을 7㎏ 정도 뺐습니다. 주름이 더 늘었어요"라는 김 감독의 말에 이 화백은 "세월이 묻어나옵니다.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있어야 멋이 풍기거든요"라고 답했다. 3분 뒤 이 화백이 캐리커쳐를 들어보인다. 한국 만화의 거장이 그린 한국 프로야구 명장의 모습. 이 화백은 '세월까지 그려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긴 세월 존경했습니다'라고 적었다. '세월이 묻어나온' 캐리커처를 받아든 김 감독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김 감독은 "아,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 얼굴을 누군가 그린 건 처음입니다. 가보로 삼겠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화백은 "제가 영광입니다"라고 화답했다. 거장과 명장이 만났다. 이 화백은 지난 해 12월 27일 오전 7시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자택을 떠나 전주로 향했다. 전주야구장에서 훈련 중인 김 감독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 화백은 붓과 종이로 '공포의 외인구단' 손병호 감독을 만들어냈다.김성근 감독은 한국 최초의 독립팀 고양 원더스를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키우고 있다. 이 화백은 "김 감독님을 꼭 뵙고 싶었다"고 말했고, 김 감독은 "나도 만나뵙고 싶다. 그러나 지금 막 탄생한 고양 원더스의 훈련을 지켜봐야 한다. 전주로 내려오실 수 있으신가"라고 물었다. 이 화백은 김 감독의 조심스러운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 감독은 열 세차례나 해고됐다. 이 화백은 국가를 상대로 6년간 법정다툼을 벌였다. "뛰는 걸 창피하게 생각합니다"라는 이 화백과 달리 김 감독은 늘 선수들과 함께 움직인다. 인터뷰 직전까지 "두 분의 대화가 잘 진행될까"라는 걱정을 한 이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김 감독과 이 화백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한 시간으로 예정했던 둘의 대화는 2시간30분이나 이어졌다. 선두에 서서, 온갖 바람을 맞아가며 살아 온 세월. 둘의 대화 속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겼다. ▶200㎞를 달려, 실존하는 손병호 감독을 보다김성근 감독(이하 김) "주위 모든 사람이 이현세 화백을 아십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먼길 오시게 해 죄송합니다."이현세 화백(이하 이) "최근 TV에 가장 많이 나오시는 분을 뵙게 됐습니다. 영광입니다. 200㎞ 정도였던 것 같은데, 멀지 않게 느껴졌습니다."김 "화백을 뵈니 떠오르는 일이 있네요. 태평양 감독 시절, 사장과 단장 두 분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완도로 가자'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제가 '무슨 섬에서 야구를 합니까'라고 물었죠. 그러니 두 분이 '책도 못봤나'라고 나무라시더라고. 알고보니 공포의 외인구단은 '외딴섬'에서 훈련했던데요."이 "사실 저에게 야구는 정말 '죽여주는' 소재였죠. 당시 심의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아십니까. 선수가 불의와 타협하면 안됩니다. 돈과 관련된 승부조작·선수 사고팔기도 심의에 걸렸어요. 현실에는 있을 법한 일인데 국가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니까. 표현의 자유가 없었던 시절인 거죠. 새마을운동 때문에 초가집도 못 그리고, 일본과 사이가 안 좋을 때는 기모노를 그리는 것도 문제 삼았어요. 그런데 1982년에 프로야구가 생겼죠. 서로 이기려고 하고, 돈을 벌려고 하고. 스카우트 하면서 파문도 생기고. 어느 한팀을 응원할 수도 있고요. '이제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프로야구 출범은 저에게도 큰 기회였던 것이죠. 그렇게 외인구단이 탄생했습니다." 김 "지금은 마음대로 그릴 수 있나요."이 "저는 천국의 신화라는 만화 때문에 음란 폭력 작가로 찍혔습니다. 6년동안 재판을 했죠. 우리 민족이 역사를 그린 만화였는데 옷을 입지 않은 태초의 모습을 문제 삼더라고요. 6년을 싸웠습니다. 그 덕에 지금 후배들은 스트레스 없이 만화를 그릴 수 있죠."김 "1980년대부터 저는 야구인들의 위치를 위해 싸웠습니다. 구단과 야구인 사이에서 야구인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바람에 해고도 당했고, 비난도 많이 받았죠. 후배들이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것은 그 시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직 문제는 많이 남아 있다."이 "작가들에게 감독님은 좋은 캐릭터입니다."김 "나는 '문제아'니까." 이 "공포의 외인구단 손병호 감독도 그렇습니다. 손 감독이라는 괴짜 감독이 주인공입니다. 손 감독은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습니다. 한국에 들어와서 상처입은 선수들을 모아 외인구단을 만들죠. 그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선수들에게 '너희들이 지옥훈련 해주면, 세상에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게 해주겠다'고 공언합니다. 그리고 섬에 들어가 강훈련을 하지요. 선수들에게 또 약속을 합니다. '이 훈련을 모두 소화하면 사생활에서는 자유를 주겠다. 극한의 훈련을 소화했고, 강해졌으니까. 사실 외인구단의 모태는 삼미 슈퍼스타즈 입니다. 그런데 손 감독은 감독님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김 "나와 화백이 비슷한 것 아닌가요.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나에게 외인구단은 태평양입니다. 외인구단이 훈련한 외딴섬는, 태평양 시절 오대산이죠. 추운 겨울에 오대산으로 가서 훈련했어요. 구심점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태평양은 김일권과 같이 다른 팀에서 그만 둔 선수를 모아서 창단했어요. 오대산에 갈 때, 쌀과 같은 취사도구를 각자 준비하게 했습니다. 구단 돈을 쓰지 않았죠. 팀 일원으로서의 자세를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하나의 팀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야구선수가 왜 오대산?'이냐고 묻더라고. 세상 사람들이 내 뜻을 몰랐죠. 나는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데 말이죠."이 "뜻대로 팀이 움직였나요."김 "선수들과 나는 마음을 주고받았죠. 그런데 구단이 문제였어요. 1990년 시즌을 앞두고 임호균 각서 파동이 있었습니다. 구단에서 임호균을 방출시키려고 했어요. 1989년에 박정현·최창호·정명원이 잘했거든. 그러니까 구단에서 '고참들을 버리라'고 하더라고요. 야구를 모르니까요. 젊은 투수들은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요. 베테랑들이 필요하죠. 나는 '임호균·양상문을 버리지 말자'고 했고, 구단은 버리라고 고집했어요. 임호균은 '미국 가겠다'고 하더라고. 내가 '돈 있냐'고 물었더니 '없습니다'라고 해요. 임호균에게 '1년 더 봐줄게'라고 약속한 뒤 구단에 '임호균 5승을 책임진다'고 했죠. 그런데 다음날 '선발 5승'으로 조건이 바뀌더라고. '안되면 500만원 내가 내겠다'고 나섰어요. 그게 임호균 사건이다."(임호균은 5승 달성에 실패했다. 임호균을 5승 투수로 만드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임호균을 쓰지 않았다. '내가 손해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500만원을 내놨다.) 이 "이런 부분이 손 감독과 비슷합니다. 만화에서 손 감독은 구단주와 계약할 때 '50승, 100승을 못 이루면, 돈을 하나도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구단주는 팀이 90승을 이뤘을 때 '어떻게 하면 돈을 안 줄까'를 고민합니다. 팀 내 선수들도 매수해서, 경기를 방해하기도 하고요. 만화니까, 극단적으로 표현했는데 감독님은 실제로 비슷한 일을 겪으셨군요."(손 감독은 심장마비로 죽는다.)김 "그건 닮으면 안되지(웃음)."▶2012년의 외인구단, 고양 원더스이 "공포의 외인구단을 그리면서 머리 속에서 '어떤 훈련을 해야할 지'를 상상했습니다. 영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통과의례를 겪잖아요. 특별하고 강한 훈련을 생각했죠. 그런데 상상력을 총 동원해도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니까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감독님께서는 실제로 무척 특이한 훈련을 하시던데, 알려지지 않은 훈련법이 있으신가요."김 "태평양 시절에는 물 속에서 투구 폼을 잡게 했어요. 여기 고양 원더스 아이들에게도 같은 훈련을 시킵니다. 물 속에서 물을 가르는 동안 손목 힘이 좋아지고, 악력이 커지거든요. 야구 교본 아닌, 경험에서 터득한 겁니다. 극한 상황 속에 살았으니까,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일본 갔을 때 100엔 샵에서 망치를 보고 '이걸로 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24시간 동안 야구를 생각합니다. 이건 승부욕이죠. 절실해지고, 새로운 힘이 나옵니다. 고양 원더스 아이들에게 '성공하는 사람은 1군 올라가라. 만약 안된다고 하더라도 인생 배우고 가라. 갑갑한 상황을 풀어나가는 것은 인생에서 플러스 요인이 된다. 그 시절이 그리워질거다.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전력투구를 하라'고요." 이 "감독님, 곧 영화 주인공 될 것 같습니다."김 "허허, 만화 주인공으로 그려주셨으면 더 좋겠는데요. 그런데 저는 영화 주인공보다 좋은 스승이 되고 싶어요. 매일 밤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한 두번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고, 포기도 했으니까. 습관을 바꾸고 싶어요. 변화가 보입니다. 외야 앞에 갈까 말까 한 타구를 보냈던 선수들이 이제 펜스 근처까지 공을 보내요. 기자를 통해 들어보니까, 선수들이 재밌어 한다더라고요. 이제 저와 일치가 되어가는 것이죠. 환경이 조금 아쉽긴 해요. 운동장 3개만 있으면 타자들 하루에 3000~4000개의 공을 치게 할 수 있거든요. 지금은 (하루에)1000개 정도 칩니다. 구단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돈을 아끼는 것은 좋아요. 그런데 시간 손실도 생각해야 해요. 한달 동안 운동장 4개 빌려 훈련하면, 선수들이 엄청나게 성장합니다. 아마 5~6억원 정도 더 쓰는 걸 거에요. 이미 50억원을 썼다고 해요. 그런데 5~6억원이 아까워서 그 효과를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5~6억원을 더 쓰고, 60억원 이상의 효과를 얻는 게 낫지 않나요."▶밀도있게 사는 법이 "저는 30년 넘게 만화를 그렸습니다. 5만 시간 정도 만화를 그렸을 때, 비로소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그려지더라고요. 내 마음 속에 카메라를 가진 것처럼 느꼈지요. 야구 같은 경우에도 짧은 시간에 일류가 되지는 못할텐데. 그런 면에서는 훈련은 희망이 아닐까요."김 "그렇죠. 그래서 저는 제가 먼저 움직입니다. 코치들에게도 안 맡겨요. 며칠 전 여기 눈이 왔어요. 내가 새벽에 와서 눈 치웠죠. 코치들이 내가 안보이니까 구장으로 왔죠. 다 나와서 눈치웠고, 정상적으로 8시에 훈련했어요. 양만큼이나 중요한 게 밀도에요. SK 감독 시절에 훈련시키면서 '이러다 선수들 쓰러지면 어쩌나'라고 걱정하기도 했어요. 자체 평가전을 해도, 실전처럼 해요. 투수들이 몸쪽 공을 던지고, 포수들 인대가 나가고. 속으로 조마조마 하면서도 선수들을 더 다그쳤어요. 7시 일어나서 10시까지, 밀도가 다른 훈련을 했조. 그때 야수들은 네 군데서 타격훈련 했어요. 선수들이 그렇게 해주면, 지도자는 더 고민해야죠. 훈련 끝나고 방에 들어오면 잠이 오지 않아요. SK라는 팀을 그렇게 만들었죠. 그 속에 아이들이 성장하다보니까. 희망이 생겼고요."이 "만화 얘기를 더 해볼게요. 저에게는 문하생과 학교 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만화는 과도기에 있어요. 출판 만화는 경기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웹툰은 좋은 기회를 맞았어요. 누구나 쉽게 만화를 그려서, 발표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300페이지 잡지에 열 명의 작가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 사람 당 30페이지를 책임집니다. 한 페이지도 더 그릴 수 없고, 덜 그릴 수 없었죠. 컴퓨터는 무한대 아닙니까. 양이 더 붙으면 더 그려버리고, '10페이지만 해야지'라는 생각에 덜 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이트가 망가지지 않지요. 누구나 쉽게 창작을 하다보니 예전 작가들만큼 책임감이 없어요. 출판만화와 웹툰이 공존하는 과도기인 거죠. 웹툰에도 책임감과 밀도가 있는 작품이 나왔으면 합니다. 웹툰 작가들은 하루 하루 읽기와의 전쟁을 펼칩니다. 쉬운 소재로 말초적인 만화를 그리죠. 시세에 민감하고 누가 먼저 올리나를 경쟁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포털이라는 회사는 작가를 키울 것인가를 생각 안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작가들이 경쟁하니까. 10등까지만 타이틀 작가로 쓰면 되죠. 나머지 290명에는 관심이 없어요. 작가가 소모품이 됐어요. 그것을 조정해 줄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만화 시장을 끌고 가는 진정한 방법이 무엇인지를요."김 "만화나 야구나, 진실과 밀도에 소홀한 것 같아요. 매년 야구 시즌이 끝나면 포스트시즌 뒷풀이 방송을 하지요. 그런데 진 팀에게도 '잘했다'라고 해요. 저는 LG 감독이던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실패했어요. '잘 했다'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저는 두고두고 아쉬원하는 장면이 있어요. 6차전에서 4점차로 앞서고 있을 때, 번트 사인을 냈어요. 그런데 코치가 놓쳤죠. '아, 졌구나' 싶었는데 진짜 졌어요. 김응용 당시 삼성 감독은 5점 차면 경기를 포기해요. 그러나 4점차에는 욕심을 내죠. 그때 한 점을 더 달아났다면, (투수) 이상훈을 7차전으로 돌릴 수 있었고 한국시리즈 승자가 될 수 있었을텐데…. 결국 마해영·이승엽에게 홈런을 맞고 패했죠. 나는 그때 패했어요. 시리즈에 나가면 이겨야 합니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잘했다'라는 생각은 패자의 발상입니다. 프로는 1등이에요. 아쉬움이 있어야 발전이 있습니다. 4강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승부세계에 들어설 자격이 없어요. 삶의 밀도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거죠."전주=장상용 기자· 하남직 기자 enisei@joongang.co.kr 사진=이영목 기자▶[새해 기획 대담 고수vs고수 ①] 김성근 “뒷짐 지고 항의하니 뼈 부러졌던 말 들어”▶[새해 기획 대담 고수vs고수 ①] 이현세 “김성근 감독님은 좋은 캐릭터” 2012.01.02 07:00
스포츠일반

유이 출연 ‘버디버디’ , J골프에 뜬다

골프전문채널 J골프는 동계 시즌을 맞아 나눔골프대회와 드라마, 레슨존 편성 등 대대적인 프로그램 개편에 나선다.매주 월요일 오후 11시에는 자선 골프대회인 ‘BMW 채리티 챌린지’가 방송된다. 이미 21일 첫 방송된 이 나눔 대회는 명사와 투어 프로가 한 팀이 돼 기부를 위한 훈훈한 라운드를 펼친다. 22일부터 매주 화요일 자정 12시에는 모교의 명예를 걸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2011 대학동문 골프 최강전’(사진)이 방송된다.특히 골프채널 중에서는 처음으로 방송되는 골프 드라마 '버디버디'가 큰 볼거리다. 한국만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은 이현세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버디버디'가 22일부터 매주 화·수요일 오후 11시에 안방을 찾아간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명의 골프 천재 성미수(유이)와 민해령(이다희)의 꿈과 열정, 그리고 경쟁 관계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또 23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후 11시에는 신설 프로그램 ‘인문의 숲에서 그린을 본다’가 방송된다. 골프와 소통, 자기 성찰 등 인문학적 시각으로 골프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다. ‘J골프 전지훈련’ 시간대도 마련돼 다양한 레슨 프로그램들이 전파를 탄다. 아침형 시청자를 위한 새벽시간존(오전 4시대)과 직장인을 위한 점심시간존(낮 12시 대), 그리고 오후 5시대로 나눠 ‘양용은의 THE BEST LESSON’, ‘박희영, 안나로손의 프라이빗 레슨’ 등이 방송된다. J골프의 간판 레슨 프로그램 ‘라이브레슨 70’은 매주 화·수 오후 8시30분으로 시간대를 옮겨 1시간 일찍 시청자를 찾는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2011.11.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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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버디버디 파이팅!’

27일 오후 서울 논현동 임페리얼팰리스호텔에서 열린 tvN의 새월화드라마 "버디버디"의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진들이 무대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진 이다희 이용우 유이 이병준. "버디버디"는 이현세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골프를 소재로 한 젊은이의 꿈과 도전, 열정을 그린 드라마이다.잠실=김민규 기자 [mgkim@joongang.co.kr] 2011.07.2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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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이다희와 함께선 유이 ‘키 차이가…’

27일 오후 서울 논현동 임페리얼팰리스호텔에서 열린 tvN의 새월화드라마 "버디버디"의 제작발표회에서 여주인공인 이다희와 유이가 무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버디버디"는 이현세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골프를 소재로 한 젊은이의 꿈과 도전, 열정을 그린 드라마이다.잠실=김민규 기자 [mgkim@joongang.co.kr] 2011.07.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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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이다희, ‘신발부터 벗고…’

27일 오후 서울 논현동 임페리얼팰리스호텔에서 열린 tvN의 새월화드라마 "버디버디"의 제작발표회에서 주인공인 이다희가 무대에서 골프포즈를 요청받자 신발을 벗고 있다. "버디버디"는 이현세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골프를 소재로 한 젊은이의 꿈과 도전, 열정을 그린 드라마이다.잠실=김민규 기자 [mgkim@joongang.co.kr] 2011.07.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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