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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의 리플레이] "공 던져볼래?" 입원 중이던 나균안의 야구 인생을 바꾼 전화 한 통

롯데 투수 나균안(23). 2020년 3월 그는 나종덕이었다. 포지션은 포수였다. 손목 수술 후 병원에 입원 중이던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리고 그의 야구 인생을 확 바꿔 놓았다. 당시 나균안은 호주에서 한창이던 스프링캠프 연습 도중 타석에서 스윙하다 왼 팔목에 이상을 느꼈다. 현지 병원 진단 결과 왼 팔목 유구골(갈고리뼈) 골절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같은 소식. 2년 동안 안방에서 고생했고, 트레이드를 통해 경쟁자 지성준(현 지시완)까지 합류한 터라 절치부심하며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균안은 할 수 없이 캠프에서 중도 귀국해 수술대에 올랐다. 병원 입원 중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발신인은 롯데 성민규 단장. 성 단장은 대뜸 "공 한번 던져볼래?"라고 제안했다. 본격적인 투수 전향을 의도한 건 아니었다. 재활 기간 배트를 휘두를 수 없으니 기분전환 겸 가볍게 공을 던져보라는 것이었다. 나종덕은 흔쾌히 답했다. "네." 사실 '포수 나종덕'은 마음고생이 컸다. 2017년 롯데 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입단했다. 1·2차 지명을 통틀어 포수로는 가장 높은 순번이었다. 2018년 강민호가 삼성과 FA(자유계약선수) 계약으로 팀을 떠나면서, 롯데 안방은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였다. 프로 2년 차 나균안이 대체 1순위였다. 2018년에도, 2019년에도 롯데 포수 중 가장 많이 마스크를 썼다. 하지만 주전으로 완벽하게 도약하지 못했다. 타격(2018~19년, 210경기 타율 0.124)도 약했지만, 포수로서 안정감이 떨어져서다. 단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2019년 롯데가 기록한 폭투는 103개. 리그 평균 59개를 훌쩍 넘겼다. 투수 영향도 있었으나, 롯데 포수진의 기본기 부족이 지적됐다. 팀 성적도 2017년 정규시즌 3위에서 2018년 7위, 2019년 꼴찌로 곤두박질치면서 포수진을 향한 따가운 시선은 계속됐다. 나균안을 괴롭힌 건 외부의 시선과 비난이 아니다. 자신에게 큰 실망감 때문이다. 그는 "내가 '왜 이것 밖에 안 되지' '원래 이런 선수가 아니었는데'라며 자책했다. 그래도 유망주 포수로 입단했는데 제대로 된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하고 구단과 팬에 정말 미안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강민호)가 있었던 자리가 엄청나게 크더라.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임했는데, 쉽지 않고 힘들었다. 그걸 이겨내지 못했다. 내가 부족했다. 인정한다"라고 돌아봤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면서도 투수 전향을 확정짓지 않고, 미련이 남은 포수로 더 뛰기로 했다. 성민규 단장이 기억하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렇다. "처음부터 나균안의 투수 전환을 고려했다. 공을 던지는 모습이나 어깨를 보면 투수 자질이 엿보였다. 하지만 포수로 성장 중인 선수에게 함부로 이를 제의할 수 없었다. 계속 찬스를 엿봤다. 캠프에서 부상으로 재활 기간을 갖게 돼 '빌드업을 할 겸 (마운드에서) 공을 한 번 던져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재활 기간 막바지 나균안은 포수로 더 뛰고 싶어 했다. 실제 퓨처스리그에 포수로 뛰며 홈런도 쳤다. 가장 중요한 게 선수 의견이고, 현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설득 과정이 필요해 보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다시 물었다." 나균안이 성 단장에게 답했다. "포수로서 자신감보다 마운드에서 자신감이 더 큽니다. 투수로 전환하겠습니다." 성민규 단장의 깜짝 제안은 나균안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중학교 때 마운드에 오른 적은 꽤 있었지만, 고교 시절에는 전혀 없었다. 그는 2020년 6월 투수 전향과 함께 나종덕에서 나균안으로 개명하고, 퓨처스리그에서 착실히 선발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2군 15경기에 등판해 65⅔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3.29로 합격점을 받았다. 올 시즌에는 선발 투수로 투구 이닝을 늘려가며 호투했다. 2021년 5월 2일, 나균안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투수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사흘 뒤인 5일 홈 사직 KIA전에 등판해 본격적인 새 출발을 알렸다. 첫 이닝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내야 땅볼로 처리, 깔끔하게 출발했다. 그는 "장내에 내 이름이 소개됐고, 팬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들렸고 몸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올라왔다"라고 회상했다. 5월 15일 KT전에선 5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으나, 불펜진의 난조로 첫 승 기회를 놓쳤다. 이어 1일 고척 키움전에서 6⅔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롯데의 6연패 탈출을 이끈 이는 투수 전향 1년도 채 안 되는 그였다. 1~2군을 통틀어 개인 한 경기 최다이닝, 최다 투구 수(95개)를 기록했다. 나균안은 "교체 후 마운드를 내려오는데 팬들의 환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잘 던졌구나'라며 뒤돌아볼 수 있었다"라고 흡족해했다. 나균안은 투수 전향이 1년도 되지 않았으나 6가지 구종을 던진다. 직구와 투심,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체인지업까지 구사한다. 1일 키움전 7회말 1사 1루에서 서건창을 포크볼 3개로 3구 삼진을 잡아낸 장면이 압권이었다. 여기에 제구력까지 갖췄다. 올 시즌 1~2군에서 총 34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볼넷은 9개에 그쳤고, 탈삼진은 26개를 기록하고 있다. 팬들은 나균안과 '컨트롤의 마법사' 그레그 매덕스의 이름을 결합해 벌써 그를 '나덕스'라고 부른다. 그는 "'나덕스'라는 별명은 처음 들어본다"며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팬들은 물론 동료들도 마운드를 내려온 그에게 "우리 팀 1선발 같다"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가족의 존재는 그에게 힘이 된다. 나균안은 "투수 전환 때 부모님이 굉장히 아쉬워하셨다. 부모님 생각이 나 갑자기 울컥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김예은 씨와 결혼한 나균안은 "내가 힘들고 방황할 때 아내가 힘이 되어줬다. 장인어른-장모님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내가 (야구를) 잘하는 것 같다"라고 고마워했다. 또한 성민규 단장은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나균안은 구단, 팬들에게 약속했다. "이제는 포수 유망주가 아닌 투수 유망주입니다. 투수로 도움이 되겠습니다." 고척=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oongang.co.kr 2021.06.03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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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의 리플레이] 추신수에게 빠른 공은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추신수(39·SSG)에게 빠른 공은, 좋은 먹잇감이다. 추신수는 지난 12일 사직 롯데전에서 1회 솔로 홈런을 쳤다. 그가 받아친 공은 롯데 선발 앤더슨 프랑코의 강속구였다. 그것도 시속 157㎞의 빠른 직구를 받아쳐 만든 홈런이다. 몸쪽 약간 낮은 코스에 들어온 직구에 과감하게 배트를 돌렸고, 타구는 시원하게 담장을 넘겼다. 비거리 115m, 타구 속도 161.5㎞, 발사각은 25.6도였다. 지난 5일 NC전부터 11일 롯데전까지 6경기 동안 안타가 없어 2할 타율 붕괴 위협 직전까지 몰렸던 추신수는 이 홈런으로 슬럼프 탈출을 알렸다. 추신수가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 들어오자 동료들은 '이 공이 딱 맞네"라고 했다. 동료들의 이 한 마디는 그가 빠른 공에 얼마나 강한지 의미한다. 추신수도 경기 뒤 "미국에서도 항상 빠른 공에 자신 있었다"라고 했다.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2008년부터 2020년까지 그는 시즌 전체 타율보다 빠른 공을 공략해 올린 타율이 훨씬 높았다.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이 기간 추신수는 타율 0.275를 기록했다. 반면 패스트볼 계열(포심, 투심, 컷패스트볼, 싱커) 타율은 0.316으로 훨씬 높았다. 전체 홈런의 73%도 패스트볼을 공략해 뽑았다. 변화구에 대한 약점이 있었지만, 강속구에 대한 대처로 이를 만회했다. 메이저리그(MLB)에서 살아남으려면 빠른 공 대처가 중요하다. 강정호는 빠른 공을 잘 공략했고, 빅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김하성(샌디에이고)은 그렇지 못하다. 16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고 KBO리그에 입성한 추신수는 시즌 초반 예상과 달리 고전하고 있다. 2주간의 자가격리를 포함한 훈련량 부족도 원인으로 손꼽히나, KBO의 적응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MLB와 KBO리그는 '속도 차'가 있다. 2020년 기준으로 KBO리그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속도는 시속 142.4㎞(스포츠투아이 기준), MLB는 시속 149.8㎞(스탯캐스트 기준)였다. 20년 동안 미국에서 상대한 빠른 공과 구속 차이가 컸다. 추신수는 빠른공 공략으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추신수의 5호(삼성 김윤수, 149㎞ 직구), 6호(두산 곽빈, 145㎞ 직구), 7호(롯데 프랑코, 157㎞) 홈런은 상대 투수의 직구를 받아쳐 넘긴 것이다. 그의 홈런이 낮게 빠르게 담장을 넘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신수는 12일 홈런에 대해 "최근 내 타격감이 좋지 않아 상대가 직구 승부를 걸어올 것으로 여겼다"라고 말했다. 강속구 투수가 각광받는 것도 그만큼 타자와의 승부에서 빠른 공으로 내세워 윽박지르거나 타이밍을 뺏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강속구가 몸쪽으로 향하면 움찔하거나 놀라는 타자도 있다. 추신수는 KBO리그에서도 빠른 공에 강점을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투아이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추신수는 시속 145㎞ 이상 패스트볼에 타율 0.346을 기록하고 있다. 총 26타수 9안타로 표본은 많지 않다. 하지만 145㎞ 미만 패스트볼에 대한 타율 0.244보다 훨씬 높다. 장타율은 시속 150㎞ 이상 패스트볼을 상대로 0.833으로 가장 높고, 145㎞~149.9㎞에서 0.700을 기록하고 있다. 145㎞ 미만 패스트볼에는 장타율이 0.317로 시즌 평균(0.421)보다 훨씬 낮다. 추신수는 현재 KBO리그에 빠른 공을 가장 잘 공략하는 타자다. 부산=이형석 기자 2021.05.15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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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의 리플레이] 야수 등판 잦고 왼손 불펜 없고…'꼴찌' 롯데, 이게 최선입니까?

벌써 세 번째다. 또 얼마나 더 보게 될까. 허문회(49) 롯데 감독은 개막 후 24경기를 치르는 동안 3경기에 야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투수로 나선 내야수와 외야수, 포수가 6명이나 된다. 허문회 감독은 1일 사직 한화전 3-11로 뒤진 8회 김민수(내야수), 9회 배성근(내야수)을 차례로 마운드에 올렸다. 1이닝씩 이어 던진 두 선수가 실점하지 않아 3-11로 졌다. 허문회 감독은 "선발 투수(이승헌·3이닝 8피안타 3볼넷)의 볼넷이 많아 길게 던지지 못했다. 운영이 쉽지 않았다.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세 번째 되풀이하는 답변이다. 지난달 17일 사직 삼성전에서는 KBO리그 40년 역사상 최초로 한 경기에 야수 3명이 마운드에 오르는 기록을 남겼다. 0-12로 스코어가 벌어지자 7회부터 추재현(외야수)-배성근(내야수)-오윤석(내야수)을 등판시켰다. 지난 22일 사직 두산전은 1-12로 뒤진 9회 초 2사 1루에서 포수 강태율을 마운드에 올렸다. 앞 투수 오현택이 25개의 공을 던졌는데 "투구 수가 예상보다 늘어났다"며 아웃카운트 한 개를 잡기 위해 야수 등판을 지시한 것이다. 정상적인 마운드 운영이 아닌 걸 허문회 감독도 알고 있다. 지난 17일 야수 3명을 마운드에 올린 다음 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삼성에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야수의 등판이 발생했다.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야수의 등판이 늘어나고 있다. MLB닷컴에 따르면 2008년 3차례에 불과했던 야수의 등판이 2018년 75차례, 그리고 2019년에는 90차례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롯데만큼 잦진 않다. 더군다나 KBO리그(28명)는 메이저리그 로스터(26인)보다 두 명 더 등록할 수 있다. 롯데는 개막 24번째 경기까지 야수의 등판이 3차례 이뤄졌으니, 산술적으로 18번까지 늘어날 수 있다. 허문회 감독은 롯데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고 있다. 지난해엔 이런 마운드 운용을 하지 않았다. 빅리그에서 온 한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올 시즌 초반 야수를 투수로 내보내자, 이에 편승하고 있다. 야수의 등판에는 장단점이 있다. 투수의 체력 소모를 줄이고,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반기는 시선도 있다. 반면 경기를 일찍 포기할 뿐만 아니라, 투수로 나선 야수의 부상 발생 가능성을 높여 우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대호·손아섭 등 스타가 등판한다면 팬들이 환호하겠지만, 지금처럼 백업 야수의 등판은 화제성이 없다. 오히려 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꼴이다. 또 세 차례 모두 홈 팬들 앞에서 일찍부터 '백기'를 든 모습이다. 야수의 투수 등판이 불가피하게 이뤄진 것도 아니다. 17일 삼성전에 앞서 이틀 연속 등판한 투수는 이인복 한 명뿐이었다. 강태율이 등판한 22일 두산전에 앞선 20~21일 경기에서도 연투한 투수는 없었다. 29~30일 경기에서도 이틀 연속 나온 투수는 없었다. 엔트리에 등판 가능한 투수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결국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한 셈이다. 이런 식이라면 야수의 마운드 등판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올 시즌 국내 감독 중 야수의 투수 등판을 한 사령탑은 허문회 감독이 유일하다. 지금까지 야수의 등판이 이뤄진 다음 경기에서 롯데가 거둔 성적표는 1승 2패다. 김민수와 배성근이 등판한 다음 날인 2일 사직 한화전에 롯데는 마무리 김원중까지 포함해 필승조를 모두 투입하고도 4-5로 역전패했다. 결국 꼴찌(10승 15패)로 추락했다. 투수진을 아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얻고 있는 셈이다. 롯데 마운드에 또 한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야수의 마운드 등판보다, 좌투수의 구원 등판을 더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좌투수로 구원 등판한 투수는 김유영과 박재민으로 겨우 한 차례씩 마운드에 올랐다. 김유영은 개막 엔트리에 포함된 뒤 4월 9일 1군에서 제외됐다. 이후 22일 동안 좌완 불펜 없이 엔트리를 꾸려가다가, 지난 1일 프로 2년 차 박재민이 등록됐다. 지난해에도 롯데는 좌완 불펜 없이 오랫동안 시즌을 운영했다. 불펜에 좌투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크다. 상대의 타순 구성, 대타 작전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1일까지 롯데 투수의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0.295로 리그 평균(0.257)을 훨씬 상회한다. 결국 롯데의 선수 육성 혹은 벤치의 엔트리 구성 중 어느 한 가지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형석 기자 2021.05.03 06:00
스포츠일반

[이형석의 리플레이] '슈퍼 쌍둥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학교 폭력(학폭)' 가해 사실이 드러난 쌍둥이 자매 이재영-이다영(25)에게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가 내려졌다. 흥국생명 구단은 15일 오전 "사안이 엄중한 만큼 해당 선수(이재영-이다영)에 대해 무기한 출전 정지를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에는 대한민국배구협회가 "학교 폭력 가해자(이재영-이다영)는 국가대표 선발 및 운영규정에 의거해 도쿄올림픽과 2021 발리볼네이션스리그 등 향후 모든 국제대회 국가대표 선발에서 무기한 제외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출전 정지 및 선수 선발 앞에는 '무기한'이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징계가 종료되는 시기를 못 박지 않았다. 평생 선수로 뛰지 못할 수 있지만, 다음 시즌 코트에 복귀할 수도 있다. 징계 해제 시점에 따라 '중징계'인지 '경징계'인지 판단이 가능한데 현재로선 가늠할 순 없다. 김여일 흥국생명 단장은 "이번 시즌은 기본적으로 못 뛴다. 징계 해제는 용서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1년이 될 수도 있고, 2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피해자가 쌍둥이 자매의 가해 사실을 10년 정도 지난 최근에 알린 건, 자신의 잘못은 인지하지 못한 채 팀 내 일부 선배와 충돌한 것을 외부에 알리는 걸 보면서 분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신이 억울하다고 느껴 SNS(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 오히려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피해자가 밝힌 21가지의 피해 내용에는 폭행·폭언·갑질 등이 담겨있다. 칼을 가져와 지시·협박했고, "더럽다", "냄새난다"는 등의 폭언 및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 이재영은 "철없었던 지난날 저지른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많은 분께 상처를 드렸다"고 했고, 이다영은 "학창 시절 같이 땀 흘리며 운동한 동료들에게 힘든 기억과 상처를 안겨 깊이 사죄드린다"고 했다. 배구 팬 그리고 물론 우리 사회가 이재영-이다영의 학교 폭력에 분노하는 데는 학폭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용납되지 않고, 정당화될 수 없어서다. 두 선수가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여자 배구의 인기몰이를 한 만큼 팬들의 실망감도 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 하나 놓쳐서 안 되는 건, 이들의 기저에 깔린 특권의식이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2순위로 뽑힐 만큼 학창 시절부터 뛰어난 기량을 자랑한 이재영-이다영은 우월 의식을 가지고 동료들에게 군림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의 주장에 따르면 팀이 패하면 기합을 주고, 동료들을 마음대로 부렸다. 쌍둥이 자매는 배구 국가대표 출신 어머니로부터 뛰어난 배구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모친이 경기장에 나와 자매에게 직접 코치를 했다는 피해 학부모의 폭로도 있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슈퍼 쌍둥이'는 특별한 보호와 관리를 받은 것이다. 그러면서 동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지난해 '2020 배구인의 밤' 행사에서 이재영-이다영의 모친에게 '장한 어버이상'을 수여했다. 학폭 피해자와 그들의 부모는 가해자 가족이 그만큼 거대한 권력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재영-이다영의 학폭이 폭탄처럼 터진 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이 상을 취소하는 절차를 공식적으로 밟을 예정이라고 15일 밝혔다. 사과문에서 스스로 밝혔듯,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렇다고 이를 온전히 두 선수만의 잘못이라고 볼 수도 없다. '슈퍼 쌍둥이'의 학폭은 실력이 곧 권력이며, 그 권력조차 부모의 후광을 받아 커졌다는 절망감을 피해자에게 줬다. 이재영-이다영 자매에게는 그걸 바로잡아줄 어른이 없었던 것 같다. 성적 우선주의 속에 잘못을 꾸짖어야 할 지도자와 학교 관계자는 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모른 체했다. 흥국생명 구단 역시 스타이자 팀의 자산인 두 선수를 보호하고 감싸기에 바빴다. 피해자의 폭로가 있기 전까지, 이로 인해 여론이 악화하기 전까지 '슈퍼 쌍둥이'는 기득권에 의해 철저히 보호받았다. 그게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가 됐고, 많은 이들이 거기에 공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신임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체육 분야의 그늘 속에서 폭력이나 체벌, 성추행 문제 등 스포츠 인권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런 문제가 근절될 수 있도록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2019~20년 쇼트트랙과 트라이애슬론에서 성폭행과 가혹행위 사실이 알려졌고, 최근 배구계에서 프로 선수가 과거 학교 폭력을 범한 사실이 드러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데 따른 주문으로 보인다. 학폭 폭로가 가해자의 징계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일그러진 영웅'이 다시 나오지 않도록 인식의 전환과 제도 개선이 꼭 필요하다. 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oongang.co.kr 2021.02.16 06:00
스포츠일반

[이형석의 리플레이] 어벤저스급 자산인데 리스크 관리는 소홀…흥국생명의 침몰

흥국생명은 문제점을 '진단'했다. 하지만 발 빠르게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흥국생명 브랜드와 어울리지 않게 '리스크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으면서 침몰을 자초했다. 설 연휴 전부터, 그리고 설 연휴 끝난 현재까지 흥국생명은 선수단 내부 갈등과 소속 선수의 과거 학교 폭력(학폭) 논란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프로배구가 개막하기 전만 하더라도 흥국생명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현대건설 세터 이다영을 FA(자유계약선수) 영입,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한 팀에서 뛰게 됐다. 곧이어 '세계 최고의 공격수' 김연경까지 가세했다. 여자배구에서 가장 인기 많은 세 선수가 모였다. 흥국생명은 슈퍼 히어로 영화 '어벤저스'에 빗댄 '흥벤저스'로 통했다.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 '무패 우승' 등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했다. 개막 10연승, 지난해까지 포함하면 14연승을 내달리며 거침없는 행진을 이어갔다. 3라운드까지 '시청률 톱5'를 독식해 성적과 인기를 싹쓸이했다.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한 여자 배구의 상승세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지금은 정반대 입장이다. 선수단 내부 불화설이 불거졌다. 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해당 선수는 "내부의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내부의 문제는 어느 팀이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한 선수는 지난 7일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의 과거 학교 폭력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지난 10일 두 선수는 자필 사과문을 게재, 재학 시절 잘못한 일을 반성하며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흥국생명 역시 '학폭' 사안에 대해선 황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두 선수가 프로에 입단하기 훨씬 전에 벌어진 것으로, 구단이 자세히 인지했을 가능성이 작다. 하지만 구단의 미온적인 대처 속에 추가 피해자가 나왔다. 13일 이재영-다영 자매의 학폭의 '또 다른 피해자'라고 밝힌 이는 "징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돼야 한다는 데 왜 그래야 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조용히 잠잠해지는 걸 기다리는 거라면 그때의 일들이 하나씩 더 올라오게 될 겁니다"라고 밝혔다. 구단은 앞서 "이재영과 이다영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징계를 유보하는 듯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두 선수에 대해 흥국생명은 향후 경기 출장 여부나 징계 등에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학폭' 관련 징계 규정이 없고, 아마추어 배구를 소관하는 대한민국배구협회 징계는 대표팀 등에 적용된다. 앞서 한국 프로야구에서 아마추어 시절 '학폭' 사안에 대해서도 구단의 자체 징계가 이뤄졌다. 결국 '학폭' 논란에 대해선 구단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흥국생명이 화를 키운 꼴이다. 모든 건 선수단 내부 불화설에서 시작했다. 구단과 코치진에는 이에 대한 관리 책임이 있다. 개성 강한, 여자 배구 최고 인기 선수를 한 팀에 보유하면서 성적만 좇고, 내부 갈등을 모른 척하면서 일이 점차 커졌다. 선수에게 해명을 맡겼을 뿐 구단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흥국생명은 '1위 질주'라는 성과에 취해 불협화음을 쉬쉬하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선수단 갈등은 코트에서 쉽게 목격됐다. 해당 선수는 코트에서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선수들의 갈등은 팀 분위기 악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더 큰 문제가 터졌고, 성적도 추락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14일 현재 승점 50(17승 6패)으로 개막 후 한 번도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하지만 2위 GS칼텍스(승점 45)가 거세게 쫓는 중이다. 이재영-이다영은 잔여 경기 출장이 불투명하다.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 정규시즌 남은 경기는 7경기. 가장 최근 경기였던 지난 11일 이재영-이다영이 경기장에도 나오지 않은 가운데, 세트스코어 0-3으로 졌다. 내용은 더욱 참담했다. 16-25, 12-25, 14-25로 완패했다. 경기 시간은 고작 1시간 8분, 올 시즌 최소 경기 시간 패배였다. 사태 수습을 위한 '골든타임'은 놓쳤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사태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만이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 그동안 흥국생명을 응원해온 팬들의 상처받은 팬심을 달래는 것도 중요한 '보상'이다. 여기는 '보장 기간'이 없다. 이형석 기자 2021.02.15 06:01
야구

[이형석의 리플레이] 롯데가 자초한 불공정 비밀 계약...손아섭 놓칠 수도

2017년 11월, 롯데는 왜 손아섭(33), 민병헌(34)과의 FA(자유계약선수) 세부 계약 내용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구단도 자신 있게 드러낼 수 없었던 불공정 계약이었기 때문이다. 롯데는 당시 손아섭과 4년 총 98억원, 민병헌과 4년 총 80억원의 FA 계약을 발표했다. 당시 구단은 총액만 발표해 이들의 자세한 계약 내용은 그동안 비밀로 유지됐다. 베일에 싸여있던 둘의 연봉은 일간스포츠가 2021년 연봉 계약 현황을 요구하면서 드러났다. 손아섭의 2020년 연봉은 20억원이었다. 그런데 올해 연봉은 5억원으로 확 줄었다. 민병헌도 전년도 12억 5000만원에서 마찬가지로 5억원으로 감소했다. FA 계약 마지막 시즌에 전년 대비 연봉이 75%와 60%로 줄어든 것이다. 지금껏 전례가 없었던 삭감이다. 한 에이전트는 "절대 일반적이지 않은 계약이다. 지금껏 보지 못한 계약"이라며 "리스크(위험)가 크다. (구단과 선수 사이에) 무언가 딜(거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라고 했다. 이런 계약은 선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선수가 다음 FA 계약 협상에서 훨씬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FA 보상 규정 때문이다. 손아섭과 민병헌이 올 시즌 뒤 FA 자격을 얻어 타 구단 이적을 모색하면 보상금은 전년도 연봉의 최대 200%인, 10억원에 불과하다. 손아섭과 민병헌이 FA 자격을 다시 얻으면 변경된 등급제에 따라 B등급으로 분류된다. '전년도 연봉의 100%+보상 선수 1명' 또는 '선수 보상 없이 전년도 연봉의 200%'가 보상 조건이다. 만일 2020년 연봉 20억원과 12억 5000만원이 2021년에도 유지됐다면, 손아섭과 민병헌의 보상금은 각각 40억원과 25억원이다. 이 경우 타 구단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해 선뜻 영입전에 선뜻 나설 수 없다. 그렇다면 롯데가 다른 구단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이들과 협상할 수 있다. 롯데는 이런 계약이 관행이었다고 주장했다. 구단 관계자는 "당시 FA 시장은 과열됐고, 몸값 거품도 심했다. 어떤 식으로든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유인책을 쓰던 시기였다"라고 한다. 당시 계약을 추진한 구단 대표이사와 단장은 팀을 떠났고, 운영팀장은 자리를 옮겼다. 타 구단의 다른 계약과 비교하면 롯데의 불공정 계약은 과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간스포츠가 입수한 2017년 주요 FA 선수의 계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LG와 115억원에 계약한 김현수(계약금 65억원)는 14억→13억→13억원을 받다가 올해는 10억원을 수령한다. KT와 88억원 사인한 황재균(계약금 44억원)은 12억→12억→12억원에서 8억원으로 33.3% 삭감됐다. 롯데를 떠나 삼성과 80억원에 계약한 강민호(계약금 80억원)가 민병헌과 마찬가지로 연봉이 전년도 12억5000만원에서 5억으로 60% 삭감됐다. 하지만 강민호와 손아섭·민병헌 계약의 차이점은 있다. 롯데는 떳떳하지 못했다. 구단도 불공정 계약을 인지한 영향인지, 세부 계약을 발표하지 않았다. 당시 LG와 KT, 삼성 등 대부분 구단은 총액과 함께 계약금과 연봉을 공개했다. 연도별 연봉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지난 3년간 연봉을 살펴보면 마지막 4년째 연봉을 확인할 수 있다. 롯데는 2017년 손아섭, 민병헌과 세부 계약을 알리지 않았다. 굳이 타 구단과 비교하지 않아도, 또 롯데가 불공정 계약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관행'도 틀린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롯데는 2010년대 10억원 이상 FA 계약을 맺은 선수가 15명이다. 이 가운데 2017년 말 계약한 손아섭과 민병헌, 문규현(은퇴)의 FA 계약 세부 내용만 발표하지 않았다. 당시 세부 계약 내용을 밝히지 않은 건,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면 비난을 받을 게 자명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선수 측은 "왜 이게 이슈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선수 입장에서 계약 협상에서 계약을 유리하게 맺으려 하는 건 당연지사다. 공교롭게도 당시 손아섭과 민병헌, 강민호의 계약을 담당한 이는 같은 인물이다. 반대로 구단에는 그만큼의 손해로 작용할 수 있다. 선수가 올 시즌 뒤 다른 구단으로 떠난다면 보상금이 확 줄어들게 된다. 또 선수가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몸값이 오르면, 원소속구단인 롯데가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선수를 붙잡아 둘 수 있다. 즉, 어떤 식으로든 롯데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롯데는 최근 5년(2016~2020년)간 FA 계약에 무려 578억 7500만원을 썼다. 이 기간 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에 단 한 번(2017년) 진출했을 뿐이다. 2019년과 2020년 롯데의 팀 연봉은 1위였다.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면서도 성적이 나지 않는 비효율적 운영이었다. 올 초에는 모 그룹 계열사로부터 50억원을 대출받은 사실이 알려질 만큼 구단 재정이 어렵다. 롯데 소속의 일부 FA 선수는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해도 타 구단으로 이적하기도 했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운영, 롯데가 한 번 곱씹어볼 문제다. 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oongang.co.kr 2021.02.09 06:00
스포츠일반

[이형석의 리플레이] '편의점 알바' 김유리에게 쏟아진 후배들의 스포트라이트

감독과 선수, 트레이너 등 모든 구단 관계자가 옹기종기 모였다. 다들 인터뷰 중인 한 선수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지금껏 어느 프로 스포츠 인터뷰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면. 몇몇 선수는 '역사적인' 인터뷰 장면을 휴대폰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내 코트에는 눈물이 전염됐다. 동료 선수도, 해설위원도 처음으로 '주연'이 된 그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울지 마"라는 소리가 코트에 퍼졌다. GS칼텍스가 지난 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0-21 V리그 흥국생명전에서 세트 스코어 3-0으로 승리한 뒤 벌어진 풍경이었다. GS칼텍스 센터 김유리(30)가 지금껏 팀을 위해 해온 희생을 곁에서 지켜봤고, 그의 배구 인생이 힘겨웠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어서다. 그는 "취재진과 실내 인터뷰는 단 한 번뿐이었고, TV 수훈 선수 인터뷰는 5일이 처음이었다. 내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드디어 내가 이 자리에 섰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라고 말했다.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그는 "제가 뭐라고?"라며 겸손했다. 그러면서도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김유리의 배구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2010년 11월, 흥국생명 입단 당시만 하더라도 1라운드 전체 2순위에 뽑힐 만큼 장래가 촉망된 유망주였다. 하지만 한 선배의 괴롭힘이 심했다. 스무 살 소녀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결국 김유리가 코트를 떠나기로 했다. 김유리는 "다른 선배들과는 모두 잘 지냈다. 지금도 그때 (은퇴) 선택에 후회는 없다"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코트를 떠난 뒤 갈 곳이 있었던 건 아니다. '선수 유니폼' 대신 '편의점 조끼'를 착용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는 "은퇴 후에 한 달 정도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부모님이 그런 모습을 너무 보기 싫어하셨다. 그래서 '용돈이라도 벌자'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3개월이 지나자,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실업팀에서 연락이 왔다. 그는 대구시청과 양산시청에서 각각 1년간 뛰었다. 김유리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막내는 항상 청소를 잘해야 하지 않나. 그 재능이 아르바이트 때 발휘됐다. 편의점 사장님이 '운동하지 말고, 계속 같이 일했으면 한다'고 권했을 정도"라며 웃었다. 김유리는 2014년 12월 IBK기업은행과 계약해 프로 무대에 돌아왔으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팀을 옮겨 다녔다. 2017년 6월 3일 염혜선의 보상 선수로 현대건설로 이적했고, 불과 11일 뒤 한유미와의 트레이드로 GS칼텍스에 둥지를 틀었다. 프로 네 번째 팀이다. 그에게 또 시련이 찾아왔다. 베테랑 한수지의 이적과 신예 권민지의 성장으로 코트에서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갔다. 동시에 팀에서는 베테랑이 돼 있었다.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최근 두 선수가 부상으로 빠지자 김유리의 출전 시간이 늘어났다. 그는 5일 경기에서 자신에게 아픔을 안긴 흥국생명을 상대로 제대로 복수했다. 9점, 공격성공률 64.28%를 기록하며 팀 승리의 선봉장에 섰다. 외국인 선수를 포함해 김연경·이재영·이다영 등 특급 선수들이 모두 나선 경기에서 흥국생명은 이번 시즌 들어 처음으로 셧아웃(0-3) 패배를 당했다. 선배의 괴롭힘에 코트를 떠났던 그는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다. 그가 첫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하자 후배들은 마치 그의 팬처럼 주위에 몰려들었다. '주장' 이소영이 그를 인터뷰 장소로 안내했고, 차상현 감독과 동료 선수, 구단 관계자들이 하나둘씩 그의 앞에 모여들었다. 구단 관계자는 "특정 선수가 이끈 것이 아니라, 너나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라고 전했다. 김유리는 "은퇴 전까지 인터뷰를 못 할 줄 알았는데 (드디어 이뤄져) 기쁘다.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오래 걸렸다"라며 "동료들이 그렇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처음부터 울컥했다. 겨우 참았다"라고 회상했다. 한유미 KBS N SPORTS 해설위원은 "그동안 (김)유리의 마음고생을 알고 있어 나도 눈물이 났다"라고 말했다. 차상현 감독은 "인터뷰를 보며 나도 마음이 짠했다. 그동안 다른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 받는 동안 그늘에 가려져 있었는데, 묵묵하게 잘 지켜줬다. 고맙다"라고 칭찬했다. 요즘 V리그 웜업존에서 자주 목격되는 열성적인 응원도 그로부터 시작됐다. 동료들을 위해 목청껏 응원을 불어넣는 장면. 대개 베테랑 선수는 이곳에서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지만, 김유리는 후배들과 춤도 추고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그는 "웜업존에서 베테랑이 있으면 후배들은 불편하다. 내가 인상 쓰고 있을 수도 없어 마음을 내려놓고 함께 즐겼는데 재밌더라"고 웃었다. GS칼텍스가 경기도 가평에 전용 훈련장을 개관한 뒤에는 새벽에 맹훈련하고 있다. 그는 "솔선수범을 고민하다가 좋은 훈련 환경이 갖춰졌으니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 인생 마인드도 달라졌다"라며 "나도 체중을 많이 감량했다"라고 말했다. 개인 욕심은 없다. 그는 "현실 직시가 빠른 편이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다"라면서 "올 시즌 선수들이 너무 많이 다쳤다. 동료 선수들이 더 부상 없이 시즌을 잘 치렀으면 한다"고 했다. GS칼텍스는 '1강'으로 손꼽힌 흥국생명의 유일한 대항마로 손꼽힌다. KOVO컵을 비롯해 이번 시즌 3승 3패로 팽팽하다. 그는 "우리가 전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팀워크는 최고"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후배들과 격의 없이 지낸다. "어떤 선배로 기억되고 싶나"라는 질문에 "'인성이 최고였던 선배'라는 평가를 듣고 싶다. 후배들에게도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라고 말했다. 김유리는 "GS칼텍스에서 나도 어른이 된 것 같았다"라고 한다. 이형석 기자 2021.02.08 06:01
스포츠일반

[이형석의 리플레이] 선수는 뒷전..의전에 열 올리는 KOVO

조원태 회장을 향한 한국배구연맹(KOVO)의 과도한 의전이 선수를 들러리 신세로 만들었다. 조원태 한국배구연맹은 지난 26일 도드람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GS칼텍스전이 열린 인천 계양체육관을 방문했다. 경기 전 신무철 KOVO 사무총장이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올스타 시상식을 마친 뒤, 조 회장이 올스타 최다득표 1위 김연경(흥국생명)에게 트로피와 꽃다발을 건넸다. 이때 한 선수가 등장했다. 남자부 최다득표 1위 신영석이었다. 조원태 회장은 김연경과 신영석을 양 옆에 두고 기념촬영을 했다. 프로 스포츠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소속팀의 경기가 없음에도, 남자부 선수가 상을 받으러 여자부 경기가 열린 체육관을 찾은 것이다. KOVO가 조원태 회장의 경기장 방문 소식을 접하고선, 한국전력에 신영석의 시상식 참가를 사전 요청했다. KOVO는 "올스타 최다득표 선수에게 총재가 직접 시상하는 것이 낫겠다는 내부 의견이 모였다. 김연경 선수가 이날 상을 받으니, 남자부 1위 신영석까지 같이 상을 받는 그림(모습)이 좋을 것 같아 추진했다"라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항공 업계가 어렵고, 아시아나 항공 인수 합병 문제까지 안고 있는 조 회장이 직접 연맹에 "김연경·신영석의 공동 시상식을 추진하자"고 제안했을 리 만무하다. KOVO 사무국 직원들이 조 회장 방문에 맞춰 '특별 의전'을 준비한 것이다. 연맹 관계자의 "그림이 좋을 것 같아서"라는 말에 답이 있다. 현장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한 관계자는 "(경기가 없는) 신영석 선수가 여자부 경기가 열린 계양체육관에 나타나 깜짝 놀랐다"라고 했다. 이어 "우리 구단이었으면 절대로 선수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신영석은 단 1분도 되지 않는 시상식을 위해 왕복 두 시간이 넘는 먼 길을 오갔다. KOVO의 해명은 황당하다. 관계자는 "한국전력이 내일(27일) 경기가 있었으면 사전 협조를 요청하기 불편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한국전력은 시상식 이틀 뒤인 28일 우리카드와 경기를 앞둔 터였다. 이 관계자는 "내일모레(28일) 경기가 있어서…(괜찮다고 여겼다)"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답을 내놓았다. 안일한 판단이다. 프로 선수는 몸이 재산이다. 훈련뿐만 아니라 휴식도 중요하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게다가 KOVO는 한국전력과 신영석의 훈련에 지장을 초래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KOVO는 한국전력 구단에 "신영석이 팀 훈련을 일찍 끝낸 뒤 시상식 장소(계양체육관)로 이동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결국 신영석은 따로 훈련해야만 했다. 한국전력은 26일 오전 훈련장이 있는 의왕에서 체력 훈련을 했고, 오후에는 코트 적응 차원에서 이틀 뒤 홈 경기가 열리는 수원실내체육관에서 6시까지 팀 훈련을 했다. 하지만 신영석은 시상식 참가를 위해 이보다 훨씬 일찍 훈련을 마쳤다. 퇴근 시간 교통 체증도 고려했다. 그래서 한국전력은 신영석을 홀로 의왕 숙소에서 개인 훈련하도록 조치했다. 결국 신영석은 팀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이다. 훈련 시간은 짧았고, 효율은 떨어졌다. 신영석은 국가대표 센터로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크다. KOVO는 특정 팀의 훈련과 경기력에 지장을 초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공동 시상식'을 진행했다. KOVO는 "한국전력이 거절했으면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선수단 연봉을 공개해 KOVO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한국전력으로선 거절하기 어려운 요청이었다. KOVO와 남자부 구단은 내년부터 연봉을 공개하기로 합의했는데, 한국전력은 올해 연봉을 미리 오픈했다. "연봉 계약의 투명화를 선도하려는 구단의 강한 의지와 팬들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한국전력은 KOVO로부터 제재금 1000만원을 부과받은 바 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조원태 회장님이 직접 시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KOVO의 흥행을 위해 수락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일간스포츠의 취재 결과 'KOVO의 요청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구단과 선수, 코칭스태프 모두 흔쾌히 수락하지 않았다'는 내부 의견을 확인했다 KOVO는 지금껏 특정 선수의 시상식을 해당 소속팀 경기 시작 전 거행했다. 올스타 시상식 역시 마찬가지다. 27일 남녀부 경기 전엔 문용관 경기운영실장과 류근강 심판위원장이 현장에 있던 선수에게 트로피를 건넸다. 선수(신영석)가 총재로부터 직접 상을 건네받는다고 특별히 더 영광스러운 건 아닐 것이다. 결국 조원태 총장을 향한 KOVO 사무국의 과잉 충성이자, 무리한 의전이다. 정작 가장 주인공인 선수는 뒷전이었다. 그러나 연맹은 아직도 무엇이 잘못인지 전혀 못 느끼고 있다. 과연 신영석은 이날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았을까?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 이형석 기자 2021.01.29 06:00
야구

[이형석의 리플레이] 팀은 다르지만…배정대 "장타 향상 목표" 최형우 "넌 이미 최고야"

"장타를 더 치고 싶어요." "이미 넌 최고야." 선배가 후배를 칭찬하자, 후배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선배는 또 칭찬하며 용기를 북돋워 줬다. 그라운드에서는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말끔한 슈트를 차려 입으니 훈훈한 선·후배의 모습이었다. 둘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던 무대는 지난 8일 열린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시상식이었다. '선배'는 KIA 최형우(37), '후배'는 KT 배정대(25)다. 이번 시상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해 최소 인원만 초청해 1~4부로 나눠 진행됐다. 1부에 자리한 '최고 타자상' 최형우, '수비상' 배정대, '신인상' 소형준 등 3명만 한 테이블에 앉았다. 최형우가 자리에 앉은 뒤 대뜸 "(소)형준이는 투수여서 내가 할 말이 특별히 없지만, (배)정대는 진짜 최고였다"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러자 배정대는 '12년 선배' 최형우가 어려운지 "아닙니다"라고 작은 목소리로 쑥스럽게 답했다. 최형우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니?"라고 물었다. 그는 이내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아닙니다"라고 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긴장이 풀린 배정대는 고민 한 가지를 털어놓았다. "장타력을 좀 더 늘리고 싶다"고 했다. 최형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슬럼프에 빠지면 변화를 주기 위해 고민하고, 타격폼을 바꿀 수도 있어. 그런데 너는 지금 엄청나게 잘하고 있잖아. 그대로 밀고 가. 지금 최고라니까"라고 했다. 최형우는 2002년 포수로 삼성에 입단한 뒤 방출됐다. 경찰 야구단에 입대해 외야수로 포지션을 전향했고, 타격 장점을 극대화하고자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런 노력 끝에 제대와 동시에 삼성에 재입단, 리그 최고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프로 19년 차인 올해 타격왕(0.354)에도 올랐다. 4년 전 KIA와 4년 총액 100억 원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맺은 그는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한 기량을 선보인다. 14일 KIA 구단이 발표한 최형우와 3년 최대 47억 원(계약금 13억 원, 연봉 9억 원, 인센티브 7억 원)의 FA 계약이 이를 방증한다. 최형우는 "다시 한 번 우승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라고 밝혔고, 구단은 "동료 선수에게 귀감이 되는 등 그라운드 안팎에서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 최형우와 계속 함께해 기쁘다"라고 전했다. 그런 최형우의 눈에 배정대는 장점이 많은, 매력적인 선수다. 최형우는 "너는 타율 2할8푼~2할9푼만 쳐도 인정받는다. 타격 외에도 다 잘하잖아? 최고라니까"라며 극찬했다. 그러면서 "난 오로지 치는 것밖에 (장점이) 없는데…"라며 부러워했다. 이번에도 배정대는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배정대 역시 최형우와 마찬가지로 무명의 시절을 보낸 끝에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2014년 LG 2차 1라운드 3순위 유망주로 입단한 그는 이듬해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해까지 211경기에서 타율 0.180에 그친 배정대는 올해 전 경기에 출장해 타율 0.289, 13홈런, 65타점, 88득점, 22도루를 기록했다. 특히 그는 수비 범위가 넓고, 강한 어깨를 자랑한다.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시상식에서 '수비상'을 받은 이유다. 본지의 칼럼을 기고 중인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은 "반갑다 배정대, 삼박자 갖춘 우타 외야수"는 제목(7월 10일 자)으로 그의 활약을 조명한 적 있다. 당시 김 전 감독은 "한국 야구의 발전을 생각하며 배정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대표팀에 귀한 우타 외야수, 25세의 젊은 외야수로 기대감이 크다"라며 "콘택트, 장타력, 주력이 좋다. 대표팀 외야수의 송구가 약한 편이었는데, 배정대는 외야에서 홈까지 바운드 없이 송구할 수 있는 어깨를 지녔다. 차세대 국가대표 외야수"라고 했다. 배정대는 올 시즌 외야 보살 13개로 이 부문 전체 1위였다. 국가대표 외야수 출신인 최형우에게 김인식 감독의 평가를 전하자 "당연하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배정대를 엄청나게 칭찬한다'고 하는 기자의 얘기에도 최형우는 "KT가 올 시즌 좋은 성적을 올린 원동력의 20%는 배정대 때문이다. 만약 얘가 없었더라면, KT의 센터 라인이 이처럼 강할 수 없었다"라고 분석했다. 최형우는 평소에도 배정대를 칭찬했다. 배정대는 "지인을 통해서도 최형우 선배님의 칭찬을 전해 듣곤 했다"고 말했다. 최형우는 후배에게 밥을 잘 사고 알뜰히 챙기는 선배로 통한다. 배정대는 "올 시즌 중반까지 보여준 퍼포먼스를 계속 보여줬으면 좋을 텐데 후반에 떨어져서…"라며 아쉬워했다. 7월까지 0.331였던 그의 타율은 8월 이후 0.247로 뚝 떨어졌다. 최형우는 "그건 당연하다. 어떻게 계속 잘할 수 있나"며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려고 계속 노력하면 된다"라고 조언했다. 배정대의 또 다른 장점인 수비와 주루에는 슬럼프가 없다는 요인도 고려했다. 최형우는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잘하는 거야?"라며 되묻기도 했다. 대선배와의 '야구 이야기'는 까마득한 후배에게 큰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배정대는 "최형우 선배와 특별히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야구장에서 인사를 드리면 잘 받아주셨다"라며 "시상식에서 같이 앉게 돼 궁금한 걸 여쭤봤다. 내게 용기를 주면서 '계속 그대로 밀고 나가라'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좋은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방출의 설움을 딛고 골든 글러브만 6회 수상한 선배의 격려는 이제 막 시상대에 오른 후배에게 큰 힘이 됐다. 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oongang.co.kr 2020.12.15 08:27
스포츠일반

[이형석의 리플레이] 과열·신경전…배구 세리머니 전쟁, 금도는 어디까지?

배구는 몸싸움이 없는 종목이다. 구기 종목 가운데 신체적 접촉이 거의 없는, 가장 신사적인 스포츠로 인식된다. 그런데 최근 네트를 사이에 두고 선수와 감독 간의 신경전과 감정싸움이 격화하고 있다. 프로배구 출범 후 세리머니를 놓고 이처럼 논란이 뜨거운 적이 없었다. 선수들의 감정 표현, 세리머니의 금도는 어디까지일까. 논란의 불씨는 김연경(흥국생명)으로부터 시작됐다. 지난 11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GS칼텍스의 경기. 김연경은 2세트 도중 상대의 블로킹에 공격이 막히자 공을 코트에 내리찍었다. 이어 5세트 14-14에서 상대의 손에 맞고 떨어진 공을 걷어내지 못하자 네트를 잡고 끌어내렸다. 이를 보고 심판진에 강력하게 항의한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은 경기 뒤 "(김연경에게) 어떤 식으로든 경고를 줘야 했다"며 강하게 아쉬움을 표현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12일 "김연경이 네트 앞에서 한 행위에 관해 제재하지 않고 경기를 진행했다. 이는 잘못된 규칙 적용이라고 판단해 강주희 심판에게 제재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김연경도 경기 후 "네트를 끌어 내린 건 과했다고 생각한다. 참아야 했는데….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곧바로 사과했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도 "조금 절제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KOVO가 12일 징계 내용을 발표하면서 "V리그 모든 구성원이 페어플레이 정신에 따라 리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예방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에도 세리머니를 놓고 선수 및 감독 간의 신경전이 과열되고 있다. 1~2위 리턴매치가 열린 13일 KB손해보험-OK금융그룹전이 끝난 뒤 양 팀 선수들은 삿대질까지 하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OK금융그룹 선수단은 "노우모리 케이타가 상대 팀을 배려하지 않는 세리머니를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네트를 두고 선수들이 대치하자 감독과 심판진이 코트로 달려 나와 말렸다. 배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KOVO에 따르면, OK금융그룹의 한 선수도 4세트에서 득점을 올린 뒤 상대 팀 선수단을 향해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에 KB손해보험 선수들도 감정이 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양 팀 선수들이 경기 종료 후 충돌한 것이다. KOVO는 "경기 중 심판진이 케이타에게 '세리머니를 자제하라'고 구두 경고를 했다. OK금융그룹 선수에게 더 강력히 제재하지 않은 게 아쉽다'라고 내부 의견이 모였다"고 밝혔다. 15일 대한항공-한국전력전에서는 로베르토 산틸리 대한항공 감독이 상대 선수단을 향해 영어로 "조용히 하라"는 외침과 함께 손동작을 했다. 산틸리 감독은 "한국전력 리베로가 리시브를 받고 웃는 행위가 조롱하는 듯한 느낌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산틸리 감독의 행동에 장병철 한국전력 감독도 항의하면서 양 팀 감독 모두 옐로카드를 받았다. 스포츠에서 세리머니는 심리적인 요소다.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사기를 북돋기 위한 행동이다.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다만 과도하면 감정싸움으로 번진다. 세리머니는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 내에 이뤄져야 하는 게 불문률이다. LIG 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감독 출신의 문용관 KOVO 경기운영실장은 "배구에서 세리머니를 할 때 상대방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네트를 등지고 한다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세리머니를 하는 게 좋다. 또한 자극적 행동이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귀띔했다. 한국배구연맹 규정에 '세리머니'에 대한 구체적인 처벌 및 징계 조항은 없다. 다만 세리머니는 '비신사적인 플레이'에 포함돼 적용된다. 심판은 선수가 과한 세리머니를 했다고 판단하면 구두 경고, 옐로카드, 레드카드를 줄 수 있다. 문용관 경기운영실장은 "배구는 신사적인 스포츠다. 상대에게 모욕, 불쾌감을 주는 행위를 했다면 심판이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OVO는 12일 경기에서 김연경에게 구두 경고를 했고, 5세트 네트를 끌어 내린 행동에 대해 '비신사적인 행위'라고 결론을 내렸다. 선수단의 감정싸움으로 코트가 과열되자, KOVO는 시즌 중 이례적으로 머리를 맞댔다. 16일 남녀부 11개 감독(2개 구단 감독 불참)과 주부심이 모여 의견을 나눴다. KOVO 관계자는 "대개 시즌 전 이런 자리를 통해 규정 설명회를 연다. 필요에 따라 올스타 휴식기 때 개최하기도 한다"며 "최근 경기가 과열됨에 따라 이례적으로 다 같이 모였다"라고 밝혔다. 또한 KOVO는 개막 후 15일 경기까지 잘못된 부분을 되짚어보며 심판진에 "규정을 원칙적으로 적용해달라"고 주문했다. 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oongang.co.kr 2020.11.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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