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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에서 무연 담배가 인기라고? ⑤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글로벌 분석업체 ECA 인터내셔널은 전 세계 207개 도시의 ‘생활비’를 매년 발표한다. 2023년 런던은 뉴욕, 홍콩, 제네바에 이어 4위였다. 서울은 9위, 도쿄는 10위로 조사됐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물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필자는 물가 정보 사이트 넘베오(Numbeo)를 통해 한국과 영국(UK)의 생활비를 비교해 봤다. 집세(rent, 영국이 106% 높음)를 제외한 소비자 가격은 영국이 한국보다 0.6% 높았다. 하지만 품목별로 가격을 비교하면 두 나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빵, 우유, 소고기, 과일, 야채 같은 식품 가격이 영국보다 훨씬 비싸다. 한국의 사과, 감자 가격은 전 세계에서 제일 비싸고, 소고기 가격은 두 번째로 높다. 이에 반해 영국은 집세, 외식, 교통비 등이 비싸다.주요 품목 중에서 영국이 한국보다 가장 비싼 것은 무엇일까? 바로 담배다. 말보로 한 갑이 한국에서 4500원(3.36달러, 66위)인데 반해, 영국은 2만2100원(16.52달러 4위)이다. 그나마 2015년 한국 담뱃값이 80% 오른 탓에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 담배 한 갑의 세율은 영국과 한국이 각각 80%와 74%로 큰 차이는 없다. 담배가 제일 비싼 나라는 호주(27.85달러, 3만7200원)이고, 일본(4.05달러)과 한국을 제외한 선진국에서 담배가 제일 싼 나라는 스페인(5.61달러)이다. 2006년 3월 스코틀랜드를 시작으로 웨일스, 북아일랜드를 거쳐 2007년 7월 잉글랜드를 마지막으로 영국 내의 직장과 밀폐된 공공장소에서 흡연은 불법이 됐다. 축구장도 이러한 대세를 따라갔다. 2005년 에버튼의 홈구장인 구디슨 파크가 프리미어리그(EPL) 최초로 흡연을 금지했다. 다른 클럽들도 이를 따라 2007년부터 모든 EPL 구장은 금연 구역이 됐다.전자담배를 피우는 것을 영어로는 베이핑(vaping)이라고 한다. 베이핑 역시 모든 EPL 구장에서 불법이다. 만약 스모킹 혹은 베이핑을 축구장에서 시도하다 걸리면 어떻게 될까? 당사자는 경기장에서 당장 퇴출되고, 클럽에 따라서는 시즌 티켓도 취소된다.영국 정부는 흡연에 관한 더 강한 규제를 내놓고 있다. 2015년부터 영국 내의 모든 상점은 판매대에 담배를 진열할 수 없다. 따라서 소비자가 특정 상표의 담배를 주문하면, 점원이 숨겨진 곳에서 담배를 꺼내 주는 식으로 판매는 이루어진다. 2023년 10월 보수당 정부는 흡연 가능 연령을 현재의 18세에서 매년 1년씩 높일 계획을 밝혔다. 야당인 노동당도 이에 찬성한다. 따라서 법안이 통과되면 2009년 1월 1일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영국에서 평생 법적으로 담배를 살 수 없다.영국의 흡연 인구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현재 흡연자 비율은 12.9%(640만 명)이다. 하지만 일부 프로축구선수들은 여전히 담배를 즐긴다. 2000년대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의 대표적인 흡연자는 피터 크라우치, 데이비드 제임스, 프랭크 램파드, 애쉴리 콜, 잭 윌셔, 라힘 스털링, 키에런 트리피어, 웨인 루니 등이다. 특히 루니는 2009년 아내 콜린이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1200파운드를 주고 성매매를 한 적이 있다. 타블로이드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당시 담배가 고팠던 루니는 호텔 리셉션에서 한 갑을 무려 200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29만원)에 샀다고 한다. ‘무연 담배(Smokeless tobacco)’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츄잉(chewing, 씹는), 디핑(dipping, 머금는) 담배와 스누스(snus)이다. 미국에서 유래한 츄잉과 디핑은 특히 야구와 오랫동안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2015년 메이저리그(MLB) 선수와 지도자의 37%가 무연 담배를 애용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빅 리그에 올라온 모든 신인 선수들은 이러한 담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스누스는 스웨덴에서 유래했다. 스누스와 디핑 담배는 유사하지만, 제품을 입에 넣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스누스는 윗입술과 잇몸 사이에 위치하는 데 반해, 디핑은 주로 아랫입술이나 볼과 잇몸 사이에 놓는다. 또한 스누스는 씹을 필요가 없고, 침도 안 뱉는다. 디핑은 씹을 수도 있고 침을 뱉어야 한다. 영국에서 스누스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사용하는 것은 합법이다.EPL 선수들이 스누스를 애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누스를 통해 니코틴을 흡수하면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방출되고, 이는 아드레날린의 급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용자의 스트레스는 감소되며 집중력이 증가되고, 신체적인 활력이 향상된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바디는 자서전에서 “스누스는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중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축구 선수들이 스누스를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 선수는 심지어 경기 중에도 사용한다”고 밝혔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스누스를 감시 목록에 올렸지만, 금지한 적은 없다. 따라서 현재 선수들의 스누스 이용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스누스는 일반 담배보다 분명 덜 위험하지만, 높은 니코틴 함유량으로 인해 중독성이 강하다. 또한 스누스를 계속 이용하면 심장, 구강 질환 등을 유발하고, 식도암과 췌장암에 걸릴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에 일부 클럽은 스누스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EPL 같은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부, 명예,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최고 레벨의 선수와의 경쟁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긴장감이 요구된다. 이러한 압박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선수들은 스누스를 애용한다.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4.01.2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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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제발 축구팬이라면 ‘서포트’와 ‘팔로우’를 구분합시다

전통적으로 잉글랜드의 축구팬들은 하나의 클럽을 응원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따랐다.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결혼 서약처럼, 진정한 축구 팬은 한 클럽만 지지하고 성원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팬들이 응원하는 클럽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질까?유럽축구연맹(UEFA)에는 프로팀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단체인 유럽클럽협회(ECA, European Club Association)가 있다. ECA는 2020년 7개국(영국,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폴란드, 브라질, 인도) 축구팬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국가별로 2000명씩, 총 1만4000명이 참여한 이 조사는 현대의 축구팬을 이해하기 위해 실시됐다.ECA의 조사에 의하면 나라마다 팬들이 응원하는 클럽을 선정하는 기준이 달랐다. 영국(UK)의 경우 부모의 영향(30%)이 가장 크게 작용했고, 간발의 차로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보낸 곳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웠던 클럽을 응원하게 됐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아울러 단지 16%의 영국인이 클럽의 ‘성적’을 따진다고 답했다. 즉 7개국 팬 중 영국이 가장 적은 ‘Glory Hunters(영예 사냥꾼, 성적이 좋은 클럽만 응원하는 사람)’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의 대표 타블로이드 신문 ‘더 선’의 축구 칼럼니스트 앤드류 버틀러는 2017년 트위터에서 “Is it OK to support more than one football team(한 개 이상의 축구팀을 서포트해도 괜찮나요?)”라는 설문 조사를 벌였다. 조사 시작 6시간 만에 1600명 이상이 설문에 응했고, 이 중 76%가 반대 표를 던졌다.흥미로운 점은 조사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두 번째 클럽(second club)’을 갖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어 단어 ‘support’와 ‘follow’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ECA는 “클럽을 지지하는(Supporting a club) 사람은 팀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진정한 팬”이라고 정의했다. 그에 반해 “클럽을 따르는 것(Following a club)은 느슨한 관계를 의미하며, 클럽에 일정한 관심을 갖지만 팬은 아니다”고 밝혔다. Follow를 영국인이 즐겨 쓰는 세련된 표현으로 바꾸면 “have a soft spot for”이다. 위에 언급한 트위터를 이용한 조사 결과에서도 보이듯이, 아직도 영국에는 한 클럽만 ‘서포트’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대신 ‘팔로우’하는 ‘second club’을 가지는 것에는 큰 문제를 삼지 않는다. 그렇다면 ‘서포트’와 ‘팔로우’하는 클럽을 정할 때 지켜야 하는 기준도 있을까? 누구나 동의하는 정확한 기준은 없다. 팬마다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인 기준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보자. 프리미어리그(EPL)에 속한 A 클럽을 서포트하고 역시 EPL에 있는 B 클럽을 팔로우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같은 리그에 속해 있기 때문에 두 클럽은 필연적으로 맞대결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포트하는 클럽이 EPL에 속해 있다면, 하위 리그 축구를 지원하기 위해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3~4부 리그에 속한 팀을 팔로우 하기도 한다. 반대로 자신이 서포트하는 클럽이 런던 동쪽에 위치한 레이턴 오리엔트(Leyton Orient)라고 가정해 보자. 클럽 근처에 몇 년 살았던 인연으로 인해, 필자도 응원했던 레이턴은 런던에서 풀럼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프로구단이다. 하지만 142년의 긴 역사 동안 레이턴이 1부 리그에 속한 적은 1962~63시즌이 유일하다.1980년대 이후 레이턴은 3부와 4부 리그를 전전하고 있으며, 심지어 2017년에는 세미 프로팀이 주축인 5부 리그로 강등된 적도 있다. 한마디로 천지개벽이 나지 않는 한 레이턴이 1부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럼에도 잉글랜드에는 이런 처절한 성적을 가진 클럽을 응원하는 열성적인 팬층이 꽤 두텁다. 레이턴같이 성적을 기대할 수 없는 클럽을 서포트하는 이들 중에는, EPL에 속한 빅 클럽을 팔로우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에게도 성적이 좋은 클럽을 응원하면서 잠깐의 기쁨을 느낄 순간은 필요하기 때문이다.이외에도 다른 국가나 대륙의 클럽을 팔로우 하는 것도 용납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유럽대항전에서 만날 확률이 높은 2개의 클럽(예를 들어, 리버풀과 유벤투스)을 동시에 팔로우 하거나 서포트한다면 플라스틱 팬(가짜 팬)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문화가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듯이, 축구 팬덤(fandom, 팬들의 독특한 습성)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다. 대표적인 예가 하나 이상의 클럽을 서포트하는 축구팬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알아보자.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2023.10.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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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잉글랜드 축구에서 지적인 선수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2014년 시장조사 기관인 YouGov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35%의 미국인이 영국 영어가 매력적이라고 답했다. 이에 반해 영국 영어가 싫다고 답한 미국인은 겨우 6%였다. 많은 한국인 역시 영국 영어에 호감을 갖고 있다. 한국, 미국 등 외부인이 좋아하는 영국 영어는 영국 내의 수많은 억양 중 하나인 ‘RP(Received Pronunciation)’다. 표준 발음으로 여겨지는 RP는 ‘King 혹은 Queen’s English’, ‘BBC English(1920년대~1970년대 BBC는 RP로만 방송했다)’, ‘Posh English’, ‘Pubic school(사립학교) English’ 등으로도 불린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영국 영어(British English 혹은 English English)라고 칭하는 것은 RP다. 억양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영국 사회에서 RP의 구사 여부는 중요하다. RP를 쓰는 유명인 중에 배우로는 제레미 아이언스, 휴 그랜트, 엠마 톰슨, 베네딕트 컴버배치, 다니엘 크레이그, 틸다 스윈튼, 엠마 왓슨, 휴 로리 등이 있다. 이외에도 미스터 빈으로 알려진 로언 앳킨슨, 음악 평론가 사이먼 코웰과 보리스 존슨 전 총리 같은 보수당 정치인도 RP를 쓴다. 그렇다면 RP를 구사하는 프로축구선수는 누구일까? 필자는 많은 축구 선수와 감독의 인터뷰를 들어봤지만, RP를 쓰는 이를 본 적이 없다. 확실히 하기 위해 RP를 사용했던 프로축구선수가 있었는지 검색도 해봤다. 예상했던 대로 “RP를 쓰는 유명 선수는 한 명도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사실 RP와 프리미어리그(EPL) 혹은 프로축구라는 용어는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다. 전통적으로 영국 프로축구선수들의 대부분은 교육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첼시와 블랙번 등에서 뛰었던 그레임 르 소(Graeme Le Saux)는 특별한 선수였다. 그는 여러 면에서 일반적인 프로축구 선수와는 달랐다. 르 소도 RP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영국 남부지방의 선명한 억양을 구사해 RP에 가장 가까운 발음을 했던 축구 선수였다. 르 소는 또한 축구선수로서는 드물게 대학교에서 환경학을 공부한 적도 있다. 르 소는 여러 분야의 학문에도 관심이 많았다. 매우 지적인 대화가 가능했던 그는 동료 선수들이 타블로이드 신문을 볼 때, 진보 성향을 대표하는 신문 가디언을 읽었다. 그는 말을 멋지게 했고, 정론지를 읽으며 멋진 주제를 논했다. 여가 시간에는 미술관을 즐겨 찾곤 했다. 필자는 이런 차별적인 이미지의 르 소가 좋았으나, 많은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르 소가 가진 지적인 이미지는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노동자 계급의 스포츠인 축구와 그는 매치가 안 됐기 때문이다. 르 소는 부인 마리아나와의 사이에 두명의 자식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과 취향과 배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는 동성애자라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르 소는 2007년 출간된 자서전에서 자신의 모든 행동(패션 스타일, 음악 취향, 미술관 방문, 가디언 독자, 대학 공부)이 동성애의 증거로 쓰였다고 밝혔다. 축구장이나 훈련장에 가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는 그는 자신을 학교폭력의 희생자에 비유했다. 르 소가 당했던 사례 몇 개를 소개한다. 악몽의 시작은 웨스트 햄 팬들로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업튼 파크에서 르 소를 향해 빌리지 피플(동성애와 관련된 세계적인 댄스 그룹)의 히트곡 ‘Go West(동성애자들의 정신적 고향인 샌프란시스코로 가자는 내용)’의 리듬에 맞춰 “Le Saux takes it up the a***(동성애자의 성행위를 의미)”를 계속해서 외쳤다고 한다. 안필드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경기에서는 10살에 불과한 어린이가 르 소를 향해 “You f***ing poof(동성애자를 모욕하는 단어), you take it up the a***”라고 외치자, 주변의 어른들마저도 이에 가세했다. 심지어 소속팀 첼시의 코치였던 그윈 윌리엄스와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친하게 지낸 동료 폴 인스도 르 소를 poof라 불렀다고 한다. 사실 poof란 단어는 축구장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다. 하지만 동성애자로 낙인찍힌 르 소에게 사용했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리버풀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공격수이자 르 소의 대표팀 동료였던 로비 파울러도 다르지 않았다. 1999년 2월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열린 경기 중 파울러는 동성애적 표현과 언어로 르 소를 여러 번 조롱했다. 참다못한 르 소가 파울러에게 “내 가족들이 관중석에서 지켜보고 있어”라고 말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르 소가 팔꿈치로 파울러를 가격했고, 둘은 몸싸움을 벌였다. 후에 파울러는 자서전에서 르 소가 “But I'm married(나는 결혼했다고)”라고 말하자, 자신은 “So was Elton John, mate(엘튼 존도 그랬어, 유명 가수이자 동성애자인 엘튼 존도 결혼한 것에 비유)라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르 소는 이런 대화 자체가 없었고, 파울러가 자신을 멋지게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파울러와의 충돌은 잉글랜드축구협회(FA)의 청문회와 징계 등으로 이어졌다. 그 후에도 르 소에 대한 조롱은 계속됐지만, 예전에 보였던 관중들의 악의는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르 소는 자신의 고통이 점차 사라짐을 느꼈지만, 마음의 평화는 은퇴 후에 찾아왔다고 밝혔다.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3.07.2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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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더 선(The Sun)의 영광과 숙제

필자는 영국에서 17년을 살았다. 한곳에 오래 있다 보면 사람은 누구나 그 장소에 애증의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영국 특유의 칙칙함이 싫은 적도 있었지만, 필자는 요즘 영국이 그립다. 그리움의 대상은 꽤 다양한데, 그중 하나가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의 대명사인 더 선(The Sun)이다. 런던에 살 때 아침에 밖에 나가면 꼭 사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더 선이었다. 최고의 인기를 얻는 신문을 사긴 쉽지 않았다. 상점 몇 군데를 들러 더 선을 겨우 살 때도 있었고, 아예 못 사는 날도 있었다. 다른 신문들은 쌓여 있는데 더 선만 다 팔린 경우도 많았다. 영국 대학교에는 전 세계에서 온 유학생이 정말 많다. 비(非) 영어권에서 온 학생들은 영어도 익힐 겸 영국신문을 자주 보는데, 이들은 꼭 더 타임스나 더 가디언 같은 퀄리티(quality) 신문을 산다. 그에 반해 영국에 꽤 오래 살았던 외국인들은 더 선도 즐겨 본다. 옷차림으로도 특정 사람이 영국에 얼마나 동화됐는지 알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들고 있는 신문만 봐도 그러한 추측이 가능했다. 더 선은 참 재밌는 신문이었고 가성비도 최고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문 가격이 꾸준히 올랐지만, 아무리 비싸도 한국 돈으로 700원 이상 지불한 적이 없다. 더 선은 스포츠, 연예계 뉴스와 더불어 온갖 가십과 스캔들, 그리고 다양한 만화, 독자 고민 상담 코너, 별자리 운세 등 가볍게 읽기에 최적화된 신문이었다. 필자는 더 선을 통해 영국사회나 서민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물론 각종 화제성 기사를 특종으로 다루다 보니 더 선이 구설에 오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스포츠와 관련된 대표적인 논란을 소개한다. 1989년 4월 15일 셰필드 웬즈데이의 홈구장인 힐스브로에서 FA컵 준결승전이 열렸다. 리버풀과 노팅엄 포리스트가 맞붙은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리버풀 팬 2만 5000여명이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리버풀 팬 97명이 사망하고, 700명이 넘는 관중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터진다. ‘힐스브로 참사’로 알려진 이 사건은 영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영국 정부는 사고원인을 조사해 ‘테일러 리포트’를 만들었고, 축구장의 안전성과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문제는 당시 더 선이 힐스브로 참사의 원인을 몰지각한 리버풀 팬들의 소동으로 몰아간 것이다. 더 선은 사건 발생 나흘 후 ‘The Truth(진실)’이라는 헤드라인 기사로 리버풀 팬들이 피해자의 몸을 뒤져 귀중품을 훔쳤고, 사고 수습을 하던 경찰관들을 폭행했다는 내용을 특종으로 실었다. 당시 많은 영국인은 더 선의 보도를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했고, 영국 정부는 재조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참사가 터진 지 23년만인 2012년 경기 주최측과 경찰의 잘못이 밝혀졌다. 이에 당시 영국 총리였던 데이비드 케머런이 공식 사과했다. 한편 리버풀 시민들은 더 선의 편파적인 보도에 분노했다. ‘The Truth’ 기사가 나오자 하룻밤 사이에 리버풀이 위치한 머지사이드 지역에서 더 선의 판매고는 40% 급락했다. 머지사이드 주민들은 신문을 불태우는 등 조직적인 저항 운동을 계속 벌였고, 2019년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더 선의 판매고는 80% 감소했다고 한다. 머지사이드 주민들이 대신 선택한 신문은 더 선의 1위 자리를 호시탐탐 노렸던 경쟁지 데일리 미러였다. 더 선의 자매지로는 일요일에만 발행하는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가 있었다. 2004년 이 신문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데이비드 베컴이 개인 비서 레베카 루스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특종을 보도했다. 사실 이 기사는 루스가 자신과 베컴의 스토리를 50만 파운드(7억 6000만원)에 뉴스 오브 더 월드에 판매했기에 가능했다. 이렇듯 유명인의 사생활을 타블로이드에 판매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이들이 영국에는 꽤 있다. 1843년 퀄리티 신문으로 창간된 뉴스 오브 더 월드는 한때 영어권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이었다. 1984년 타블로이드로 변신한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유명인사나 연예인 특종, 가십 등을 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신문은 2006년 도청까지 해가며 유명인의 사생활을 캐다 적발되어 곤경에 처한다. 대중의 반발과 기업의 광고 철회가 이어지면서, 2011년 뉴스 오브 더 월드는 폐간했다. 한국의 스포츠신문과 달리, 영국 대부분의 타블로이드는 정치 성향을 드러낸다. 판매 부수가 워낙 많다 보니 이들이 갖는 정치적 영향력도 크다. 더 선은 전통적으로 영국의 보수당을 지지한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은 더 선의 영향력을 이용해 보수당 정권을 홍보하기도 했다. 더 선은 재치 있는 말장난도 즐겨 사용한다. 예를 들어, 2013년 조지 왕자가 태어나자 더 선은 신문명을 ‘The Son’으로 바꿨다.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더 선은 2016년 6월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자, 이별 인사인 See you later와 EU를 합친 문장인 ‘See EU Later’를 1면에 싣기도 했다. 영국 최고의 인기 신문인 더 선도 디지털 시대의 파고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다양한 뉴스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더 선을 포함해 영국 종이신문의 판매고는 급격히 줄어든다. 2011년 더 선의 하루 발행 부수는 300만이었으나, 2018년에는 절반으로 감소했다. 결국 더 선은 40년 동안 지켜오던 최고 인기 신문의 자리를 2018년 무료 신문인 메트로(Metro)에 내줬다. 더 선은 2020년 125만부를 기록한 이후 발행 부수를 밝히지 않고 있다. 퀼리티 신문인 더 타임스(37만부)와 더 가디언(11만부)도 2020~21년을 마지막으로 발행 부수 보도를 중단했다. 종이 신문은 결국 디지털화할 것이다. 스포츠신문도 팩트만 보도해서는 디지털 시대에서 승리할 수 없다. 간단한 팩트를 보도하거나 외신을 번역만 한 기사는 이미 차고 넘친다. 사건을 비판적으로 분석, 해석하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가진 신문만이 앞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10.05 07:00
스포츠일반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더 선(The Sun)을 아십니까?

2022년 9월 26일은 본 칼럼이 연재되고 있는 일간스포츠가 창간한 지 5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종합지의 스포츠 섹션은 분량이 한정적인데 반해, 스포츠신문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중점적으로 보도한다. 국내 스포츠는 1980년대 들어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야구(KBO리그)와 프로축구(K리그)가 출범한데 이어,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올림픽이 서울에서 연달아 개최됐다. 축구대표팀은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꾸준하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아울러 1994년 박찬호의 메이저리그(MLB) 계약은 국내 팬들이 해외 스포츠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스포츠의 인기 상승과 함께 스포츠서울(1985년)과 스포츠조선(1990년)도 연달아 창간했다. 스포츠신문의 전성시대였다. 1990년대 서울 지하철의 풍경을 기억하는 독자분이 있다면 그 당시 스포츠신문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알 것이다. 프리미어리그(EPL)의 인기와 함께 국내에도 영국 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에 반해 그들의 스포츠신문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필자는 영국 스포츠신문의 어제와 오늘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17세기 영국에는 뉴스와 가십(gossip, 소문·잡담)을 다루는 정기 간행물이 출현했다. 17세기 후반에는 영국 정부의 검열 완화와 더불어 더욱더 많은 출판물이 나타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간 신문 더 타임스(The Times)는 1785년 창간했다. 19세기 초반 선도적인 신문의 자리에 오른 더 타임스의 영향으로 세계의 많은 신문사는 ‘타임스’란 이름을 차용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뉴욕타임스다. 1896년에는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라는 신문이 런던에서 창간했다. 데일리 메일은 중산층 이하의 독자를 겨냥한 영국 최초의 일간 신문이었다. 여성 독자를 겨냥한 첫번째 신문이기도 했던 데일리 메일은 큰 인기를 얻어, 하루에 백만 부 이상을 판매한 영국 최초의 신문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으로 영국 신문은 3가지 형태로 나뉜다. 첫번째 형태는 품질을 중시하고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뉴스와 사설, 논평 등을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퀄리티(quality)’ 신문이다. 이들은 브로드시트(broadsheets)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커다란 신문 크기에서 이러한 이름이 유래했다. 브로드시트는 보통 57cm 정도의 긴 세로 면을 가지고 있다. 더 타임스, 더 가디언 등이 영국을 대표하는 퀄리티 신문이다. 두 번째 유형은 ‘인기 있는(popular)’ 신문이다. 브로드시트보다 작은 크기로 발행되는 관계로 이들을 타블로이드(tabloid)라고 부른다. 타블로이드는 중요한 사건의 객관적인 기사보다는 주로 대중의 흥미를 끄는 보도를 중요시한다. 황색 언론과 같은 의미로 쓰일 때도 있다. 역사적으로 타블로이드는 신문의 대중화에 크게 공헌했다. 브로드시트보다 저렴한 가격에 대중적인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더 선, 데일리 미러, 데일리 스타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퀄리티’와 ‘인기 있는’ 신문의 중간 역할을 하는 이들을 ‘중간 시장 신문(middle-market newspaper)’이라고 부른다. 이 신문은 중요한 뉴스를 보도할 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는 독자를 위해서 존재한다. 이들은 타블로이드 형태로 발행되고, 데일리 메일과 데일리 익스프레스가 여기에 속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자료를 보면 영국민들은 심각한 뉴스를 다루는 퀄리티 신문보다 가볍게 볼 수 있는 타블로이드를 훨씬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더 선은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던 신문이었다. 1980~90년대 이 신문의 하루 평균 발행 부수는 400만 부에 가까웠다. 2000~2010년대에도 300만 부 이상을 꾸준히 발행했다. 서민과 노동자 계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더 선은 스포츠와 연예계 뉴스 및 유명 인사들의 스캔들 같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주제를 중점으로 보도한다. 더 선의 전신은 1964년 창간된 브로드시트 신문인 데일리 헤럴드였다. 하지만 1969년 호주의 유명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인수한 후 더 선이라는 타블로이드 신문으로 재탄생한다. 한국의 일간스포츠와 영국의 더 선은 1969년 창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 선의 3번째 페이지(Page 3)는 초창기 신문이 인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0년 11월 더 선은 영국 타블로이드 최초로 페이지 3에 토플리스(topless, 상의를 입지 않은) 차림의 매력적인 여성 모델 사진을 실었다. ‘Page 3 girl’이라 불리는 이들 덕분에 다음해 더 선의 판매량은 두 배로 뛰었다. 결국 1978년 더 선은 데일리 미러를 제치고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이 된다. 이러자 다른 타블로이드도 경쟁적으로 페이지 3에 토플리스 차림의 여성 모델 사진을 올리게 된다. 페이지 3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다양했다. 오락의 한 요소로 이를 좋아한 독자가 있는데 반해, 보수적인 이들은 전국 신문에 올리기에는 부적절한 ‘소프트 포르노’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사진이 여성을 비하하고, 성차별을 지속시킨다며 반대했다. 정치권도 상반되는 반응을 보였다. 페이지 3의 사진을 없애자는 주장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결국 의회에서 페이지 3에 반대하는 법안은 제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부터 ‘No More Page 3(페이지 3는 이제 그만)’ 캠페인이 활발히 전개됐고, 여기에 찬성하는 국회의원이 140명에 이르렀다. 아울러 많은 대학과 노동조합도 이에 가세했다. 결국 더 선은 토플리스 여성 모델 사진을 사용한 지 44년만인 2015년 1월 페이지 3를 중단했다. 다른 타블로이드도 더 선의 결정을 따랐고, 2019년 4월 데일리 스타를 마지막으로 타블로이드 일간지에서 페이지 3 사진은 사라졌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9.28 07:00
해외축구

[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신용 카드를 가진 훌리건, 왝스(WAGs)①

현대 축구의 토대는 1863년 잉글랜드에서 만들어졌다. 이후 전 세계로 보급된 축구는 진정한 글로벌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축구가 세계화되면서 국가별로 다양하고 특색 있는 관련 문화가 나타났다. 왝스(WAGs, 유명 축구 선수의 아내와 여자 친구를 의미)도 그중 하나이다. Wives And Girlfriends란 영어 표현에서 각 단어의 첫 글자 W, A와 G를 따왔고, 복수 명사여서 뒤에 s를 붙여 만들었다. 왝스는 잉글랜드에서 나타난 하나의 사회 현상이자 축구 문화로 자리 잡았다. 과거 잉글랜드의 축구 클럽은 특정 도시나 지역 사람들을 대표했다. 축구 선수도 지역 팬의 연장 선상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선수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살고 있다. 유명 인사(celebrity)가 된 선수들은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주급을 받는다. 특급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도 누린다. 언론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해 수많은 스토리를 생산해내고, 대중은 이를 소재 삼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당연한 말이지만 축구 선수들은 언제나 아내 또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과거 이들의 존재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중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를 바꾸어 놓은 이가 미남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었다. 베컴은 1999년 인기 팝 그룹 스파이스 걸즈의 멤버인 빅토리아 아담스와 결혼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 결혼을 계기로 언론은 축구 선수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아내와 여자친구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왝스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잉글랜드 언론에 전면적으로 부상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아내와 여자친구들은 월드컵 기간 소도시 바덴바덴을 사실상 '점령'했다. 이들은 특급 호텔 숙박비, 쇼핑 등에 100만 파운드(15억원) 이상을 지출했다. 이들의 흥청망청한 소비는 곧 세계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스페인의 한 신문은 이들을 가리켜 ‘비자카드를 소지한 훌리건’이라고 묘사했다. 언론은 월드컵 기간 왝스의 동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이들은 어느새 유명인사가 되었다. 잉글랜드는 2006년 월드컵에서 호화 멤버를 자랑하며 우승에 도전했다. 하지만 8강에서 포르투갈에 승부차기로 패하며 탈락했다. 이에 왝스는 대회 기간 대표팀의 집중력을 분산시켰다는 이유로 많은 원망을 들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스타플레이어 리오 퍼디난드는 왝스의 행동을 서커스에 비유하며 혹독하게 비판했다. 4년 후 잉글랜드는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했다. 카펠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기간 왝스의 접근을 제한했다. 선수들은 그들의 파트너를 경기 다음 날에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는 16강전에서 독일에 4-1로 패해 허무하게 탈락했다. 잉글랜드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기록한 3점 차 패배였다. 맨유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선덜랜드 감독을 맡았던 로이 킨도 왝스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킨은 "런던에서 쇼핑하고 싶어 하는 왝스가 북잉글랜드의 선덜랜드 같은 시골 도시로는 가지 말자고 선수들을 꾀는 바람에, 선수 수급이 어렵다"고 불평했다. 왝스의 출현으로 인해 대중이 생각하는 유명 인사에 대한 생각도 변했다. 예전에는 유명인사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재주나 명성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재능이 없는 보통 사람도 유명 축구 선수 옆에만 있으면 스타가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알렉스 커란은 네일 아티스트(nail artist, 손발〮톱 미용관리사)였다. 커란은 리버풀과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이었던 스티븐 제라드와의 연애와 결혼을 통해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 브랜드를 론칭했고, 이 제품은 2007년 가장 많이 팔린 향수 중의 하나였다. 커란은 또한 영국의 대표적인 타블로이드 신문인 데일리 미러와 세계적으로 3000만 명이 넘는 독자를 자랑하는 OK! 매거진의 쇼핑 칼럼니스트로 활동한다. 보통 사람은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오르기 힘든 이러한 자리를 커란은 단지 제라드의 연인이라는 이유로 차지하게 된 것이다. 왝스의 이러한 신데렐라 스토리는 현대판 동화가 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2006년 이후 값비싼 디자이너 가방을 들고, 커다란 선글라스를 착용하며, 오렌지색 태닝을 즐기는 왝스의 호화스러운 생활은 영국 젊은 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왝스를 동경해 이들의 모습을 흉내 낸 여성들로 거리는 넘쳐난다. TV 방송국은 왝스를 소재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페이스북에는 왝스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그룹까지 생겼다. 아울러 축구선수와 데이트하는 법을 다룬 책이 출판됐다. 왝스를 소재로 한 소설까지 생겼다. 2009년 모어(More) 매거진이 실시한 20대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60%의 응답자가 왝스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왝스는 파티와 쇼핑을 실컷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대답했다. 대표팀 선수로 리버풀에서 활약했던 피터 크라우치의 여자 친구이자 모델인 애비클랜시의 인터뷰는 이러한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삶의 목표로 “축구 선수와 결혼해, 평생 쇼핑하며 즐기고 싶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2.10 06:00
스포츠일반

[이정우 스포츠랩소디] 스포츠 스타들의 '탈모전쟁'②

스포츠 선수에게 외모는 중요하다. 실력이 출중하지 않아도 외모가 뛰어나 인기를 얻는 선수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만약 실력에 외모까지 겸비한다면 그 선수는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외모에서 머리 스타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크다. 특히 프로 스포츠 선수는 자신의 이미지와 인기를 위해 또는 광고나 스폰서십 등을 유치하기 위해서도 탈모 치료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지난주 칼럼에서 탈모로 고통받는 선수가 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을 알아보았다. 세 번째 선택은 탈모 부위를 가발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교묘히 감추는 것이다.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은 거의 매 경기 헤드 밴드를 하고 경기에 나선다. 이제 긴 머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그가 왜 그렇게 헤드 밴드에 집착하는지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다. 나달은 이에 대해 "헤드 밴드에 대한 사랑은 열세 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테니스나 농구처럼 격한 운동을 하는 선수들은 흐르는 땀이 눈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밴드를 착용하기도 한다. 혹은 경기 중 똑같은 행동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는 나달의 특성이 원인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점차 다른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나달은 탈모가 상당히 진행된 머리 상태를 가리기 위해 헤드 밴드를 계속 착용한다는 것이다. 탈모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보통 모자를 써서 이를 가린다. 특히 데이팅 사이트에서 탈모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쓴 사진만 올리거나, 실제 데이트를 할 때 매번 모자를 써 자신의 부족한 머리숱을 감추는 행동을 영어로 햇 피싱(hat-fishing)이라고 부른다. 스포츠 종목 중에서 야구 선수는 의무적으로 모자(공격할 때는 헬멧)를 써야 한다. 테니스나 골프 선수도 모자 착용에 제한이 없다. 하지만 골키퍼를 제외하고 모자를 착용할 수 없는 축구 선수들은 자신의 머리 상태를 그대로 대중에게 공개할 수밖에 없다. 이에 탈모로 고통받는 축구 선수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옆 머리를 길러서 숱이 없는 정수리나 앞머리를 교묘하게 가리는 것이다. 영어로 콤 오버(comb over)라고 불리는 이러한 스타일을 시도한 대표적인 스타는 1966년 월드컵을 잉글랜드에 안긴 보비 찰튼이다. 찰튼은 대머리인 아버지를 바라보며 어릴 적부터 자기도 머리가 빠질까 봐 두려워했다. 불행히도 그의 머리는 17살 때부터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짧게 깎는 스포츠 머리인 크루 커트(crew cut)를 시도했으나 사람들의 조롱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머리를 기른다. 그러나 찰튼의 탈모는 더욱더 심해졌고, 마침내 그는 머리숱이 없는 윗부분을 긴 옆머리를 올려 가리기 시작했다. 2001년 찰튼은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콤 오버 스타일에 대해 후회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본 나는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못 참겠어! 내가 이런 우스꽝스러운 머리를 하고 있다니.” 그는 곧 가위를 집어 들어 머리카락을 잘랐고, 찰튼은 자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콤 오버 스타일은 오래 역사를 자랑한다. 심지어 1977년 미국에서는 긴 머리를 세 방향으로 빗어 대머리를 감춘다는 이유로 특허가 출원됐다. 콤 오버를 시도한 유명인사로는 고대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를 비롯해 한국 전쟁 영웅인 맥아더 장군과 영국의 찰스 왕세자, 그리고 해태와 삼성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10번 달성한 김응용 감독 등이다. 현재 콤 오버 스타일로 가장 유명한 인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고전적인 콤 오버가 아닌 다소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하는 변형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데일리 메일은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 만드는 과정을 1~4단계로 소개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만의 콤 오버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뒷머리에 핀을 꼽기도 한다. 웨일즈의 축구 스타 가레스 베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던 시절 그는 탈모하고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다. 베일은 2013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그의 정수리 머리숱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팬들이 목격한다. 하지만 베일은 그 후 머리를 길렀고, 그의 머리 상태는 팬들의 기억에서 잊혔다. 베일은 번(bun)이라고 불리는 올림머리 스타일을 즐겨 했다. 이는 그의 시그니처 헤어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16년에 베일의 번 헤어 사이로 상당히 진전된 탈모가 목격됐다. 타블로이드 언론은 이를 호들갑스럽게 보도했다. 그동안 베일은 탈모를 감추기 위해 머리를 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헤어 스타일을 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타이트하게 묶어야 한다. 이런 경우 모낭을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게 만들어 머리카락이 가늘어진다고 한다. 결국은 탈모가 악화하는 것이다. 더는 올림머리로 탈모 부위를 가릴 수 없게 되자 베일은 모발 이식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2020.08.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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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IS] 英 메건 마클 왕자비, 다큐서 '주목받는 삶' 스트레스 고백

영국 해리 왕자의 부인인 메건 마클 왕자비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왕실의 일원으로 겪는 고통을 털어놓았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메건 마클은 영국 ITV에서 방송됐으며, 미국 ABC에서 방송을 앞둔 다큐멘터리 '해리와 메건: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사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고백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메건 마클은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영국 친구들이 '그는 훌륭하지만 그와 교제해서는 안 된다. 영국의 타블로이드가 당신의 삶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라더라"며 "영국적 감성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정말 연약하구나. 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현실이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해리 왕자는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그들이 죽였다"며 타블로이드 신문들을 비판하면서, "나는 항상 가족을 지키겠다. 이제 지켜야할 가족이 생겼다. 과거의 반복을 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해리와 메건: 아프리카 여행'은 호주, 뉴지랜드,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아프리카와 폴란드 등에 판권이 판매됐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 2019.10.22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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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750. 달의 비밀

1969년 7월 20일 전 세계 3억6000명이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친구들과 감격을 나눴다. 그중 한 친구가 “이제 달나라로 수학여행을 떠날 날이 머지않았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럴 일은 없을 거야”라고 말하고 말았다.그렇게 49년이 흘렀다. 내 말대로 ‘달나라 수학여행’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1972년 12월 7일 아폴로 17호의 우주 비행사 셰넌과 잭 슈미트가 마지막 달 착륙 탐사를 한 뒤 무려 46년 동안 인류는 달을 밟지 못했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모두 12명의 우주 비행사를 달에 보내는 것을 끝으로 달 탐사는 사실상 종료된 셈이다.왜 인류는 더 이상 달에 가지 못했던 것일까. 언젠가 달의 비밀이 밝혀지리라 믿어 왔다. 특히 달에 인류를 착륙시켰던 미국이 공식적 발표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1972년 이후 미국은 더 이상 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제는 누군가 달의 비밀에 대해 말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49년 전, 친구들에게 하지 못했던 달의 비밀을 말하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나는 이미 대학교 때 달의 비밀을 알게 됐다. 언제부턴가 영능력이 강해지고 ‘염사’가 가능해지자 아무도 보지 못했던 달의 뒷면을 본 것이다.달은 자전과 공전 주기가 같아서 지구에서는 앞면만 볼 수 있고 뒷면은 볼 수 없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 UFO 기지로 의심되는 구조물을 달의 뒷면에서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1960년대 구 소련의 루나호가 달 뒷면의 사진을 최초로 찍어서 보냈고, 그 이후에도 미국과 일본의 우주선들이 달 뒷면의 사진을 보내왔지만 이것은 달의 극히 일부의 모습일 뿐이다.지금까지 달에 착륙했던 많은 국가가 모든 사진을 속 시원히 밝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밝힐 수 없었다. 그중 가장 많은 비밀을 가진 나라가 미국이다. 외계인의 존재를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면서 묘한 태도를 취했다. 사실 외계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문제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가는 패러다임 전환 단계를 연상시킨다. 1616년 갈릴레오는 재판정에서 지동설을 믿는다는 이유로 교수형에 처할 뻔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라디오를 통한 일일 정규 방송에서 “모든 사람은 세례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는 외계인도 마찬가지” “내일이라도 녹색 피부에 긴 코와 큰 귀를 가진 화성인이 세례를 받기 원하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이 직접 외계인과 세례의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최초이며, 이는 암묵적으로 외계인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이 우주에는 우리만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대학교 때 염사했던 달의 뒷면에는 거대한 구조물이 건설돼 있었다. 마치 '스타워즈'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런 이유로 친구들에게 인간이 달을 관광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했던 것이다.더 이상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다. 이제는 UFO 발견에 관한 동영상이나, 타블로이드 신문에 실린 외계인 사진을 재미로 구경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마 내년 즈음이면 공식적으로 달의 비밀이 풀어지고 자연스럽게 외계인의 존재가 증명되는 사건이 발생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18년을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 신비하게 여겨 왔던 달의 비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외계인의 존재를 밝히기 전에 달의 비밀부터 풀 수 있길 바란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 2018.11.29 07:00
무비위크

흑인 제임스 본드 탄생하나

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흑인' 제임스 본드가 탄생할지 영화팬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를 촉발한 것은 영국 흑인 배우 이드리스 엘바(45)다. 그는 12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내 이름은 엘바, 이드리스 엘바'라는 글을 올렸다. '내 이름은 본드, 제임스 본드'라는 007 영화의 캐치프레이즈와 같은 대사를 흉내 낸 것이다.이는 곧바로 엘바가 007 시리즈 차기작의 본드 역을 맡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과 AFP 통신 등이 전했다.엘바는 영화계에 진출하기 전에 미국 TV 드라마 '더 와이어'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영국 수사물 '루터'에서 열연, 2012년 골든글로브의 미니시리즈·TV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 '토르' '퍼시픽 림' '스타트렉' 등에 출연했다.007 영화 차기작인 25편은 내년에 개봉할 예정이며, 2005년부터 본드 역을 맡은 영국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가 다시 기용될 것이라고 미국 할리우드 매체들이 지난해 보도했다.그러나 007 영화 제작자인 바버라 브로콜리가 영화감독 앤트완 퓨콰와 한 대화에서 "이제 소수 인종 출신인 배우가 007 역을 맡을 때"라고 말했다는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 '데일리 스타'의 보도가 지난주 나오면서 '차기 007'에 다시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퓨콰 감독 측은 본드 역을 논의하지 않았다고 미 연예 매체 할리우드리포트에 말했다.엘바는 본드 역에 자신이 기용될 수 있다는 관측에 불을 지핀 지 4시간 뒤에 미 힙합 그룹 '퍼블릭 에너미'의 사진과 함께 이 그룹의 히트곡과 제목이 같은 'HYPE를 믿지 말라'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HYPE는 과대광고나 선전 등의 뜻을 갖고 있다.과거에도 본드 역 기용설이 돌았던 엘바는 2016년 "본드 역을 맡기에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007 시리즈는 1953년 영국 작가 이안 플레밍의 소설을 원작으로 해 탄생했다. 지금까지 24편이 제작됐으며 숀 코네리·피어스 브로스넌 등 6명이 주연을 맡았다. 박정선 기자 2018.08.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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