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부임 이후 단 2패, ACL 무패…박건하가 이끄는 ‘언더독의 반란’
그동안 수원 삼성은 '언더독'이라는 이름과 거리가 먼 팀이었다. K리그 정상을 호령하고, 아시아에서도 위상을 떨치던 '전통의 명가'로 언제나 우승 후보로 군림하며 선두권을 지키던 팀이 바로 수원이었다. 그러나 수원은 2008년 리그 우승 이후 '영광의 시절'을 되찾지 못했다. 2014년과 2015년, 리그에서 연달아 준우승을 차지하고 이후로도 FA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강팀'의 이미지는 흐려진 지 오래였다. 더구나 2019년과 올해 연달아 하위 스플릿인 파이널 B로 밀리면서 팬들 사이에서도 '이제는 우리가 약팀이란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전성기에 비하면 한층 연약해진 수원의 이미지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무대에서 그들을 '언더독'으로 불리게 만들었다. ACL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되기 전, 수원은 비셀 고베(일본)와 조호르 다룰 탁짐(말레이시아)에 연달아 져 2패를 떠안고 있었다. 시즌이 끝난 뒤 재개된 ACL에 조호르가 불참하면서 구사일생의 기회가 생겼지만 이번엔 전력 누수가 발생했다. 지난 시즌 득점왕인 아담 타가트와 수비의 핵 도닐 헨리, 그리고 팀의 주장 염기훈이 각각 부상과 지도자 강습으로 인해 원정길에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축 전력들이 빠진 수원은 언제 탈락해도 이상하지 않을 팀으로 보였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수원의 반전 드라마가 시작됐다. 수원은 ACL 재개 후 강호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와 0-0, 1-1로 연달아 비기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래도 16강 진출을 위해선 2골 차 이상 승리가 필요했지만, 수원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비셀 고베를 상대로 2-0으로 이기며 희망을 현실로 바꿨다. 수원의 반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원은 7일,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일본)와 치른 16강전에서 3-2 승리를 거두며 2018년 대회 이후 2년 만에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결코 쉽지 않은 승리였다. 외국인 선수 두 명과 염기훈의 공백 속에 스리백의 한 축인 민상기마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해 전력에서 열세가 예상됐다. 설상가상 전반 20분 만에 선제골마저 내주며 끌려가기 쉬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수원은 악착 같이 버티고 끈질기게 공격하면서 김태환, 김민우, 한석종의 연속골로 승부를 뒤집었다. 역전 결승골의 주인공 김민우는 "외국인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약체라는 평가를 받은 게 선수들에게는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며 '독기'를 보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수원의 ACL 8강행 뒤에는 박건하 감독이 있다. 수원의 프랜차이즈 스타 박건하 감독은 이임생 감독이 떠나고, 주승진 감독대행 체제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하던 친정팀을 구해내기 위해 9월 8일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수원은 K리그1 12개 팀 중 11위로 강등 위기에 처한 상태였다. 그러나 박건하 감독 부임 후 팀을 재정비하며 4승2무2패로 승점 쌓기에 성공, 8위로 순위를 끌어올려 잔류에 성공했다. 달라진 수원의 모습은 ACL에서 한층 더 잘 드러났다. 카타르 땅을 밟은 뒤 치른 4경기에서 2승2무로 패배 없이 8강에 올랐고 이 과정에서 정상빈, 강현묵 등 유스 선수들을 기용해 '리얼 블루'의 정체성을 살렸다. 더구나 낯설기만 한 '언더독의 반란'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박건하 감독은 "힘든 상황에서 출발했지만 첫 경기를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경기를 할수록 발전하고 강해지는 걸 느끼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수원은 오는 10일 열리는 8강전에서 준결승 진출에 도전한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12.09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