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이제는 APG] "몸 부서져라 막겠다" 골볼 대표팀, 만리장성·후지산 넘어 금메달 '자신'
골볼은 안대를 쓴 채 소리 나는 공을 굴리고 막는 시각장애인들의 스포츠다. 공 안의 방울 소리를 듣고 위치를 파악해 공을 막고, 느낌으로 방향을 잡고 상대 골문에 공을 넣는 종목이다. 언뜻 보면 단순한 스포츠지만, 눈을 가리고 공을 막는 게 쉽지 않다. 둘레 76㎝·무게 1.2㎏의 공을 오로지 청력에만 의존해 막아야 한다. 몸을 날려 막는 것은 기본이고, 묵직한 공에 얼굴을 맞는 일도 다반사다. 온몸엔 크고 작은 생채기가 가득하고 부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선수들도 있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몸이 부서져라 뛴다. 골볼의 매력이 이들을 움직인다. 일상생활에서 신체적 한계를 느끼는 시각장애인 선수들은 코트 위에선 안대를 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같은 조건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매력에 빠져 골볼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스포츠의 매력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골볼은 그들에게 희망이다.
2022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APG) 여자 골볼 대표팀 주장 김희진은 “골볼은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운동이다. 골볼 코트 안에선 눈을 가리고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라며 골볼의 매력을 설명했다. 6세 때 녹내장 진단을 받고 시력이 떨어진 김희진은 중학교 때 접한 골볼과 음악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뮤지컬 배우를 겸하며 ‘노래하는 국가대표’로 무대와 코트를 누비고 있다. 2006년부터 18년간 남자 골볼 국가대표로 활약 중인 홍성욱도 골볼을 “친동생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후천적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골볼과 21년째 동행 중이다. 어린 나이에 장애를 얻고 일상이 무너져 내려 힘들었다는 그는 은사가 추천한 골볼로 힘을 얻었다.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소년에게 골볼은 희망이다. 취미로 시작한 골볼은 직업이 돼 그에게 태극마크까지 안겼다.
골볼을 시작한 시각장애인 선수들이 많아지면서 전국 곳곳에 실업팀도 많아졌다. 선수들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레 국가대표팀의 경쟁력도 높아졌다. 한국 여자대표팀(세계 랭킹 15위)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8강에서 당시 랭킹 1위 일본을 제압하고 결승까지 진출한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2024 파리 패럴림픽 출전권도 획득했다. 여자 대표팀이 패럴림픽에 출전한 건 1996 애틀랜타 대회 이후 28년 만이다. 세계 13위 남자 대표팀도 지난 8월 영국에서 열린 월드게임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경쟁력을 보였다.
이번 APG에선 중국과 일본을 넘어야 한다. 여자팀에선 일본이 아시아 최강(현재 세계 2위), 남자팀에선 중국이 아시아 정상(세계 3위)이다. 특히 남자 대표팀은 아시아 무대에서 중국의 만리장성을 한 번도 넘어서지 못했다. 지난 2018 인도네시아 대회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한 것도 중국에 가로막혀서였다. 하지만 선수들은 자신감이 넘친다. 홍성욱은 “이번 대표팀은 신구조화가 잘돼있다. 2019년 실업팀이 처음 생기면서 조직력과 경기력이 정말 좋아졌다”면서 “남자 대표팀이 APG에서 은메달(2010 광저우)과 동메달(2018 인도네시아)만 땄는데, 이번엔 만리장성을 넘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르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희진은 “중국과 일본 등이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번이 세 번째 APG 출전이지만 아직 메달이 없다”는 그는 “늘 그랬듯이 몸이 부서져라 막아내겠다”라고 힘줘 말했다. 이천=윤승재 기자
2023.10.19 1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