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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IS시선] 의사들의 집단행동, 그리고 제약사 동원 의혹

“바이오 스타트업은 의사에게 밉보이면 회사 자체가 존폐 위기에 빠질 수 있다.”최근에 만난 한 바이오 기업 대표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에 따라서 공들여 쌓아온 업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니 그야말로 '섬뜩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의사의 무소불위 권력은 비단 바이오 업계에 한정된 게 아니다. 제약업계도 의사들의 권한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오죽하면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에 ‘제약회사 영업사원 동원 의혹’까지 나왔을까. 지난 3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주도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에서 의사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의협 추산 4만명이 총궐기 대회에 참석했다. 여기에 제약사 영업사원 동원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집회를 앞두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의사 총궐기에 제약사 영업맨 필참’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뒤에서 지켜보면서 제일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에게 약 다 밀어준다고 한다”, “거래처 의사가 약 바꾸겠다고 협박해서 강제 동원된다” 등의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제약사의 영업실적이 좌우되는 형국이니 쏟아진 불만들로 볼 수 있다. 이런 의혹이 ‘가짜뉴스’이면 좋겠지만 그동안 일어난 일부 의사들의 갑질 행태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제약사들이 의사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골프 접대와 향응 제공으로 처벌을 받은 제약사가 수두룩하다. 전문의약품 판매가 큰 몫을 차지하기 때문에 제약사는 ‘을’이 되고, ‘갑’인 의사들의 요구를 경시할 수 없는 구조다. 또 의료와 관련한 사실상 전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료기기 영업사원의 대리 수술’이라는 기행적인 행위도 일어나곤 한다. 의협은 총궐기 집회에 전공의와 의대생,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시도의사회, 시군구 의사회 등 지역단체에서 제약회사 직원을 요구하거나 지시하지 않았다. 일반 회원들의 일탈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제약사 동원 위반사항이 확인될 경우 법에 따라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히는 등 의사들의 '불법 행위'를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를 상대로 ‘국민 건강과 목숨’을 담보로 ‘강대강 대치’를 할 수 있는 건 의사집단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의료와 관련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집단행동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집단행동을 강행하고 있는 의사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혹하다. 응급실의 파행 운영으로 환자가 목숨을 잃고, 암환자들의 수술이 기약 없이 연기되고 있다. 어떤 상황에도 국민보건 의무를 지닌 의사들이 있어야 할 곳은 환자의 곁이다. 정부가 전공의 7000여명에 대한 면허정지 절차에 돌입했다. 엄정한 처벌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다.김두용 기자 2024.03.05 07:00
연예일반

조항조·정유경, 환경문화조직위 홍보대사 위촉…한지일 추천

가수 조항조와 정유경이 환경문화조직위원회(위원장 김승중) 홍보대사로 위촉됐다.환경문화조직위원회는 최근 위촉식을 갖고 조항조와 정유경에게 홍보대사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들이 받은 임명장은 서예가 죽봉 임성곤이 썼다. 특히 조항조에게는 죽봉 임성곤이 쓴 히트곡 ‘남자라는 이유로’의 가사도 함께 전달됐다.이들의 홍보대사 임명은 홍보위원장인 배우 한지일의 추천으로 이뤄졌다. 한지일은 두 사람이평소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에 신경을 쓰고 환경문제를 실천하는 연예인이라며 홍보대사로 추천했다.조항조와 정유경은 이번 홍보대사 위촉에 따라 환경문화조직위원회 대표 프로그램인 대한민국 아이스라인패션쇼 홍보모델 활동 및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환경실천운동에 참여할 예정이다. 아이스라인패션쇼는 사람들이 사용하다 버린 의류, 한복천, 플랜카드, 앞치마, 깨진 유리 등을 새롭게 자원순환하는 새활용(업사이클링) 패션쇼다. 환경문화조직위원회는 30여년 전부터 환경운동을 문화운동으로 탈바꿈시켜 직접 보고, 듣고,즐기면서 느낄 수 있게 유·초·중·고·대학생, 주부, 실버, 외국인, 다문화, 장애인 등 500여명이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 문화행사를 실천하는 단체다.김은구 기자 cowboy@edaily.co.kr 2023.12.15 15:46
연예일반

조동휘 위원장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새로운 소망 향해 다시 나아가길”

2023월드엑스포 부산 홍보대사들이 유치 실패를 두고 아쉬움을 표했다.최근 서포터즈 홍보대사들은 아쉬운 마음을 담아 강남에 모여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순수한 봉사정신으로 열심히 유치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가 다소 만족스럽지 못 해 속상하다”며 “민간 서포터즈 최초로 해외 90여개국이란 협의회를 구성해 대한민국과 부산시를 알렸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고 아쉬움을 달랬다. 이날 참석자로는 영화배우 홍성영,한지일 트롯가수 레오, 탤런트 황우연, 박종진, 가수 제임스킹, 권투챔피언 장정구 등이 왔다. 배우 이자 글로벌홍보위원장 한지일은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에 국민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앞으로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과 힘을 내자는 의미로 이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한 조동휘 위원장은 “홍보대사님들이 유치 활동에도 수고를 많이 해 줘서 감사하다. 특별히 국민들을 위해 좋은 자리를 마련해 줘 감사하다. 국민들께서 많은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행사는 마쳤지만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하며 서로 탓하는 것보다 모든 국민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빠르게 새로운 소망을 향해 다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030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으로 높아진 부산의 위상을 활용해 디지털·그린 경제 분야 국제 협력, 글로벌 금융기관과의 협력, 세계적인 문화관광 도시 육성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그러나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진행된 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 투표에서 29표를 얻는 데 그쳐 119표를 획득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2030엑스포 유치권을 내줬다.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3.12.04 09:37
프로야구

[KBO리그 40년 The moment] 이승엽 56홈런·정민태 선발 21연승, 그리고 삿포로 참사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 삼성 이승엽이 마침내 아시아 한 시즌 최다 56홈런 신기록을 달성했다. 정규시즌 최종전이었던 10월 2일 대구 롯데전 2회 말 이정민을 상대로 시즌 56번째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이로써 일본 프로야구 오 사다하루(왕정치)가 1964년 작성한 55홈런을 넘어섰다. 9월 27일 사직 경기에서 롯데가 대기록에 도전하던 이승엽을 고의4구로 거르면서 흥분한 팬들이 난동을 일으켜 1시간 34분 동안 경기 중단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승엽의 정규시즌 MVP 수상은 당연했다. 개인 통산 5번째이자 최초의 3년 연속 수상이다. ② MLB 대신 일본으로 대기록을 작성한 이승엽은 정규시즌 종료 후 해외 진출을 타진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로 가느냐,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하느냐만 남았을 뿐이었다. 이승엽의 거취와 관련된 소식이 거의 매일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했다. MLB 구단의 계약 조건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이승엽은 고심 끝에 일본 지바 롯데 말린스와 2년 최대 5억엔(현재 기준 약 49억원)의 조건에 계약했다. ③ 또 날아오른 유니콘스 모기업 재정난 탓에 박경완(자유계약선수)와 박재홍(트레이드)이 떠나면서 현대의 전력은 약화했다. 하지만 탄탄한 선발진을 구축했고 마무리 조용준이 뒷문을 지켰다. 타선은 심정수(53홈런)를 필두로 이숭용, 전준호, 박종호, 박진만 등이 상·하위 구분 없이 맹활약했다. 포수 김동수가 박경완이 떠난 자리를 메웠고, 교체 외국인 타자 브룸바도 펄펄 날았다. SK와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는 정민태의 완봉승에 힘입어 7-0으로 승리,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④ 삿포로 참사 국제무대에서 승승장구하던 한국 야구대표팀이 망신을 당했다. 이승엽·이종범·박재홍·김동주(이상 타자) 정민태·임창용·이강철(이상 투수) 등 리그 최고 선수들이 총출동한 아시아선수권에서 1승 2패로 3위에 그쳤다. 대만에 연장 10회 말 끝내기 패배를 당했고, 일본에는 0-2로 무릎을 꿇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을 겸해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3위에 그친 한국은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⑤ 선동열 후폭풍 일본 주니치에서 코치 연수를 마친 선동열 KBO 홍보위원이 돌아오자 여러 팀이 그의 영입을 추진했다. 두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에 김인식 감독이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선동열과 두산은 코치진 구성 등을 놓고 이견을 보여 계약이 결렬됐다. 선동열은 2004년 김응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삼성의 수석코치를 맡았다. 김인식 감독이 떠난 두산은 김경문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했다. ⑥ 쏟아진 FA, 이적 시장 활발 2003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선수) 대박이 쏟아졌다. 사상 최다인 13명이 FA를 신청했다. 정수근(두산→롯데·6년 40억6000만원) 이상목(한화→롯데·4년 22억원) 마해영(삼성→KIA·4년 28억원) 박종호(현대→삼성·4년 22억원) 진필중(KIA→LG·4년 30억원) 등 대형 FA들이 활발하게 이적했다. ⑦ 이종범 MVP 그랜드슬램 올스타전 최다(13회) 베스트 멤버에 선정된 KIA 이종범은 선수 시절 딱 한 차례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됐다. 2003년 웨스턴(서군) 리그 2번 타자로 나서 4타수 2안타 2타점 2도루를 기록, 9-4 승리를 이끌었다. 이종범은 한국시리즈(1993년, 97년)와 정규시즌(1994년)에 이어 올스타전 MVP까지 석권, 국내 선수로는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리그 최초 기록은 타이론 우즈(2001년)가 작성했다. 삼성은 올스타전 10개 포지션 중 2루수를 제외한 9개 포지션을 휩쓸었다.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다 올스타를 배출했다. ⑧ 롯데 사상 첫 3년 연속 꼴찌 구도 부산의 자존심이 확 구겨졌다. 롯데는 정규시즌 133경기에서 39승 91패 3무의 성적으로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꼴찌(승률 0.280-0.245-0.256)를 기록했다. 개막 이후 1무 포함 12연패, 7월 이후 15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팀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외국인 선수는 극도로 부진했다. 백인천 감독이 8월 초 경질됐고, 시즌 종료 후 양상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⑨ 다승왕 정민태 선발 21연승 정민태는 일본 요미우리에서의 2년 도전을 접고 복귀하자마자 리그를 휩쓸었다. 정규시즌 다승왕(17승 2패) 승률왕(0.895) 등 2관왕에 올랐다. 한국시리즈에는 홀로 3승을 거둬 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1차전에 등판한 그는 사흘 휴식 후 4차전·7차전에 등판해 역투했다. 2003년 8월 31일 두산과의 더블헤더 2차전을 통해 한·미·일 프로야구 통틀어 최다인 선발 21연승 신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형석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5 18:01
프로야구

[KBO리그 40년 The moment] 21세기 첫 챔피언 현대, 드림팀은 올림픽 동메달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비룡 군단' 입성 모그룹 부도로 야구단 운영이 어려워진 쌍방울은 2000년 1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매각 위임 공문을 보냈다. KBO는 쌍방울 퇴출을 결정했다. SK그룹이 가입금 250억원을 내고 KBO리그에 합류, 인천을 연고로 SK 와이번스를 창단했다. 초대 사령탑은 강병철 감독이 맡았다. SK는 창단 첫 시즌(2000) 44승 3무 86패를 기록하며 매직리그 4위에 그쳤다. ②선수협 파동 1988년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최동원은 선수 권익 향상을 위해 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각 구단의 강경 대응으로 이는 백지화됐다. 이후에도 선수협 설립 움직임은 꾸준히 이어졌고, 2000년 그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1월 22일, 선수 75명이 송진우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선수협 발족을 선언했지만, KBO 이사회는 선수협 가입 선수 전원을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시민단체와 정치권까지 목소리를 내며 논란이 커졌다. 3월 10일 문화관광부의 중재로 갈등을 잠시 봉합했지만, 2000시즌 종료 뒤 갈등이 재점화됐다. 송진우·양준혁·마해영 등 집행부 6명이 소속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자, 이전까지 중립 입장을 지켰던 다수 선수가 KBO와 구단에 반발하며 선수협에 대거 가입했다. 국민적 지지까지 얻은 선수협은 결국 공식 출범했다. ③김동주, 잠실구장 첫 장외홈런 두산 김동주는 5월 4일 롯데 투수 에밀리아노 기론으로부터 공식 비거리 150m의 대형 아치를 터뜨렸다. 1982년 7월 15일 개장한 잠실구장에서 처음으로 나온 장외홈런. 두산 이를 기념하기 위해 홈런이 떨어진 자리에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기념 동판을 설치했다. ④제주도에서 열린 첫 올스타전 7월 23일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제주도에서 올스타전(2경기)이 열렸다. 궂은 날씨에도 1만 3200여 명이 오라구장을 찾아 별들의 축제를 즐겼다. 제주 출신 투수 오봉옥(당시 해태)은 누구보다 많은 응원을 받았고,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각 구단 사령탑들이 참가한 홈런레이스도 색다른 재미를 안겼다. 이광은 당시 LG 감독이 우승을 차지했다. '미스터 올스타'는 1·2차전 합계 11타수 5안타 6타점을 올린 송지만이 차지했다. ⑤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획득 김응용 감독이 이끈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대표팀은 예선 리그 5차전까지 3패(2승)를 당했다. 토너먼트 진출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에이스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내세운 일본과 6차전을 벌어 연장전 끝에 7-6으로 이겼다. 이어 남아공과의 7차전을 13-3으로 승리한 한국은 4강에 진출했다. 미국과의 준결승전에선 9회 말 끝내기 홈런을 맞고 2-3으로 패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3-1로 다시 이기고 동메달을 땄다. 0-0으로 맞선 8회 말 2사 2·3루에 나선 이승엽이 마쓰자카로부터 2타점 2루타를 터뜨렸고, 김동주가 쐐기 적시타를 쳤다. 선발 구대성은 9이닝 1실점으로 호투, '일본 킬러'로 거듭났다. ⑥박경완 4연타석 홈런 현대 포수 박경완은 5월 19일 한화와의 원정 경기에서 프로야구 역대 최초로 한 경기에 홈런 4개를 쳤다. 4연타석 홈런 달성도 박경완이 최초였다. 당시 한 경기 최다 루타(16개) 신기록도 경신했다. 박경완은 2·3회 초 한화 신인 투수 조규수를 상대로 각각 솔로 홈런과 투런 홈런을 쳤고, 5회는 오창선으로부터 솔로포 1개를 더 추가했다. 현대가 15-2로 승기를 잡은 6회 타석에선 김경원으로부터 장외 홈런까지 쏘아 올렸다. ⑦현대, 정규시즌 90승 돌파 21세기 첫 시즌에 현대가 최초로 90승을 넘어섰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91승 2무 40패. 그해 남긴 승률 0.695는 아직도 깨지지 않은 단일 시즌 최고 기록이다. 마운드에선 정민태·임선동·김수경이 18승을 거두며 다승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박경완은 홈런(40개), 박종호는 타율(0.340), 박재홍은 타점(115개) 부문 1위에 올랐다. 일찌감치 드림리그 1위를 차지한 현대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 4연승을 거뒀고, 두산과의 한국시리즈(KS)에서도 4승 3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⑧박경완 MVP 선정 현대의 통합 우승을 이끈 박경완은 2000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했다. 그는 130경기에서 타율 0.282 40홈런 95타점 83득점을 기록했다. 단일 시즌 40홈런을 기록한 최초의 포수로 이름을 올렸다. 1985년 이만수 이후 15년 만에 탄생한 '포수 홈런왕'이었다. ⑨선동열 KBO홍보위원 활동 프로야구는 1995년 540만 관중을 기록한 뒤 3년 연속 관중 수가 줄어들었다. KBO는 2000년 3월,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은퇴한 '국보 투수' 선동열을 홍보위원으로 위촉,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선동열은 전국을 순회하며 자신의 이름을 딴 야구 교실을 개최하는 등 야구 발전에 힘을 실었다. ⑩호랑이 굴 떠난 김응용 김응용 감독이 해태 지휘봉을 놓고 삼성으로 향했다. 10월 30일 삼성 구단은 5년 총액 13억원(계약금 5억원·연봉 2억원)에 김응용 감독과 계약했다고 밝혔다. 그는 1983년부터 18년 동안 해태를 이끌며 9번이나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차지했다. 해태 감독으로만 1151승(2122경기)을 거뒀다. 안희수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4 18:00
프로야구

[IS 인터뷰]이승엽 두산 감독 "끝까지 포기 않고 감동을 주는 야구 하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감동을 주는 야구를 선보이고 싶다." '라이언킹' 이승엽(46) 두산 베어스 신임 감독이 사령탑을 맡게 된 포부를 전했다. 두산 구단은 14일 오전 "이승엽 KBO 총재특보를 구단 11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알렸다. 계약 기간은 3년, 연봉은 3억원, 계약금은 5억원이다. 지도자 경험이 없던 그에게 3년이라는 초특급 대우를 안겼다. 이승엽 신임 감독은 KBO리그를 대표하던 '삼성맨'이다. 경상중·경북고를 거쳐 1995년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통산 1096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2·467홈런·1498타점을 기록했다. MVP(최우수선수)와 홈런왕을 각각 5차례 차지했고, 골든글러브는 10차례 수상했다. 2004년 일본 리그에 진출, 지바 롯데와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으로 8년 동안 뛰었다. 이 감독은 2017년 은퇴 뒤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아왔다. 대신 KBO 홍보위원과 방송사 해설위원, 이승엽야구장학재단을 운영하며 장외에서 프로야구를 지원했다. 5년 만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삼성맨'이었던 그가 어떻게 '두산맨'으로 변신했을까. 이 감독은 14일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공식적으로 감독 제안을 받은 건 이틀 전이다. 그 전에도 김태룡 두산 단장님과는 잘 알고 지낸 사이였다"라며 "이틀 전 제안을 받았고, 어제 2022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 중계 해설을 마친 후 수락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자신을 믿어준 두산에 대해 감사를 전했다. 이 감독은 "두산이 저를 원했다. 사실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항상 보답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나. 나 역시 두산이 같이 하자고 했을 때 그랬다"며 "선수 시절 뛰었던 팀도 아니었고, 지도자로서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의 후보였는데 제안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나도 현장에 대한 생각을 항상 했기에 자연스럽게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태룡 단장님에 대한 신뢰도 물론 영향이 컸다. 평소 이야기도 많이 나눠왔던 만큼 단장님의 존재가 선택에 큰 힘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승엽 감독은 "사실 난 리스크가 많은 신임 감독이다. 두산 이미지도 거의 없고 코치 경험도 없다. 주변에서도 우려를 많이 전했다. 물론 나 역시 부담을 느낀다"면서도 "하지만 부담감 없이 어떻게 야구를 할 수 있겠나. 항상 그런 것을 안고 해왔다. 잘하면 박수받고, 못하면 당연히 비난 받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랐던 두산은 올 시즌 9위에 머물렀다. 많은 베테랑이 은퇴했고, FA(자유계약선수) 유출도 많다. 이승엽 감독은 "우선 어린 선수들을 잘 키워야 하는 상황은 맞다. 그래도 베테랑 선수들 고액 연봉 선수들도 많으니 리빌딩과 성적을 모두 챙겨야 한다. 프로라면 성적을 내는 건 당연하다. 성적을 내면서 어린 선수들이 1군에서 자리 잡게 하고 싶다"고 했다. '선수' 이승엽은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홈런 타자였다. 감독 이승엽의 야구는 조금 다를 전망이다. 이 감독은 "난 홈런을 뻥뻥 치는 야구를 했지만, 감독으로서는 상대 수비에 맞게 타구를 보내고, 땅볼로 한 점을 내기도 하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8년 동안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어봤다. 일본야구의 경기력이 굉장히 좋았고, 정작 난 일본에서 거의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더 이 야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감독은 "삼성 팬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15시즌을 뛰면서 좋은 시절을 다 삼성에서 보냈다. 좋은 추억을 안고 이제 떠난다"라며 "두산 팬 여러분들께서는 앞으로 저에게 손뼉을 쳐주실지, 비난하실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 프런트, 코칭 스태프, 선수단과 힘을 합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감동을 주는 야구를 선보이겠다"고 전했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10.14 17:06
프로야구

[IS 포커스]'좋은 사람' 이승엽, 감독으로는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까

이승엽(46) 두산 베어스 신임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손꼽히는 스타다. 이름 앞에 '국민(타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유일한 야구인이다. 은퇴 뒤에도 그의 이름값은 현역 선수·지도자에 밀리지 않았다. '지도자 이승엽'은 예상이 어렵다. 이승엽 감독은 2017시즌 선수 은퇴 뒤 현장(야구단)을 떠났다. KBO 홍보위원, 방송사 해설위원 그리고 장학재단 운영 등 한 걸음 떨어진 위치에서 야구를 지원했다. 선임설이 불거진 이틀 전부터 야구 커뮤니티는 그 자격을 두고 들끓었다. '프로 무대에서 지도자 경험이 없는 이승엽이 바로 감독을 하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화두였다. 두산 구단 또는 모기업은 '백지 이력' 논란을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포츠인 특유의 비범한 기질에 기대를 건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구단은 "이승엽 신임 감독의 이름값이 아닌 지도자로서의 철학과 비전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했다. 결국 이 선택은 1년 뒤 결과로 평가받을 것이다. 선수 시절 이승엽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대명사였다. 선·후배나 지도자를 대하며 항상 예의를 중시했고, 사생활도 모범적이었다. 취재 영역에서 이승엽 감독에게 받은 인상도 '모범적이고 점잖다'는 것이었다. 이 감독은 선수 은퇴 직후 나선 강연에서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 때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국민적 사랑을 받은 만큼 그라운드 안팎에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던 것. 실제로 은퇴 뒤 언행은 선수 시절보다 유연해졌다. 후배들에겐 자상한 선배였다. 지난 2019년 2월, 당시 방송사 해설위원 자격으로 KT 위즈의 애리조나(투손) 캠프를 찾은 이승엽 감독이 몇몇 후배들의 기량과 성장 가능성, 현재 받고 있는 대우 등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후배 사랑과 야구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이승엽 감독이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관심이 모인다. 선수 시절이나 은퇴 직후의 모습을 반영하면, '큰 형님 리더십'보다는 소통을 강조하는 '엄마 리더십'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예단할 수도 없다. 선수 시절에도 명확한 기준을 갖고 사람을 대했고, 이를 벗어나는 이에겐 단호하고 냉정했다. 이제 팀의 명운을 쥔 자리에 있는 만큼 선수 시절 좋은 사람, 좋은 선배였던 모습을 감추려 할지도 모른다. 안희수 기자 2022.10.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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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감독 "탄탄한 기본기로 감동 주는 야구 펼칠 것"

이승엽(46) 두산 베어스 신임 감독이 취임 소감을 전했다. 기정사실로 여겨졌던 '이승엽 감독 내정설'이 현실이 됐다. 두산 구단은 14일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이승엽 KBO 총재특보를 구단 11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알렸다. 계약 기간은 3년, 연봉은 3억원, 계약금은 5억원이다.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은 야구인으로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이승엽 신임 감독은 경상중·경북고를 거쳐 1995년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통산 1096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2·467홈런·1498타점을 기록했다. MVP(최우수선수)와 홈런왕을 각각 5차례 차지했고, 골든글러브는 10차례 수상했다. 2004년 일본 리그에 진출, 지바 롯데와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으로 8년 동안 뛰었다. 이 감독은 올림픽·아시안게임·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국제 대회에서의 극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국민 타자'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특히 2008 베이징 하계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역전 투런 홈런을 친 장면이 유명하다. 이 감독은 2007년 은퇴 뒤 KBO 홍보위원과 방송사 해설위원, 이승엽야구장학재단을 운영하며 장외에서 프로야구를 지원했다. 5년 만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이승엽 신임 감독은 "현역 시절 야구팬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지도자가 되어 그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다"며 "그리웠던 그라운드를 5년 만에 밟게 됐다. 현역 시절 한국과 일본에서 얻은 경험에다 KBO 기술위원과 해설로 보고 배운 점들을 더해 선수단을 하나로 모을 것이다. 화려함보단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팬들에게 감동을 드리는 야구를 펼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안희수 기자 2022.10.1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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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셜]'국민 타자' 이승엽, 두산 감독 선임...3년·18억원

'국민 타자' 이승엽(46)이 두산 베어스 지휘봉을 잡았다. 두산 구단은 14일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제 11대 감독으로 이승엽 KBO 총재특보를 선임했다. 계약 기간은 3년, 총액은 18억원(계약금 3억·연봉 5억)이다"고 밝혔다. 이승엽 감독은 故 최동원,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 이종범 LG 트윈스 2군 감독과 함께 KBO리그 출범 40주년 레전드 베스트4에 이름을 올린 한국야구 대표 아이콘이다. '국민 타자'라는 수식어가 그의 선수 시절 명성을 대변한다. 통산 홈런 1위(467)를 지키고 있고, 단일시즌 최다 홈런 기록(56개)도 갖고 있다. 7시즌 연속 30홈런을 친 유일한 타자다. 통산 타점·득점·루타·OPS(장타율과 출루율 합계)도 1위다. 골든글러브는 10회, 정규시즌 MVP(최우수선수)는 5회를 수상했다. 이승엽 감독은 프로 무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지 않았다. 2017년 은퇴 뒤 KBO 홍보위원, 방송사 해설위원, 방송 활동을 했다. 초보 감독의 연봉 수준은 2억원에서 2억 5000만원 수준이다. 이를 웃도는 대우를 받았다. 두산 구단은 "이승엽 신임 감독의 이름값이 아닌 지도자로서의 철학과 비전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베테랑과 젊은 선수들의 신구조화를 통해 두산베어스의 또 다른 도약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승엽 신임 감독은 "현역 시절 야구 팬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지도자가 되어 그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다"며 "두산에서 손을 내밀어주셨고 고민 끝에 결정했다. 그동안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삼성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그리웠던 그라운드를 5년 만에 밟게 됐다. 현역 시절 한국과 일본에서 얻은 경험에다 KBO 기술위원과 해설로 보고 배운 점들을 더해 선수단을 하나로 모을 것이다. 화려함보단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팬들에게 감동을 드리는 야구를 펼치겠다"고 덧붙였다. 이승엽 신임감독의 취임식은 18일 잠실 야구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안희수 기자 2022.10.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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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의 수다] '라떼'는 그랬지…"동원이와 찍은 사진 없어"

"옛날에는 기자들이랑 전기 리그 끝나고 야유회도 갔지."(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 "그 당시 낮 경기 끝나면 집에서 기자들하고 고스톱도 쳤어."(김시진 전 롯데자이언츠 감독)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있을 때 쟤(선동열 감독) 좀 데려오라고 추천했는데…."(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 멍석을 깔아주니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졌다. 한 시대를 풍미한 프로야구 레전드인 만큼 입담의 무게도 묵직했다. 케케묵은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과거엔 민감할 수 있는 '영업 비밀'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일간스포츠 창간 53주년 사진전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키워드는 역시 '사진'이었다. 김시진 전 감독은 "다 뺏겨서 없다. 1987년쯤인가, 책을 쓴다고 해서 (출판사에) 사진을 거의 200장 정도 줬던 거 같다. 그걸 돌려받지 못했다"며 "며칠 전 (최)동원이 관련해서 인터뷰했는데 대학생 때 대표팀에 뽑혀 같이 찍은 사진도 없더라. (이만수 전 감독을 가리키며) 당신하고 찍은 사진도 2~3장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김시진 전 감독과 이만수 전 감독은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와 한양대 동문에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절친'이다. 서로를 알고 지낸 시간이 꽤 길지만, 학창시절 함께 찍은 사진은 귀하디귀하다. 옆에 있던 선동열 전 감독이 거들었다. 선수 시절 불세출의 스타였던 선 전 감독은 일거수일투족이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했다. 그와 관련한 사진을 선점하려고 사진 기자들의 경쟁도 불꽃 튀었다. 선동열 전 감독은 "그때만 해도 집에 와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앨범을 보고 '이거 좀 쓰고 돌려주겠다'고 그랬지만 실제 돌려준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어릴 때 사진이 아예 없다"고 푸념했다. 김시진 전 감독은 "사진하면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며 "1978년 이탈리아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서 (박)철순이형이 필름 카메라를 하나 샀다. 로마 트레비 분수 앞에서 선글라스 끼고 폼을 잡았다. 지나가던 사람한테 사진을 부탁했는데 빽빽(back back) 외치며, 계속 뒤로 가라고 하더라. 그 순간 카메라를 갖고 도망갔다. 그땐 내가 발도 빨랐는데 그를 잡지 못했다"며 웃었다. 취재 환경도 달라졌다. 과거엔 일간스포츠를 비롯한 오프라인 몇몇 매체만 야구를 취재했다. 현장 기자가 적으니 가족 같은 분위기가 유지됐다. 선동열 전 감독은 "전기 리그가 끝나면 후기 리그를 앞두고 브레이크 타임이 있었다. 그때 기자들과 야유회를 가서 각종 고기를 함께 먹었다. 해태의 전통 같은 거였다"고 회상했다. 김시진 전 감독은 "그 당시 (기자라고 하더라도) 나이가 많으면 형처럼 생각하고 같이 어울렸다"며 "부산(롯데)에 있을 때는 와이프한테 전화해서 (기자들과) 집으로 갔다. 거기서 고스톱도 치고 복개천에 나가서 술도 함께 마셨다"고 맞장구를 쳤다. 선동열 전 감독과 김시진 전 감독은 '슬라이더 마스터'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 전 감독은 "선 감독 공을 처음 본 게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차출되고 나서다. 그때 선 감독은 고려대를 다닐 때였고, 난 군대 상병이었다. 서울 역삼도 반도유스호스텔에서 합숙했는데 선 감독의 슬라이더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어떻게 슬라이더 추진력이 저렇게 좋을까 싶었다. 타자 앞에서 꺾이는 게 내가 던지는 슬라이더하고 차이가 있었다. 다만 어떻게 던지냐고 물어보진 못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멋쩍게 칭찬을 듣고 있던 선동열 전 감독은 "시진이 형이나 (임)호균이 형을 비롯해 선배들이 던지는 걸 보고 '우리나라 투수가 최고구나' 싶었다. 시진이 형은 투구 폼이 굉장히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커맨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만수 전 감독은 선동열 전 감독을 향해 "쟤가 왔어야 했다"며 농을 쳤다. 이 전 감독은 1997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 이듬해 미국 행을 선택했고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 포수와 불펜코치로 활약했다. 이만수 전 감독은 "당시 켄 윌리엄스 화이트삭스 단장과 제리 매뉴얼 감독에게 (선동열) 영입을 추천했다. 선동열 감독은 영리해서 잘할 거 같았다"며 "(그 당시 미국에선) 아시아 야구를 얕보는 게 있었다. 선동열 감독이 (메이저리그를) 통일시켰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조계현, 이강철까지 3명을 추천했는데 모두 내 타율을 깎아 먹은 투수들"이라고 추억했다. 이만수 전 감독은 "미국에서 깜짝 놀란 건 영업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걸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다 알려주더라. 우리와 스타일이 달랐다"고 했다. 이를 듣고 있던 김시진 전 감독은 "우리 땐 올스타전을 3차전까지 했는데 당시 친한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면 그립 같은 영업 비밀을 다 알려줬다. 그래서 올스타가 아니라 '술스타'였다. 이 감독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 몰랐을 뿐"이라며 껄껄 웃었다. 일간스포츠와 사연도 깊다. 일간스포츠는 1984년까지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였다. 프로야구가 태생한 1982년에도 유일하게 현장을 지켰다. 선동열 전 감독은 "소년 체전에 나갔던 중학생 때 일간스포츠에 처음 기사가 실렸던 거 같다. (프로에 와서는) 1988년부터인가 일간스포츠가 주관하는 시상식에서 최고투수상을 다섯 번인가 연속으로 받았다. 그때만 해도 다섯 냥짜리 금메달을 부상으로 줬다. 아직도 그걸 갖고 있다. 일간스포츠와 좋은 추억이 많다"고 회상했다. 김시진 전 감독도 뒤지지 않았다. 김 전 감독은 "일간스포츠에 처음 나온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동대문야구장에서 비가 와서 노게임이 선언됐는데 다음 날 선발로 나가서 이겼다.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됐다"며 "(은퇴한 뒤에는 일간스포츠 시상식에서) 프로코치상을 두 번인가 세 번 받았다. 난 일간스포츠에 서운한 게 하나도 없다"며 웃었다. 이만수 전 감독도 선수 시절 일간스포츠 시상식과 지면을 수차례 채웠다. 2017년에는 일간스포츠와 조아제약이 공동 제정한 조아제약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자비로 자선 재단 헐크파운데이션을 만들고,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하는 산파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2.09.2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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