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한국 스노보드 '기적의 소녀' 최가온, "클로이 김과 경쟁자로 만난다? 아직 감흥이 전혀..."
동계 올림픽에서 한 번도 결승 무대를 밟지 못한 한국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 ‘천재 소녀’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최가온(15·세화여중)이다. 그는 지난달 26일(한국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코퍼마운틴에서 열린 2023 듀투어 여자 스노보드 슈퍼파이프에서 우승했다. 듀투어는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엑스게임을 대표하는 대회다. 최가온은 이 대회에 초청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깜짝 놀랐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그것도 신기록을 두 개나 쓰면서 말이다. 2005년 창설된 듀투어 사상 최고 점수(98.33점), 그리고 클로이 김(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 경신이었다. 14년 3개월의 최가온은 14년 9개월에 대회 첫 우승을 했던 클로이 김의 기록을 새로 썼다. 듀투어 공식 홈페이지는 최가온에 대해 “한국에서 온 최가온이 대회의 스포트라이트를 훔쳐갔다. 최가온은 열네 살이지만, 마치 베테랑처럼 슈퍼파이프를 지배했다”고 평가했다. 스노보드 슈퍼파이프는 하프파이프의 한 종류로, 올림픽 정식종목인 하프파이프와 비교해 경기장 폭이나 반원통형 슬로프 높이가 더 큰 경우가 많다. 최가온은 “일곱 살 때 처음 스노보드를 배웠는데, 아빠 말로는 내가 스키장 개장할 때 들어가서 문 닫을 때까지 하루 종일 탔다고 한다”며 웃었다. 최가온이 스노보드에 흠뻑 빠진 모습에 그의 부모님은 적극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최가온은 “여덟 살 때부터 코치 선생님과 뉴질랜드 전지훈련을 가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열리는 각종 대회에도 나갔다”고 했다. 최가온이 훈련해온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대회가 열리는 슬로프는 물론이고 실내 훈련을 할 만한 시설도 찾기 어렵다. 최가온은 “바퀴 달린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는 실내 연습장, 회전 훈련을 하는 에어매트, 트램폴린 등의 훈련 시설에서 여름을 보내곤 했다. 국내에는 시설이 잘 갖춰진 훈련장이 거의 없다. 실내 훈련은 일본에서 주로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 뉴질랜드, 일본 등 해외 전지훈련으로 보냈다. 최가온의 시그니처 기술은 1080도(세 바퀴) 공중회전과 스위치백 900(주행 반대 방향으로 공중에 떠올라 두 바퀴 반 점프)이다. 최가온은 스위치백 900을 처음 성공했을 때가 아직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겨울에 처음 성공했다. 연습 중 성공했는데, ‘내가 한 건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생각보다 쉽게 성공했다”라고 했다. 하지만 성급하게 더 어려운 기술에 도전하기보다 내실을 더 다지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신기술에 당장 도전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기술을 더 완벽하게 연습하고, 점수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고 답했다.
듀투어 우승 직후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건 최가온의 우상이자 롤모델인 클로이 김에게 온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 축하 메시지였다. 최가온은 참가 연령에 도달하는 다음 시즌(2023~24시즌)부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 참가할 수 있다. FIS 공식대회에서 클로이 김과 마주치면 어떤 기분일까. 그는 “지금은 감흥이 전혀 없다. 대회장에서 마주치면 정말 떨릴 것 같다”고 했다. 최가온에게 ‘대회에서는 동등한 경쟁자가 아니냐’고 묻자 그는 “선수 대 선수로 만나면 부딪혀 보긴 하겠지만...”이라며 수줍어하면서도 “대회에서 만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 ‘최가온만의 스노보드’를 보려면 어떤 부분을 보면 좋을지 물었다. 그는 “스노보드에서 말하는 ‘레귤러’는 왼발을 앞으로 놓고 타는 거다. 대부분의 선수가 이렇게 탄다. 그런데 레귤러와 동시에 오른발을 앞으로 두고 타는 기술까지 잘하면 더 많은 걸 보여줄 수가 있다. 내가 오른발로도 잘 타는 모습도 봐주시면 내 경기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발 기술이 모두 뛰어난 대표적인 스타가 바로 클로이 김이다. 이제는 최가온도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각오처럼 들렸다. 최가온은 듀투어 우승 후 귀국했다가 지난 14일 훈련을 위해 다시 일본으로 떠났다. 이은경 기자
2023.03.22 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